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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안시성의 위치와 안시성주 전승의 추이 = Location of Ansi Castle of Goguryeo and the Transmission of Narratives related to its Gover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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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Until now, the retreat of the Tang dynasty army to Yodongseong from Ansi castle has received no attention in scholarly discourse. The retreat took between two and three days; the typical marching distance per day at that time, which yields a distance between the two castles of less than 70 km. Despite several assumptions about the location of Ansi castle, no current candidates match Ansi castle in terms of distance, except for the region around Haeseong city (海城市) and Youngseongja mountain castle (英城子山城) near Haseong city. Thus, it is necessary to investigate the region around Haeseong city to locate a castle that might be a good candidate for Ansi castle. The first written records of the Ansi castle’s governor Yang Manchoon is the book Dangseojijeontongsokyeonui (唐書志傳通俗演義), which was introduced to Joseon around the time of the Imjin Japanese Intrusion. A compilation of essays entitled as Woljeongmanphil (月汀漫筆) is the first written records about aforementioned name by Yoon Geunsoo. He heard of it himself from Ming dynasty’s Oh Jongdo (吳宗道). In addition, Joseon’s Lee Sibal read it and told Yoon Geunsoo that the castle governor was indeed Yang Manchoon. This suggested that Lee Sibal was the first to read Dangseojijeontongsokyenoui during the Joseon period. Scholars of the 16th and 17th centuries perpetuated the myths of Yang Manchoon begun by Yoon Geunsoo. Some of the original references to Ansi castle in Joseon’s literature mentioning Yang Manchoon are identified, but there are some unidentified records or misinformation associated with Yang Manchoon’s name. This incorrect information may have resulted from personal memories of books or was simply wrongly transmitted from others. In addition, expressions regarding the cited references varies; China (中國), transmission across generation (世傳), told by the Chinese (中原人相傳), Jungjujabgi (中州雜記), Chinese historical chronicles (中國史記), and overheard words (以愚所聞). Despite the lack of concrete details and absence of references, several literatures are thought to have been improvised by the author. Furthermore, there is the problem of the dual spellings of Yang Manchoon’s name, either 梁萬春 or 楊萬春 (though the names are pronounced the same, the surname’s characters differ). Although originally 梁萬春 as in Dangseojijeontongsokyeonui or Woljeongmanphil, people who did not read theses books confused with the more common name 楊, and it was the latter surname that was recorded and transmitted in the later liter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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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til now, the retreat of the Tang dynasty army to Yodongseong from Ansi castle has received no attention in scholarly discourse. The retreat took between two and three days; the typical marching distance per day at that time, which yields a distance ...

