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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馬韓 墳丘墓 硏究 = A Study on Mahan Bungum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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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은 마한 분구묘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이다. 마한의 성토 분구묘가 분포하고 있는 지역을 여러 권역별로 분류하여 분구묘의 권역별 특징을 분석하고 비교하였다. 또한, 그동안 쟁점으...

      본 논문은 마한 분구묘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이다. 마한의 성토 분구묘가 분포하고 있는 지역을 여러 권역별로 분류하여 분구묘의 권역별 특징을 분석하고 비교하였다. 또한, 그동안 쟁점으로 논의되어 온 분구묘의 개념과 출현 시점에 관한 문제를 정리해보고 분석하였으며, 마한 분구묘의 획기에 따른 전개 과정과 변화양상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연구된 내용을 중심으로 마한 소국의 사회상과 백제와의 대외관계에 대해 접근해보고자 하였다.
      Ⅱ장에서는 지금까지 논의되어온 분구묘의 쟁점 중 본 연구에서 분석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는 네 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였다. 첫 번째는 분구묘의 용어와 정의, 두 번째는 분구묘의 출현 시점과 기원, 세 번째는 분구묘의 개념과 직결되는 선분구-후매장의 축조방법, 네 번째는 분구묘의 장제적인 측면에서 매장시설인 목관묘, 목곽묘, 옹관묘 관련 견해에 대해 살펴보았다. 위의 네 가지 주제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하였으며, 해결되어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각 장에서 검토 및 분석하여 실마리를 풀어 보고자 하였다. Ⅲ장에서 분구묘의 개념에 대해 검토해본 결과, 분구묘의 본질적인 개념은 매장관념과 관련이 깊고 분구를 먼저 조성한 후에 매장시설이 안치되는 선분구-후매장의 축조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출현 시기부터 마한 분구묘의 전통이 이어지는 단계까지 변화하지 않는 본질적인 매장관념에 해당하며,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Ⅳ장에서는 마한 분구묘의 분포권을 큰 하천과 지형에 따라 한강하류역권, 아산만권, 금강중하류역권, 만경강유역권, 동진강유역권, 영산강유역권으로 구분하였으며, 분포양상과 입지 그리고 분구묘의 배치양상, 평면형태 및 규모, 매장시설, 부장유물로 속성을 분류하여 권역별로 세부분석을 시도하였다. 분석결과, 분구묘의 입지에 있어서는 분구묘 축조집단의 주변 지형에 따른 선호도에 차이에 따라 입지를 선정하는 것으로 보았다. 배치양상에서는 시간성과 지역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시간성에 따라서는 독립묘역-연접과 중복배치-수평적 확장에 따른 밀접한 배치-수직확장 단계에서의 독립적 배치양상이 나타났으며, 지역성에 따라 한강하류역권에서는 독립묘역의 배치양상이 지속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일반적인 연접, 중복, 수평확장의 양상과는 차이를 보였다. 평면형태는 방형계와 원형계 그리고 제형계로 크게 구분되며, 영산강유역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방형계가 중심을 이룬다. 제형계 중 장제형의 평면형태는 영산강유역권에서만 주로 나타나는 평면형태이며, 규모도 한 변의 길이가 20m가 넘는 대형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영산강유역권의 지역적인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분구묘 내 매장시설인 옹관은 금강을 기준으로 이남지역에서 주로 시설되며, 선황리식의 대형옹관 또한, 금강 이남을 중심으로 조성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옹관의 장제적 의미와 관련해서는 크기, 한 분구 내 매장된 옹관의 수 등을 고려했을 때, 이차장의 장법이 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특히 금강 이남지역으로는 다장의 양상이 확인되며, 다장의 조성방식은 매장주체부 중심의 다장과 비매장주체부 다장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부장유물에서도 지역적 특징이 나타나며, 한강하류역권은 낙랑계 중심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며, 아산만권은 한강하류역권과 같이 철제 무기류의 출토가 다수를 이룬다. 만경강유역권은 4세기 이후 완주 상운리 분구묘를 중심으로 당시 철 제작의 중심권이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동진강유역권의 고창지역은 3~4세기부터 무기류의 다수 부장이 이루어지면서, 주변 지역의 분구묘 축조세력에 비해 전통적으로 위계성이 높았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반면, 영산강유역권의 경우 분구의 규모와 유적의 분포양상에 비해 철기류의 낮은 부장량은 당시 영산강유역권의 사회구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Ⅴ장에서는 마한 분구묘의 출현 시점에 대해 분석한 결과, 출현기 분구묘의 공통요소를 확인하였다. 주구 내 유물의 공반관계를 기준으로 출현기 1기와 2기를 구분하였고 1기는 무문토기류 중심의 기원전 2세기~기원전후한 시기, 2기는 와질토기 및 연질 타날문토기와 공반되는 양상으로 기원전후~기원후 1세기 후반으로 분기를 제시하였다. 특히 관창리 분구묘의 재검토를 통해 분구묘의 시작지점이 보령 관창리 일대일 가능성을 유력하다 판단하였다.
