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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제,노정은 중국문화연구학회 2019 중국문화연구 Vol.0 No.46
The "17-Years" period after found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s a very important period in the history of Chinese contemporary literature and even the translation of foreign literature. The foreign literature translation activities during this period are not as blank as most scholars think, but can be regarded as the golden age in the history of Chinese translation literature. During the "17-Years" period of translation, there were a large number of Korean literary works. Studying these works is of great significance for understanding China’s perception of Korea at the time. But due to the special historical environment of this period, the translation and translation of these literary works was seriously affected by the national ideology. On the one hand, North Korea literary works in the same ideological camp were translated into large numbers. On the contrary, South Korea literary works in the hostile ideological camp were completely banned. In addition, compared with the phenomenon of a large number of translations in the Korean literature translation activities before the found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during this period, the translator can directly translate the Korean texts, which undoubtedly greatly improved the accuracy of translation and avoided Influenced by literary discourse in other translation countries. But under such strong ideological intervention, what kind of tendency does the translator have in translating Korean literary works, and how this translational tendency will affect the translation of literary works. This article will reorganize the status of translation of Korean literary works during the "17-Years" period, and attempt to analyze the specific ways of translation and translation activities during this period. ‘17년’시기(1949~1966) 중국의 외국 문학 번역 활동은 대부분의 학자가 ‘공백기’라 여겼던 것과 달리 외국 문학 번역사의 ‘황금시대’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중화인민공화국(1949)건립 이후, ‘17년’시기 동안의 외국 문학 작품들은 중화민국 초기보다 더 많이 번역되었지만, 중국과 외국 학술계는 이 시기 번역 활동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이유는 중국 ‘17년’시기의 외국 문학 번역 활동이 상대적 특수한 정치 이데올로기에 의해 진행되었고, 외국 문학의 번역 활동은 주로 정치적 관계로 구체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 중국에서의 한국문학 번역 작업은 주로 3, 40년대와 한중수교(1992)이후 활동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한중수교 이후의 한국문학 번역 연구는 번역된 텍스트뿐만 아니라, 번역 후원자에 대한 논의까지 다루고 있는 실정이지만, ‘17년’시기의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이 시기 중국에서의 한국문학은 ‘남조선문학南朝鮮文學’이라 불렸는데, 이는 ‘조선문학朝鮮文學’이라고 불린 북한문학을 근거로 그 명칭을 정한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1949년 이전까지는 한국문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신중국 건립 이후부터 1992년 한중수교 이전까지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진영인 북한의 문학을 ‘조선문학’으로, 남한 진영의 문학을 ‘남조선문학’으로 그 명칭을 각각 구분하여 사용했으며, 이후 이 둘을 다시 한국문학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했다. 1948년 이후 한반도에서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강제되어 남,북한 두 정권이 각각 설립되었지만, 이를 단순히 두 나라의 문학으로 볼 수 없다. 문학은 언제나 통일된 주체이고, 문학적 대립은 이념적 대립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는 ‘17년’시기 중국에서의 북한문학 번역 활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분단 초기 한국문학의 일부로써 북한문학의 발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기존 한국문학 번역 연구의 격차를 해소하고, 20세기 중국의 한국문학 번역 연구의 전체적 맥락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17년’시기 정치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기조로 한국문학의 번역 활동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선 번역 당시의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이 시기의 중국과 한국의 문학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 담론과 중국의 번역 동향을 파악하고자 한다. 번역은 시대의 사회적 배경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문화 교류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문화간 의사소통으로써 번역에 대한 연구는 번역 수용 국가의 문학적 배경뿐 아니라 원작 국가의 문학적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된다. 다음, 당시의 번역 상황과 경로를 정리하고, 관련 연구 자료를 보완하며, 구체적인 분석에 필요한 자료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당시 작품들의 번역 상황을 정리하고, 이들 작품과 당시 북한 문화 정책과의 관계를 알아본다. 더불어 이 시기 번역된 작품들을 ‘전쟁’, ‘찬양’, ‘투쟁’이라는 세 주제로 세분화하여 중국 내 문학 주제와의 상관성을 분석한다. 또한 3, 40년대의 번역 상황과 비교해, ‘17년’시기 중국 내 문학 번역에 도움이 된 출판계의 여러 배경과 번역 경로를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의 국가 담론에서 형성된 번역 경향을 분석하고, 이러한 경향들이 번역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중국의 한국문학 번역 활동을 ‘좌경문예左傾文藝’와 ‘약세민족문학弱勢民族文學’의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누고 이러한 경향이 번역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
