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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江戶時代의 海難救助 정책과 ‘4개의 창구’에 대한 고찰 = A Study on Salvage Policies and '4 diplomatic windows' in Japan's Edo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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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일본 에도막부 개창부터 개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쿠로후네의 출현 이전까지 중국·조선·류큐·네덜란드 선박의 해난사고를 소재로 삼아 어떠한 체제 속에서 해난구조가 이...

      본고는 일본 에도막부 개창부터 개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쿠로후네의 출현 이전까지 중국·조선·류큐·네덜란드 선박의 해난사고를 소재로 삼아 어떠한 체제 속에서 해난구조가 이루어지고 있었는가, 이들 외국선박에 대한 해난구조의 처리규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으며, 이러한 해난구조가 에도시대의 외교창구로서 이른바 ‘4개의 창구’와 어떠한 상관관계 속에서 기능하고 있었는가를 고찰한 것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에도시대의 외국 선박들에 대한 해난사고의 대처 및 처리에 대한 규정은 막부가 대외통제책으로서 이른바 ‘鎖國’ 정책을 강화해나갔던 시기인 1635년부터 나가사키 중심의 해난구조 체제화가 정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전부터 일부 해난 사례에 의하면 나가사키로의 이송이 이루어지고는 있었지만, 관례는 아니었고 본고에서 밝혔듯이 1635년 막부의 지시에 의해 일반적 규정으로 정착되었다.
      둘째, 막부의 외국 선박에 대한 해난구조의 나가사키 체제화는 막부의 그리스도교 금교정책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1637년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이라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한 봉기 이후, 1639년에 제대명에게 내린 지시에 보이듯이 의심스러운 선박에 대한 철저한 조사, 그리고 이들 선박에 승선한 승무원들의 상륙금지와 나가사키 호송 등을 지시한 것으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당시 외국 선박에 대한 해난구조의 대상에서 그리스도교 관련 선박은 제외되었고, 이것으로부터 해난구조의 대상은 막부가 인정한 국가들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셋째, 본고에서 살펴본 해난구조의 조치와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외국선박들에 대한 해난구조의 기본방침은 17-18세기 막부의 국제관계의 형성에 중요한 토대를 부여해주고 있었던 이른바 ‘4개의 창구’에 의한 대외관계 규정에 따라 설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즉, ‘4개의 창구’로서 우선 중국 선박과 네덜란드 선박은 나가사키 창구, 조선 선박은 츠시마 창구, 류큐 선박은 사츠마 창구를 거점으로 삼아 표류민 등의 송환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에도시대 대외관계 구조적 시스템이었던 '4개의 창구'가 해난구조의 기본적인 시스템으로 기능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넷째, 에도시대 해난구조의 시스템이 ‘通信國’과 ‘通商國’에 준한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는 안전과 송환이 보장되고 있었으나, 그 이외의 국가에 대해서는 안정이 보장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리스도교 금교정책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특히, ‘通信國’이었던 조선과 류큐에 대해서는 ‘신의를 통하는 국가’로서 구조비용에 대한 부담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通商國’이었던 중국선박과 네덜란드선박에 대해서는 구조에 들었던 예인선 등의 비용을 부담시키고 있었다. 한편, ‘通信國’과 ‘通商國’에 준한 해난구조 역시 ‘通信國(조선)’은 츠시마 창구와 사츠마 창구에서, ‘通商國(네덜란드․중국)’은 나가사키 창구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해난구조의 기본적인 시스템으로 '4개의 창구'가 기능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입증해주는 또 다른 근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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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considered how marine rescue was made under certain system regarding marine accident of Chinese, Josun(朝鮮) Dynasty's, Ryukyu(琉球)'s, and Dutch ships before the appearance of Kurohune(黑船) which can be regarded as a starting poin...

      This article considered how marine rescue was made under certain system regarding marine accident of Chinese, Josun(朝鮮) Dynasty's, Ryukyu(琉球)'s, and Dutch ships before the appearance of Kurohune(黑船) which can be regarded as a starting point of port opening from the beginning of Edo Bakuhu(江戶幕府), Japan as materials, what were the regulations about marine rescue of foreign ships, and how such marine rescue functioned under certain correlation with so-called '4 diplomatic windows(四つの口)' as diplomatic places of Edo era. The summary of this is as follows.
      First, the regulation about dealing and managing of marine accident to foreign ships in Edo era was started to be settled in systematization of marine rescue centering on Nagasaki since 1635 when Bakuhu reinforced so-called 'seclusion' policy(鎖國政策) as a foreign restriction policy. Of course, according to the cases of some marine accidents before, the foreign ships were transferred to Nagasaki(長崎) but it was not the usage and only was settled as general regulation by the order of Bakuhu in 1635 as revealed in this article.
      Second, Nagasaki systematization of marine rescue to foreign ships by Bakuhu was made within the close relationship with Christianity prohibition policy of Bakuhu. This can be verified from strict examination to suspicious ships as seen at the order to Daimyo in 1963 and from the order of prohibiting the landing of foreign ships' crews and of convoying to Nagasaki after the uprising centering on christians which was known as 'revolt of Shimabara(島原) and Amakusa(天草)' in 1637. In such aspect, it is evaluated that christian related ships were excluded in the subjects of marine rescue to foreign ships and only the ships of nations admitted by Bakuhu were rescued.
      Third, when summarizing managements and cases of marine rescues searched at this article, basic policy of marine rescue to foreign ships was set according to the foreign relationship policy by so-called '4 diplomatic windows' which made an important base to the formation of Bakuhu's international relationships. That is, as '4 diplomatic windows', repatriation of castaways making as a stronghold to Nagasaki for Chinese and Dutch ships, Tsushima(對馬) for Josun ships, and Satsuma(薩摩) for Ryukyu. This proves that '4 diplomatic windows' which was a structural system of foreign relationship in Edo era functioned as a basic system of marine rescue.
      Fourth, marine rescue system in Edo era was managed according to the policies of 'trust exchanging countries' and 'trading countries'. These countries were secured their ships' safety and repatriation but to the other countries, safety was not guaranteed and rather they were the subjects of Christianity prohibition policy. In particular, to Josun and Ryukyu which were 'trust exchanging country', rescue costs were not an important matter, but to the ships of China and Netherlands which were 'trading country', the costs of tugboat for rescue were charged to them. While because marine rescue according to the policies of 'trust exchanging countries' and 'trading countries' was made at Tsushima and Satsuma for 'trust exchanging country(Josun)' and at Nagasaki for 'trading country(China, Netherlands)', it was another proof that as a basic system of marine rescue, '4 diplomatic windows' was functio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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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일관계사학회, "조선시대 한일 표류민연구" 국학자료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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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신동규, "근세 일본 ‘島原天草의 亂’에 보이는 天草四郞의 신격화와 그 영향" 한국일본사상사학회 (13) : 122-16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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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春名徹, "近世日本船海難にかんする中國全記錄の再檢討-東アジアにおける近世漂流民送還制度と日本" 日本海史史學會 62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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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荒野泰典, "近世日本の漂流民送還體制と東アジア" 歷史科學協議會 400 : 1984

      12 鶴田啓, "近世日本の四つの‘口’. in: アジアの中の日本史Ⅱ-外交と戰爭" 東京大學出版會 1992

      13 荒野泰典, "近世日本と東アジア" 東京大學出版會 1988

      14 池內敏, "近世日本と朝鮮漂流民" 臨川書店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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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春名徹, "漂流民送還制度の形成について" 日本海史史學會 52 :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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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8 1.18 1.1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6 0.98 2.15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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