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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魏略』 韓傳의 특징과 『三國志』・『三國史記』와의 관계 -박씨왕 초기 신라의 대외 관계 이해를 위한 사료 검토- = Characteristics of Yilyag Han-Jeon and This Relationship with the Samgugji & Samgugsagi - Review of Historical Records to Understand Silla's Foreign Relations During the Initial Period of Kings with Park’s Family Na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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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annotation of Hanwon Samhan-Jeon has something unique, it is that the contents for Jinhan mainly are cited in Yilyag, but the contents for Mahan are quoted in Huhanseo. This is because Yilyag Han-Jeon has been described with much emphasis on Jinha...

      The annotation of Hanwon Samhan-Jeon has something unique, it is that the contents for Jinhan mainly are cited in Yilyag, but the contents for Mahan are quoted in Huhanseo. This is because Yilyag Han-Jeon has been described with much emphasis on Jinhan. In other words, Yilyag Han-Jeon was mainly written about Jinhan. Samgugji Han-Jeon contains many contents of Yilyag, but description of Jinhan is the opposite. In Yilyag, Jinhan is described as a heterogeneous society with china, while in Samgugji, Jinhan people are associated with Qin people & Nakrang, and portray Jinhan as a country that knows courtesy. This means that the local residents of Nakrang area migrated to Jinhan long before Samgugji was written. Next, I dealt with the selecting time of the Jinhan records cited in Yilyag Han-Jeon. Yilyag contains records that Jinhan people yeomsachag had negotiated with Lelang county at Dihuang time(A.D. 20~22). Yilyag Han-Jeon is written on the basis of data obtained through yeomsachag, it can be said to be based on the beginning of the first century. Comparing Yilyag with Samgugsagi Silla-Bongi, which contains the events at the first century, there is no difference in content. In other words, the external status of Jinhan(Silla)’s king which appeared in the two texts was not different. The Yilyag also says that the king of Jinhan was a Mahan person, which seems to reflect the fact that a person from Old Joseon related to Mahan became Jinhan(Silla)’s king. Samgugsagi tells us that 5,000 Nakrang state residents who lost their country due to the invasion of Gogulyeo in the 14th year of Yuli-Isageum(A.D. 37) had been exiled to Silla, this explains the change between Yilyag's original source for Samhan and the Samgugji article. These conclusions imply that the records of Samgugsagi Silla-Bongi before the first century are not far from the records of the chinese history books. This means that Samgugsagi Silla-Bongi records from initial period of kings with Park(朴)'s family name are can be trusted some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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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한원』 삼한전의 注文에는 독특한 특징이 보이는데, 진한에 대한 내용은 주로 『위략』을 인용하고 있지만 마한에 대한 내용은 『후한서』를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략』 ...

      『한원』 삼한전의 注文에는 독특한 특징이 보이는데, 진한에 대한 내용은 주로 『위략』을 인용하고 있지만 마한에 대한 내용은 『후한서』를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략』 한전이 진한에 많은 비중을 두어 기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위략』 한전은 진한 위주로 기술되었다. 『삼국지』 한전은 『위략』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지만 진한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묘사하고 있다. 『위략』에서는 진한을 중국과 이질적인 사회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 『삼국지』에서는 진한이 秦人・낙랑과 관련이 있으며 예의가 있는 사회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삼국지』가 기술되기 훨씬 이전에 낙랑 지역 주민의 진한으로의 이주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위략』 한전에 인용된 진한 기사의 채록 시기를 다루었다. 『위략』에는 진한인 염사착이 地皇 연간(기원후 20~22)에 낙랑군과 교섭한 내용이 실려 있다. 『위략』 한전은 진한인 염사착을 통해 얻은 자료가 기초가 된 것으로, 1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1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위략』과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 기록을 비교해보면 내용상 별 차이가 없다. 즉 두 사서에 나타난 진한(신라) 수장의 대외적 위상은 다르지 않았다. 또한 『위략』에서 진한의 왕이 마한인이었다고 전하는데, 이것은 마한과 관련 있는 고조선 세력이 진한(신라)의 왕이 된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유리이사금 14년(기원후 37)에 고구려에 멸망한 낙랑국 주민 5천 명이 신라로 망명해 왔음을 전하는데, 이것은 『위략』의 삼한에 대한 원 자료와 『삼국지』 기사 사이의 변화를 설명해 준다. 이상의 내용은 1세기 이전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사가 중국 사서의 기록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박씨왕 초기 기록부터 어느 정도 신뢰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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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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