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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학의 시각에서 본 중국전통사학의 해석과 정립 -유이징(柳이징徵)의 중국전통사학관 평론
쉬꿔리 중국사학회 2014 중국사연구 Vol.93 No.-
柳飴徵은 중국현대 사학의 대가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부정하는 역사문화 허무주의에 반대하여 중국 역사문화의 진면모를 연구할 것을 주장하였다. 柳飴徵은 사학은 역사와 문화를 인식하는 도구이기에 유가사상이 이끄는 중국의 전통사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기초하여 중국현대 신사학을 건립해야만 국민을 위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의 진면모를 인식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현대 신유학의 시각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역사와 문화의 특징과 정신을 결합하였고, 史學本體論, 方法論 및 價値論의 영역에서 모두 서방의 역사와 문화와 대비되는 중국 전통사학 및 정신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고 정립하였다. 柳飴徵은 중국사학의 기원과 사관제도와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중국사학은 기원에서부터 정사를 기록하는 것으로 통치를 보조하였고, 禮는 施政의 근본이자 도구였기에 역사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禮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言史一本于禮”는 柳飴徵의 전통역사관의 핵심이었고, 또한 그가 중국사학과 역사문화에 근거하여 이끌어낸 치밀하고 독창적인 이론이었으며 서방사학의 이론을 중국사학에 적용시켜 해석한 중국사학에 대한 견해는 아니었다. 근대 진화사관에 대한 柳飴徵은 인식을 상당히 복잡하다. 그는 역사에 진화가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였고, 그의 역사저술에는‘진화’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역사의 진화와 퇴보는 종종 교체, 병존한다고 인식하였다. 물질경제는 무궁하게 진화할 수 있으나 도덕과 정신은 반드시 진화한다고 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퇴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국역사의 진화에 관해 그는 중국의 정치와 종교의 규모와 문명은 周代에 이미 절정에 도달했으며 上古 三代를 숭상하는 복고의 경향을 체현했다고 인식했다. 柳飴徵은 유가의 민본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서 “生民之本”을 중국사학의 요결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聖賢史觀을 새롭게 해석하여 역사상 인민의 지위와 작용을 강조하였고, 중국의 고대 특히 三大에 이미 민권과 민치가 존재하였다고 인식하였다. 柳飴徵은 중국현대 사학의 대가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부정하는 역사문화 허무주의에 반대하여 중국 역사문화의 진면모를 연구할 것을 주장하였다. 柳飴徵은 사학은 역사와 문화를 인식하는 도구이기에 유가사상이 이끄는 중국의 전통사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기초하여 중국현대 신사학을 건립해야만 국민을 위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의 진면모를 인식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현대 신유학의 시각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역사와 문화의 특징과 정신을 결합하였고, 史學本體論, 方法論 및 價値論의 영역에서 모두 서방의 역사와 문화와 대비되는 중국 전통사학 및 정신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고 정립하였다. 柳飴徵은 중국사학의 기원과 사관제도와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중국사학은 기원에서부터 정사를 기록하는 것으로 통치를 보조하였고, 禮는 施政의 근본이자 도구였기에 역사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禮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言史一本于禮”는 柳飴徵의 전통역사관의 핵심이었고, 또한 그가 중국사학과 역사문화에 근거하여 이끌어낸 치밀하고 독창적인 이론이었으며 서방사학의 이론을 중국사학에 적용시켜 해석한 중국사학에 대한 견해는 아니었다. 근대 진화사관에 대한 柳飴徵은 인식을 상당히 복잡하다. 그는 역사에 진화가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였고, 그의 역사저술에는‘진화’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역사의 진화와 퇴보는 종종 교체, 병존한다고 인식하였다. 물질경제는 무궁하게 진화할 수 있으나 도덕과 정신은 반드시 진화한다고 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퇴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국역사의 진화에 관해 그는 중국의 정치와 종교의 규모와 문명은 周代에 이미 절정에 도달했으며 上古 三代를 숭상하는 복고의 경향을 체현했다고 인식했다. 柳飴徵은 유가의 민본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서 “生民之本”을 중국사학의 요결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聖賢史觀을 새롭게 해석하여 역사상 인민의 지위와 작용을 강조하였고, 중국의 고대 특히 三大에 이미 민권과 민치가 존재하였다고 인식하였다. 