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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영역 참고도」와 일본 외무성의 독도 정책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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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51년 10월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비준의 승인을 얻기 위해 국회에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설명서』를 제출하였다. 이 안에「일본 영역 참고도」가 있었으며 독도와 소쿠릴제도(하보마이·시코탄)를 일본 영역 외로 그렸다. 이 지도는 해상보안청이 8월 시점의 일본 영역과 일본 어선의 조업 허가 구역 등을 그린 것이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10월 시점에서 오해를 받기 쉬운 지도를 낸 이유는 소쿠릴제도의 소속 문제에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 섬들의 귀속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지도를 그릴 수 없었던 것이다. 11월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일본 정부는 소쿠릴제도가 일본 영토로 되었다고 판단하고 지도「평화조약에 따른 영역의 변경」에 이를 명시하였다.
      이 지도에 독도는 없었다. 그 이유는 ‘독도’에 관해 조약에 아무 규정이 없어 ‘영역의 변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외무성이 시마네현과 더불어 독도 영유권의 근거를 찾았으나 충분한 “물적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정부는 SCAPIN-677에 의해 일본국 외로 규정된 독도와 소쿠릴제도의 법적 지위가 강화조약에서 변화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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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10월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비준의 승인을 얻기 위해 국회에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설명서』를 제출하였다. 이 안에「일본 영역 참고도」가 있었으며 독도와 소쿠릴제...

      1951년 10월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비준의 승인을 얻기 위해 국회에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설명서』를 제출하였다. 이 안에「일본 영역 참고도」가 있었으며 독도와 소쿠릴제도(하보마이·시코탄)를 일본 영역 외로 그렸다. 이 지도는 해상보안청이 8월 시점의 일본 영역과 일본 어선의 조업 허가 구역 등을 그린 것이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10월 시점에서 오해를 받기 쉬운 지도를 낸 이유는 소쿠릴제도의 소속 문제에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 섬들의 귀속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지도를 그릴 수 없었던 것이다. 11월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일본 정부는 소쿠릴제도가 일본 영토로 되었다고 판단하고 지도「평화조약에 따른 영역의 변경」에 이를 명시하였다.
      이 지도에 독도는 없었다. 그 이유는 ‘독도’에 관해 조약에 아무 규정이 없어 ‘영역의 변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외무성이 시마네현과 더불어 독도 영유권의 근거를 찾았으나 충분한 “물적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정부는 SCAPIN-677에 의해 일본국 외로 규정된 독도와 소쿠릴제도의 법적 지위가 강화조약에서 변화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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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October 1951, the Japanese Government submitted a document explaining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to the Diet to obtain approval for the treaty’s ratification. Attached to the document was a reference map of Japanese territory, which placed Takeshima (Dokdo), Kuchinoshima, and the Lesser Kuriles (the islets Habomai and Shikotan) outside Japanese territory. The map made by the Japan Coast Guard showed Japan territory as of August 1951 before the treaty came into force. The reason the Japanese government attached such a dubious map that could have easily been misunderstood at the time was because it had been unable to determine which country the Lesser Kuriles belonged to. It barely managed to conclude that the Lesser Kuriles is part of Japanese territory the following month in November 1951 and reflected its conclusion in the map “Change of Territorial Boundaries According to the Peace Treaty.”
      Meanwhile, that map did not include Dokdo because it was not mentioned in any of the treaty’s provisions and therefore had not been subject to any territorial changes. Moreover, the Japanes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failed in its joint investigation with Shimane prefecture to come up with sufficient evidence to claim sovereignty over the island. As a result, the Japanese government fell back on SCAPIN-677 to claim that since the instruction makes no specific mention of Dokdo or the Lesser Kuriles, the understanding of the legal status of the islands has not been changed by the trea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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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October 1951, the Japanese Government submitted a document explaining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to the Diet to obtain approval for the treaty’s ratification. Attached to the document was a reference map of Japanese territory, which placed Ta...

      In October 1951, the Japanese Government submitted a document explaining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to the Diet to obtain approval for the treaty’s ratification. Attached to the document was a reference map of Japanese territory, which placed Takeshima (Dokdo), Kuchinoshima, and the Lesser Kuriles (the islets Habomai and Shikotan) outside Japanese territory. The map made by the Japan Coast Guard showed Japan territory as of August 1951 before the treaty came into force. The reason the Japanese government attached such a dubious map that could have easily been misunderstood at the time was because it had been unable to determine which country the Lesser Kuriles belonged to. It barely managed to conclude that the Lesser Kuriles is part of Japanese territory the following month in November 1951 and reflected its conclusion in the map “Change of Territorial Boundaries According to the Peace Treaty.”
      Meanwhile, that map did not include Dokdo because it was not mentioned in any of the treaty’s provisions and therefore had not been subject to any territorial changes. Moreover, the Japanes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failed in its joint investigation with Shimane prefecture to come up with sufficient evidence to claim sovereignty over the island. As a result, the Japanese government fell back on SCAPIN-677 to claim that since the instruction makes no specific mention of Dokdo or the Lesser Kuriles, the understanding of the legal status of the islands has not been changed by the trea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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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광복 후 독도에 대한 일본 외무성의 관심도
      • Ⅲ.「일본 영역 참고도」
      • Ⅳ. 일본 정부의 독도 정책 모색
      • Ⅴ. 맺음말
      • Ⅰ. 머리말
      • Ⅱ. 광복 후 독도에 대한 일본 외무성의 관심도
      • Ⅲ.「일본 영역 참고도」
      • Ⅳ. 일본 정부의 독도 정책 모색
      • Ⅴ. 맺음말
      • 국문초록
      • ABSTRACT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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