      분구묘의 시공간적 전개 과정에서는 획기에 따라 조기,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하였다. 조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후 1세기 후반으로 설정하고, 출현기 분구묘의 특징으로는 주구 내 무문토기 및 점토대토기의 출토양상, 독립된 묘역, 단장묘가 있으며, 많은 유적의 분포를 보이지 않는다. 전기는 기원후 2세기~3세기 후반으로 설정하였다. 이 시기는 분구묘가 전역에 확산하는 시기에 해당하며, 지역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중기는 4세기 전반~4세기 후반까지 해당하며, 분구묘의 부장유물에서 백제양식의 토기류가 등장하며, 서산의 기지리유적과 완주의 상운리 유적의 경우 백제양식의 토기가 4세기를 기점으로 등장하며, 동진강유역권과 영산강유역권은 4세기 후반경에 백제양식의 토기가 나타나고 있어 권역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후기는 백제 영역화 이후 분구묘의 전통이 지속되는 시기이며, 5세기 전반~6세기 중엽까지 설정된다. 이전보다 규모가 큰 분구묘가 각 지에서 조성되며, 금동관, 금동신발, 중국제 청자 등의 최상위 위세품이 백제와의 관계 속에서 부장이 이루어진다. Ⅵ장에서는 분구묘의 분포권을 문화양상, 지형, 거리 등을 고려하여 세부 영역권으로 구분해 보았으며, 당시의 사회상과 백제와의 대외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강하류역권은 2~3세기 김포, 인천 일원을 중심으로 지리적 여건의 이점을 이용한 낙랑 및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강력한 세력집단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한강이라는 지형적 여건은 4세기이후 백제의 성정과 한강유역권의 복잡한 정세 속에 더는 성장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산만권은 목지국으로 추정되는 아산, 천안 일대의 주구토광묘권과 영역을 달리하며, 대규모의 분구묘 사회를 형성하였다. 특히 서산 일원을 중심권으로 늦은 시기까지 분구묘의 전통성을 유지하였으며, 5세기 이후 조성된 서산 부장리 분구묘의 금동관, 금동신발, 철제초두 등의 출토는 백제가 최상위 위세품을 사여할 정도의 강력한 세력집단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금강중하류역권은 분구묘와 단순 토광묘가 중심묘제를 이루는 사회로 금강을 따라 이와같은 문화가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4세기 후반 당시 중요한 교통로였던 금강 일원 대한 백제의 적극적인 영향력이 반영되면서 석곽분과 석실분 등 석축묘를 중심으로 묘제가 조성되고 분구묘 전통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만경강유역권은 2~4세기까지 당시 중심 권역이었던 아산만권과는 달리 자연촌락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 사회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4세기 이후부터 완주 상운리를 중심으로 한 철기제작의 중심권역이 형성되면서 만경강유역에 변화가 나타난다. 동진강유역권의 2~4세기는 고창지역에서 출토되는 무기류와 구슬류의 부장량을 통해 동시기에 가장 강성했던 세력 중 하나로 추정하였으며, 이후 고창 봉덕리 1호분의 조성을 통해 고창 분구묘 세력의 위상이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영산강유역권은 2~4세기 큰 규모인 장제형분의 축조양상을 통해 아직은 개인 유력묘가 등장하지 않은 사회로 제형분의 군집과 배치의 정형성 등을 토대로 집단 간의 위계성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영산강유역권이 중심권역으로 성장하게 된 시기는 5세기 이후로 고총고분의 등장 시점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성장배경으로는 영산강유역권이 백제, 왜세력, 영산강유역권 세력 간의 상호 교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던 그 중심지의 역할로서 고총고분의 축조세력이 영산강 유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이들 사회가 역동적인 모습을 이루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은 마한 분구묘의 전반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분구묘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에서부터 최종적으로는 당시의 사회상을 밝혀보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였다. 이 글을 통해 마한 분구묘의 연구에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며, 이후 세부적인 연구를 통해 이 글의 부족한 부분들을 수정·보완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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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deals with an overall study on the bungumyo (mounded tomb with an encircling ditch) of Mahan. The regions in which Mahan's seongtobungumyos (mounded tombs with filled layer) are distributed were classified here into various regions in an at...

