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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양명학의 역사적 성과와 발전 방향 = The historic results and the growing course of Yang-ming Studie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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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6005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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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양명학이 이 땅에 전해 온지 50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한국 양명학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역사적 흐름을 따라 일정하게 사회에 기여하여 왔다.
      긴 역사 속에서 兵難으로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 하기도 하였고, 새로운 종교로서의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하기도 하였으며, 서세동점의 국난의 위기에는 수구 또는 개화의 모습으로 이를 극복하려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정신의 얼을 일깨우는 계몽사상으로 역사 속에 기여해 왔다.
      이처럼 근대를 지향하는 변화의 시대 속에서 양명학이 인식 주체의 상황판단 여부에 따라 때로는 민족자존의 수구 이론으로 때로는 애국계몽적 개화 이론으로 전개된 것은 대상이나 규범에 억매이지 않고 주체의 선험적 양지를 통해 구체적 현실을 인식하고 판단해 나가는 양명학의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양명학은 아직도 많은 발전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에 대한 보다 치밀한 연구와 함께 앞으로 다가올 세계화 추세에 대비하여 그 외연의 폭을 넓혀 가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의 세계화 추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추세는 궁극적으로 민족 주체의 입장과 맞물려 언제나 갈등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미 FTA 비준 동의와 관련하여 국내의 여론은 찬반으로 엇갈려 갈등의 양상을 빚어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 상황적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한말 전환기의 위기의식과 그 사상적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 동안 국가의 역사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기여해 온 한국 양명학은 양명학 자체의 질적 성장뿐만 아니라 인접 학문과의 다양한 학문적 교류를 통한 외적 성장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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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명학이 이 땅에 전해 온지 50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한국 양명학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역사적 흐름을 따라 일정하게 사회에 기여하여 왔다. 긴 역사 속에서 兵難으로 도탄에 ...

      양명학이 이 땅에 전해 온지 50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한국 양명학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역사적 흐름을 따라 일정하게 사회에 기여하여 왔다.
      긴 역사 속에서 兵難으로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 하기도 하였고, 새로운 종교로서의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하기도 하였으며, 서세동점의 국난의 위기에는 수구 또는 개화의 모습으로 이를 극복하려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정신의 얼을 일깨우는 계몽사상으로 역사 속에 기여해 왔다.
      이처럼 근대를 지향하는 변화의 시대 속에서 양명학이 인식 주체의 상황판단 여부에 따라 때로는 민족자존의 수구 이론으로 때로는 애국계몽적 개화 이론으로 전개된 것은 대상이나 규범에 억매이지 않고 주체의 선험적 양지를 통해 구체적 현실을 인식하고 판단해 나가는 양명학의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양명학은 아직도 많은 발전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에 대한 보다 치밀한 연구와 함께 앞으로 다가올 세계화 추세에 대비하여 그 외연의 폭을 넓혀 가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의 세계화 추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추세는 궁극적으로 민족 주체의 입장과 맞물려 언제나 갈등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미 FTA 비준 동의와 관련하여 국내의 여론은 찬반으로 엇갈려 갈등의 양상을 빚어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 상황적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한말 전환기의 위기의식과 그 사상적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 동안 국가의 역사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기여해 온 한국 양명학은 양명학 자체의 질적 성장뿐만 아니라 인접 학문과의 다양한 학문적 교류를 통한 외적 성장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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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t is presumed that Yang-ming Studies was introduced into Korea in 1521. Yang-ming Studies was not able to take root in Korea though, contrary to the cases in China and Japan, since the Joseon Dynasty pursued political stabilization through the Zhu-Xi Studies. It contributed to the society according as the historic transition in the Joseon Dynasty though.
      The scholar, Choi, Myeong-gil(崔鳴吉), for Yang-ming Studies insisted on surrendering to Qing Dynasty and relieved the people from their pain in Byungjahoran(丙子胡亂), 1636. He judged surrendering was the only way to relieve the people, and proposed to develop an agricultural policy and to make slavery better.
      Some of the scholars for Yang-ming Studies, were converted to Catholics when Roman Catholicism was introduced in Korea. They took proper measures coincident with the existing conditions to save their country when Japan invaded our country at the end of Joseon Dynasty. Lee, Gun-chang(李建昌) presented the ways to make country be rich and powerful rather than to introduce Western culture and institutions. Park, Eun-sik(朴殷植) asserted to introduce Western culture and institutions ensuring our sovereignty. Jeong, In-bo(鄭寅普) made an effort to establish the national spirit through Yang-ming Studies when the country perished.
      Yang-ming Studies has developed considerably in Korea but we will have to make an effort to develop Yang-ming Studies further in the future; We will preferentially have to clarify a history of Yang-ming Studies. We will also have to expand the domain of studies for the Yang-ming Studies, and finally to make efforts to popularize Yang-ming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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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is presumed that Yang-ming Studies was introduced into Korea in 1521. Yang-ming Studies was not able to take root in Korea though, contrary to the cases in China and Japan, since the Joseon Dynasty pursued political stabilization through the Zhu-Xi...