柳飴徵은 전통적인 史德論의 의미를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史德은 역사가 忠實과 의문을 중시하는 것으로 표현된다고 인식하고, 實錄의 필법과 정신 및 역사기록이 사회생활 등의 면을 전면적으로 반영할 것을 강조하였다. 전통사학이 史德을 중시한 것은 중국문화가 덕을 본위로 한 것이 治史에 반영되고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柳飴徵은 “治史之必本于德”을 주장하였고, 史德을 史家의 四長(史才, 史學, 史實, 史德)의 첫 번째에 두어 治史 에서 史德의 중심적인 지위를 부각시켰다. 그의 사상은 중국유가의 以德治世 사상을 구현한 것으로 史德論을 중국문화의 높은 경지로 상승시켜 인식하였다. 柳飴徵은 중국고대 사관제도에 의한 記事는 모두 관련이 있는 제도와 특징을 갖고 있으며 중국 전통사서의 체제를 결정하였고, 특히 紀傳體(혹은 紀傳表志體)는 역사적 사실간의 관계를 서술하는데 치중하였고 또한 능하였기에 사회역사생활의 면모를 전면적으로 반영하였다. 이는 근대 이래 서방의 章節體를 편면적으로 숭상하여 중국사학의 체제와 서술을 부정한 극단적인 사상을 실질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 도덕적 합법성을 국사 서술의 근본적인 준칙으로 삼다. 柳飴徵은 중국사서 저술의 도덕 평판문제를 매우 강조하여 “史之所重在持正義”라고 하였다. 그는 역사상의 각종 正史論과 正統論에 대한 변별과 분석을 통해 전통사학이 실제로는 역사적 정의를 정통으로 삼아 국사를 서술한 것이고, 이로부터 도덕적 합법성을 국사 서술의 근본준칙으로 보았다. 정통론에 대한 柳飴徵의 새로운 해석이 그 원 뜻에 반드시 부합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상당한 이론적 가치와 현실적 의의를 갖고 있으며 근대 민족국가관과 애국주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유학화된 역사학은 사학의 도덕적 기능을 강조한다. 柳飴徵이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사학에는 蓄德과 明德의 기능이 있고, 사람의 도덕을 배양하는 그러한 기능을 기타 학문은 따라올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은 유가도덕적 역사학의 기능을 선양한 것이다. 그는 또한 以史致用은 心正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사학으로 심성을 말하는 것과 공로를 말하는 것을 서로 결합시킬 것을 주장하였는데 이를 통해 중국 역사상 출현한 심성과 도덕의 공론이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그르치는 학술적 병폐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柳飴徵은 전통사학의 致用觀을 계승하여 사학이 개인과 국가, 사회에 유용하다고 밝혔다. 그는 治史와 讀史의 의미가 역사적 지식을 얻고 나아가 흥망성쇠를 보고, 과거를 살펴 미래를 아는 것이라고 심도있게 분석하였다. 사학은 이러한 기능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知類通達”할 수 있고, 역사 발전에 인과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柳飴徵은 “학문을 위해 학문을 하는” 고증학풍을 반대하였다. 柳飴徵은 사학이 국가와 민족에 유용해야 한다고 특히 강조하였다. 사학의 기능은 크게 보아 바로 민족을 부흥하고 국가를 진흥하는 것이다. 국민으로 하여금 중국의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근대이래 민족문화에 대한 허무주의를 반박하고, 역사학이 민족정신을 선양하고, 애국정서를 배양하는 기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중국문화사는 중국문화의 특징과 성취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사학의 기능관은 선명한 민족주의와 애국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柳飴徵은 중국 전통사학의 분석과 정립은 현대 신유학의 시각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현대 신유학의 분명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대 신유학 및 신유가는 광의와 협의의 구분이 있다. 광의의 현대 신유학은 일체의 현대적 신유학을 포괄하는 것으로 유학과 중국문화에 대해 사실적 측면에서 學理연구에 깊이 몰입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신앙적 측면에서 가치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립해야 한다. 柳飴徵의 사상적 문화적 주장과 현대 신유학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서로 부합된다. 그는 공자와 유가를 중국 전통문화의 중심이자 주체라고 인정한다. 현대 신유학의 주요한 경로는 철학과 역사학이 있다. 현재 대부분은 철학적 경로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는 협의의 신유학이다. 현대 신유학에는 아직 역사학의 경로가 남아있다. 즉 유가문화와 사상에 대해 역사학의 시각에서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학술문화사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기본적은 의미와 특징은 사학을 중국 학술과 문화의 근본으로 파악하여 經과 史의 동일성을 주장하고 經學이 곧 史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유가의 심성도덕이 사학에 담길 수 밖에 없고 중국문화의 부흥 또한 사학이 본위가 되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柳飴徵은 사학은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史部의 여러 책들은 단지 협의 중의 협의의 역사이다. 