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ly, a fairly large number of Bungu-tombs(墳丘墓) were discovered in the Incheon-Gimpo area. This means that a ruling group with a certain size of power has emerged in this region. Areas where Bungu-tombs have been found particularly intens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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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Recently, a fairly large number of Bungu-tombs(墳丘墓) were discovered in the Incheon-Gimpo area. This means that a ruling group with a certain size of power has emerged in this region. Areas where Bungu-tombs have been found particularly intensive...
Recently, a fairly large number of Bungu-tombs(墳丘墓) were discovered in the Incheon-Gimpo area. This means that a ruling group with a certain size of power has emerged in this region. Areas where Bungu-tombs have been found particularly intensively are the remains of Yeonhui-dong in Incheon and Unyang-dong, Yangchon. in Gimpo. Considering that the central age seen based on the excavated relics is around the first half of the 3rd century, it is highly probable that they are one of the Mahan countries appearing in the Hanjo(韓條) of The Three Kingdoms(三國志).
There are 56 small kingdoms in Hanjo(韓條) of The Three Kingdoms(三國志). According to the historical research results, the countries that fall under the Incheon-Gimpo region are ‘Woohyumotakguk(優休牟涿國)’, ‘Sinbungoguk(臣濆沽國)’, ‘Soklobulsaguk(速盧不斯國)’. As a member of the Mahan Federation, they would have grown into a maritime power through economic exchanges with Chinese Gunhyeon(郡縣). It is also highly likely that he participated in the Battle of Giriyeong with Chinese Gunhyeon in the 3rd century.
The political forces in the Incheon-Gimpo region have the characteristics of a regional federation of Mahan formed by economic and military necessity through “sea” as a medium. In particular, the Yeonhui-dong area is a strategic military base located on the way to the inland of the Korean Peninsula. Therefore, if it is a power on the West Sea coast to engage in foreign trade, it is highly likely that it has formed an economic and military alliance with this region.
On the other hand, a significant number of iron weapons and relics of Nakrang, such as Osujeon(五銖錢), Cheolgyeongdongchok(鐵莖銅鏃), and Nakranggye earthenware(樂浪系土器片), are found at the Unyang-dong ruins in Gimpo. This shows the possibility that the local powers participated in conflicts such as the Battle of Giriyeong. In other words, the Incheon-Gimpo region is a regional alliance formed by a military alliance, and it acted together when conflicts occurred as well as economic negotiations with Chinese Gunhyeon(郡縣)
국문 초록 (Abstract)
최근 인천-김포지역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분구묘가 발견되었다. 이는 이 지역에 일정 규모의 세력을 가진 지배 집단이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분구묘가 특히 집중적으로 발견된 지역은 인...
최근 인천-김포지역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분구묘가 발견되었다. 이는 이 지역에 일정 규모의 세력을 가진 지배 집단이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분구묘가 특히 집중적으로 발견된 지역은 인천 연희동 유적, 김포 운양동, 양촌 유적 등이다. 출토유물을 토대로 본 중심연대가 대략 3세기 전후반임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은 삼국지 한조에 등장하는 마한 諸國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삼국지 한조에는 56개의 소국이 등장한다. 문헌사적 연구성과에 따른다면 인천-김포지역에 해당하는 나라는 ‘우휴모탁국’, ‘신분고국’ 및 ‘속로불사국’ 등이다. 이들은 마한연맹체의 일원으로 중국 군현과 경제적 교류를 통해 해상세력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또한 3세기 낙랑군과 벌인 기리영전투에도 참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천-김포지역의 정치세력은 “해상”을 매개로 하여 경제적,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형성된 마한의 지역연맹체적 특성을 가진다. 특히 연희동지역은 외부 세력이 한반도 내륙에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따라서 대외무역에 종사하려는 서해 연안의 세력이라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 군사적 동맹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김포 운양동 유적에는 오수전, 철경동촉, 낙랑계토기편 등 낙랑계유물과 함께 상당수의 철제무기류가 발견된다. 이는 기리영전투 등의 분쟁에 이 지역 세력들이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인천-김포지역은 군사적 동맹으로 맺어진 지역연맹체로 중국 군현과의 경제적 교섭은 물론 분쟁이 일어났을 때도 함께 행동하였고, 이 때문에 삼국지에서 국명을 열거할 때, 나란히 기재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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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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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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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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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Center for Korean Studies |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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