      Until now, the retreat of the Tang dynasty army to Yodongseong from Ansi castle has received no attention in scholarly discourse. The retreat took between two and three days; the typical marching distance per day at that time, which yields a distance between the two castles of less than 70 km. Despite several assumptions about the location of Ansi castle, no current candidates match Ansi castle in terms of distance, except for the region around Haeseong city (海城市) and Youngseongja mountain castle (英城子山城) near Haseong city. Thus, it is necessary to investigate the region around Haeseong city to locate a castle that might be a good candidate for Ansi castle. The first written records of the Ansi castle’s governor Yang Manchoon is the book Dangseojijeontongsokyeonui (唐書志傳通俗演義), which was introduced to Joseon around the time of the Imjin Japanese Intrusion. A compilation of essays entitled as Woljeongmanphil (月汀漫筆) is the first written records about aforementioned name by Yoon Geunsoo. He heard of it himself from Ming dynasty’s Oh Jongdo (吳宗道). In addition, Joseon’s Lee Sibal read it and told Yoon Geunsoo that the castle governor was indeed Yang Manchoon. This suggested that Lee Sibal was the first to read Dangseojijeontongsokyenoui during the Joseon period. Scholars of the 16th and 17th centuries perpetuated the myths of Yang Manchoon begun by Yoon Geunsoo. Some of the original references to Ansi castle in Joseon’s literature mentioning Yang Manchoon are identified, but there are some unidentified records or misinformation associated with Yang Manchoon’s name. This incorrect information may have resulted from personal memories of books or was simply wrongly transmitted from others. In addition, expressions regarding the cited references varies; China (中國), transmission across generation (世傳), told by the Chinese (中原人相傳), Jungjujabgi (中州雜記), Chinese historical chronicles (中國史記), and overheard words (以愚所聞). Despite the lack of concrete details and absence of references, several literatures are thought to have been improvised by the author. Furthermore, there is the problem of the dual spellings of Yang Manchoon’s name, either 梁萬春 or 楊萬春 (though the names are pronounced the same, the surname’s characters differ). Although originally 梁萬春 as in Dangseojijeontongsokyeonui or Woljeongmanphil, people who did not read theses books confused with the more common name 楊, and it was the latter surname that was recorded and transmitted in the later liter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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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지금까지 안시성의 연구에서는 당군이 안시성에서 요동성으로 퇴각하는 정황에 주목하지 않은 듯 하다. 당군은 불과 2-3일 사이에 안시성에서 요동성까지 퇴각하고 있다. 때문에 고대 사회에서 하루 진군하는 거리를 감안할 때 안시성은 요동성과의 거리는 약 70km 내외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안시성의 위치에 관한 다수의 학설이 존재하였지만, 현재 海城市 일대와 海城市 부근의 英城子山城을 제외하고 다른 여타의 성들은 거리상으로 안시성에 부합되지 않는다. 현재로선 영성자산성이 가장 여러 조건들을 가장 잘 부합하고 있다.
      안시성주 양만춘과 관련하여 『唐書志傳通俗演義』의 내용이 임진왜란 즈음에 조선으로 전해졌고, 그것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윤근수의 『月汀漫筆』이다. 이것은 명나라 사람 吳宗道로부터 윤근수가 전해 들은 것이고, 또한 조선인으로는 이시발이 직접 『唐書志傳通俗演義』를 보고 거기에서 확인한 성주가 양만춘임을 윤근수에게말한 듯 하다. 이 같은 정황으로 보면 조선 시대에 『唐書志傳通俗演義』를 처음으로 구해 본 것은 이시발이고, 양만춘 전승이 이후 지속된 것은 조선인 가운데 최초의 기록자인 윤근수 등 16세기-17세기 조선의 문인들에의해 시작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 많은 문헌들에서 안시성주 양만춘과 관련해서 인용하고있는 전거 가운데 일부는 확인할 수 있으나, 확인되지 않는 기록이나 오류도 발견된다. 이것은 당시 어떤 책을 읽고 기억하였던 분위기에서 개인적 기억에 의한 오류이거나 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가 잘못된 내용상의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인용 전거에 대한 표현도 中國, 世傳, 中原人相傳, 中州雜記, 中國史記, 以愚所 聞(들은 말) 등 구체적이지 않거나 전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임의적으로 기록한 것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양만춘의 姓에 대한 표기가 다소 차이가 있는 바, 梁萬春과 楊萬春으로 나타난다. 원래 『唐書志傳通俗 演義』나 『월정만필』 등에서는 梁萬春이었지만, 이러한 책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중국에서 흔한 姓인楊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楊萬春으로 기록하게 된 것이 이후 문헌들에 지속적으로 전승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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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안시성의 연구에서는 당군이 안시성에서 요동성으로 퇴각하는 정황에 주목하지 않은 듯 하다. 당군은 불과 2-3일 사이에 안시성에서 요동성까지 퇴각하고 있다. 때문에 고대 사회...