그는 중국사학에 숭고한 지위를 부여하여 사학을 문학, 과학과 비견할 수 있는 학문분야라고 칭하였다. 이는 중국사학이 가장 발달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며 더욱 중요한 한 것은 인륜도덕이 사학에 담겨있기 때문이며 또한 사학을 통해서 구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즉 사학이 유학이며 곧 경학이다. 현대 신유학의 시야에서 출발하여 중국 전통사학을 해석하고 정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유학의 입장에서 유가적 도덕인륜과 인문정신이 전통사학에 발전과 정립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음을 분명하게 밝혀내야 한다. 柳飴徵은 중국 전통사학의 해석과 정립에 대해 특히 『國史要義』에서 이러한 학술적인 특색을 충분히 드러냈다. 둘째, 서방문화사상을 흡수하여 유학사상에 대해 현대적인 해석을 부여하여 유학과 중국문화를 현대화시켜 현대적인 활력과 특징을 가지도록 해야 하며 이는 또한 신유학에 ‘新’이 붙는 이유이다. 柳飴徵은 이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자각하고 있었고, 서방의 문화와 사학을 수용하여 참고할 것을 매우 중시하였다. 현대 신유학의 각파는 공통적인 사상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유가문화를 과도하게 추앙하여 이상화시키는 반면에 서양문화에 대한 인정이 부족하여 중국문화 중심론 혹은 유가문화 중심론의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현대 신유학은 “開新”을 강조하여 서양문화사상을 학습하고 융합하여 중국의 현대문화를 건설할 것을 주장하지만 “返本”과 “據舊”는 많고, “開新”은 부족하여 서양의 문화사상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부족하다. 또한 어떻게 중서문화를 융합할 것인가에 대해서 특히 유가의 인문도덕적 이성문화와 서양의 과학기술적 이성문화 사이에 종종 적절한 접합점을 찾지 못하여 사상체계가 치밀하거나 융합하지 못하고 모순된 곳이 많다. 柳飴徵은 현대 신유학의 시야에서 중국의 전통사학을 해석하고 정립을 시도하였으나 역시 유사한 이론적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
김세정,이우진 한국유교학회 2013 유교사상문화연구 Vol. No.
이 글은 ‘한국에서의 중국 신유학 연구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학계가 어떠한 주제와 방법론을 가지고 중국 신유학을 연구해 왔는가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연구 대상은 2008년 이후 2012년까지의 ‘중국 유학과 관련된 집중적인 연구물이 계속으로 게재되고 있는 6개 학술지의 161개의 논문들’이다. 이 6개 학술지는 『동양철학연구』·『유교문화연구』·『유학연구』·『양명학』·『동양철학』·『유교사상연구』이다. 6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을 연구시기로 분류해 볼 때, 송대가 77편, 명대가 70편, 청대가 25편이며, 원대 연구는 전무하다. 사실 명대를 주로 탐색한 『양명학』을 제외하면, 나머지 5개 학술지에서 송대 관련 연구가 67편이기에 한국의 유학 관련학술지에 게재된 중국 신유학 연구는 대다수가 송대 관련 연구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시기별 연구 대상을 분석해 보면, 송대에는 주희, 명대에는 왕수인, 청대에는 왕부지로 과도하게 편향되어 있다.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이러한 시기와 주제의 집중현상은 한국에서의 중국 신유학 연구가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연구 방법적 측면에서 확인해 볼 때, 기존의 신유학 연구의 틀을 벗어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순히 신유학(자)의 사상을 설명․소개하는 수준을 넘어서, 현대적 입장에서 중국의 신유학 사상에 대해 재해석하고 재분석하는 연구들이 상당수에 이르렀다. 또한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유학자들에 대한 통상적 관점을 재고하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논문들도 많이 있었고, 연구자들간의 상호 비판과 반박을 통해 중국 신유학 연구의 담론을 확장시켜주는 논의도 여러 편 있었다. 곧 최근 5년 동안의 한국에서의 중국 신유학 연구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지평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성호 한국사상문화학회 2014 한국사상과 문화 Vol.75 No.-
