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룡 장군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의 위대한 장군으로 조선 왕조를 죽음의 문턱에서 살린 구국의 장군이다. 장군은 1562년 4월24일 경남 하동의 평범한 양반집에서 3남매 중 막내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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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 건양대학교 군사경찰행정대학원, 2014
학위논문(석사) -- 건양대학교 군사경찰행정대학원 , 군사학과 , 2014. 2
2014
한국어
충청남도
iii, 74 p. ; 26 cm
지도교수: 이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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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룡 장군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의 위대한 장군으로 조선 왕조를 죽음의 문턱에서 살린 구국의 장군이다. 장군은 1562년 4월24일 경남 하동의 평범한 양반집에서 3남매 중 막내로 ...
정기룡 장군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의 위대한 장군으로 조선 왕조를 죽음의 문턱에서 살린 구국의 장군이다. 장군은 1562년 4월24일 경남 하동의 평범한 양반집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장군은 태어날 때부터 체격이 크고 우람했으며, 목소리가 커서 장수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정기룡 장군의 초명은 무수였고, 장군의 아버지 정활은 아들 무수가 문신으로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무수는 또래 아이들과 전쟁놀이 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늘 대장을 하였다. 아버지는 무수가 13세때 돌아가시고 무수는 부친의 묘소 옆에서 3년간의 여묘살이를 한다. 이후, 무수는 경북 상주로 이주하여 무술공부에 정진하다가 25세인 1586년 무과에서 4등으로 합격하고, 선조임금으로부터 기룡이란 이름을 하사받는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정기룡은 조경 장군의 별장으로 참전하여 첫 전투인 거창 신창전투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조경 장군을 적진 속에서 구출해내어 조선정부와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기쁨을 주었다. 정기룡 장군은 임진왜란 전 기간 중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승리를 하여 바다의 이순신이라고 불리웠다. 장군은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으며, 보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장군은 두 번의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였으며, 1622년 2월 28일 삼도수군통제사로 근무 중에 통영의 통제사 관청에서 순직하였다. 이러한 장군의 위대한 업적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사라졌으며, 일제 식민지 시대에 남아 있던 기록도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정기룡이 누구인지 모르는 까닭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러한 정기룡 장군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고, 장군의 사생관에서 리더십을 발굴하여 군과 사회에 적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잠자고 있는 정기룡 장군의 선양노력을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영웅으로 부활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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