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한국전쟁의 기억과 재현 양상을 대한민국연극제 제1기(1977~1986)에 공연된 희곡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970~80년대는 강력한 통치이데올로기를 배포하기 위해 기획된 국립극단의 ``...
본 연구는 한국전쟁의 기억과 재현 양상을 대한민국연극제 제1기(1977~1986)에 공연된 희곡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970~80년대는 강력한 통치이데올로기를 배포하기 위해 기획된 국립극단의 ``위로부터의 역사극``과 민중사관에 영향을 받은 재야 단체들의 ``아래로부터의 역사극``이 생성 배포된 한국역사극의 융성기였다. ``국가``와 ``민중``이라는 거대담론이 경합하던 이때에 대한민국연극제 한국전쟁 소재극은 역사극 담론의 층위를 한층 두텁게 해주고 있다. 연극제 출품된 한국전쟁 희곡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쟁의 종결과 함께 정지되어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들의 다양한 기억들 가운데 어떤 기억은 용인되고 다른 기억은 가공되고 변형되면서, 때로는 공식기억에 편입되기도 하고 망각되거나 소멸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한국전쟁이라는 방대한 소재는〈아벨만의 재판〉의 전범 재판,〈비목〉의 무명용사 추모, 반공 기념, 실향민,〈멀고 긴 터널〉의 국가 폭력, 집단 학살,〈적과 백〉의 전쟁포로,〈자전거〉의 전쟁 외상장애,〈한씨연대기〉의 이산가족, 분단 극복 등의 다양한 기억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재현 양식에 있어서는 사실주의 양식에서 벗어난 서사 방식이 주조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극 외적으로 정치·사회 현실의 첨예한 대립이 존재하였으며 내적으로는 새로운 극양식과 기법을 탐색하였던 이 시기에 서사극은 지배 담론에 대한 극작가들의 비판적 시선을 담아내기에 가장 편리한 방법적 차용이었다. 그러나 서사적 화자를 통해 작의를 직접적으로 제시해 주는 방식은 오히려 관객의 이성적 판단을 이끌어내는데 역효과를 자아냈다. 비판인식의 증대라는 부분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극작술 미숙으로 채택된 서사 방식은 미학적 측면에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원된 국립극단의 반공담론 역사극과 달리 대한민국연극제에서 공연된 한국전쟁 역사극은 새로운 인식주체, 즉 공식기억에서 잊혀진 주변부의 기억을 재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는 전쟁피해자들의 ``억압된 앎``을 집약하여 ``공식화된 앎``에 도전함과 동시에, 전쟁에 대한 연극적 재해석을 통해 역사 다시쓰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극은 과거에 대한 공통된 기억을 재구성함으로써 현재적 공통 감각을 만들어내고, 역사적 향수를 기초로 한 사회의식(rituals)의 국가적 작동을 가능케 해준다. 이는 대한민국연극제 출범 무렵인 권위주의 시대에 창작된 전쟁소재극의 기능에서도 확인된다. 국가가 반공주의, 애국심을 조성하고 사회 통합 및 정권 합법화의 효과를 위해 역사극을 적극 활용코자 한 것은 이러한 효용성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역사극들은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성향 및 언어적 표현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회적 담론을 표출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전체주의적 동질성을 강화함으로써 국가 권력의 작동 매체로서 기능하게 했던 종래의 역사극에서 벗어나 사회 내부의 이질성과 다양성을 수용하고 있는, 새로운 역사극을 창조해가는 시대의 문턱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