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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後期 驪興 閔門의 佛敎 後援 = The Yeoheung Mins’ Sponsorship of Buddhist Temples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 Focused on the Yeoju and Anseong Are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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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1494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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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 시기 왕실 및 사대부의 후원이 이루어진 사찰에는 민인의 시주도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왕실과 사대부가의 사찰 후원은 사격을 높이는 역할을 하여 그로 인해 일반 민인들...

      조선 시기 왕실 및 사대부의 후원이 이루어진 사찰에는 민인의 시주도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왕실과 사대부가의 사찰 후원은 사격을 높이는 역할을 하여 그로 인해 일반 민인들의 후원을 끌어들이는 데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왕실의 인척으로 가장 가까운 사대부 외척 가문의 후원을 실증적으로 검토하여 후원 양상을 살피고자 하였다. 여흥 민문은 여주와 안성 지역의 사찰에 후원을 집중적으로 하였던 기록이 전하고 있어 이를 중심으로 검토하고자 하였다.
      여흥 민문은 조선후기 사대부 명문가로서 가례 의절 등을 발간하여 가풍을 세우고 혼인과 학연으로 안동 김문 등과 연결되면서 당대 최고의 외척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가문의 성황을 계기로 대전 회덕에서 경기 여주지역으로 가문의 세거지를 서울 인근으로 옮기게 되었으며, 여주 세거 당시 세종 영릉의 조포사로서 왕실 원찰의 명성을 지녔던 신륵사에 안동 김문과 함께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가문이 함께 여주 신륵사에 후원한 것은 기록상 총 2회로 그 지원 규모가 큰 사례가 살펴진다. 김수항과 민정중의 후원, 김이소와 민종현 등은 당시 최고의 사대부 명문가들이 주도하여 이루어진 신륵사 후원이었다. 이후 여흥 민문이 쇠락할 시기에는 신륵사에 적극적 후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반면 안동 김문은 지속적으로 여주 신륵사에 적극적으로 후원한 기록이 살펴진다.
      19세기 왕실의 외척으로 다시 등장한 여흥 민문은 안성 칠장사로 장지터를 옮긴 것을 계기로 이곳 사찰에 적극적으로 후원한 기록이 나타난다. 안동 김문의 독보적 후원이 이루어졌던 신륵사에 여흥 민문이 다시 후원하기는 용이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명성황후의 정계등장으로 최고의 세도를 누리던 민씨 척족들은 인목대비의 왕실 후원이 이루어져 원찰인 칠장사에 다시 적극 후원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왕실 외척의 사찰 후원을 보여주는 사례는 조선후기 사찰이 어떠한 경제적 지원을 통해 운영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규명한 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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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Many Buddhist temples sponsored by the royal family and literati also received donations from lay people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temples secured an esteemed status through the sponsorship of the upper class, an advantage in soliciting offerings...

      Many Buddhist temples sponsored by the royal family and literati also received donations from lay people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temples secured an esteemed status through the sponsorship of the upper class, an advantage in soliciting offerings from lay people. This research empirically examines the practice of Buddhist temple sponsorship among the literati families related to the royal in-laws. The Yeoheung Min lineage was selected as the focus of this study because historical records show their donations were concentrated in the temples in Yeoju and Anseong.
      A famed literati family, the Yeoheung Mins emerged as one of the most prominent families among the royal in-laws in the late Joseon period through publishing manuals on rites and manners and by making scholarly and matrimonial connections with prominent families such as the Andong Kims. As their status rose, the Yeoheung Mins relocated their family settlement from Hoedeok in Daejon to Yeoju in Gyeonggi-do, closer to the capital city. After the move, they started to make active donations, along with the Andong Kims, to Silleuksa Temple, which was joposa (造泡寺), a temple located near the royal family’s tombs that supplied the tofu and commodities for their ancestral rites in Yeoju for Yeongneung (the royal tomb of King Sejong).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they made huge scale donations to the temple twice. The donations were the initiatives of Kim Su-hang and Min Jeong-jung, as well as Kim I-so and Min Jong-hyeon. These two large-scale donations to Silleuksa Temple are exemplary cases of sponsorship by prominent literati families of the time. Records show that the Andong Kims continued to sponsor the temple, while the Yeoheung Mins failed to make continuous donations to the temple due to the family’s decline.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the Yeoheung Mins, who emerged once again as a royal in-law family in the 19th century, started to actively sponsor Chiljangsa Temple in Anseong after relocating their family cemetery there. It was hard for them toresume donations to Silleuksa Temple, as the Andong Kims had become the exclusive sponsor of the temple. After the Yeoheung Mins regained power under the auspices of Queen Myeongseong and Dowager Queen Inmok, they started to make huge donations to the irmemorial temple, Chiljangsa. The sponsorship of Buddhist temples by royal in-law families testifies to the financial support required by Buddhist temples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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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초록]
      • 1. 序論
      • 2. 驪興 閔門의 形成과 成長
      • 3. 驪興 閔門의 佛敎 後援
      • 4. 王室 佛敎 後援의 特徵
      • [초록]
      • 1. 序論
      • 2. 驪興 閔門의 形成과 成長
      • 3. 驪興 閔門의 佛敎 後援
      • 4. 王室 佛敎 後援의 特徵
      • 5. 結語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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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정숙, "흥선대원군의 예술세계" 일지사 2004