      지금까지 안시성의 연구에서는 당군이 안시성에서 요동성으로 퇴각하는 정황에 주목하지 않은 듯 하다. 당군은 불과 2-3일 사이에 안시성에서 요동성까지 퇴각하고 있다. 때문에 고대 사회에서 하루 진군하는 거리를 감안할 때 안시성은 요동성과의 거리는 약 70km 내외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안시성의 위치에 관한 다수의 학설이 존재하였지만, 현재 海城市 일대와 海城市 부근의 英城子山城을 제외하고 다른 여타의 성들은 거리상으로 안시성에 부합되지 않는다. 현재로선 영성자산성이 가장 여러 조건들을 가장 잘 부합하고 있다.
      안시성주 양만춘과 관련하여 『唐書志傳通俗演義』의 내용이 임진왜란 즈음에 조선으로 전해졌고, 그것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윤근수의 『月汀漫筆』이다. 이것은 명나라 사람 吳宗道로부터 윤근수가 전해 들은 것이고, 또한 조선인으로는 이시발이 직접 『唐書志傳通俗演義』를 보고 거기에서 확인한 성주가 양만춘임을 윤근수에게말한 듯 하다. 이 같은 정황으로 보면 조선 시대에 『唐書志傳通俗演義』를 처음으로 구해 본 것은 이시발이고, 양만춘 전승이 이후 지속된 것은 조선인 가운데 최초의 기록자인 윤근수 등 16세기-17세기 조선의 문인들에의해 시작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 많은 문헌들에서 안시성주 양만춘과 관련해서 인용하고있는 전거 가운데 일부는 확인할 수 있으나, 확인되지 않는 기록이나 오류도 발견된다. 이것은 당시 어떤 책을 읽고 기억하였던 분위기에서 개인적 기억에 의한 오류이거나 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가 잘못된 내용상의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인용 전거에 대한 표현도 中國, 世傳, 中原人相傳, 中州雜記, 中國史記, 以愚所 聞(들은 말) 등 구체적이지 않거나 전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임의적으로 기록한 것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양만춘의 姓에 대한 표기가 다소 차이가 있는 바, 梁萬春과 楊萬春으로 나타난다. 원래 『唐書志傳通俗 演義』나 『월정만필』 등에서는 梁萬春이었지만, 이러한 책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중국에서 흔한 姓인楊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楊萬春으로 기록하게 된 것이 이후 문헌들에 지속적으로 전승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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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명기, "조선시대 漢中 지식인의 高句麗 인식―고구려의 ‘强盛’과 조선의 고구려 계승 인식을 중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8) : 337-366, 2006

      2 허태용, "임진왜란의 경험과 고구려사 인식의 강화" 역사학회 (190) : 33-60, 2006

      3 김세호, "연행을 통해 되살아난 안시성(安市城)과 梁萬春/楊萬春" 우리한문학회 31 (31): 173-200, 2014

      4 정호섭, "백암 박은식의 고구려사 서술, In 백암 박은식의 고대사 서술" 2013

      5 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1986

      6 "魏書"

      7 王天姿, "高句麗遼東安市城, 建安城硏究" 中國 延辺大學 2018

      8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9 島田好, "高句麗の安市城の位置に就て" 49 (49): 1927

      10 张士尊, "高句丽安市城地点再探" 15 : 2013

      1 한명기, "조선시대 漢中 지식인의 高句麗 인식―고구려의 ‘强盛’과 조선의 고구려 계승 인식을 중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8) : 337-366, 2006

      2 허태용, "임진왜란의 경험과 고구려사 인식의 강화" 역사학회 (190) : 33-60, 2006

      3 김세호, "연행을 통해 되살아난 안시성(安市城)과 梁萬春/楊萬春" 우리한문학회 31 (31): 173-200, 2014

      4 정호섭, "백암 박은식의 고구려사 서술, In 백암 박은식의 고대사 서술" 2013

      5 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1986

      6 "魏書"

      7 王天姿, "高句麗遼東安市城, 建安城硏究" 中國 延辺大學 2018

      8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9 島田好, "高句麗の安市城の位置に就て" 49 (49): 1927

      10 张士尊, "高句丽安市城地点再探" 15 : 2013

      11 서영교, "駐蹕山 전투와 安市城" 동국역사문화연구소 (58) : 49-79, 2015

      12 "餘冬序錄"

