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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mann Hesse und (das nicht so fremde) Asien -Zur Menschwerdung des Dichters- = Hermann Hesse und (das nicht so fremde) Asien -Zur Menschwerdung des Dich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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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독일의 계몽주의는 레싱의 현자 나탄이 스스로에게 우선 인간이냐 유대인이냐고 자문했을 때 그 정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개념으로 바라본 세계화의 첫 번째 긍정...

      독일의 계몽주의는 레싱의 현자 나탄이 스스로에게 우선 인간이냐 유대인이냐고 자문했을 때 그 정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개념으로 바라본 세계화의 첫 번째 긍정적인 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 가지 종교 및 인종이 모두 성서에 기반 한 일신교의 종파에 귀속된 것은 다소 애석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의식적이고도 광범위하게 통합하려는 노력을 헤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후기의 헤세는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와 같이 인류의 이상에 찬 작품들을 남겼다. 여기서는 일신교 (서구적인 것이라 하자) 문화와 비일신교의 문화(인도와 중국이 대표적이다)를 통합시키는 가운데 인류의 통일이 시도된다. 헤세의 동양사상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반면, 그가 아시아인을 처음 만난 데 대해서는 별로 연구된 바가 없다. 근간된 『극동을 향한 눈길』(2002)을 계기로 이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극동은 대개 동아시아를 칭하는데, 이 책의 절반은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다루고 있어 제목부터 논의될 필요가 있다. 아시아인과의 만남에 대해 기록한 『인도여행』(1913)에서도 작가가 인도 반도에는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으므로 사정은 비슷하다. 인도차이나란 표현이 한 번 나오긴 하지만, 헤세는 이 곳을 인도라고 여겼다. 여행의 목적지는 수마트라였는데, 헤세가 계획한 것은 문화적인 의미에서 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 원시림, 즉 유럽의 문화적 불만족이나 슈바벤에서의 삶과는 다른 극단적인 것을 체험하는 여행이었다. 수마트라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에 속하지만, 그 당시는 네덜란드령 인도로 알려져 있어 헤세도 이 용어를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여행』은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그 곳에서 헤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인도도, 중국도 아닌, 원시림, 즉 원초적인 자연이었다. 유럽을 떠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유럽 문화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럽인으로서 식민지로 여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헤세는 유럽인의 전형적인 선입견을 갖고 인도인과 인도문화를 대했다. 헤세는 인도인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고 있었고 말레이인과 수마트라 원주민을 훨씬 저열한 민족으로 보았지만, 유독 중국인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인도로 여행할 때까지 헤세는 아시아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인도와 그 문화에 대해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아 평균이상의 지식을 갖고는 있었으나, 그것도 그리 많은 것도, 수준이 높은 편도 아니었다. 인도에 관한 직접적인 지식은 인도와 중국의 사상을 받아들인 첫 독일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1907년 헤세는 쇼펜하우어의 영향으로 요가와 고행, 금욕생활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산스크리트 개념인 ``네가 그것이다 tat twam asi``를 수용한 헤세는 그러므로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자신의 여행기에 아시아인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말하려 한다. 헤세가 유독 중국인이게 호의적이었던 이유로는 우선 그의 독서경험을 들 수 있다. 여행 전에 헤세는 공자의 『논어』, 노자의 『도덕경』, 그리고 마르틴 부버가 독일어로 옮긴 『장자의 어록과 비유』를 읽었기 때문이다. 부버는 타문화의 사람들을 선입견 없이 대할 것을 동시대인들에게 요구했다. 쇼펜하우어나 부버가 공통적으로 주장한 것은 비기독교인도 기독교인처럼 대하라는 것이다. 헤세는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중국인들에 대해 이것을 실천에 옮겼다. 그런데 중국인을 동등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로, 심지어 경쟁자로 인식한 반면, 다른 아시아 민족들은 식민지 통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헤세의 이러한 태도는 유럽 전체가 관여한 식민주의와 관련해서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근대 식민주의를 드러낸 대륙발견의 시대 이후로 기독교에 기반 한, 유럽 중심적이고, 주요한 피부색을 유지하려는 인종이론이 생겨나 19세기 후반에 정점에 달했기 때문이다. 헤세가 일찍이 중국인을 열등하게 여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도인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인들은 ``미개인``으로 여겼다. 인도를 여행할 무렵 헤세는 이렇듯 인식의 중간단계에 있었다. 그의 ``인간화 과정``은 완전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누구를 인정하는 지와도 관련을 맺는데, 이러한 인간화 과정은 『싯다르타』에서 우선 정점에 다다른다. 관찰력이 뛰어난 여행자로서 헤세는 여러 민족간의 서열을 파악했고 식민지 통치자인 영국인을 존중했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헤세는 대부분의 아시아 민족들을 미개인이라 여겼지만, 섬세한 수공업의 능력을 지닌 그들은 그의 선입견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또 헤세는 다른 종교들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던 유럽의 기독교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받는 가련한 민족들``의 참된 신앙심에, 특히 고갈되지 않는 신비한 원천으로부터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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