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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강유역 석곽분 등장과정과 그 의미 = The Existence of Stone-Lined Tombs in the Yeongsan River Basin and Its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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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1494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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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석곽분은 대체로 4세기 중 후반 가야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5세기대에 축조된 초기 석곽분의 분포는 크게 서남해안지역과 영산강 중상류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서남해안지역의 석곽분은 바다에 접하고 있어 서로 공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반면 영산강 중상류지역의 석곽분은 좀 더 발달된 형태로 축조되었다.
      석곽분의 기원은 선사시대의 무덤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증명할 고고학 자료가 없다. 한편 일부 연구자들은 백제계, 왜계, 가야계 석곽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영산강유역 초기 석곽분은 어느 한 지역의 특징만으로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 주민들의 이주에 의한 축조로 볼 수 없다. 따라서 5세기 전엽경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영산강유역의 재지세력들은 새로운 형태의 무덤인 석곽분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러한 초기 석곽분의 존재를 통해 영산강유역 고대문화에 대한 인식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즉 영산강유역에서는 석곽분이 먼저 유입되었고, 뒤이어 석실분이 축조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동안 영산강유역에서 옹관고분의 존재가 워낙 강하게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 사실은 쉽게 인지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한 5세기대 영산강유역의 고대사회는 지역별로 다른 형태의 고분이 만들어지고 있어 옹관고분 축조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된 사회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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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곽분은 대체로 4세기 중 후반 가야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5세기대에 축조된 초기 석곽분의 분포는 크게 서남해안지역과 영산강 중상류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석곽분은 대체로 4세기 중 후반 가야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5세기대에 축조된 초기 석곽분의 분포는 크게 서남해안지역과 영산강 중상류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서남해안지역의 석곽분은 바다에 접하고 있어 서로 공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반면 영산강 중상류지역의 석곽분은 좀 더 발달된 형태로 축조되었다.
      석곽분의 기원은 선사시대의 무덤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증명할 고고학 자료가 없다. 한편 일부 연구자들은 백제계, 왜계, 가야계 석곽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영산강유역 초기 석곽분은 어느 한 지역의 특징만으로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 주민들의 이주에 의한 축조로 볼 수 없다. 따라서 5세기 전엽경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영산강유역의 재지세력들은 새로운 형태의 무덤인 석곽분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러한 초기 석곽분의 존재를 통해 영산강유역 고대문화에 대한 인식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즉 영산강유역에서는 석곽분이 먼저 유입되었고, 뒤이어 석실분이 축조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동안 영산강유역에서 옹관고분의 존재가 워낙 강하게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 사실은 쉽게 인지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한 5세기대 영산강유역의 고대사회는 지역별로 다른 형태의 고분이 만들어지고 있어 옹관고분 축조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된 사회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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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Construction of stone-lined tombs started in the mid-to-late 4th century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including the Gaya Kingdom region. The stone-lined tombs constructed during the 5th century are distributed mainly in the southwestern coastal areas and in the upper and middle areas of the Yeongsan River basin. The tombs in the southwestern coastal region share common features, while those in the mid-to-upper parts of the Yeongsan River basin exhibits lightly more advanced structures.
      The origin of stone-lined tombs can be traced back to prehistoric tombs, but there is no archaeological evidence to decisively support this claim. In fact, some scholars assert that this type of tomb structure was introduced from other regions, noting similarities to stone-lined tombs found in Baekje, Japan, and Gaya. Immigrants, however, can not have built the tombs, as the earlier stone-lined tombs share no single feature originating from a certain region. It is more likely, therefore, that locals around the Yeongsan River created the stone-lined tombs as a new burial method, as those in other regions of the Korean peninsula did in the early 5th century.
      The existence of stone-lined tombs in the Yeongsan River basin indicates a need to reconsider the conventional views on the ancient culture of the region. It is evident that the stone-lined tombs were constructed before the appearance of stone chamber tombs. This transition in grave structures has often been neglected, mainly due to the emphasis placed on the presence of jar coffin tombs in the Yeongsan River basin. Given the existence of many different types of tombs in the basin during the 5th century, it is difficult to regard the societies in the region as integrated around the people who constructed the jar coffin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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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struction of stone-lined tombs started in the mid-to-late 4th century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including the Gaya Kingdom region. The stone-lined tombs constructed during the 5th century are distributed mainly in the southwestern coastal ar...

