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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고종의 부국강병책에 내재된 무(武)의 재해석 = The Martial Arts and Policy of "National Prosperity and Military Power" -Focused on "Bright Martial Arts" as Era Name and "Physical Education" of Royal Re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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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고종은 무를 통한 부국강병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연호로서 광무의 등장과 교육 입국조서의 체양 속에 무예 관련 내용들을 통해서 확인된다. 조선은 1897년에 광 무를 연호로 삼았고, 이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변경하여 오늘날과 같은 국제사회 의 국가로서 체제를 갖추었다. 이런 점에서 광무의 연호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보면, 근대적인 국가로 처음 등장한 대한제국의 연호가 광무였다는 점에서 근대 한국이 형성되는데 미친 무의 근원적인 영향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므로 근대 한국에서 상무(尙武)의 등장은 주목할 만한데, 이는 사회진화론을 통해 나타난 시 대적 요구인 민족주의적 상무교육의 부각이 기존에 천시되었던 무예(武藝)가 가지 고 있는 사회적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기여한 부분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입국 조서를 통해 새로운 교육으로 등장한 체양은 고종의 부국강병에 대한 실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교육입국조서에서 체양의 가치는 흔히 ‘지덕체’로 불리는 전인교 육의 필요성으로 언급되었고, 이를 두고 체조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 행해지고 있 는 ‘서구식 체육·스포츠’의 도입 계기로 한정짓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 만 이제 체양이 거국적인 부국강병책 속에서 강병의 실현을 위해 무(武)와 관련되 었고 ‘한국식 체육·무예’의 교육으로 시도되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하겠다. 교육 입국조서의 체양으로 인해 학교교육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 체조는 부국강병의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병식체조로 치중되었다. 체양은 근대식 교과목인 체조로 학교에 남았고, 당시 체조 중에 가장 활성화되었던 병식체조는 군사훈련으로서 무예 교육과 연결되어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실행되었다. 외세에 휘둘려 무능하고 유약한 국왕으로 여겨졌던 고종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이루어지듯이, 고종의 부국 강병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무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에 서 무에 관해 새로운 인식을 도출한 고종의 부국강병책을 조명하고, 근대 한국사회 에서 무의 실천으로 부각되었던 무예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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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은 무를 통한 부국강병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연호로서 광무의 등장과 교육 입국조서의 체양 속에 무예 관련 내용들을 통해서 확인된다. 조선은 1897년에 광 무를 연호로 삼았고, 이후 국...

      고종은 무를 통한 부국강병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연호로서 광무의 등장과 교육 입국조서의 체양 속에 무예 관련 내용들을 통해서 확인된다. 조선은 1897년에 광 무를 연호로 삼았고, 이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변경하여 오늘날과 같은 국제사회 의 국가로서 체제를 갖추었다. 이런 점에서 광무의 연호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보면, 근대적인 국가로 처음 등장한 대한제국의 연호가 광무였다는 점에서 근대 한국이 형성되는데 미친 무의 근원적인 영향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므로 근대 한국에서 상무(尙武)의 등장은 주목할 만한데, 이는 사회진화론을 통해 나타난 시 대적 요구인 민족주의적 상무교육의 부각이 기존에 천시되었던 무예(武藝)가 가지 고 있는 사회적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기여한 부분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입국 조서를 통해 새로운 교육으로 등장한 체양은 고종의 부국강병에 대한 실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교육입국조서에서 체양의 가치는 흔히 ‘지덕체’로 불리는 전인교 육의 필요성으로 언급되었고, 이를 두고 체조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 행해지고 있 는 ‘서구식 체육·스포츠’의 도입 계기로 한정짓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 만 이제 체양이 거국적인 부국강병책 속에서 강병의 실현을 위해 무(武)와 관련되 었고 ‘한국식 체육·무예’의 교육으로 시도되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하겠다. 교육 입국조서의 체양으로 인해 학교교육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 체조는 부국강병의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병식체조로 치중되었다. 체양은 근대식 교과목인 체조로 학교에 남았고, 당시 체조 중에 가장 활성화되었던 병식체조는 군사훈련으로서 무예 교육과 연결되어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실행되었다. 외세에 휘둘려 무능하고 유약한 국왕으로 여겨졌던 고종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이루어지듯이, 고종의 부국 강병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무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에 서 무에 관해 새로운 인식을 도출한 고종의 부국강병책을 조명하고, 근대 한국사회 에서 무의 실천으로 부각되었던 무예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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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objective of this paper considered about the martial art ideology in Korean history, especially focused on ‘bright martial arts’ as era name and ‘physical education’ of royal rescript. There were martial arts in policy of ‘national prosperity and military power’ in late Chosun. Korean sports were completed control under western physical culture, therefore education of martial arts aim was not important. In modern Korea, military gymnastics was not western physical education, it were the complex concepts including western gymnastics and eastern martial arts. In actual circumstances, outward appearance was gymnastics but inward form was martial arts. Herbert Spencer(1820~1903) was write _Education: Intellectual, Moral and Physical(1861)_and his theory has a great influence on education policy as ‘physical education’ of royal rescript in Chosun. In that times, Korean nationalism were spread out martial arts education and it was also countermeasures against traditional education which is a theoretical or ideological dispute. Therefore Korean martial arts began to decline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 under the influence of neo-confucianism. In modern times, this fact is worthy of notice because martial arts should be given more weight during the erosion of traditional value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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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objective of this paper considered about the martial art ideology in Korean history, especially focused on ‘bright martial arts’ as era name and ‘physical education’ of royal rescript. There were martial arts in policy of ‘national prosp...