Choi Chi-Won adopted the new Confucianism in the acient Korea, because he used words as 「Daehak(大學)」, 『Maengja(孟子)』, 「Jungyong(中庸)」, 「Hongbeom(洪範)」. His thought could be devided in Sugi(修己), Chiin(治人), Dotongron(道統論), Yujong(儒宗). His Sugi(修己) was based on Ahnhoe(顔回)와 Maengja(孟子), Chiin(治人) was classified as Jega(齊家), Chiguk(治國), Pyeongcheonha(平天下). He insisted that emperor should govern a family and country based on Sugi(修己). He emphasized Paljeong(八政) and Obok(五福) of 「Hongbeom(洪範)」 in Chiguk(治國). 「Jungyong(中庸)」 was stressed for emigrant to Gwiin(歸仁). Choi Chi-Won mentioned Dotongron(道統論) of Buddhism and Confucianism with Seonjong(禪宗), Seonsa(禪師) and the theory of 500 years cycle of Maengja(孟子), respectively. He desired that the ideal figure, who occurred every 500 years, makes reformation the country. Choi Chi-Won was praised as Yujong(儒宗). It means that he adopted the new confucianism and inherited the Jongtong(宗統). 한유가 중국에서 신유학을 열었다면 최치원은 우리나라에서 신유학을 열었다. 최치원은 「대학」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德潤身, 一國興讓, 『맹자』의 養勇, 「중용」의 己千, 道不遠人, 致中和, 「홍범」의 八政, 五福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들 용어는 신유학이 등장한 이후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라는 점에서 최치원 사유의 폭을 짐작할 수 있고, 그를 신유학의 기점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 최치원의 신유학 사상은 수기⋅치인⋅도통론, 유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신유학은 황제에서 사대부 및 서인까지 修己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의 修己는 안연의 安貧樂道, 맹자의 養勇을 통한 浩然之氣 함양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신유학이 맹자 유학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수기의 최종 목표는 聖人을 기필하는 것이며, 愼獨을 통해서 中和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의 治人은 제가, 치국, 평천하로 구분할 수 있다. 그는 당시 황제도 수기를 바탕으로 제가와 치국을 이룰 수 있다고 표현하였다. 치국에서는 「홍범」의 八政과 五福을 강조하고 있다. 이민족에 대한 대처에서는 「중용」의 柔遠人을 제시하여 歸仁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최치원은 우리나라 禪宗 禪師들의 도통을 설명하고 있다. 유교 도통론은 『맹자』 「진심 상」의 500년 기한설을 인용하고 있다. 이는 聖人이 500년을 기한으로 출현한다는 이론으로, 당시 혼란한 시대 상황에서 도통을 계승하는 이상적인 인물이 나타나 현실 개혁을 추진하기를 희망한 것이다. 한유와 최치원 모두 儒宗으로 칭송받게 된다. 결국 儒宗이란 유학의 종장이란 뜻과 함께 새로운 유학을 열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儒學의 宗統을 계승했다는 도통론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특집논문2> 인도불교의 중국적 변주-반야와 현학, 그리고 유학 : 송 대 신유학의 수양론 속에 내재된 불교적 요소에 대한 심층적 분석 -불교의 눈으로-
김수청 ( Su Cheong Kim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5 동아시아불교문화 Vol.0 No.21
이 글은 신유학의 수양론 속에 내재해 있는 불교적 수행요소들을 추적하여 분석한 것이다. 먼저 선불교의 수행방법과 신유학의 수양방법을 대조 검토했다. 선불교의 화두 수행은 간단하고 쉬우면서도 좌선에만 치우쳐 있지 않았다. 간화선은 동정을 관통하려고 한다. 신유학의 수양론 형성은 불교의 좌선 수행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주돈이는 주정설과 무욕설을 주장했고, 장재는 변화기질설, 정호는 정좌법, 사량좌는 심상성성법, 주희는 미발심과 이발심에 차례로 집중하였다. 이 논문이 시종일관 주목했던 점은 미발심과 이발심에 대한 수양방법이 신유학과 선불교에서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선종의 ‘견성’과는 어떤 관계인지를 주목했다. 이 글은 수양이론으로 제시되었던 명제들이 미발.이발 가운데 어느 한쪽만을 대상으로 주장된 것인지, 아니면 미발.이발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주장인지에 집중하여 검토해 보았다. 신유학의 수양법이 미발과 이발, 정과 동을 관통하려고 노력했으면서도 선 수행의 견성성불과 같은 미발의 본체체인에 더 집중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 논자의 주장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유학의 수양법이 미발과 이발을 관통하는 경공부로 귀결된다하더라도 선불교의 간화선 역시 동정을 동시에 충족시키고자 했던 수행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결론은 신유학 수양론의 집대성자인 주희의 선불교 수행론에 대한 비판도 역시 한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This paper is an analysis by tracing the Buddhist elements inherent in the Neo-Confucian cultivation theory. First, we study how to complete execution of Zen Buddhism and Neo-Confucian cultivation way.Seon study is a simple and easy to perform a topic he did