      13 "韓溪遺稿"

      14 "靑莊館全書"

      15 崔德文, "遼代鐵州故址新探" 1992 (1992): 1992

      16 "通典"

      17 "資治通鑑"

      18 "薊山紀程"

      19 "著菴集"

      20 王禹浪, "营口市青石岭镇高句丽山城考察报告" 2009 (2009): 2009

      21 冯永谦, "营口市文物志" 遼寧民族出版社 1996

      22 "荷潭破寂錄"

      23 "舊唐書"

      24 "自著"

      25 "耳溪集"

      26 "續陰晴史"

      27 "稼亭集"

      28 "直菴集"

      29 정호섭, "白巖 朴殷植의 고구려사 서술에 대한 비판적 검토" 고려사학회 (54) : 33-66, 2014

      30 "玉海"

      31 "玄谷集"

      32 "燕轅直指"

      33 이승수, "燕行路上의 공간 탐색, 鳳凰山城: 安市城說과 관련하여" 한국학중앙연구원 29 (29): 367-388, 2006

      34 "燕巖集"

      35 "熱河日記"

      36 "無名子集"

      37 "漢書"

      38 閻萬章, "漢代安市縣與高句麗安市城非一地考" 1984 (1984): 1984

      39 "涪溪記聞"

      40 "梧陰遺稿"

      41 "東文選"

      42 "東史綱目"

      43 "東史綱目"

      44 "東史約"

      45 金毓黻, "東北通史" 洪氏出版社 1976

      46 崔艶茹, "東北亞歷史地理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8

      47 "東人詩話"

      48 "月汀漫筆"

      49 "月汀先生集"

      50 "晉書"

      51 "星湖全集"

      52 "星湖僿說"

      53 "新唐書"

      54 "承政院日記"

      55 "戊午燕行錄"

      56 "心田稿"

      57 "康節先生皇極經世書東史補編通載"

      58 "屛山集"

      59 "宣祖實錄"

      60 "宋子大全隨箚"

      61 남재철, "安市城主의 姓名 ‘양만춘’ 考證(Ⅰ)- 姓名의 出處 樣相 檢討를 中心으로 -" 동아시아고대학회 (35) : 111-152, 2014

      62 "太平御覽"

      63 "太平寰宇記"

      64 "大東野乘"

      65 "夢經堂日史"

      66 "四佳集"

      67 "唐會要"

      68 "唐書志傳通俗演儀"

      69 "同春堂先生別集"

      70 "南溪集"

      71 "出疆錄"

      72 "冊府元龜"

      73 王咏梅, "关于安市城址的考察与研究" 2000 (2000): 2000

      74 "休翁集"

      75 "五洲衍文長箋散稿"

      76 "三淵集"

      77 "三國史記"

      78 金貞培, "『三國史記』 寶臧王紀 史論에 보이는 ‘柳公權 小說’ 問題" 고려사학회 (26) : 9-33, 2007

      79 김주성, "7세기 삼국 고대 전투모습의 재현"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81) : 43-74, 2011

      80 허태용, "17세기 중?후반 중화회복의식의 전개와 역사인식의 변화" 한국사연구회 (134) : 75-109, 2006

      81 김락기, "17~19세기 고구려 안시성 인식과 ‘城上拜’ -「연행록」과 「문집」을 중심으로-" 한국역사민속학회 (42) : 135-16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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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8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21-07-02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stitute of KoguryoBalhae -> Association of Koguryo Balhae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2-14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고구려연구 -> 고구려발해연구
      외국어명 : The Koguryo Yonku -> The KoguryoBalhae Yonku
      KCI등재후보
      2008-02-13 학회명변경 한글명 : 고구려연구회 -> 고구려발해학회
      영문명 : Institute of Koguryo Studies -> Institute of KoguryoBalhae
      KCI등재후보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5-30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Institute of Koguryo Studies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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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8 0.78 0.9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 0.93 2.013 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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