      This paper deals with an overall study on the bungumyo (mounded tomb with an encircling ditch) of Mahan. The regions in which Mahan's seongtobungumyos (mounded tombs with filled layer) are distributed were classified here into various regions in an attempt to analyze and compare the characteristics of each region. In addition, the issues concerning the concept of bungumyo and the timing of their appearance which have been discussed as pending issues are summarized and analyzed, in parallel with studies on the development process and changes in the bungumyo of Mahan according to the division of period. And, it was also tried to approach to the social features of Mahan statelet and its external relations with Baekje based mainly on the contents of the studies conducted so far.
      In Chapter II, out of the issues of bungumyo that have been discussed so far, selected were four topics to be explored through the analysis in this study. The first topic to be studied is the terminology and definition of bungumyo, the second is the time and origin of the appearance of bungumyo, the third is the pre-mound and post-burial tomb construction method which is directly related to the concept of bungumyo, and the fourth is the views on the burial facilities such as wooden coffin tombs, wooden chamber tombs, and jar coffin tombs in respect of funeral rites. Focus was laid on analyzing and reviewing the above four topics, and the problems to be solved were reviewed and analyzed in each chapter to find the clues for solution. From the result of examining the concept of bungumyo in Chapter Ⅲ, it can be said that the essential concept of bungumyo is closely related to the concept of burial, and is a pre-mound and post-burial tomb construction system, that is, the burial site is built first and then the burial facilities are placed in it. This means that it was an essential burial concept that had not changed from the time of appearance until the stage where the tradition of the Mahan burial tomb was connected. In Chapter Ⅳ, the distribution area of Mahan bungumyos was divided into the lower Hanggang River area, Asan Bay area, the mid-lower area of Geumgang River, Mangyeonggang River area, Dongjingang River area, and Yeongsangang River area according to large rivers and topography. Furthermore, a detailed analysis was attempted by divided region after classifying the special features of bungumyo by patterns of distribution, arrangement, planar shape and size, burial facilities, and items buried together. As for the location of bungumyo, the analysis found that the site was selected in consideration of preferred location and surrounding topography for construction of bungumyo. In respect to the arrangement pattern of bungumyo, it could be divided into temporality and locality. Depending on the temporality, independent arrangement patterns appeared in the stage of tight arrangement-vertical expansion due to connection of independent cemeteries and overlapping arrangement-horizontal expansion. Depending on the locality, however, the layout of independent cemeteries continued in the lower Hangang River area, which is different from the general pattern of concatenation, overlapping, and horizontal expansion shown typically in other areas. The planar type is largely divided into a quadrangular, a circular, and a hoof-shaped type, while the quadrangular type is central in other than Yeongsangang River basin area. The lengthy one of the hoof-shaped type is of planar shape that appears mostly in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only, and the size could be understood as a regional characteristic of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since the large ones with a side length of more than 20 m account for the majority of the type. It was confirmed that the jar coffin, a burial facility within bungumyo, is mainly installed in the region south of the Geumgang River, and the large-scale jar coffins of the Seonhwang-ri style too were built south of the Geumgang River. With regard to the funeral significance of the jar coffin, it was estimated that the secondary burial method was mainly used when considering the size and the number of coffins buried in one mound. In the area south of the Geumgang, in particular, the pattern of multiple burials was found, and the method of constructing multiple burials could be divided into a main-subject-centered multiple burial and a non-main-subject-centered one, respectively.
