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겼다. 이 개념을 통하여 그는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일치성을 중요시했고, 분열은 정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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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2006
학위논문 (석사) -- 장로회신학대학교신학 대학원 , 신학 전공 , 2006
2006
한국어
262 판사항(21)
서울
79p.; 30cm
각주 수록
참고문헌: p.7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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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겼다. 이 개념을 통하여 그는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일치성을 중요시했고, 분열은 정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
칼뱅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겼다. 이 개념을 통하여 그는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일치성을 중요시했고, 분열은 정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는 하나됨이다. 여러 지체들이 ‘성도들의 교제’를 통하여 통일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신자들의 어머니로서의 교회 개념은 칼뱅이 주장한 또 다른 교회개념이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회를 세워서 인간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고 칼뱅은 이 교회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한편, 칼뱅은 교회를 가시적, 불가시적 교회로 구분하고 있다. 그는 가시적 교회를 “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경배한다고 고백하는 세계 각지에 산재한 모든 사람들”로 이해하고 있으며, 불가시적 교회는 “천지 창조 이후 살아있는 자 뿐만 아니라 죽은 자”로 이루어진 교회라고 주장한다. 칼뱅은 가시적 교회는 인간의 편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관점에서 이해했고, 불가시적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 편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것이다. 칼뱅에게 있어서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의 구분은 단순히 교회가 두 개로 실재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분되어야 하는 이유는 모든 선택받은 자들로만 이루어진 불가시적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정확히 일치하지만, 이 불가시적 교회가 가시적 교회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표지에 관해서 칼뱅은 말씀과 성례전을 참교회의 표지로 보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며 또 듣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를 지킬 때에 거기 하나님의 교회”가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서 칼뱅은 이 둘 모두 하나님의 나라의 요구에 응하여 제정된 것이라고 본다. 물론 교회와 국가 사이에는 관할영역이 서로 구별된다. 그리하여 국가는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삶에 관한 사항에 관한 관할권을 가지게 되고 교회는 영적 생활에 관한 관할권을 가지는 것이다. 그는 교회와 국가가 서로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 두 기관 모두 하나님의 기관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며 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재세례파 교회론의 핵심은 이원론이다. 그들은 우주를 두 세계로 분리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주를 해석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두 대립적 요소로 이해했다. 재세례파는 기존교회를 타락한 교회로 인식한다. 교회가 국가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부터 타락이 시작되었으며, 그들은 사명은 신약성경의 교회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참된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이해했다. 즉, 재세례파들은 가톨릭 교회는 완전히 타락되었다고 보고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이 참된 교회의 본질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면에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중의 하나가 신자들의 자발성이다. 즉,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신자들은 타인이나 국가의 강압에 의해서 신앙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자발적인 결단으로 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세례파가 유아세례를 반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유아세례에는 신자의 자발성이 없다는 것이다. 유아들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부모의 의지에 의해서 세례를 받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재세례파 교회론의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는 교회가 성도들의 영적인 공동체라는 개념이다. 이와같은 공동체로서의 의식을 통해서 재세례파는 공동단체로서의 교회의 재건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하여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정죄하고 모든 소유물을 공유하는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참교회의 표지에 있어서 재세례파는 칼뱅과 유사한 면이 있다. 즉, 그들도 말씀과 성례를 참 교회이 표지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여기에다 몇 가지 더 첨부하고 있다. 신자의 생활과 행동에 있어서 재세례파의 증거를 온전하게 실천하고, 자신들을 구별되게 하는 생활 태도를 보존하고자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삼았다. 그런데 권징을 함에 있어서 무조건적이고 기계적인 권징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철저히 사랑을 바탕으로 권징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사랑역시 참 교회의 표지가 되었다. 한편 그들은 전쟁이나 무력을 멀리하고 평화를 강조하였는데, 그리하여 평화 혹은 무저항이 참교회의 표지로 들어오게 된다.
재세례파에게 있어서 교회와 국가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교회 타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서 교회와 국가의 결탁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교회와 국가가 합쳐졌을 때 교회는 더 이상 교회로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재세례파들은 주장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존재자체를 부인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종교적 영역에 있어서 국가의 권한을 부인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공직자로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일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기까지 한다. 결국 그들은 국가의 역할은 인정하였으나 국가에의 참여, 국가와의 결합은 부정하였던 것이다.
칼뱅과 재세례파의 교회론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이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교회 개혁의 방향성에서의 차이점이다. 그리하여 칼뱅은 교회가 현재의 모습에서 다른 모습으로 “개혁”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재세례파는 현재의 교회 모습 전부를 부정한다. 현재의 교회는 완전히 타락한 기관이며, 더 이상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는 기관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재세례파들은 초대교회로의 “회복”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처럼 칼뱅과 재세례파는 개혁이냐, 회복이냐에서 그들의 교회론이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재세례파의 초대교회로의 회복이라는 이상에는 공감할 수 있는 면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초대교회 역시, 완전한 교회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하다. 초대교회 역시 연약한 인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지상 교회에 불과했다. 이런 면에서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구분했던 칼뱅의 교회론이 좀 더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칼뱅은 교회와 국가를 서로 연합할 수 있는 기관이라고 보았는데, 이것은 교회와 국가를 지나치게 이상적인 관계로 묘사한 듯한 인상을 준다. 과연 현실적으로 교회와 국가 양자가 하나님의 기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재세례파처럼 극단적으로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국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두 기관은 필히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재세례파의 주장에도 문제점이 도출된다.
이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칼뱅과 재세례파의 사상이 어느정도 혼합한 사상일 것이다. 교회가 때로는 국가로 파트너로 생각할 수도 있고, 때로는 거리를 두고 분리된 채 관망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회와 국가가 서로 끊임없이 긴장관계를 가지고, 적절하게 서로를 견제하면서 공존하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