      The objective of this paper considered about the martial art ideology in Korean history, especially focused on ‘bright martial arts’ as era name and ‘physical education’ of royal rescript. There were martial arts in policy of ‘national prosperity and military power’ in late Chosun. Korean sports were completed control under western physical culture, therefore education of martial arts aim was not important. In modern Korea, military gymnastics was not western physical education, it were the complex concepts including western gymnastics and eastern martial arts. In actual circumstances, outward appearance was gymnastics but inward form was martial arts. Herbert Spencer(1820~1903) was write _Education: Intellectual, Moral and Physical(1861)_and his theory has a great influence on education policy as ‘physical education’ of royal rescript in Chosun. In that times, Korean nationalism were spread out martial arts education and it was also countermeasures against traditional education which is a theoretical or ideological dispute. Therefore Korean martial arts began to decline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 under the influence of neo-confucianism. In modern times, this fact is worthy of notice because martial arts should be given more weight during the erosion of traditional value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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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전주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 연구부, "황국신민체조정의" 일한서방 1938

      2 이학래, "한국체육사연구" 국학자료원 250-, 2003

      3 이학래, "한국체육백년사" 한국체육학회 45-, 2000

      4 이헌미, "한국의 영웅론 수용과 전개, 1895-1910" 서울대학교 2004

      5 전택부, "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 범우사 97-99, 1994

      6 김희선, "체육(體育)의 필요(必要)" 4 : 14-15, 1907

      7 신동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살림 541-559, 2007

      8 "조선왕조실록"

      9 이치석, "전쟁과 학교" 삼인 87-88, 2005

      10 "잡보, 제국신문, 1901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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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학래, "한국체육사연구" 국학자료원 25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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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강영심, "일제시기 ‘충량한 신민 만들기’ 교육과 학교 문화 in: 일제시기근대적 일상과 식민지 문화"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94-, 2008

      12 "승정원일기"

      13 전복희, "사회진화론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에서의 기능" 27 (27): 412-415, 1993

      14 "본국시사-병식체조를 한인에게만 불허, 총독부는 일인께만 허락, 신한민보, 1923년 8월 30일"

      15 "무기(武氣)를 숭상하는 교육의 필요함, 대한매일신보, 1908년 4월 14일"

      16 이인숙, "독립신문 논설에 나타난 체육, 위생사상연구" 이화여자대학교 1984

      17 이명화, "도산 안창호의 독립운동과 통일노선" 경인문화사 22-, 2002

      18 연갑수, "대원군집권기 부국강병책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7, 2001

      19 "논설-교육이 발흥할 조짐, 대한매일신보, 1908년 9월 22일"

      20 "논설-교육예산, 독립신문, 1899년 1월 14일"

      21 김영호, "근대 한국의 부국강병 개념" 25 (25): 39-51, 2004

      22 "국민체육회취지(國民軆育會趣旨), 황성신문, 1907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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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교육방법, 독립신문, 1899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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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28 장영숙, "고종 44년의 비원" 너머북스 73-82, 2010

      29 한왕택, "개화기에 있어 兵式체操의 成立過程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 41 (41): 27-4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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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史本守(英), "肄業要覽" 美華書館 1882

      32 本間九介, "(일본인의 조선정탐록) 조선잡기" 김영사 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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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10-07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1-50) ->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1998-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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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09 1.09 1.1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6 1.11 1.7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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