      Regional characteristics also appear in the relics of funerary objects. For instance, the Nakrang-system relics are mostly excavated in the lower Hangang River basin area, while most of the artifacts unearthed in the Asan Bay area are iron weapons same as in lower Hangang River basin area. It may be understood that the Mangyeonggang River basin area was the center of iron manufacturing work at that time, focusing on the bungumyo in Sangwun-ri, Wanju from the 4th century onward. In the Gochang area of the Dongjingang River basin, a large number of weapons were buried as funerary objects since the 3rd and 4th centuries, and it could be thus estimated that the hierarchy of this area was traditionally higher than that of the bungumyo-building forces in the surrounding areas. On the other hand, in case of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it was estimated that the relatively small amount of iron and steelware buried as funerary objects must be related to the social structure of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at the time, when considering the size of the mounded burials and distribution of the ruins. In Chapter Ⅴ, common elements of bungumyos during the emergence period were identified from analyzing the time of appearance of Mahan bungumyos. Based on the communal relationship of the relics inside the encircling ditch, the periods of emergence were divided into the first and second one. It was then suggested that the first period spans from the 2nd century BCE to before or after the first century CE which centered on the patternless earthenware, and the second period refers to the period from before or after the first century to the latter part of the first century CE when the grey pottery and soft pottery with stamped design coexisted. Especially through reexamination of bungumyos in Gwanchang-ri, it was judged highly likely that the starting point of bungumyo might be the area of Gwanchang-ri, Boryeong.
      As for the spatio-temporal development process of bungumyo, it was divided into early, former, middle, and late stages according to the epochal period. The early period was set from the 2nd century BCE to the latter half of the 1st century CE. The characteristics of bungumyo during the emerging period include the patternless earthenware and clay earthenware as well as pottery with ring rim unearthed from the encircling ditch, independent burial sites, and single tombs which are rarely distributed, though. The former period was set from the 2nd century upto the latter half of the 3rd century CE which corresponds to the period when bungumyos spread throughout the regions although there are differences depending on the region. The middle period points to that from the former to the latter part of the 4th century when Baekje-style earthenware appears from the funerary objects buried in bungumyo. In case of the sites in Giji-ri, Seosan and Sangwun-ri in Wanju, Baekje-style earthenware appeared starting from the 4th century while, in case of Dongjingang and Yeongsangang River basins, Baekje-style earthenware started appearing around the latter part of the 4th century, showing differences depending on the region. The latter period is the one in which the tradition of bungumyo continues starting from Baekje territorialization which is set from the first half of the 5th century to the middle of the sixth century. At this time, bungumyos which are larger than before, were built in various regions, and the highest-ranking funerary objects such as gilt-bronze crowns, gilt-bronze shoes, and Chinese celadon were buried in relationship with Baekje. In Chapter VI, the distribution sphere of bungumyos was divided in detail into minute territories in consideration of cultural aspects, topography, geographic distance in an attempt to examine the social situation and external relations with Baekje at the then time.
      During the 2nd and 3rd centuries, the lower Hangang River area formed a powerful group thanks to exchanges with Nakrang and China using the advantage of geographical conditions centered on Gimpo and Incheon. However, it can be seen that the geographical conditions of the Hangang River did not contribute any more to the development of the area due to Baekje's growth and the complex situation of Hangang River basin area after the 4th century. The Asan Bay area formed a large-scale bungumyo society which is different from the area of ditch-pit tombs in Asan and Cheonan, which are presumed to have been Mokji state. In particular, mainly the central area around Seosan kept tradition of bungumyo until late, and the excavations of gilt-bronze crowns and shoes, as well as iron cauldrons from the bungumyos built in Bujang-ri, Seosan