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475년 백제 웅진천도와 서천 봉선리 재지세력의 변화 = The Change of Seocheon Bongseon-ri Faction After Transfer of the Capital of Baekje in 475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6493637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One of the main forces at the mouth of the Geumgang River is the Seocheon Bongseon-ri. The ruins of Jisan-ri, near the Three Kingdoms Period, rose rapidly from the lower reaches of the Baekje Kingdom, becoming the most powerful force in the Seocheon a...

      One of the main forces at the mouth of the Geumgang River is the Seocheon Bongseon-ri. The ruins of Jisan-ri, near the Three Kingdoms Period, rose rapidly from the lower reaches of the Baekje Kingdom, becoming the most powerful force in the Seocheon area. The reason why the Jaeji forces in Bongseon-ri, Seocheon, grew during this period was that they embraced Baekje culture more than other regions. And as confirmed by the steel basin identified at the nearby Jisan-ri site, this area is an area related to steel facilities.
      However, the situation changed rapidly after Baekje had transferred its capital to Woongjin in 475. The central government of Baekje wanted to secure the mouth of the Geumgang River, a channel for foreign negotiations. To do so, it was necessary to restructure existing landowners. On the other hand, the Bongseon-ri Jaeji faction have might tried to overcome the crisis. During this time, the relics of Bongseon-ri's ancestral rites appeared. King Dong-seong often went hunting in the mouth of the Geumgang River, possibly accompanied by sacrificial rites in the sky and in the mountains. By doing so, the king wanted to rally the wealth of the people to the central government. On the other hand, the Bongseon-ri Jaejik faction might have wanted to be closely linked to the central government. The stone chamber tomb is a figure of the Bongseon-ri Jaeji forces that want to be closely associated with the central government.
      Heaven and Sanchon Temple we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king's own ritual, and the relics of Bongseon-ri changed after the reign of King Dongseong. The ritual site in Bongseon-ri may have been converted to wish for a sea safe voyage, such as the Jukmakdongjeok, because the sea water comes near and serves as a port of call. However, in the course of the realignment of the army, the forces of Bongseon-ri have declined.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봉선리 제사시설은 금강 하구에 자리하고 있다. 그 지리적 조건은 한성 도읍기 때보다 475년 웅진천도 후 중요해졌다. 금강하구의 재지세력 중 하나가 서천 봉선리 재지세력이다. 서천 봉선...

      봉선리 제사시설은 금강 하구에 자리하고 있다. 그 지리적 조건은 한성 도읍기 때보다 475년 웅진천도 후 중요해졌다. 금강하구의 재지세력 중 하나가 서천 봉선리 재지세력이다. 서천 봉선리 재지세력은 청동기시대 형성되기 시작하여 원삼국~백제시대까지 지속적으로 금강하구인 서천지역 대표적 재지세력이었다. 서천 봉선리 재지세력은 한성도읍기 백제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이 시기 서천 봉선리 재지세력이 성장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인근 지산리 유적에서 확인된 제철유구에서 확인되었듯이 이 일대는 철의 유통과 관련된 지역이다. 서천 봉선리 수혈식석곽묘에서 군사적 집단으로 추정될 만큼 다수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다수의 철기류는 봉선리 재지세력이 철의 유통과 관련하여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들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백제 문화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475년 백제의 웅진천도 후 상황이 급변하게 되었다. 백제 중앙 정부는 대외교섭 창구인 금강 하구를 통제하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 기존의 재지세력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였다. 반면 봉선리 재지세력은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 시기 봉선리 제사시설이 주목된다. 동성왕은 금강 하구 지역으로 사냥을 자주 나가면서 이 지역을 순수하였는데, 그때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도 동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통해 동성왕은 재지세력을 중앙 정부로 통제하고자 하였다. 반면 봉선리 재지세력은 중앙정부와 밀접하게 연결되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 노력의 흔적이 봉선리 제사시설로 나타났다. 제사시설은 동성왕의 사냥행위와 관련이 있다. 동성왕은 이곳에서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드림으로써 금강하구 일대의 재지세력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하늘과 산천제사는 동성왕의 사냥행위와 관련한 일시적 제사행위였다. 본래 봉선리 제사시설은 바닷물이 가까이 들어와 기항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으로 보아 바다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성격을 지녔다. 봉선리 재지세력은 중앙정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기존 세력을 유지하고자 하였으나, 동성왕은 기존의 재지세력을 통제하여 그 세력을 쇠퇴시키고자 하였다. 그로 인해 봉선리 재지세력은 점차 그 세력이 쇠퇴하고 말았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성정용, "홍성 신금성 출토 백제토기에 대한 고찰" 15 : 1994

      2 윤정현, "호서지역 백제 영역화에 따른 취락의 변화양상" 백제연구소 (59) : 1-44, 2014

      3 유병하, "호남지역 선사/고대의 해양제사" 2014

      4 박순발, "한성백제의 탄생" 2001

      5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한반도의 제철유적" 2012

      6 "충남 서천 봉선리 백제 제의관련 유적"