      2 정만조, "허선도선생정년기념 한국사학논총" 일조각 1992

      3 대한불교진흥원, "한국의 명찰 9 봉미산신륵사"

      4 홍윤식, "한국불화 화기집1" 가람연구소 1995

      5 고경, "한국불화 화기집"

      6 김성도, "한국건축문화유산 사찰대방 건축" 고려 2007

      7 황현정, "조선후기 안성 칠장사의 가람중수와 불화제작" 한국교원대학교 17 : 2009

      8 장희정, "조선후기 불화와 화사 연구" 일지사 2003

      9 김순석, "조선후기 불교계의 동향" 99 : 2002

      10 이병희, "조선후기 내포지역 불교계의 동향" 역사문화학회 7 (7): 7-40, 2004

      1 김정숙, "흥선대원군의 예술세계" 일지사 2004

      2 정만조, "허선도선생정년기념 한국사학논총" 일조각 1992

      3 대한불교진흥원, "한국의 명찰 9 봉미산신륵사"

      4 홍윤식, "한국불화 화기집1" 가람연구소 1995

      5 고경, "한국불화 화기집"

      6 김성도, "한국건축문화유산 사찰대방 건축" 고려 2007

      7 황현정, "조선후기 안성 칠장사의 가람중수와 불화제작" 한국교원대학교 17 : 2009

      8 장희정, "조선후기 불화와 화사 연구" 일지사 2003

      9 김순석, "조선후기 불교계의 동향" 99 : 2002

      10 이병희, "조선후기 내포지역 불교계의 동향" 역사문화학회 7 (7): 7-40, 2004

      11 조준호, "조선 숙종~영조대 근기지역 노론학맥 연구" 국민대학교 대학원 2004

      12 사찰문화연구원, "전통사찰총서 충남" 사찰문화연구원출판국 1993

      13 사찰문화연구원, "전통사찰총서 인천경기" 사찰문화연구원출판국 1993

      14 사찰문화연구원, "전통사찰총서 서울" 사찰문화연구원출판국 1993

      15 사찰문화연구원, "전통사찰총서 경기도 1" 사찰문화연구원출판국 1993

      16 정병삼, "불교계의 동향" 국사편찬위원회 35 : 1998

      17 이병희, "배종무총장퇴임기념사학논총" 1994

      18 이병희, "발원, 간절한 마음을 담다" 국립중앙박물관 2015

      19 최완수, "명찰순례 (2)" 대원사 1994

      20 홍희유, "김옥균" 역사비평사 1990

      21 장영숙, "고종정권하(高宗政權下) 여흥민문(驪興閔門)의 정치적 성장과 내적 균열" 한국역사연구회 (78) : 301-345, 2010

      22 "驪興閔氏 世譜"

      23 "邑誌"

      24 "輿地圖書"

      25 驪陽府院君閔維重神道碑銘, "歷代 顯祖 墓碑 文集"

      26 高橋亨, "李朝佛敎" 國學資料院 1970

      27 朝鮮總督府, "朝鮮金石文總攬"

      28 "朝鮮王朝實錄"

      29 조준호, "朝鮮後期 石室書院의 位相과 學風" 11 : 1999

      30 朝鮮總督府內務局, "朝鮮寺刹史料"

      31 金泰英, "安城記略"

      32 "大東輿地圖"

      33 陽城邑誌, "大東地志"

      34 京畿道博物館, "京畿道佛跡資料集"

      35 "七長寺 太淸樓 重建記"

      36 김명숙, "『驪興閔氏家乘記略』을 통해 본 17-18세기 여흥 민문의 형성과 가문 정비" 한국사상문화학회 (46) : 277-315, 2009

      37 황현정, "19세기말 왕실의 안성지역 사찰 후원" 역사문화학회 15 (15): 77-119, 2012

      38 조성산, "18세기 洛論系 學脈의 변모양상 연구" 역사교육연구회 (102) : 63-95, 2007

      39 고동환, "18 19 세기 외방포구의 상품유통 발달" 13 :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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