임항 중국문화연구학회 2022 중국문화연구 Vol.- No.58
중국조선족은 중국항일전쟁시기 가장 일찍 항일전쟁에 참가한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서 그들은 중국의 기타 여러 민족들과 함께 싸워 중국항일전쟁의 승리를 위해 거대한 공헌을 하였다. 조선족 음악은 중국음악을 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음악으로, 특히 항일전쟁 시기 조선족 이주민들은 끈질긴 혁명의지와 깊은 민족의식으로 많은 음악을 작곡했다. 항일전쟁시기의 조선족 가요는 인민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항일 전쟁 정신을 선전하는 음악으로 조선족 이주민대중에게 널리 전파되었다. 이들 가요는 항일전쟁 당시 조선족 이주민들의 생활상을 잘 표현한 것으로 조선족 이주민들의 혁명정신과 항일전쟁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항일전쟁 기간 중 중국 사회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며, 조선족 이주민들은 이러한 중국 사회 환경의 영향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문화가 혼합된 상태를 형성하였다. 본문은 7곡의 조선족 항일가요의 음악 출처, 창작, 배경, 가사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조선족 항일가요가 여러 지역의 문화를 흡수하였음을 논증하고 이러한 혼종적 음악이 조선족 이주민의 정체성이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는 변화를 반영하고 있음을 분석하였다. 조선족 항일가요는 조선족 음악사뿐만 아니라 중국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족 항일가요에 대한 연구는 조선족 음악의 형성과 발전의 맥락을 이해하고 중국조선족 음악사 연구에 가치 있는 사료를 제공함과 동시에 중국조선족의 정체성이 변화하는 과정을 파악하는 데에도 유의미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
텍스트마이닝을 활용한 한⋅중 ‘Studying’ 프레임 문화요소 비교 연구
윤유정 중국문화연구학회 2022 중국문화연구 Vol.- No.55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Korean and Chinese about the core and non-core elements set in the “Studying” frame of FrameNet based on Frame Semantics. FrameNet divides the core elements of “Studying” into Institution, Student, Subject and Teacher, and divides the non-core into Co-Participant, Participant, Depictive, Duration, Explanation, Intended Academic Credit, Level, Manner, Place and Time. This paper compares and analyzes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of cultural elements in Korean and Chinese with respect to factors excluding Period, Description and Time. This paper uses text mining based on ‘Sejong Corpus’ in Korean and ‘Chinese Treebank 9.0’ in Chinese to analyze the core and non-core elements set in FrameNet’s “Studying” frame. The analysis results are as follows: Regarding ‘Institution’, both Korean and Chinese had something in common that ‘Academy’, a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 was ranked at the top in addition to regular educational institutions. Regarding ‘Students’, both Korean and Chinese have a common point that education for children is important. However, there is a difference that ‘Dai Han’, ‘Working Student’ is ranked at the top in Korean and ‘Foreign Student’, ‘Engineer’ in Chinese. Regarding the ‘Subject’, both Korean and Chinese have something in common that ‘English and Computer’ are ranked at the top, placing importance on learning this subject. However, in Korean, foreign languages such as ‘Chinese, French’ and ‘Arithmetic, Mathematics’ subjects are ranked at the top, but in Chinese, ‘French’ is ranked at the top as a foreign language, and subjects related to ‘Math’ do not appear at the top. There was no significant difference in vocabulary referring to teachers in both Korean and Chinese regarding ‘Teacher’. However, it can be seen that China tends to strictly distinguish positions compared to Korea. It is a morpheme related to ‘Teacher’, and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mother-in-law’ appearing in Korean and ‘parents’ appearing in Chinese. Regarding the ‘Intended Academic Credit’, both Korea and China have something in common that is closely related to ‘enter school’ or ‘employment’. In addition, it is noteworthy that the ‘revolution’ emerged as an academic intention in Chinese. The place where education was conducted in both Korean and Chinese about ‘Place’ generally had something in common that it was a ‘classrooms’. In addition, there is a difference in that ‘Temple’ reflecting the pre-2000s era appears in Korean, and ‘Juvie, factory and office’ appear as places in Chinese. 