      7 김주성, "죽막동유적의 쇠퇴와 태안마애삼존불" 한국상고사학회 40 : 57-76, 2003

      8 정해준,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주거지(住居址)와 백제시대(百濟時代) 주거지(住居址)의 비교검토(比較檢討) -서천(舒川) 봉신리(鳳神里) 유적(遺蹟)을 중심(中心)으로-" 백제문화연구소 (38) : 103-131, 2008

      9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웅진도읍기의 백제" 2007

      10 김영하, "신라시대 순수의 성격" 13 : 1979

      1 성정용, "홍성 신금성 출토 백제토기에 대한 고찰" 15 : 1994

      2 윤정현, "호서지역 백제 영역화에 따른 취락의 변화양상" 백제연구소 (59) : 1-44, 2014

      3 유병하, "호남지역 선사/고대의 해양제사" 2014

      4 박순발, "한성백제의 탄생" 2001

      5 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한반도의 제철유적" 2012

      6 "충남 서천 봉선리 백제 제의관련 유적"

      7 김주성, "죽막동유적의 쇠퇴와 태안마애삼존불" 한국상고사학회 40 : 57-76, 2003

      8 정해준,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주거지(住居址)와 백제시대(百濟時代) 주거지(住居址)의 비교검토(比較檢討) -서천(舒川) 봉신리(鳳神里) 유적(遺蹟)을 중심(中心)으로-" 백제문화연구소 (38) : 103-131, 2008

      9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웅진도읍기의 백제" 2007

      10 김영하, "신라시대 순수의 성격" 13 : 1979

      11 공주대학교박물관, "서천 지산리 유적" 2005

      12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서천 봉선리유적 탐방로구역(4차) 발굴조사 개략보고서" 2019

      13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서천 봉선리유적 탐방로구역(3차) 발굴조사 개략보고서" 2018

      14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서천 봉선리유적 시굴조사" 2016

      15 장영미, "서천 봉선리유적 수혈식석곽묘에 관한 연구" 공주대학교 2010

      16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서천 봉선리 유적Ⅱ" 2019

      17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서천 봉선리 유적Ⅰ" 2018

      18 양수연, "서천 봉선리 유적 발굴조사와 성과" 2017

      19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서천 봉선리 유적" 2005

      20 윤수희, "삼국시대연구 1" 학연문화사 2001

      21 권순형, "분묘유적으로 본 백제시대의 서천지역" 공주대학교 대학원 2013

      22 최봉균, "분구묘의 전개양상과 정치·사회적 의미 : 호서지역을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대학원 2010

      23 박지영, "백제의 확장과 주변부 취락 재조직" 서울대학교 2017

      24 문안식, "백제의 해상활동과 신의도 상서고분의 축조 배경" 백제문화연구소 1 (1): 77-113, 2014

      25 문안식, "백제의 영역확장과 변방세력의 추이"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1

      26 김기섭, "백제와 금강" 백제사연구회 2007

      27 양수연, "백제시대 제의시설 발굴성과와 비교검토" 공주시/국립공주대학교박물관 2018

      28 정해준, "백제묘제를 통해 본 봉선리 유적 조영집단의 특징과 성격 -철기유물을 중심으로-" 백제문화연구소 (35) : 49-74, 2006

      29 노중국, "백제 왕실의 남천과 지배세력의 변천" 4 (4): 1978

      30 박윤우, "백제 사씨 세력에 대한 연구" 공주대학교 2017

      31 "백제 목곽고 발견 천제단 추정"

      32 김기섭, "백제 동성왕의 즉위와 정국 변화" 한국상고사학회 50 (50): 5-21, 2005

      33 강종원, "백제 국가권력의 확산과 과정" 서경문화사 2012

      34 한성백제박물관, "근초고왕 때 백제 영토는 어디까지였나" 2014

      35 정운룡, "고분을 통해 본 백제의 보령지역 지배" 21 : 2004

      36 이정신, "고려시대 금 은채굴과 금소․은소" 호서사학회 (57) : 279-310, 2010

      37 강종원, "百濟 沙氏勢力의 中央貴族化와 在地基盤" 백제연구소 (45) : 19-36, 2007

      38 이남석, "百濟 喪葬儀禮의 硏究 - 錦江流域 상장의례 遺蹟의 意味 -" 백제문화연구소 (54) : 311-336, 2016

      39 이홍종, "漢城 百濟期 錦江流域 據點地域의 地形條件" 백제연구소 (56) : 27-51, 2012

      40 서현주, "湖南西部地域 考古學資料를 통해 본 熊津期의 地方" 백제연구소 (55) : 113-144, 2012

      41 이현숙, "4∼5세기대 백제의 지역상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1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8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8 1.18 1.0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6 0.97 2.484 0.48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