not turn only sitting meditation.Seon study will attempt to penetrate movement and stillness. Neo-Confucian cultivation Theory has received a lot of influence from Buddhist meditation. Chutuni insisted the sitting meditation.theory and Non-desire theory. This paper has reviewed Chang Tsai`theory of the changes in physical quality theory, Ch`eng Ho`sitting meditation.theory, theory of making it always awake and alert and Chu Hsi`the state of pre-aroused feelings-the state of aroused feelings. This paper has noted consistently on cultivation Theory of the state of pre-aroused feeling and the state of aroused feelings. Is there a difference of the Neo-Confucian cultivation and Execution of Zen Buddhism? And that it was a ‘recognition nature’ of Zen pay attention to what the relationship. This paper has reviewed Concentrically whether propositions have been presented in a cultivation theory Either claims among state of pre-aroused feelings and the state of aroused feelings, or both. Neo-Confucian cultivation Theory has hard work to consolidate state of pre-aroused feelings and the state of aroused feelings. Authors think that Execution of Zen Buddhism focuses in state of pre-aroused feelings Much more. But Execution of Zen Buddhism wanted to meet state of activity and state of tranquility.
금단남종(金丹南宗)의 신유학(新儒學) 흡수와 통합 - 장백단(張伯端)과 백옥섬(白玉蟾)을 중심으로
리위융 ( Li Yuyong ),자오자치 ( Zhao Jiaqi ) 중국사학회 2021 中國史硏究 Vol.- No.130
宋代 新儒學의 발흥은 중국 전통 사상 및 문화의 기본적인 발전 방향, 즉 新儒學이 주도하는 가운데 佛敎와 道敎가 양 날개로 작용하는 문화 발전 구조를 확립시켰다. 이러한 구조는 佛敎와 道敎가 서로 경쟁하면서 新儒學이 스스로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강제하였다. 그런 점에서 金丹 南宗의 주요 인물인 張伯端, 白玉蟾 등은 자신들의 새로운 도교 이론 체계를 구축하고 정비하면서 전통 유학과 신유학을 흡수·통합하는데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시대정신을 예리하게 파악하여, 儒·佛·道 삼교의 융통(融通)을 강력하게 주창하였다. 또한 新儒學을 道敎에 수용하여 “性命雙修”의 핵심적인 차원에 心性論을 원용하고 이를 세밀하게 규명함으로써, 心性論을 바탕으로 金丹 사상을 완연히 일신하였다. 이를 통해 道敎 內丹 수련의 경지와 兩宋시기 道敎 철학의 이론적 질을 크게 높였다. The Rise of Neo-Confucianism in the Song Dynasty, basically laid down the direction of the development of traditional Chinese thought and culture after the Song Dynasty, A cultural development pattern with Neo-Confucianism as the main guide with Buddhism and Taoism as the two wings. The objective reality of this pattern forced the two Buddhists and Taoists to pay extra attention to the influence of Neo-Confucianism on themselves while competing with each other. In this respect, the main representatives of the Southern Sect of Jindan, such as Zhang Boduan and Bai Yuchan, paid special attention to absorbing and integrating traditional Confucianism and Neo-Confucianism when constructing and perfecting their own theoretical system of New Taoism. They keenly grasped the spirit of the times, vigorously advocated the integration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nd helped the new Confucianism to enter Taoism, putting the theory of mindfulness at the core level of "dual cultivation of life" and elaborating it in detail, making the Jindan thought constructed on the basis of the theory of mindfulness new, greatly enhancing the realm of Taoist Nei Dan cultivation and the theoretical quality of Taoist philosophy in the two Song dynasties.
