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성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 자기표현의 두 공간으로 일컬어져 왔다. 자연과 성서가 하나님 이해의 주 인식론적 지평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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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Korean
230.000
학술저널
1-10(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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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성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 자기표현의 두 공간으로 일컬어져 왔다. 자연과 성서가 하나님 이해의 주 인식론적 지평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연은 ...
자연과 성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 자기표현의 두 공간으로 일컬어져 왔다. 자연과 성서가 하나님 이해의 주 인식론적 지평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연은 신적 지평을 상실하게 되었고 성서만이 하나님 계시의 통로로 인식 될 수 있었다. 17~18세기 계몽주의 사조는 이런 식의 이원적 분리를 철저히 하였고 창조론과 진화론 간의 갈등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과 기독교가 각기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독립된 학문 영역 속에 존재해야 한다는 통념을 확대 재생산 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 자연을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시켜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하였던 진화론은 이 우주와 인간, 그리고 많은 생명들이 어떻게 생겨났느냐는 문제에 오늘날 바른 해답을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 우리의 생명과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창조론의 사유를 따라 창조주가 있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그 뜻에 맞게 사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만일 저절로 우연히 생겨났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아도 될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진화론의 영향이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사는데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우주와 생명이 기원에 대한 바른 인식은 기독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폴킹혼(J. Polkinghorne)의 과학과 신학간의 대화(공명론)와 자연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