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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재개발대상지역 세입자들의 집단 정체성 형성 : 상계5동 173번지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Formation of Tenant's Collective Identity in 1980's Redevelopment Area : Centered On 173, Sanggye-5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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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45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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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identity of tenants of the redevelopment areas in the 1980s, focusing on 173 Sanggye-dong 5th district, which resisted forcible demolition, and how this identity influenced resistance.
      The tenants of Sanggye-dong resisted forced demolition and formed a community identity beyond individuals. This study divides the identity of tenants into ‘urban poor community’ and ‘village community’ through the concept of collective identity. The tenants made a systematic and ongoing protest with clear understanding of the other tenants of the redevelopment areas as 'we' and coalition of house owners, construction company and government as 'they'. The tenants of Sanggye-dong clearly understood themselves as "us" as members of the village and tried to maintain the villages in other areas even after the demolition was completed.
      The formation of community identity was a result of the combination of various factors characteristic of the time and place of Korea in the 1980s. The government implemented a total redevelopment policy in 1981 when Seoul was selected as the venue for the next Olympic Games. This has resulted in a large number of discontented tenants. In the 1980s Korea, radicalized college students and catholic activist spread interpretive frameworks to tenants to understand themselves as members of militant urban poor communities and altruistic village communities, respectively. These interpretive frameworks has been validated by the tenants' resistance to the dismissal crews and civil servants who often abused the tenants.
      The collective identities of tenants sometimes cooperated and conflicted. The strong sense of solidarity of the villages formed as a member of the altruistic village community became a resource that continued to resist as a member of the militant urban poor community. However, the interpretive framework of the altruistic village community was spread to the tenants through the religious ritual where 'sacredness' was required, and 'forgiveness' was formed as the norm to be followed by the tenants. This led to the identity and tension of a militant urban poor community aimed at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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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identity of tenants of the redevelopment areas in the 1980s, focusing on 173 Sanggye-dong 5th district, which resisted forcible demolition, and how this identity influenced resistance. The tenants of Sang...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identity of tenants of the redevelopment areas in the 1980s, focusing on 173 Sanggye-dong 5th district, which resisted forcible demolition, and how this identity influenced resistance.
      The tenants of Sanggye-dong resisted forced demolition and formed a community identity beyond individuals. This study divides the identity of tenants into ‘urban poor community’ and ‘village community’ through the concept of collective identity. The tenants made a systematic and ongoing protest with clear understanding of the other tenants of the redevelopment areas as 'we' and coalition of house owners, construction company and government as 'they'. The tenants of Sanggye-dong clearly understood themselves as "us" as members of the village and tried to maintain the villages in other areas even after the demolition was completed.
      The formation of community identity was a result of the combination of various factors characteristic of the time and place of Korea in the 1980s. The government implemented a total redevelopment policy in 1981 when Seoul was selected as the venue for the next Olympic Games. This has resulted in a large number of discontented tenants. In the 1980s Korea, radicalized college students and catholic activist spread interpretive frameworks to tenants to understand themselves as members of militant urban poor communities and altruistic village communities, respectively. These interpretive frameworks has been validated by the tenants' resistance to the dismissal crews and civil servants who often abused the tenants.
      The collective identities of tenants sometimes cooperated and conflicted. The strong sense of solidarity of the villages formed as a member of the altruistic village community became a resource that continued to resist as a member of the militant urban poor community. However, the interpretive framework of the altruistic village community was spread to the tenants through the religious ritual where 'sacredness' was required, and 'forgiveness' was formed as the norm to be followed by the tenants. This led to the identity and tension of a militant urban poor community aimed at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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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의 목적은 상계5동 173번지를 중심으로 1980년대 재개발대상지역 세입자들이 강제철거에 저항하며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였으며, 이러한 정체성은 저항을 지속시키는데 있어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규명하는 것이다.