송·명대(宋明代) 신유학의 사상적 계보와 정치철학적 함의 및 영향
최민자(Min-Za Choi) 성신여자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2011 국가와 정치 Vol.17 No.-
본 연구는 송·명대 신유학의 사상적 계보와 정치철학적 함의 및 영향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공자 이후의 유학은 두 차례에 걸쳐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하나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라는 두 계보로 나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송대 이후 주희의 성리학과 왕수인의 양명학이라는 두 계보로 나뉜 것이다. 신유학으로 분류되는 성리학이나 양명학의 뿌리는 모두 원시유학이며, 방법론상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통한 이상사회의 구현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신유학은 공맹사상에 철학적·형이상학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종교의 정치적 실천을 국가 차원에서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 정치철학적 함의는 실로 크다. 중국철학사에서 성리학의 지위는 육왕학파 등에 의해 몇 차례 도전을 받기는 했지만, 근대 서양철학이 유입될 때까지 중국인의 의식 속에 가장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철학체계였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주류 사상으로서 정치와 문화, 생활양식과 사유 방식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양명학은 주자학이 관학이 되어 학문적 교조화의 풍조가 만연하면서 주자학이 철학사상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고 고급 관료가 되기 위한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한 데 대한 반성적 비판을 통하여 성립되었다. 오늘날 유학은 서구사상과의 혼합·절충의 과정을 밟고 있다. 신유학과 같은 새로운 사상적 세력의 형성 여부는 무엇보다도 유학사상 자체 내에서 미래 인류사회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상원리를 도출해낼 수 있느냐의 여부가 관건이다. 역사란 전통과 현대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전통과 현대의 괴리는 전통사상에 대한 창조적 재해석을 통하여 극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성리학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 절실히 요망된다. This study is to illuminate the genealogy of Neo-Confucian thought and its politico-philosophical implication and influence during the Song-Ming Era. Confucianism after Confucius had undergone big changes twice: the one is the division of genealogy into Mencius' ethical doctrine of innate goodness and Sun-Tzu's ethical view that human nature is evil, and the other is the division of genealogy into Chu Hsi's Xing-Li-Xue and Wang Shou-Ren's Yangming-Xue after the Song era. The roots of Xing-Li-Xue or Yangming-Xue which are classified into Neo-Confucianism are all primitive Confucianism, and though there are some methodological differences, they coincide with each other in their views of realization of an ideal society through moral training and governing. The Politico-philosophical implication of Neo-Confucianism is really great in that it enabled religious truth to be practiced politically at country level by empowering Confucius-Mencius thought philosophical, metaphysical legitimacy. The status of Neo-Confucianism in Chinese philosophical history, though it was challenged by Lu-Wang School, etc. several times, not only had been the most deep-rooted philosophical system entrenched in the Chinese consciousness before the introduction of modern western philosophy into China, but also as the mainstream of East Asian thought it has had drastic effects widely on politics and culture, the mode of living and one's way of thinking. Meanwhile, Yangming-Xue was established through reflective criticism of which Xing-Li-Xue came to be a national school and the trend of scholastic dogmatism was prevalent, and thus Xing-Li-Xue lost its life force as philosophical thought and degenerated into political means to become a high-ranking official. Nowadays Confucianism is in the course of mingling and compromise with western thought. Whether a new influential thought like Neo-Confucianism is to be formed or not depends first and foremost on drawing a universal principle of thought which could suggest the vision of human society in the future within Confucian thought itself. History is the dialogue between tradition and modern times, and today modern reinterpretation of Xing-Li-Xue is ungently needed in that the gap between tradition and modern times could be overcome through creative reinterpretation of traditional thought.
