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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의 재상정치활동(宰相政治活動) 연구 = A Study of Men g Sasung(Gob ul) Regarding Politi cal Achievements as a Prime Min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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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26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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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고불 맹사성(孟思誠 : 1360~1438)은 여말선초의 격변기에 태어나 고려조에 출사하여 조선 세종대에 대성(大成)한 관리로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다. 그는 일생동안 고려왕조에서 3명, 조선왕조에...

      고불 맹사성(孟思誠 : 1360~1438)은 여말선초의 격변기에 태어나 고려조에 출사하여 조선 세종대에 대성(大成)한 관리로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다. 그는 일생동안 고려왕조에서 3명, 조선왕조에서 4명의 임금을 경험했고 세종대 좌의정으로 치사하여 관직생활을 마감하였다. 맹사성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가 세종대 뛰어난 명재상(名宰相)이고 청백리(淸白吏)라는 것이다.
      하지만 맹사성의 젊은 날은 정치적 파란에 따라 고통스런 기억이 많았던 시기였다. 조선조에 들어와 맹사성의 사환은 평탄하지 않아 13년 2개월 동 안 1번의 좌천, 4번의 파직, 2번의 유배를 경험하였다. 특히 태종 8년에 일어난 조대림(趙大臨) 사건은 가혹하여 왕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자신은 죽음 직전까지 내몰린 후 오랫동안 유배형에 처해졌고, 아들 맹귀미 (孟歸美)는 장사(杖死)되는 불행을 당했다. 그러나 맹사성은 좌절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 원숙한 인품과 경륜을 가지게 되었다. 태종 9년에 방면된 후 재등용되고 나서는 일관하여 성실하고 조신한 태도로 국왕 태종의 신임과 사랑을 회복하였다. 항상 검약하고 청렴하며 순후(醇厚)한 자질과 성품으로 성실하게 국정에 임한 결과 태종의 신임을 다시 회복하였고, 여러 직함의 판서직에 등용되어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세종이란 현군(賢君)을 만난 후에는 일세의 중흥을 도모하는데 큰 역할 을 수행하였다. 맹사성에 대한 세종의 믿음도 커서 맹사성은 8년간 우의정 과 좌의정 등 의정부 재상으로 복무하였다. 맹사성이 재상으로 활동한 세종 초년은 세종이 가장 의욕적으로 국정에 비전을 보여주고 활발히 국정에 임하던 시기였다. 젊고 총명하며 패기만만한 국왕 세종과 숙성하고 노련한 재상들이 협력하여 신생 조선왕조의 기반을 튼튼하게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젊고 명석하며 패기에 찬 국왕과 원숙한 노 재상의 결합은 신생국가인 조선 왕조의 기틀을 강화하고 다지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재상시기에 맹사성이 관인으로서 보여준 모습은 백관의 사표가 되는 것 이었다. 무릇 공직에 임하는 재상이란 이래야한다는 전범이 되었던 것이다. 맹사성을 발탁한 세종의 선택은 가장 성공적인 인사(人事)였다. 세종시대의 빛나는 역사적 성과는 세종과 맹사성, 황희 같은 두 재상의 헌신적인 보필의 결과물인 것이다. 맹사성은 세종시대 문화의 황금기를 여는데 기초를 닦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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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Born in a period of historic upheaval between the end of Goryeo and the beginning of Joseon Dynasty, Meng Sasung(1360~1438) was a feature who led a dramatic life, entering government service in Goryeo and attaining his great achievements in Sejong per...

      Born in a period of historic upheaval between the end of Goryeo and the beginning of Joseon Dynasty, Meng Sasung(1360~1438) was a feature who led a dramatic life, entering government service in Goryeo and attaining his great achievements in Sejong period of Joseon. He resigned as a first vice-premier in a period of King Sejong, serving for three kings in Goryeo Dynasty, and four in Joseon Dynasty in his whole life as an officer. Historic evaluation upon him is that he was a noted premier and an incorrupt officer. However, his young days were full of painful memories due to political hardshiop. In the beginning of Joseon, Meng Sasung experienced one deportation, four dismissals, and two exiles for 13 years and 2 months. In particular, in the eighth year of King Sejong, Cho Daerim s case made him put around nearby death and finally banished for a long time, and his son, Meng Gwimi had to face death as punishment. However, Meng Sasung, in the ups and downs of political turmoil, stood up from frustration and suffering and came to have a mature personality. After being recruited in the 9th year of King Sejong, the trust and love of King Taejong were reestablished and restored with a sincere and careful attitude of Meng Sasung. As a result of his steadfastness and honesty, he restored the trust of Sejong and became a successor to various noble titles. After meeting wise King Sejong, he played a major role in promoting prosperity of Joseon. Meng Sasung also had great faith in Sejong, which made him serve as a first and second vice premier for eight years as a member of the Uijeongbu. In the early years of Sejong, when Meng Sasung was a prime minister, King Sejong was the most ambitious and showed a vision to the national government and was actively engaged in national affairs. King Sejong, a young, brilliant and loyal king, and a mature and skilled officer were able to cooperate with each other to build up a foundation for the new Joseon dynasty. The combination of a young, brilliant, king and an old, experienced minister contributed greatly to strengthening and consolidating the foundations of the Joseon Dynasty, a new country.
      The appearance of Meng Sasung as an official in the period of the re-establishment was to be a guiding star of all the government. He became a desirable example of what a prime minister is supposed to be. Sejong’s choice of employing Meng Sasung was the most successful. The brilliant historical achievements of the Sejong era are the result of the dedication of King Sejong and the two ministers, Meng Sasung, and Hwang Hee.
      Meng Sasung was the founder of the golden era of the Sejong era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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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태종대 정치적 위기와 극복
      • 3. 세종시대의 인재등용과 맹사성의 재상직 진출
      • 4. 세종시대 재상정치의 성공과 맹사성의 역할
      • 5. 맺음말
      • 1. 머리말
      • 2. 태종대 정치적 위기와 극복
      • 3. 세종시대의 인재등용과 맹사성의 재상직 진출
      • 4. 세종시대 재상정치의 성공과 맹사성의 역할
      •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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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성준, "태종의 외척제거에 대하여 -민씨형제의 獄" 17·18 : 1962

      2 이정주, "태조~태종 연간 孟思誠의 정치적 좌절과 극복" 조선시대사학회 (50) : 5-40, 2009

      3 노병룡, "청백리열전-맹사성" 대한지방행정공제회 34 (34): 1985

      4 임용한, "조선초기 의례상정소의 운영과 기능" 24 : 2002

      5 송혜진, "조선조 왕실악기 수요와 대응의 역사적 전개 양상" 한국국악학회 54 : 147-16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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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영춘, "조선의 청백리-조선시대 대표 청백리 34인" 가람기획 2003

      8 이수광, "조선의 마에스트로 대왕 세종" 샘터 2008

      9 윤용철, "조선왕조실록 졸기-조선을 움직인 23인의 감춰진 진실과 그 죽음의 기록(卒記)" 다울 2007

      10 박주, "조선시대의 여성과 유교문화" 국학자료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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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김진섭, "조선시대 재상열전, 조선의 아침을 꿈꾸는 사람들" 도서출판 하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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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유재리, "世宗初 兩上統治期의 國政運營" 조선시대사학회 (36) : 5-6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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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1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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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 0.47 0.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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