      It is presumed that Yang-ming Studies was introduced into Korea in 1521. Yang-ming Studies was not able to take root in Korea though, contrary to the cases in China and Japan, since the Joseon Dynasty pursued political stabilization through the Zhu-Xi Studies. It contributed to the society according as the historic transition in the Joseon Dynasty though.
      The scholar, Choi, Myeong-gil(崔鳴吉), for Yang-ming Studies insisted on surrendering to Qing Dynasty and relieved the people from their pain in Byungjahoran(丙子胡亂), 1636. He judged surrendering was the only way to relieve the people, and proposed to develop an agricultural policy and to make slavery better.
      Some of the scholars for Yang-ming Studies, were converted to Catholics when Roman Catholicism was introduced in Korea. They took proper measures coincident with the existing conditions to save their country when Japan invaded our country at the end of Joseon Dynasty. Lee, Gun-chang(李建昌) presented the ways to make country be rich and powerful rather than to introduce Western culture and institutions. Park, Eun-sik(朴殷植) asserted to introduce Western culture and institutions ensuring our sovereignty. Jeong, In-bo(鄭寅普) made an effort to establish the national spirit through Yang-ming Studies when the country perished.
      Yang-ming Studies has developed considerably in Korea but we will have to make an effort to develop Yang-ming Studies further in the future; We will preferentially have to clarify a history of Yang-ming Studies. We will also have to expand the domain of studies for the Yang-ming Studies, and finally to make efforts to popularize Yang-ming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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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문
      • I. 서론
      • II. 역사적 성과
      • III. 발전 방향
      • IV. 결론
      • 요약문
      • I. 서론
      • II. 역사적 성과
      • III. 발전 방향
      • IV. 결론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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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朴忠錫, "韓國政治思想史" 三英社 1982

      2 "霞谷集" 서울 민족문화추진회 1972

      3 "陽明集"

      4 鄭寅普, "陽明學演論" 삼성문화문고 11 1972

      5 "遲川集"

      6 "退溪全書"

      7 "貞山雜著"

      8 "谿谷漫筆"

      9 "蕉泉遺稿"

      10 "與猶堂集"

      1 朴忠錫, "韓國政治思想史" 三英社 1982

      2 "霞谷集" 서울 민족문화추진회 1972

      3 "陽明集"

      4 鄭寅普, "陽明學演論" 삼성문화문고 11 1972

      5 "遲川集"

      6 "退溪全書"

      7 "貞山雜著"

      8 "谿谷漫筆"

      9 "蕉泉遺稿"

      10 "與猶堂集"

      11 "白湖全書"

      12 "湛軒書"

      13 "淸陰集"

      14 愼鏞廈, "朴殷植의 社會思想硏究" 서울대출판부 1986

      15 "朴殷植全書"

      16 李能和, "朝鮮儒界之陽明學派" (25) : 1936

      17 "晝永編"

      18 徐鍾泰, "星湖學派의 陽明學과 西學" 西江大 1995

      19 "星湖僿說"

      20 "明美堂全集"

      21 孫尙揚, "明末天主敎與儒學的交流和衝突" 文津出版社 1992

      22 "德村集"

      23 "實學論叢" 全南大 湖南學硏究所 1975

      24 李佑成, "實學硏究 序說, In 實學硏究入門" 일조각 1974

      25 졸 고, "天主敎의 受容과 陽明學의 役割, In 『儒敎思想과 東西交涉』, 유무상교수 화갑기념논문집" 1996

      26 "圓嶠集"

      27 李乙浩, "反朱子學的 思想의 擡頭" 中(韓國哲學會 1978

      28 "勉庵集"

      29 鄭寅普, "『薝園 鄭寅普全集』2" 延大出版部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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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陽明學 -> 양명학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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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3 0.63 0.4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2 0.39 1.123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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