after the 5th century demonstrates that Backje was so powerful that such highest-ranking funerary items could be provided. In the middle and lower reaches of the Geumgang River, these cultures are connected along the Geumgang River as a society where bungumyos and simple pit graves were the central types of tombs. In the second half of the 4th century, however, as Baekje exercised active influence on the Geumgang area which was an important transportation route at the time, the tomb system such as stone lined tombs and stone chamber tombs started to be built, whereas the tradition of bungymyo gradually declined. It is estimated that the Mangyeonggang River basin was a community formed around natural villages, unlike the Asan Bay region which was the central region at the time from the 2nd to 4th centuries. From the 4th century onwards, the central area for iron making was formed mainly around Sangwun-ri, Wanju and changes took place in the Mangyeonggang River basin accordingly. The Dongjingang River basin was believed to have been one of the placed for the most powerful forces during the 2nd-4th centuries judging from the amount of weapons and marbles excavated from the Gochang area. It was also learned that the status of the forces who constructed bungumyos including the No. 1 tomb in Bongdeok-ri, Gochang was maintained even after Baeke territorialization. It was presumed through the construction of large-scale tombs of lengthy hoof-system during the 2nd to the 4th centuries that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was a society in which tombs of influential individuals had not yet appeared and it was thus thought that hierarchies between groups became apparent on the basis of grouping of the hoof-system tombs and formality of their distribution. The period when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grew into a central region is estimated to be analogous to the time when the ancient tombs for the commons and leading class appeared after the 5th century. The background of their growth must be that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played a central role of active exchanges among Baekje, Japanese forces, and the forces of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It is therefore believed that the society of the forces which had constructed ancient tombs had shown a dynamic image by exercising vital influence upon the river basin area.
      The present study started from the basis of the overall study on Mahan bungumyos with a view to make it clear the most basic concept of bungumyo and, ultimately, the social conditions of the then time. It is hoped that this article will contribute to the study of Mahan bungumyo, and I will keep trying to correct and supplement the shortcomings of this article through the further detailed resea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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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제Ⅰ장 서 론 1
      • 1. 마한 분묘 선행연구 검토 2
      • 2. 연구목적 및 방법 13
      • 3. 연구대상과 범위 17
      • 제Ⅰ장 서 론 1
      • 1. 마한 분묘 선행연구 검토 2
      • 2. 연구목적 및 방법 13
      • 3. 연구대상과 범위 17
      • 제Ⅱ장 분구묘의 쟁점과 문제제기 18
      • 1. 분구묘의 용어와 정의 18
      • 2. 분구묘의 기원과 출현문제 27
      • 1) 분구묘의 출현문제 27
      • 2) 분구묘의 기원 제설 29
      • 3. 축조방법 38
      • 4. 매장시설과 장제 41
      • 제Ⅲ장 분구묘의 개념 44
      • 1. 분구묘의 개념 설정 44
      • 2. 분구묘의 축조과정 48
      • 1) 분구묘 유적 검토 48
      • 2) 분구묘의 축조과정 검토 57
      • 3. 분구묘와 주구토광묘의 계통성 66
      • 1) 분구묘와 주구토광묘 속성비교 67
      • 2) 분구묘와 주구토광묘의 계통 검토 83
      • 제Ⅳ장 마한 분구묘의 지역별 양상 89
      • 1. 권역설정 및 분류기준 89
      • 2. 마한 분구묘의 지역별 양상 92
      • 1) 한강하류역권 92
      • 2) 아산만권 105
      • 3) 금강중하류역권 125
      • 4) 만경강유역권 142
      • 5) 동진강유역권 162
      • 6) 영산강유역권 188
      • 3. 마한 분구묘의 지역별 양상 요약 223
      • 제Ⅴ장 마한 분구묘의 출현과 전개 과정 232
      • 1. 마한 분구묘의 출현 시점과 기원 232
      • 1) 보령 관창리 유적의 재검토 233
      • 2) 출현기 분구묘 유적의 검토 245
      • 3) 출현기 분구묘의 축조시기 검토 261
      • 4) 분구묘 기원에 관한 소고 267
      • 2. 마한 분구묘의 시공간적 전개 과정 269
      • 1) 조기-성립 1기(기원전 2세기~기원후 1세기 후반) 273
      • 2) 전기-성립 2기(기원후 2세기~3세기 후반) 276
      • 3) 중기-역동기(기원후 4세기 전반~4세기 후반) 299
      • 4) 후기-고총고분화(기원후 5세기 전반~6세기 중반) 315
      • 제Ⅵ장 마한 분구묘로 본 소국의 사회상과 대외관계 332
      • 1. 마한 성립기의 사회상과 대외관계 332
      • 2. 마한 성행기 이후 소국의 사회상과 대외관계 335
      • 1) 한강하류역권 336
      • 2) 아산만권 339
      • 3) 금강중하류역권 346
      • 4) 만경강유역권 350
      • 5) 동진강유역권 357
      • 6) 영산강유역권 362
      • 제Ⅶ장 결론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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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논문관계도

