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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8년 경성의 장티푸스 유행과 상수도 수질 논쟁 = 1928 the typhoid epidemic in Seoul(Gyeongseong) and the debate about water q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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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uring the colonial period, Typhoid fever was one of the most common infectious disease in Joseon. Typhoid, a water-borne disease, occurred at a certain time each year, although its fatality rate was lower that of the same water-borne disease, cholera...

      During the colonial period, Typhoid fever was one of the most common infectious disease in Joseon. Typhoid, a water-borne disease, occurred at a certain time each year, although its fatality rate was lower that of the same water-borne disease, cholera. Typhoid was not a priority of the sanitary authorities, but it was more difficult to prevent because it was a common disease. Milk, vegetables and fruits were also the causes of typhoid, but the main cause was water.
      In the colonial Joseon, people were supplied with drinking water primarily through wells and water supply facilities, and wells were generally blamed for the cause of typhoid. However, the typhoid epidemic of Seoul(Gyeongseong) in 1928 was different.
      In 1928, typhoid epidemic broke out in Seoul from midwinter to early spring and the patients of typhoid were mostly Japanese. Therefore, the water supplies were pointed out as the cause of typhoid. The deficiencies and water quality of the water supply facilities were embroiled in controversy. There was a disagreement between the Gyeongseong city government and the medical community that water supply was the cause of typhoid outbreak. Japanese of all levels of society, including medical circles, Gyeongseong city government officials, citizens, and journalists, argued over water quality and water supply facilities, but as typhoid faded away, the debate on water quality ended without a conclusion. In the debate about water quality, the problems of the Gyeongseong Water Supply System, which used to be the largest facilities of the time, were clearly revealed. The medical community also failed to win a complete victory.
      In 1928, the typhoid epidemic and the debate about water quality did not serve as a momentum for the management or establishment of the water supply of Seoul. The water supply expansion plan went ahead as scheduled, but the improvements to the water supply facilities was carried out more later. In the end, in 1928, in the debate about water quality, the Keijo Imperial University Medical School and the Gyeongseong city government were busy trying to shift the responsibility to others. In 1928, the typhoid epidemic ended up in exposing the weaknesses of medical knowledge and modern facilities until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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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식민지시기 내내 조선에서 장티푸스는 가장 흔한 전염병 중의 하나였다. 물을 매개로 전파되는 전염병인 장티푸스는 같은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처럼 치사율이 높지 않았고 매년 일정한 ...

      식민지시기 내내 조선에서 장티푸스는 가장 흔한 전염병 중의 하나였다. 물을 매개로 전파되는 전염병인 장티푸스는 같은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처럼 치사율이 높지 않았고 매년 일정한 시기에 발생하는 전염병이었기 때문에 방역당국의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병이었기 때문에 방역에 더 어려운 점도 있었다.
      장티푸스를 매개하는 것으로는 물, 우유, 야채, 과일 등이 있었으나 장티푸스가 발생할 경우 가장 큰 의심을 받는 것은 주로 물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사람들이 식수를 공급받는 방법은 크게 우물과 수도였고 대개는 우물이 더 강력한 병원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1928년 경성의 장티푸스 유행은 상황이 달랐다.
      1928년 경성의 장티푸스 유행은 한겨울부터 초봄까지 발생하였으며 일본인들에게 주로 발생하였다. 이러한 특이점에 따라 장티푸스의 병원으로 우물이 아닌 수도가 더욱 부각되었다. 상수도 시설의 불완전함과 수질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고 수도가 병원이 아니라는 경성부측과 수도가 장티푸스 발생의 원인이라는 의학계측의 의견이 대립하였다. 의학계, 경성부 관계자, 시민, 언론인 등 각계각층의 일본인들이 수질과 상수도 시설을 둘러싼 논쟁을 펼쳤으나, 장티푸스가 점점 사그라지면서 1928년 상수도 수질 논쟁은 결론도 없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결과와는 별개로 상수도 수질 논쟁 과정에서 당대 최고이자 최대의 시설을 내세웠던 경성 상수도 시설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으며, 의학계로서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1928년의 장티푸스 유행과 수질 논쟁은 이후 경성의 상수도 관리나 시설 개선의 특별한 계기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성의 상수도 확장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나 문제가 되었던 상수도 시설의 개선은 좀 더 이후에 진행되었다. 결국 1928년 경성의 수질 논쟁은 조선 의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 경성제대 의학부와 조선 내 최고의 상수도 시설을 내세운 경성부의 책임회피와 함께 당시까지의 의학 지식과 근대적 시설이 가지는 취약점을 노출한 채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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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대한감염학회, "한국전염병사" 군자출판사 2009

      2 박윤재, "한국사의 구조와전개" 혜안 2000

      3 "중외일보"

      4 "조선휘보"

      5 "조선총독부통계연보"

      6 "조선일보"

      7 "조선의학회잡지"

      8 "조선신문"

      9 "조선방역통계"

      10 신규환, "제국의 과학과 동아시아 정치: 1910~11년 만주 페스트의 유행과 방역법규의 제정" 국학연구원 (167) : 189-219, 2014

      1 대한감염학회, "한국전염병사" 군자출판사 2009

      2 박윤재, "한국사의 구조와전개" 혜안 2000

      3 "중외일보"

      4 "조선휘보"

      5 "조선총독부통계연보"

      6 "조선일보"

      7 "조선의학회잡지"

      8 "조선신문"

      9 "조선방역통계"

      10 신규환, "제국의 과학과 동아시아 정치: 1910~11년 만주 페스트의 유행과 방역법규의 제정" 국학연구원 (167) : 189-219, 2014

      11 신규환, "제1·2차 만주 폐페스트의 유행과 일제의 방역행정(1910-1921)" 대한의사학회 21 (21): 449-476, 2012

      12 정민재, "일제하 한국에서의 전염병 발생과 대책" 한성대학교 대학원 2006

      13 김영수, "일본의 방역경험 축적을 통해 본 조선총독부의 방역사업: 1911년 페스트 유행 대응을 중심으로" 일본학연구소 (26) : 83-109, 2015

      14 주동빈, "수돗물 분배의 정치경제학 1920년대 경성의 계층별 수돗물 사용량 변화와 수돗물 필수재 담론의 정치성" 역사문제연구소 21 (21): 115-160, 2017

      15 서울특별시 상수도사업본부, "서울상수도 백년사: 1908~2008" 2008

      16 "매일신보"

      17 "동아일보"

      18 "경성휘보"

      19 "경성일보"

      20 金穎穗, "植民地朝鮮におけるのコレラ大流行と防疫對策の變化―1919年と1920年の流行を中心に―" 8 : 2012

      21 "朝鮮及滿洲"

      22 박윤재, "Sanitizing Korea: Anti-Cholera Activities of the Police in Early Colonial Korea"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3 (23): 151-171, 2010

      23 박윤재, "Anti-Cholera Measures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and the Reaction of Koreans in the Early 1920s" 한국학중앙연구원 8 (8): 169-186, 2005

      24 주동빈, "1920년대 경성부 상수도 생활용수 계량제 시행과정과 식민지‘공공성’" 한국사연구회 (173) : 253-296, 2016

      25 백선례, "1919·20년 식민지 조선의 콜레라 방역활동 - 방역당국과 조선인의 대응을 중심으로 -" 한국사학회 (101) : 205-24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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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2-26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KCI등재
      2016-02-03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
      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KCI등재
      2015-10-22 학회명변경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
      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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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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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7 0.27 0.3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5 0.33 1.024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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