현대 신유학의 형성과 그 특징- 양대 논쟁을 중심으로 -
송종서 한국유교학회 2005 유교사상문화연구 Vol.24 No.-
The scope of this article as: ①cultural consciousness of intelligentsia during May 4th. era, on which formative period of New Confucianism; ②cultural viewpoint of New Confucian during two dispute period ; and influence of Liang Qichao, who is connected directly with formation of New Confucianism.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research early New Confucian understanding relationship of Confucian tradition and western culture. Remarkable characteristics as: their assertion of Zhong Ti Xi Yong(中體西用); and dualism in which devide the world into a symbolized as scientific realm of the fact, the reality, the nature, the necessity and a symbolized as philosophical realm of the value, the transcendence, the owe, the liberty. New Confucian regarded western culture as the material object, and essence of Chinese culture as moral subject[Liang Zhi; 良知], so as to protect Chinese root from western shock. 이 글의 범위는 ①현대 신유학의 형성기인 5. 4시기의 보편적 문화론, ②두 차례의 논쟁에 나타난 현대 신유학의 문화의식, ③그리고 신유학의 생성과 직접 관련된 양계초의 영향 등이다. 이 글은 초기 현대 신유학의 유가전통과 서구문화에 관한 견해를 살펴보려는 목적에서 씌어졌다. 초기 현대 신유학의 두드러진 특징은 서구문명에 대한 中體西用 의식, 그리고 ‘과학’으로 상징되는 사실현실자연필연의 세계와 ‘철학’으로 상징되는 가치초월당위자유의 세계를 구분하는 二元論이다. 현대 신유가는 서구문화를 주로 물질적 대상으로 간주하고 중국문화의 정수를 도덕주체(良知)로 파악하여, 이원론적 문화관으로써 서구의 충격으로부터 중국의 뿌리를 지키고자 했다.
錢耕森(Qian geng-sen),沈素珍(Shen Su-Zhen) 동아인문학회 2006 동아인문학 Vol.10 No.-
풍우란선생은 현대중국의 대표적인 신유학자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신유학사상의 기본은 항일전쟁시기의 특수한 역사성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그의 照着講”의 두 권인《中國哲學史》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풍선생의 명성을 이룩한 책인 동시에 그를 세계적인 중국철학사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풍선생의 특출한 신유학사상은 그가“接著講”에서 이룩한“新理學”철학체계의“貞元六書”에 잘 나타나 있다.。“新理學”의 체계는 중서철학의 한 전형인 동시에 중국 현대철학 가운데 한이학파를 형성함으로써 풍선생이 탁연천성한 중국현대철학자로 알려지게 함과 동시에 항전기에 있어서 중국에 대해 가장 영향을 끼쳤으며 최대로 명성을 떨친 철학자의 위치에 서게 했다. 비록 전쟁시의 전패유리한 생활이 극도에 달했지만 풍선생이 부단히 외치는 애국주의 정신의 고취하에서 항전의 최후 승리를 얻게 되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초지일관 중화민족의 선철들이 말한 “爲天地立心, 爲生民立命, 爲往??絶學, 爲万世開太平”의 숭고한 이상을 자신이 신유학을 창조하는 지혜와 역량으로 삼았다. 그는 일생동안 한결같이 “闡?邦以輔新命”으로써 숭고한 사명으로 삼아 분발 유위하였으며 저서입설하여 부단히 창신하고 체계를 구성하여 휘황찬란한 성과를 거둠으로써 중국철학발전에 중대한 공헌을 함과 아울러 전세계에 대해서도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정원재(Weonjae Jeong) 한국철학회 2016 철학 Vol.0 No.127
신유학의 계보를 제시한 기존 학설 중 현재 연구자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리학(理學)⋅심학(心學)⋅기학(氣學)’으로 학파를 크게 구분한 3파설이다. 이 연구에서는, 신유학 3파의 이름이 어떤 오해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지 확인하고, 대안을 모색하였다. 신유학 3파설에서는 리⋅심⋅기 등 특정 개념을 중심으로 각 학파에 이름을 붙였으며, 이 개념들이 각 학파가 세계를 설명하는 데에 근본이 된다고 봄으로써, 존재론 또는 이기론의 측면에서 학파의 단면을 포착하려 했다. 반면 필자는 단일한 개념보다는 각 학파의 주장을 담은 핵심 명제를, 특히 이기론보다는 심성론의 명제를 반영하여 3파의 이름을 붙인다면, 여러 학파의 이론적 특징과 차이를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 점에서 조선 말의 유학자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의 통찰을 원용하여, ‘리학⋅심학⋅기학’을 각각 ‘심리기학(心理氣學)⋅심리학(心理學)⋅심기학(心氣學)’이라고 부르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mong the theories which seek to analyze the Neo-Confucian tradition, the one most commonly supported by contemporary scholars asserts that Neo-Confucianism should be divided into three branches, namely, the school of li (lixue), the school of mind (xinxue), and the school of qi (qixue). In this research paper I have delineated the misunderstandings and problems caused by naming the three branches of Neo-Confucian thought in this way, and have proposed an alternative. The current method of characterizing each branch of thought under the rubric of a particular concept such as li, qi and mind assumes that each of the concepts in question plays a key role for each branch of thought in explaining the world, and seeks to capture the essential aspect of each branch of thought from an ontological (i.e. li-qi theoretical) viewpoint. In order to delineate the characteristics of each branch of thought more clearly and distinctively, however, I propose instead to use the particular theses which reflect the core doctrines of the three branches of thought rather than reductively simplifying them down to single concepts, and in particular, to take the key theses from the Neo-Confucian theory of mind and nature instead of the theory of li and qi.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a late Chosŏn Confucian scholar Yi Chin-sang (李震相; 1818∼1886)’s reflections on the matter, I suggest that the school of li (lixue) be renamed as the “Mind-is-li-and-qi School (xinliqixue)”, the school of mind (xinxue) as the “Mind-is-li School (xinlixue)”, and the school of qi (qixue) as the “Mind-is-qi School (xinqixue)”.