      1 이성주, "분구묘의 인식", 한국상고사학보 32, 한국상고사학회, 2000

      2 권오영, "상장제와 묘제", 동아시아의 고분문화, 중앙문화재연구원, 2011

      3 김원룡, "한국고고학개설", 일지사, 1977

      4 성정용, "목관묘와 목곽묘", 동아시아의 고분문화, 중앙문화재연구원, 2011

      5 김승옥, "삶과 죽음의 공간", 마한고고학개론, 중앙문화재연구원, 2018

      6 전영래, "정읍운학리고분군", 전북유적조사보고 3, 서경문화사, 1974

      7 임영진, "전남지방의 주구묘", 동아시아의 주구묘호남고고학회 창립1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호남고고학회, 2002

      8 최완규, "전북지방의 주구묘", 동아시아의 주구묘호남고고학회 창립1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호남고고학회, 2002

      9 최완규, "마한 성립기의 호남", 마한성립기의 호남, 호남고고학회, 2020

      10 이현혜, "마한 제소국의 형성", 삼한사회 형성과정연구, 일조각, 1984

      1 이성주, "분구묘의 인식", 한국상고사학보 32, 한국상고사학회, 2000

      2 권오영, "상장제와 묘제", 동아시아의 고분문화, 중앙문화재연구원, 2011

      3 김원룡, "한국고고학개설", 일지사, 1977

      4 성정용, "목관묘와 목곽묘", 동아시아의 고분문화, 중앙문화재연구원, 2011

      5 김승옥, "삶과 죽음의 공간", 마한고고학개론, 중앙문화재연구원, 2018

      6 전영래, "정읍운학리고분군", 전북유적조사보고 3, 서경문화사, 1974

      7 임영진, "전남지방의 주구묘", 동아시아의 주구묘호남고고학회 창립1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호남고고학회, 2002

      8 최완규, "전북지방의 주구묘", 동아시아의 주구묘호남고고학회 창립1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호남고고학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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