본고는 틀의미론(Frame Semantics)을 기반으로 한 프레임넷(FrameNet)의 ‘Studying’ 프레임에서 설정한 핵심요소와 비핵심요소에 대해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연구목적으로 한다. 프레임넷은 ‘Stuyding’의 핵심요소(core)를 기관(Institution), 학생(Student), 과목(Subject), 교사(Teacher)로 구분하고, 비핵심요소(non-core)를 공동참여자(Co-participant), 묘사Depictive, 기간Duration, 설명Explanation, 학업의도Intended academic credit, 수준Level, 방식manner, 장소Place, 시간Time로 구분하고 있다. 본고는 이 중 기간, 설명, 시간을 제외한 요소들에 대해 한국어와 중국어에 나타난 문화요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한다. 본고는 한국어는 ‘세종코퍼스’를, 중국어는 ‘chinese Treebank 9.0’을 기반으로 텍스트마이닝을 활용하여 프레임넷의 ‘Studying’ 프레임에서 설정한 핵심요소와 비핵심요소를 분석한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기관’에 대해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 정규 교육 기관 이외에 사교육 기관인 ‘학원’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 모두 사교육이 주요한 교육 기관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2. ‘학생’에 대해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 ‘학생, 제자’ 이외에 ‘아이, 어린이’ 등의 어휘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어 연령이 낮은 아이나 자녀에 대한 교육이 중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따이한, 고학생’이, 중국어에는 ‘유학생, 엔지니어’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3. ‘과목’에 대해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 ‘영어, 컴퓨터’가 상위에 랭크되어 이 과목에 대한 학습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중국어, 불어’와 같은 외국어 및 ‘산수, 수학’ 과목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으나, 중국어에서는 ‘불어’가 외국어로서 상위에 랭크되어 있고, ‘수학’과 관련된 과목은 상위 순위에 출현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4. ‘교사’에 대해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 교사를 지칭하는 어휘에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중국어에서는 직위를 나타내는 ‘副’가 추가된 어휘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어 중국에서는 한국에 비해 직책을 엄격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기할 점은, ‘교사’과 관련된 형태소로 한국어에서는 ‘시어머니’가 출현하고, 중국어에서는 ‘부모’가 출현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5. ‘공동참여자’에 대해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 ‘부모’나 ‘엄마’가 주요 공동참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6. ‘묘사’에 대해 한국과 중국 모두 ‘열심히, 힘쓰, 스스로’ 등 학습 과정에서 보이는 상태가 비슷했다. 그러나 중국어에서는 ‘천천히(慢儿慢儿)’가 출현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어휘가 출현하지 않았다. 7. ‘학업의도’에 대해 한국과 중국 모두 대체로 ‘진학’이나 ‘취업’과 밀접히 연관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외에 중국어에서는 ‘혁명(革命)’이 학업 의도로 출현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8. ‘수준’에 대해 한국어에서는 ‘초급, 중급, 우수’ 등 교육 수준을 표시하는 어휘와 자주 함께 출현하지만, 중국어에서는 ‘기초(基础), master’ 이외 어휘는 출현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9. ‘방식’에 대해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 공부 방식이 대체로 ‘모방, 암기, 연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0. ‘장소’에 대해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 교육이 수행 ...
趙正來(Jo Jeong-rae) 중국문화연구학회 2004 중국문화연구 Vol.0 No.5
종백화는 중국 현대미학의 개척자이다. 현대미학사에 있어 그의 지위는 본인의 학술여정과 예술관에 잘 체현되어 있다. 그의 뛰어난 점은 중국 전통미학과 예술의 심층적 연구와 현대문화의 자성을 통한 진일보적 발전에 대한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종백화는 중국철학과 예술에 대한 독특한 체험과 연구뿐만 아니라 동서미학의 비교연구를 통해 서양미학의 본질은 물론 중국전통예술의 생명정신을 새로이 발현시켰으며, 특히 심령적 체감을 통한 중국전통의 미의식을 찾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 중심사상은 예술의경(藝術意境)에 잘 드러나 있으며, 道, 舞, 虛實, 空間, 空白 등의 범주를 통해 명확하게 설명하였다. 종백화의 미학실천은 대략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10년대 말에서 1920년대는 그의 청년시기로 5.4신문화운동과 함께 "少年中國"에서 활동하면서 철학과 미학을 연구한 시기로 전통사상의 비판과 반성을 통해 현대적 정신위기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술을 통한 자아 인격의 함양을 강조하였으며, "超世入世"적 인생관을 지녔었다. 1930년대에서 1950년대는 풍부한 학술경험과 체험을 통해 학문적 발전을 구가하던 중년시기였다. 학문의 중심이 서양에서 중국전통학문으로 전환하였으며, 중서미학의 비교연구와 체험을 통해 중국예술의 생명정신을 발견하고 체계화하여 예술의경이론을 정립시켰다. 이는 "예술적 인생관"의 실천이며 완성이다. 1950년대 말에서 1980년대까지는 종백화의 만년시기이며, “散步美學”의 황혼기로 인생 哲理의 感悟를 담고 있다. 즉 예술적 인격의 자유스러운 逍遙를 추구하였으며, 그 실제는 "인생의 예술화"였다. 비록 종백화의 학술적 연구가 중국전통예술과 미학이 중심이었지만, 그가 정립한 이론은 결코 고대의 답습이아니라 현대 중국인의 미의식과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의 미학실천과 인생관을 통해 남긴 것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학문을 위한 자기인격의 함양이며 우리는 여기서 종백화 미학사상의 진정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박석홍 중국문화연구학회 2019 중국문화연구 Vol.0 No.46