      상계동의 세입자들은 강제철거에 저항하며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본 연구는 집단 정체성(collective identity) 개념을 통해 세입자들의 정체성을 도시빈민 공동체와 마을 공동체로 구분하였다. 세입자들은 다른 재개발대상지역 세입자들을 ‘우리’로, 부동산 투기세력과 정부를 ‘그들’로 선명하게 이해하며 조직적, 지속적 저항을 하였다. 상계동의 세입자들은 자신들을 마을의 구성원으로 ‘우리’로 선명하게 이해하며 철거가 완료된 뒤에도 다른 지역에서 마을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들이 공동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은 1980년대 한국이라는 시간과 장소에 특징적인 여러 요인들이 결합된 결과였다. 정부는 1981년 서울이 차기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전면적인 재개발정책을 실행하였다. 이는 불만을 가진 다수의 세입자들을 등장시켰다. 1980년대에 급진화된 대학생들과 종교인들은 불만을 가진 상계동 세입자들에게 각각 전투적 도시빈민 공동체와 이타적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 틀을 유포시켰다. 이러한 해석 틀은 세입자들이 모욕과 폭력을 행사하는 철거반원들과 공무원들에게 저항하면서 확인되어갔다.
      세입자들의 집단 정체성들은 때때로 협력하고 갈등하였다. 이타적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형성한 마을 단위의 강한 연대감은 세입자들이 구심점을 잃은 상태에서도 전투적 도시빈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저항을 계속해나갈 수 있던 자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타적 마을 공동체의 해석 틀이 ‘신성함’이 요구되는 ‘미사’라는 종교적 의례를 통해 세입자들에게 유포 되어 ‘용서’가 세입자들이 지켜야할 규범으로 형성되었다. 이는 ‘싸움’을 목표로 하는 전투적 도시빈민 공동체 정체성과 긴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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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목적은 상계5동 173번지를 중심으로 1980년대 재개발대상지역 세입자들이 강제철거에 저항하며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였으며, 이러한 정체성은 저항을 지속시키는데 있어 어떻게 영...

      본 연구의 목적은 상계5동 173번지를 중심으로 1980년대 재개발대상지역 세입자들이 강제철거에 저항하며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였으며, 이러한 정체성은 저항을 지속시키는데 있어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규명하는 것이다.
      상계동의 세입자들은 강제철거에 저항하며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본 연구는 집단 정체성(collective identity) 개념을 통해 세입자들의 정체성을 도시빈민 공동체와 마을 공동체로 구분하였다. 세입자들은 다른 재개발대상지역 세입자들을 ‘우리’로, 부동산 투기세력과 정부를 ‘그들’로 선명하게 이해하며 조직적, 지속적 저항을 하였다. 상계동의 세입자들은 자신들을 마을의 구성원으로 ‘우리’로 선명하게 이해하며 철거가 완료된 뒤에도 다른 지역에서 마을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들이 공동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은 1980년대 한국이라는 시간과 장소에 특징적인 여러 요인들이 결합된 결과였다. 정부는 1981년 서울이 차기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전면적인 재개발정책을 실행하였다. 이는 불만을 가진 다수의 세입자들을 등장시켰다. 1980년대에 급진화된 대학생들과 종교인들은 불만을 가진 상계동 세입자들에게 각각 전투적 도시빈민 공동체와 이타적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 틀을 유포시켰다. 이러한 해석 틀은 세입자들이 모욕과 폭력을 행사하는 철거반원들과 공무원들에게 저항하면서 확인되어갔다.
      세입자들의 집단 정체성들은 때때로 협력하고 갈등하였다. 이타적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형성한 마을 단위의 강한 연대감은 세입자들이 구심점을 잃은 상태에서도 전투적 도시빈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저항을 계속해나갈 수 있던 자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타적 마을 공동체의 해석 틀이 ‘신성함’이 요구되는 ‘미사’라는 종교적 의례를 통해 세입자들에게 유포 되어 ‘용서’가 세입자들이 지켜야할 규범으로 형성되었다. 이는 ‘싸움’을 목표로 하는 전투적 도시빈민 공동체 정체성과 긴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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