신유학 경세론의 지형 탐색 - 古와 時[今]의 간극에 대한 토지제도 논의를 중심으로 -
윤석호 한국공자학회 2026 공자학 Vol.59 No.-
유학은 수기와 함께 치인을 학문의 목적으로 두었고, 수양을 주된 방법으로 하되 제도의 필요성도 제시했다. 또한 일찍부터 토지의 공공적 성격에 주목하였으며, 토지제도를 덕치와 인정을 이끌 핵심적인 제도로 간주하였다. 다만 경세의 현장에서 타당한 토지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 그 내부에 수양과 제도의 관계, 道와 器의 관계, 이상과 현실의 관계 등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맹으로부터 발출된 토지제도에 대한 경세학적 논점과 과제는 신유학을 경과하며 중대한 계기를 맞이했다. 天理로의 확장을 특징으로 하는 신유학의 사유가 인간 군집인 사회와 국가를 대상으로 하여서도 파급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려내는 논의의 지형은 경세학사의 경과에서 볼 때 주요한 특징과 의의를 지닌다. 첫째로 다채로운 현실 인식과 경세론이 제기되었으며, 제도에 대한 탐구도 촉진되었다. 현실의 경세를 위한 제도들, 나아가 고법의 실상과 제도의 추이에 대한 탐구도 촉진되었다. 둘째로는 보편적 제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기일원론-이기론의 존재론적 차이에 전적으로 배당되지 않았으며, 경세론의 유사성이 본체와 작용의 관계에 대한 인식과 친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셋째로는 신유학 형성기 경세론의 다채성이 건국기 이래 조선 전기의 사상계에서도 확인된다. 넷째로, 성장․효율과 이익․부의 구속이 갈수록 강대해지는 현실임에도, 공생을 방법을 타진해야 할 의무가 인간의 공동체에게 주어져 있음을 학문적으로 자각하고 실천한 사례이다. Confucianism defined the aims of learning as both self-cultivation[修己] and the governance of others[治人]. Although it regarded moral cultivation as the primary means of achieving these aims, it also acknowledged the necessity of institutional arrangements. From an early stage, Confucian thinkers recognized the public character of land and viewed the land system as a crucial institutional foundation for realizing virtuous and benevolent governance. Yet the formulation of an appropriate land system in actual statecraft proved far from straightforward, as it necessarily involved overlapping tensions between self-cultivation and institutions, Dao[道] and Ki[器], and ideals and political realities. The statecraft-related questions and challenges surrounding land institutions that originated with Confucius and Mencius underwent a significant transformation in Neo-Confucianism. This development was closely tied to the Neo-Confucian extension of inquiry toward Tianli[天理], which was applied not only to moral self-cultivation but also to society and the state as collective human formation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history of statecraft thought, the discursive landscape they produced is significant in several respects. First, it generated diverse diagnoses of social reality and a wide range of statecraft theories, while also promoting sustained inquiry into institutions. Such inquiry extended beyond practical institutions for governing present conditions to include investigations into the actual operation of ancient models and the historical transformation of institutional forms. Second, differing understandings of universal institutions cannot be fully reduced to ontological differences between the monistic theory of Qi[氣] and the dual framework of li[理] and Qi[氣]; rather, convergences in statecraft discourse were more closely associated with shared view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substance and function. Third, the diversity of statecraft thought during the formative period of Neo-Confucianism can also be observed in the intellectual history of early Chosŏn from the founding of the dynasty onward. Fourth, even under conditions in which growth, efficiency, profit, and wealth have become increasingly dominant imperatives, this tradition demonstrates a scholarly effort to recognize and enact the obligation of human communities to seek forms of coexist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