Looking at the whole process of the occurrence and change of Chinese characters, new Chinese characters were constantly created in accordance with the change and development of society and the development of people's perception of the classification of objects. The gradual increase in the number of letters related to animals, plants and objects illustrate of this fact. In particular, from the early 20th century to the 1960s, the formation of new cultures and the introduction of new objects served as a momentum for the increase in demand related to the production of large numbers of new characters. The most representative example is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Chinese characters that represent the symbol of the chemical element. It is rare in the history of Chinese characters to see such a large increase in such a short period of time. Recently in China, new "characters" have been created by Chinese Internet users at online space, or existing characters have been used in entirely new way. These new "characters" have emerged as the background of modern Chinese society and culture, and these unique characters can be called “New Chinese Characters on the Internet in China”. This paper just analyzed the shape and structure features of these new “characters”, and also analyzed the social and cultural factors of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these “New Chinese Characters on the Internet in China”. 최근 중국에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다수의 ‘문자’들이 만들어지거나 기존 문자를 전혀 새로운 용법으로 사용하는 풍조가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문자’가 만들어져서 언중들 간에 광범위하게 유통되기까지 소요된 시간과 그 범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와 같이 ‘約定俗成’의 신속한 형성 사례는 한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전의 한자 생성 및 증가 과정과는 확연히 다른 이와 같은 양상은 현대 중국인들이 처한 문자 운용상의 환경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바로 컴퓨터라는 새로운 ‘서사’ 수단과 인터넷이라는 문자 소통의 새로운 ‘공간’의 출현이라는 특수한 언어소통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바로 현대 중국인들이 문자를 통해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또 다른 공간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출현하여 새로운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최근에는 중국 현대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독특한 ‘문자’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터넷 新字’들이다. 본고는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최근까지 생겨난 인터넷 新字들을 고찰 대상으로 삼아, 이들 비주류의 ‘문자’들이 가진 형체 및 구조 특징, 그리고 생성 요인들을 언어·문자·문화적인 각도에서 분석해보았다. 또한 현대중국인들의 독특한 문자 생활의 일면을 이해하고, 여기에 내포된 문화적 함의를 분석함과 더불어, 향후 문자의 생성·변화·발전에 관한 새로운 흐름들에 대해서도 전망해보았다.
在?方的??里?回自我 : 1949年以前韓中電影文化交流史初探
張東天(Zang Dong Chion) 중국문화연구학회 2009 중국문화연구 Vol.0 No.15
한국과 중국에서 영화문화의 발전은 각각 근대화의 진행과정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특히 동아시아의 문화적 네트워크를 근대적 형태로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공헌은 가히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이 근대문화를 수용하고 민족영화를 창조해가던 시기는 또한 식민 또는 반식민의 사회적 위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양국의 영화교류는 비록 한계도 많았지만, 또한 강렬한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공유할 여지도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당시 한국의 간행물에 실린 적지 않은 중국영화계 소식과, 상하이로 진출하여 영화를 만든 ‘상하이파’ 한국영화인들에 관한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양국 영화인들의 교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통제되었으며, 상하이 영화 대신 일본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만주영화가 한국인들의 중국 상상을 대체하게 된다. 양국이 해방을 맞은 이후 도래한 냉전으로 오랜 단절의 시간을 거쳐, 한중 양국의 영화문화교류는 21세기 들어 마침내 전에 없는 성황을 맞게 되었다. 1930년대에 이루어진 한중 영화교류는 비록 오늘날의 그것에 견줄 바가 아니지만, 양국의 근대문화 교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가치 있는 역사적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중화민국 시기 중국의 국제 문화교류에 대한 연구의 연장선에서 본고를 집필하였다. 따라서 작품 자체보다는 1949년 이전 한중 양국의 영화문화 교류 과정과 그 문화적 특징에 초점을 두고 탐색하였다.
