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高麗와 朝鮮王朝에서 편찬·간행된 五禮書를 고찰하여 각종 國家儀禮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가정의례인 朱子家禮 및 현 재 우리 사회에서 通用되고 있는 四禮와 비교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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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Korean
150
학술저널
169-227(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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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高麗와 朝鮮王朝에서 편찬·간행된 五禮書를 고찰하여 각종 國家儀禮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가정의례인 朱子家禮 및 현 재 우리 사회에서 通用되고 있는 四禮와 비교할 수 있�...
본 논문은 高麗와 朝鮮王朝에서 편찬·간행된 五禮書를 고찰하여 각종 國家儀禮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가정의례인 朱子家禮 및 현 재 우리 사회에서 通用되고 있는 四禮와 비교할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기술된 것이다. 五禮는 『周禮』의 五禮體制에 기인하는 것으로, 吉禮 · 凶禮 · 賓禮 · 軍禮 · 嘉禮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周禮』가 편찬된 이후부터 五禮가 왕실전례의 기준이 되었으며, 唐代부터는 五禮로 禮制를 구별하였다. 즉 五禮에 따라 五禮體制는 唐代의 『偵觀禮』와 『大唐開元禮』로 정비되어 국가왕실의 禮로써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이미 五禮가 왕실에서 운영되었단 것으로 알려져 있다. 『高麗史』 「禮志」도 항목과 내용에서 五禮의 體制를 보이고 있지만 불교와 민간신앙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아 본래의 五禮와는 차이를 보인다.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五禮는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운영되면서 각종 예제담당 기관과 부서가 설립되어 五禮書가 편찬 · 간행되었다. 즉 《世宗實錄》 <伍禮> (1451)를 시작으로 《國朝五禮儀》 (1474)가 집대성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添削 · 개정한 《國朝績五禮儀》 (1744) · 《國朝續五禮儀補》 (1751) · 《國朝喪禮補編》 (1758) · 《國朝五禮通編》 (1788) · 《春官通考》 (1788) · 《大韓禮典》 (1898) 등이 시대를 달리하면서 편찬되고 · 간행되었다. 이들 五禮書에 나타나는 五禮의 항목수정 · 보완작업은 역사적 변화를 수용하고, 五禮 운영을 더욱 완벽하게 실천하려는 움직임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개편 작업은 국가적 차원에서 儀禮를 체계적으로 정비 시행하여 정치 · 경제적 · 사회적 혼란을 불식시키고 왕권의 강화를 통해 보다 안정된 집권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각종 五禮書의 五禮를 總括하면 위로부터 주어진 왕권의 명분을 五禮에서 찾으려는 왕권중심의 國家儀禮로써, 이는 조선시대의 禮制뿐만 아니라, 정치 · 사회 · 문화 전반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家禮와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 자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러한 五禮書의 편찬과정과 내용과 의의를 검토하고 어떻게 시대상을 반영하여 사회에 적합한 것으로 수정 · 보완해 나갔는지를 살펴보고, 이로써 國典인 經國大典 · 績大典과 함께 조선시대 국가차원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례를 전체적으로 조망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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