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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조선의 위기의식과 海防 논의의 양상 = A sense of ‘crisis’ and trend of Sea defense in 18th century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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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012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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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explores a trend of haebang (Sea Defence, 海防) discuss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examines the sense of ‘crisis’ shared among Koreans in the 18th century. The term ‘haebang’ has been used since as early as during the Imjin War (1592-1597). While the narrow meaning of the term ‘haebang’ refers to the specifics of Joseon’s coastal defence policy, its broad meaning is the national strategy itself, which assumed the existence of various enemies that Koreans believed would invade Korea through the sea.
    Discussions regarding ‘haebang’ generally continued throughout the late Joseon period. But the ‘haebang’ in the broad sense, which assumed potential massive invasions of external forces, is a useful clue through which we can look into the Koreans’ perception of international affairs in the 18th century. The 18th century ‘haebang’ discussion took the form of a series of concrete responses to the real threats from the external forces (Qing China, Japan, pirates, etc.) during the reign of King Sukjong. However, during King Yeongjo and Jeongjo era, Korean intellectuals assumed more abstract external forces such as Chinese ships called Hwangdangseon (荒唐船) and the group of traitors hidden in the isolated island, and invoked several historical cases in order to persuade the necessity of haebang.
    These facts show that in the reality of the 18th century Joseon Dynasty, which suffered only a few actual invasions, the sense of crisis was largely shared among the Koreans. The sense of crisis provided the latitude for the Koreans to maintain the defense of the sea, despite the lack of the crisis' reality. It also provided the intellectual foundation for a full-fledged discussion of haebang in the 19th century, when the Western invasion of East Asia became the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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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explores a trend of haebang (Sea Defence, 海防) discuss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examines the sense of ‘crisis’ shared among Koreans in the 18th century. The term ‘haebang’ has been used since as early as during the Imji...

    This paper explores a trend of haebang (Sea Defence, 海防) discuss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examines the sense of ‘crisis’ shared among Koreans in the 18th century. The term ‘haebang’ has been used since as early as during the Imjin War (1592-1597). While the narrow meaning of the term ‘haebang’ refers to the specifics of Joseon’s coastal defence policy, its broad meaning is the national strategy itself, which assumed the existence of various enemies that Koreans believed would invade Korea through the sea.
    Discussions regarding ‘haebang’ generally continued throughout the late Joseon period. But the ‘haebang’ in the broad sense, which assumed potential massive invasions of external forces, is a useful clue through which we can look into the Koreans’ perception of international affairs in the 18th century. The 18th century ‘haebang’ discussion took the form of a series of concrete responses to the real threats from the external forces (Qing China, Japan, pirates, etc.) during the reign of King Sukjong. However, during King Yeongjo and Jeongjo era, Korean intellectuals assumed more abstract external forces such as Chinese ships called Hwangdangseon (荒唐船) and the group of traitors hidden in the isolated island, and invoked several historical cases in order to persuade the necessity of haebang.
    These facts show that in the reality of the 18th century Joseon Dynasty, which suffered only a few actual invasions, the sense of crisis was largely shared among the Koreans. The sense of crisis provided the latitude for the Koreans to maintain the defense of the sea, despite the lack of the crisis' reality. It also provided the intellectual foundation for a full-fledged discussion of haebang in the 19th century, when the Western invasion of East Asia became the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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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조선후기에 이루어진 海防 논의의 추이를 살피고, 특히 18세기 조선의 해방 논의의 양상을 통해 18세기 조선인 사이에서 공유된 ‘위기의식’의 단면을 고찰한다. ‘해방’이라는 용어는 임진전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때의 해방 개념은 조선 조정의 해안 방어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해방과, 조선인들이 바다를 통해 침입해 올 여러 적들의 존재를 상정하고, 이에 대비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을 제시하는 넓은 의미의 해방으로 크게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해방과 관련된 논의는 조선후기 내내 대체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외부 세력의 대규모 침입을 가정한 넓은 의미의 해방 논의는 18세기라는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당시 조선인들의 국제정세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용한 실마리가 된다. 이러한 18세기의 해방 논의는 숙종 대에는 대체로 실질적인 외부 세력(청나라, 대만, 일본, 해적 등)의 침입을 가정하여 비교적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논의한 반면, 영․정조 대에는 보다 추상적인 외부 세력(황당선, 해도에 은거한 역도의 무리 등)을 가정한 가운데 역사적 사례를 통해 해방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실질적인 외침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18세기 조선의 현실에서, 조선인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외부세력의 침입에 대한 일정한 ‘위기의식’이 공유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조선인들이 공유한 위기의식은 그들이 상정한 위기의 실재 여부와는 관련 없이, 조선인들이 바다의 방어를 지속해야 할 당위성을 제공해 주었으며, 이후 서세동점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세기에 본격적인 해방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지성사적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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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조선후기에 이루어진 海防 논의의 추이를 살피고, 특히 18세기 조선의 해방 논의의 양상을 통해 18세기 조선인 사이에서 공유된 ‘위기의식’의 단면을 고찰한다. ‘해방’이라는 용...

