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개화기에 한글로 번역된 기독교의 성서(聖書, The Bible)가 한국 근대소설 형성기에 텍스트상으로 특정하게 수용되는 양상과 근대작가들이 성서라는 종교적 경전을 서사적으...
본 연구의 목적은 개화기에 한글로 번역된 기독교의 성서(聖書, The Bible)가 한국 근대소설 형성기에 텍스트상으로 특정하게 수용되는 양상과 근대작가들이 성서라는 종교적 경전을 서사적으로 활용 가능한 텍스트로서 인식하고 소설에 도입한 문학적 시도의 의의를 구명하는 데에 있다. 한국 근대소설 형성기 작가들에게 성서는 기독교 신앙의 문제와는 별도로 다양한 각도와 독법으로 읽고 소설 창작에 활용할 수 있는 문학적 텍스트였다고 간주하고, 성서 수용의 개별적인 문학적 의미와 성서라는 텍스트가 형성기 한국 근대소설에 미친 통합적 의의를 밝히는 데에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두었다.
이를 위해 본고는 기독교와 한국 근대문학 간의 포괄적인 관련성으로부터 초점을 좁혀, ‘문학으로서의 성서(The Bible as Literature)’라는 시각과 방법론을 적용하여 개화기부터 1920년대 초에 이르는 한국 근대소설 형성기에 성서의 텍스트적 수용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작가들인 김필수, 안국선, 이해조, 전영택, 나혜석, 김동인, 나도향, 이광수의 작품을 대상으로 인용, 인유, 패러디 등의 다양한 수법으로 이루어지는 성서 수용 양상의 개별적 의미와 작가적 의도의 편차를 드러내었다.
Ⅱ장에서는 한글 성서의 번역 이후 외국인 선교사나 조선인 목사의 선교소설에서 성서가 종교적 경전으로 인용되는 포교적 글쓰기가 대두되던 상황에 신소설 작가들이 성서를 법적 정의(legal justice)와 연동하여 사유할 법리적(法理的) 텍스트로 인식하고 작품 속으로 차용하는 현상에 주목하였다. 김필수의 『경세종』,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같은 토론체 신소설은 근대법의 이입에도 불구하고 법적 정의가 올바르게 구현되지 않는 개화기 사법현실을 성서에서 신의 속성으로 언급되는 공의(公義) 개념에 의탁하여 예언서의 인용을 통해 비판하고 신적 정의(God’s justice)를 희구한다. 그리고 이해조의 『고목화』, 작자 미상의 『광야』처럼 법적 서술과 더불어 범죄를 이야기의 중핵사건으로 설정하는 신소설의 경우 사적 복수나 공적 재판에 의한 문제 해결의 법리적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성서를 소재로 등장시키고 회심(回心)에 의한 악인의 개선과 용서를 대안적 방법으로 제시한다. 신소설의 성서 수용은 성서의 문학성에 대한 인식 위에서 이루어진 결과는 아니지만, 성서를 경전으로서만 이해하지 않고 텍스트의 서사적 목적에 따라 맥락을 달리하여 차용한 초기적 현상이었다.
Ⅲ장은 전영택, 나혜석을 위시한 작가들이 근대적 자아를 서사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미션스쿨과 교회에서 기독교적 교양으로 쌓은 성서 읽기에 기반하여 성서 속의 거듭나는 생명(重生)이나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문학적으로 인유한 양상을 검토하였다. 전영택은 「생명의 봄」에서 중생에 의한 근본적 변화를 발전적 인물 형상화와 이야기상의 급전의 계기로 활용하여 소설 속 주인공이 근대 예술가로 신생하는 과정을 묘사하였다. 나혜석은 「경희」에서 전통적으로 소외된 여성을 사람의 범주에 포함시키고자 「창세기」의 양성(兩性) 분리 이전의 원형적 인간을 전략적으로 인유하여 신여성의 자아 각성을 관철하였다. 전영택과 나혜석의 소설적 사례는 서사적으로 구성되는 자아에 성서가 내러티브적 모델을 제공하였다는 점을 증명한다.
Ⅳ장은 성서의 부분적 차용이나 인유의 차원을 넘어 성서를 원-텍스트로 삼아 패러디하거나 성서의 예수와 소설의 주인공을 전상(prefiguration)과 후상(postfiguration)이라는 예표론적 구도 위에 두고 민족의 그리스도를 형상화하는 적극적인 성서의 소설적 변용을 고찰하였다. 김동인과 나도향은 신약성서의 복음서를 직접적인 원-텍스트로 삼고 예수를 소설적 인물로 인격화하거나 성서를 거스르는 반기독교적 수사를 동반하여 자아를 절대화하였다. 이광수는 실존하는 도산 안창호를 모델로 포착하되 민족의 그리스도로 부조하여 민족적 구원의 실현이라는 수행적 의도를 실천하였다. 이와 같은 성서의 소설적 변용의 스펙트럼은 식민지 작가의 특성을 분별할 하나의 기준이 됨을 시사한다.
형성기 한국 근대소설에서 수용되는 성서의 내용은 구약의 역사서나 신약의 서신서보다 천지창조, 아담과 하와의 실낙원이 기록된 「창세기」,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향한 권력 비판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예언서, 「시편」, 「잠언」, 「전도서」처럼 ‘성서 속의 문학’에 해당하는 시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줄거리로 삼고 있는 복음서가 편중된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대안적 법리, 근대적 자아, 절대적 예술, 민족적 구원이라는 구체적 의미처럼 작가들이 성서를 수용할 때, 종교적 상상력 혹은 신학적 탐구의 일환으로 시도했다기보다는 해당 작가가 자기 이해를 도모하거나 처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차원에서 성서를 재맥락화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한국 근대소설 텍스트에 빈출하는 성서는 자체로 주목되어야 할 문학적 사실이며, 소설과 성서의 관계를 면밀하게 인식해야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한국 근대소설이 성서라는 텍스트와의 관계망 위에서 독해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와 성서 수용의 실제와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 본 연구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