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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특집: 동아시아 예교(禮敎)의 논리와 예제(禮制)의 교류] : 고려말기,조선초기 영조의례(迎詔儀禮)에 관한새로운 이해 모색-『번국의주(蕃國儀注)』의 소개와 복원- = New Understanding of the "Edict Welcoming Ritual(迎詔儀禮)" in the ending days of Goryeo and early days of Joseon -Introductory recreation of 『Beon`guk Euiju(蕃國儀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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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1695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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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에서는 對明 외교 의례의 교과서라 할 수 있지만 그 동안 철저히 간과되어 온 『蕃國儀注』의 실체를 부각·규명하고, 더 나아가 『蕃國儀注』에수록된 영조의례를 복원하고자 했다. 『...

      본고에서는 對明 외교 의례의 교과서라 할 수 있지만 그 동안 철저히 간과되어 온 『蕃國儀注』의 실체를 부각·규명하고, 더 나아가 『蕃國儀注』에수록된 영조의례를 복원하고자 했다. 『번국의주』는 明이 1370년(홍무 3)에 편찬한 인쇄 책자이다. 명은 이전왕조들과 달리 蕃國 내에서 번국이 명(황제)을 대상으로 거행하는 의례들까지 직접 작성하였는데, 『번국의주』는 바로 그러한 의례들, 곧 ``蕃國接詔 儀注``, ``蕃國受印物儀注``, ``蕃國正旦冬至聖壽率衆官望闕行禮儀注``, ``蕃國進賀表箋儀注``을 수록한 책자이다. 『번국의주』는 명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번국(고려)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것은 1370년 9월에 편찬된 『대명집례』의 완성 전에 작성되었을 것이다. 명은 1369년(홍무 2) 9월에 작성된 각종 蕃國禮를 보완하여 『대명집례』의 빈례를 완성해 가고 있었고, 그러한 중에 고려 측의 요청이 있자 그 가운데 번국에서 거행되어야 하는의례들을 뽑아 『번국의주』를 작성하여 고려에 보냈을 것이다. 고려말기와 조선초기의 대명 외교 의례는 기본적으로 『번국의주』를 토대로 거행되었다. 고려말기의 대명 외교 의례는 『번국의주』를 토대로 거행되면서도 이를 저본으로 하여 고려의 관원이 사용하기에 유용한 버전이 고안되었으니, 『고려사』예지에 수록된 소위 ``對明儀禮``인 ``迎大明詔使儀``, ``迎 大明賜勞使儀``, ``進大明表箋儀``, ``元正冬至上國聖壽節望闕賀儀``가 바로 그것이다. 조선초기에 또한 대명 외교 의례는 『번국의주』에 수록된 의례들을바탕으로 행해졌고, 별고에서 다루겠지만,『번국의주』를 활용한 외교의례의의주 제정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번국의주』는 현재 전해지지 않기에, 여기에 수록된 ``蕃國接詔儀注``의 복원을 시도해 보았다. 이는 고려말기·조선초기 영조의례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선행 작업이기도 하다. 『고려사』 ``迎大明詔使儀``가 『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를 저본으로 하여 작성된 사실을 전제로 하여 복원 방법을고안하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번국의주』 ``蕃國 接詔儀注``의 복원 결과물은 본문에 소개하였는데, 이것과 『대명집례』 ``蕃國 接詔儀注``를 비교해 보면, 양자 사이에는 『번국의주』의 ``왼 무릎을 꿇고 세번 고두하는`` 행위와 『대명집례』의 ``세 차례 두 손을 마주잡아 이마에 얹는`` 행위와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표현상의 사소한 차이가 간간이 있는 정도이다. 다음으로 『번국의주』 ``蕃國接詔儀注``와 『고려사』 ``迎大明詔使儀``를비교해 보면, 후자가 전자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옮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고려사』 ``迎大明詔使儀``의 작성 과정에서 고려를 주체로할 때 어색하거나 실정에 맞지 않은 표현을 생략·수정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 의절을 축약하여 기술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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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Beon`guk Euiju(蕃國儀注)』 was essentially a textbook for the Korean people in their diplomatic dealings with Ming and their observing of rituals that accompanied such relationship. It was rather, however, completely neglected in past studies....

      『Beon`guk Euiju(蕃國儀注)』 was essentially a textbook for the Korean people in their diplomatic dealings with Ming and their observing of rituals that accompanied such relationship. It was rather, however, completely neglected in past studies. It was printed in Ming in 1370(3rd year of the Hongmu era). Unlike previous dynasties, the Ming government created ritual protocols that were to be observed by the vassal states[蕃國] in their greetings and honoring of Ming. 『Beon`guk Euiju』 contains such protocols, such as ``Beon`guk Jeobjo Euiju(蕃國接詔儀注, protocol for a Vassal state greeting an Edict)``, ``Beon`guk Su`inmul Euiju(蕃國受印物儀注, protocol for a Vassal state receiving seals and items from Ming), ``Beon`guk Jeongdan Dongji Seongsu Soljung-gwan Mang`gweol Haeng`rye Euiju(蕃國正旦冬至 聖壽率衆官望闕行禮儀注, protocol for a Vassal state standing toward the Chinese palace and pay respect on special occasions)``, and ``Beon`guk Jinha Pyojeon Euiju(蕃國進賀表箋儀注, protocol for a Vassal state forwarding a royal correspondence to the Ming court).`` It was never published because Ming needed it, but rather because it had to be offered to Goryeo at its request. Ming-related diplomatic protocols in the ending days of Goryeo and early days of Joseon were all based upon 『Beon`guk Euiju』. A version that was based upon 『Beon`guk Euiju』 yet modified to fit Goryeo-specific situations was devised at the end of Goryeo, and it is now inserted in the Protocol section of 『Goryeo-sa』 under the title of "Rituals For Ming(``對明儀禮``)." The situation was no different in the Joseon dynasty`s early days, and devising new protocols based upon 『Beon`guk Euiju』 was in progress as well. As 『Beon`guk Euiju』 does not remain with us today, attempted in this article is its reconstruction, and especially the ``蕃國接詔儀注.`` The result shows very little difference from the contents of the chapter of the same name inside 『Dae`myeong Jib`rye』, except for some minor differences such as 『Beon`guk Euiju』`s ``궤左膝三叩頭`` and 『Dae`myeong Jib`rye』`s ``三拱手加額.`` Comparison made between 『Beon`guk Euiju』(``蕃國接詔儀注``) and the ``Yeong Daemyeong Josa-eui(迎大明詔使儀)`` in 『Goryeo-sa』, lets us know that the latter was essentially based upon the former, with a few modifications of certain portions that would seem odd if left as recorded to concern Goryeo. Some of the records are even abbrevi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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