    이 글은 조선후기에 이루어진 海防 논의의 추이를 살피고, 특히 18세기 조선의 해방 논의의 양상을 통해 18세기 조선인 사이에서 공유된 ‘위기의식’의 단면을 고찰한다. ‘해방’이라는 용어는 임진전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때의 해방 개념은 조선 조정의 해안 방어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해방과, 조선인들이 바다를 통해 침입해 올 여러 적들의 존재를 상정하고, 이에 대비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을 제시하는 넓은 의미의 해방으로 크게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해방과 관련된 논의는 조선후기 내내 대체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외부 세력의 대규모 침입을 가정한 넓은 의미의 해방 논의는 18세기라는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당시 조선인들의 국제정세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용한 실마리가 된다. 이러한 18세기의 해방 논의는 숙종 대에는 대체로 실질적인 외부 세력(청나라, 대만, 일본, 해적 등)의 침입을 가정하여 비교적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논의한 반면, 영․정조 대에는 보다 추상적인 외부 세력(황당선, 해도에 은거한 역도의 무리 등)을 가정한 가운데 역사적 사례를 통해 해방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실질적인 외침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18세기 조선의 현실에서, 조선인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외부세력의 침입에 대한 일정한 ‘위기의식’이 공유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조선인들이 공유한 위기의식은 그들이 상정한 위기의 실재 여부와는 관련 없이, 조선인들이 바다의 방어를 지속해야 할 당위성을 제공해 주었으며, 이후 서세동점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세기에 본격적인 해방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지성사적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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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육군군사연구소, "한국군사사 12 : 군사사상" 경인문화사 2012

    2 정해은, "한국 전통 병서의 이해(Ⅱ)"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8

    3 송규빈, "풍천유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1990

    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5 이하경, "추국장에서 만난 조선후기 국가: 영조와 정조 시대 『추안급국안』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2018

    6 최소자, "청과 조선 : 근세 동아시아의 상호인식" 혜안 2005

    7 서인범, "청 강희제의 開海政策과 조선 西海海域의 荒唐船" 이화사학연구소 (50) : 351-391, 2015

    8 "지도예찬: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2018

    9 국립중앙박물관, "지도예찬 :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2018

    10 조윤선, "조선후기 영조 31년 乙亥獄事의 추이와 정치적 의미" 고려사학회 (37) : 233-263, 2009

    1 육군군사연구소, "한국군사사 12 : 군사사상" 경인문화사 2012

    2 정해은, "한국 전통 병서의 이해(Ⅱ)"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8

    3 송규빈, "풍천유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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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하경, "추국장에서 만난 조선후기 국가: 영조와 정조 시대 『추안급국안』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2018

    6 최소자, "청과 조선 : 근세 동아시아의 상호인식" 혜안 2005

    7 서인범, "청 강희제의 開海政策과 조선 西海海域의 荒唐船" 이화사학연구소 (50) : 351-391, 2015

    8 "지도예찬: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2018

    9 국립중앙박물관, "지도예찬 :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2018

    10 조윤선, "조선후기 영조 31년 乙亥獄事의 추이와 정치적 의미" 고려사학회 (37) : 233-263, 2009

    11 배우성, "조선후기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일지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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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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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이근호, "18세기 중반 『東國文獻備考』 ‘海防’條 편성의역사적 의의" 한국학연구소 46 : 115-14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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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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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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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7 0.87 0.9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98 2.253 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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