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남학파 문인록을 통해 조선후기 문인집단의 변화와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17세기에는 성주권의 정구와 장현광, 상주권의 정경세를 중심으로 한 문인집단이 영남학파의 주류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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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영남학파 문인록을 통해 조선후기 문인집단의 변화와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17세기에는 성주권의 정구와 장현광, 상주권의 정경세를 중심으로 한 문인집단이 영남학파의 주류를 이...
이 글은 영남학파 문인록을 통해 조선후기 문인집단의 변화와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17세기에는 성주권의 정구와 장현광, 상주권의 정경세를 중심으로 한 문인집단이 영남학파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18세기에는 그 무게감이 안동권의 이현일과 이상정의 문인집단으로 옮겨졌다. 이 시기 문인집단은 해당 학자의 주 근거지 및 학문적‧정치적 행적에 따라 규모와 범위 등에서 차이를 보였으며, 침체한 진주권의 남명학파를 흡수‧통합하는 경향을 보였다. 19세기는 지역별 학맥에 연원을 둔 분화 양상을 보이며 안동의 류치명과 김흥락, 상주의 류주목, 칠곡의 장복추, 성주의 이진상, 김해의 허전을 중심으로 문인집단을 형성하였다. 해당 학자의 학맥과 활동 지역을 중심으로 문인집단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17세기부터 이어진 학파별 문인의 중첩현상은 19세기에도 이어졌다.
변화 과정에서 확인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인집단 권역에 포함된 지역의 범주가 영남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둘째, 문인집단의 규모가 17세기와 19세기를 기점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마지막으로 문인집단의 가학적 성격이 뚜렷해졌으나 질적 수준과 연관되는 과거 합격 및 관직자의 비율은 대폭 감소하였다. 이는 문인집단의 위상과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문인록의 자료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19세기 다양한 사회 변화에 따라 영남학파 내에서 학문 그 자체를 향유하는 ‘독서인’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 또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독서인의 성장과 학적 네트워크로의 포함은 19세기 말~20세기 초, 대규모 결속력을 바탕으로 한 문인집단의 척사운동과 국권회복운동 등 다양한 대응에 기반이 되었다. 바로 이점이 19세기 영남학파 문인집단이 갖는 역사적 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the chang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disciple group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rough the record of disciple of the Yeongnam School. In the 17th century, the disciple group centered on Jeong Gu(鄭逑), Jang Hyeon-gwang(張顯...
This article examines the chang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disciple group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rough the record of disciple of the Yeongnam School. In the 17th century, the disciple group centered on Jeong Gu(鄭逑), Jang Hyeon-gwang(張顯光) in Seongju(星州) , and Jeong Gyeong-se(鄭經世) in Sangju(尙州) was the mainstream of the Yeongnam School, and in the 18th century, the weight was shifted to Lee Hyeon-il(李玄逸) and Lee Sang-jung(李象靖)'s disciple group in Andong(安東). During this period, the disciple group differed in size and scope depending on the scholar's main base and academic and political activities, and tended to absorb and integrate the stagnant Nammyeong School in Jinju(晉州). In the 19th century, a group of disciples was formed around Ryu Chi-myeong(柳致明) and Kim Heung-rak(金興洛) in Andong, Ryu Jyu-mok(柳疇睦) in Sangju, Jang Bok-chu(張福樞) in Chilgok(漆谷), Lee Jin-sang(李震相) in Seongju, and Heo Jeon(許傳) in Gimhae(金海). A group of disciples was formed around the academic background and activity area of the scholar, and the overlapping phenomenon of disciples by school continued in the 19th century.
The characteristics identified in the process of change are as follows. First, the category of regions included in the disciple group area expanded throughout Yeongnam. Second, the size of the disciple group increased significantly from the 17th and 19th centuries. Finally, the family scholarly character of the disciple group became clear, but the quality level decreased significantly. This will not be irrelevant to the data limitations of the record of disciple, which reflects the intention to show off the status and influence of the disciple group. In addition, due to various social changes in the 19th century, the increasing number of "a reader of books" who enjoy learning itself within the Yeongnam School would have been an important factor. The growth of a reader of books and their inclusion in the academic network formed the basis of the various responses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including the movement to eradicate disciple groups and the movement to restore national rights based on large-scale solidarity. This i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disciple group of the Yeongnam School in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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