      Construction of stone-lined tombs started in the mid-to-late 4th century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including the Gaya Kingdom region. The stone-lined tombs constructed during the 5th century are distributed mainly in the southwestern coastal areas and in the upper and middle areas of the Yeongsan River basin. The tombs in the southwestern coastal region share common features, while those in the mid-to-upper parts of the Yeongsan River basin exhibits lightly more advanced structures.
      The origin of stone-lined tombs can be traced back to prehistoric tombs, but there is no archaeological evidence to decisively support this claim. In fact, some scholars assert that this type of tomb structure was introduced from other regions, noting similarities to stone-lined tombs found in Baekje, Japan, and Gaya. Immigrants, however, can not have built the tombs, as the earlier stone-lined tombs share no single feature originating from a certain region. It is more likely, therefore, that locals around the Yeongsan River created the stone-lined tombs as a new burial method, as those in other regions of the Korean peninsula did in the early 5th century.
      The existence of stone-lined tombs in the Yeongsan River basin indicates a need to reconsider the conventional views on the ancient culture of the region. It is evident that the stone-lined tombs were constructed before the appearance of stone chamber tombs. This transition in grave structures has often been neglected, mainly due to the emphasis placed on the presence of jar coffin tombs in the Yeongsan River basin. Given the existence of many different types of tombs in the basin during the 5th century, it is difficult to regard the societies in the region as integrated around the people who constructed the jar coffin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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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초록]
      • 1. 머리말
      • 2. 석곽분의 연구성과와 쟁점
      • 3. 영산강유역 초기 석곽분의 검토
      • 4. 석곽분의 등장과정과 그 의미
      • [초록]
      • 1. 머리말
      • 2. 석곽분의 연구성과와 쟁점
      • 3. 영산강유역 초기 석곽분의 검토
      • 4. 석곽분의 등장과정과 그 의미
      • 5.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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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목포대학교박물관, "해남 신월리고분"

      2 국립광주박물관, "해남 방산리 장고봉고분 시굴조사보고서" 2001

      3 동신대학교문화박물관, "해남 만의총 1호분"

      4 박광춘, "한일 수혈계횡구식석실에 대한 연구" 동아대학교박물관 4 : 1988

      5 김낙중, "토기를 통해 본 고대 영산강유역 사회와 백제의 관계" 호남고고학회 42 : 87-124, 2012

      6 권오영, "초기백제의 성장과정에 관한 고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5 : 1986

      7 김영국, "중서부지역 백제 수혈식 석곽묘 연구" 공주대학교 대학원 2010

      8 임영진, "전남지역의 분구묘, In 동아시아의 주구묘" 2002

      9 하승철, "전남 서남해지역의 해상교류와 고대사회" 전남 문화예술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 2014

      10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제1호분 발굴조사보고서-" 2012

      1 목포대학교박물관, "해남 신월리고분"

      2 국립광주박물관, "해남 방산리 장고봉고분 시굴조사보고서" 2001

      3 동신대학교문화박물관, "해남 만의총 1호분"

      4 박광춘, "한일 수혈계횡구식석실에 대한 연구" 동아대학교박물관 4 : 1988

      5 김낙중, "토기를 통해 본 고대 영산강유역 사회와 백제의 관계" 호남고고학회 42 : 87-124, 2012

      6 권오영, "초기백제의 성장과정에 관한 고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5 : 1986

      7 김영국, "중서부지역 백제 수혈식 석곽묘 연구" 공주대학교 대학원 2010

      8 임영진, "전남지역의 분구묘, In 동아시아의 주구묘" 2002

      9 하승철, "전남 서남해지역의 해상교류와 고대사회" 전남 문화예술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 2014

      10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제1호분 발굴조사보고서-" 2012

      11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분구조사-" 2015

      12 서현주, "영산강유역권의 가야계 토기와 교류 문제" 호남고고학회 42 : 159-190, 2012

      13 서현주, "영산강유역 토기문화의 변천 양상과 백제화과정" 백제학회 (6) : 79-105, 2011

      14 高田貫太, "영산강유역 왜계고분의 출현과 동향, In 영산강유역 고분 토목기술의 여정과 시간을 찾아서" 2014

      15 이승민, "영산강유역 목관고분의 형성과 변천" 목포대학교대학원 2015

      16 최성락, "영산강유역 고분연구의 검토 Ⅱ -고분을 바라보는 시각을 중심으로-" 역사문화학회 17 (17): 7-32, 2014

      17 최성락, "영산강유역 고분연구의 검토 -고분의 개념, 축조방법, 변천을 중심으로-" 호남고고학회 33 : 107-128, 2009

      18 김낙중, "영산강유역 고분 연구" 학연문화사 2009

      19 박형렬, "영산강유역 3-5세기 고분 변천" 동국대학교 2014

      20 이영철, "영산강 상류지역의 취락변동과 백제화 과정" 백제학회 (6) : 107-140, 2011

      21 권용대, "영남지방 위석목곽묘의 구조적 특징과 성격" (사)한국매장문화재협회 (4) : 157-201, 2008

      22 동신대학교문화박물관, "신안 안좌면 읍동 배널리 고분군"

      23 이정호, "신안 배널리 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 In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연대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14

      24 홍보식, "신라 가야계유물 연대론, In 영산강유역 고분 토목기술의 여정과 시간을 찾아서" 2014

      25 조영제, "서부경남 가야 수혈식석곽묘의수용에 관한 연구" 영남고고학회 (40) : 53-7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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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목포대학교박물관, "무안 신기고분, 무안 송현리유적"

      29 이진우, "마한 백제권 석곽묘의 연구" 전남대학교대학원 2014

      30 서현주, "마한 백제계 유물 연대론, In 영산강유역 고분 토목기술의 여정과 시간을 찾아서" 2014

      31 영해문화재연구원, "동함평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부지내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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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대한문화재연구원,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39 권택장,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In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14

      40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고흥 야막고분" 2014

      41 임영진,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의 역사적 성격" 전남대학교 박물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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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김낙중, "5~6세기 남해안 지역 倭系古墳의 특성과 의미" 호남고고학회 45 : 157-2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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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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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9 0.29 0.3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7 0.42 0.818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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