金鮮(Kim Seon) 중국문화연구학회 2008 중국문화연구 Vol.0 No.12
吳孝媛은 조선말기 여류시인으로 평생 독신을 고수하며 서방 기독교의 관념을 수용하였고 당시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교육의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명신여학교를 건립하여 근대 여성 교육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본 논문은 선행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오효원의 중국생활과 시가창작을 연구 과제로 삼아 오효원의 생평과 중국에서의 사회활동을 상세하게 고찰하였고, 오효원과 중국문인과의 교유 및 중국여행을 탐색하는 동시에 오효원의 중국인물에 대한 비평과 중국에서 느낀 민족의식을 살펴보았다. 오효원은 자국에서 폭넓은 대인관계를 통해 시인으로 교육자로서 성취를 이루었는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갔다. 오효원은 천하의 奇聞과 壯觀을 접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자신의 무대를 동아시아로 확대하여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였다. 오효원은 28세에 학생신분으로 상해에 가서 2년간 거주하였다. 그녀는 중국의 유명한 도시와 명승고적을 유람하고 詩詞를 창작하고 중국의 유명한 시인들과 교류하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가담하였다. 詩書畵大會의 간사를 역임하였고 申新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중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오효원은 袁世凱의 둘째 아들인 袁寒雲과 다섯째 아들인 袁百納 그리고 근대 사상가인 梁啓超와 詩詞를 주고 받았고, 원세개의 시중인 廉南湖와 그의 처인 吳芝瑛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吳芝瑛은 근대 여성혁명가인 秋瑾의 절친한 친구였다. 오효원은 廉南湖의 집에서 중국 근대의 대표적인 여성인 여벽성과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여벽성은 오효원에 대한 강한 인상과 평가를 시에 표현하여 근대 한중여성 문인간의 교류를 시사하였다. 오효원은 萬里長城ㆍ燕京ㆍ上海ㆍ赤壁ㆍ阿房宮ㆍ杭州ㆍ西湖등 도시와 명승고적을 유람하며 자신이 느낀 감개를 문학창작에 표현하였고, 중국의 역사적인 인물인 伯夷ㆍ叔齊ㆍ屈原ㆍ管仲ㆍ荊軻ㆍ諸葛亮ㆍ西太后에 대해 주관적으로 비평하였다. 오효원은 한국과 중국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었고 , 작품속에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표출하였다. 그녀는 명나라 사신인 채무가 봉황성에서 피살된 사건에 대해 애도를 표하는 동시에 심양에서 병자호란을 회상하며 조선 인조의 청나라에 대한 굴복과 치욕을 통탄하고 처형된 三學士의 저항정신과 충절을 기념하였다. 오효원의 중국체험과 시 창작을 통해 근대 한중교류사의 단서를 파악할 수 있고 한중여성의 문학창작과 여성의식을 심도있게 파악할 수 있다. 오효원은 한국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방대한 문학작품을 창작하여 한국의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량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중국 무형문화유산 그림책의 중국몽 말하기, 보여주기 — 明天출판사의 非物質文化遺産 그림책 시리즈를 중심으로
송연옥 중국문화연구학회 2023 중국문화연구 Vol.- No.60
China’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s currently actively used as the basic text of state-led national cultural discourse. This is a ‘Knotenpunkt’ that encompasses patriotism, collectivist education, and personality education more than art education. This study examined how it appropriate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by using picture books with unique advantages in terms of artistry, tradition, and relationship as the subject of study. As a result of the analysis, Ming Tian Publishing Company’s series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picture books did not have a key element in the narrative of “conflict and contradiction.” Instead, it creates a narrative structure that allows children to experienc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through friendly and reliable “sender” and “helper,” and uses a strategy to make them feel tha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s “good, close, and enjoyable.” In addition, targeting the generation of children familiar with video media, it uses techniques such as angles, shots, and action cuts that can best show cultural heritage to supplement the flaws of the narrative while providing a spectacle of beautiful traditional art. The storytelling strategy of this picture book series is judged to be the improvement of the quality of children’s cultural content in China, and I think it is the result of reflecting social interest in children and the improved appealing power of creators and publishing industries. China is expanding the archive of “kulturelle Gedächtnis” through strong government support and policy implementation, and a soft power infrastructure that can unleash various artistic creativity is also expanding in detail. Picture books will continue to develop further and will be used for education more efficiently. Delicate and beautiful artistic picture books will be read together as “relational reading” by parents and children, teachers and students, lecturers and students, and the Chinese dream ideology implied in them will be firmly remembered as emotional truth. As a result, it seems possible to create future generations of China without historical shadow. It is the same fact for us that it should be revitalized as a memory of art by reinterpreting its traditional culture and establishing new boundaries. 중국의 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은 현재 국가 주도의 민족문화 담론의 기본 텍스트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예술 교육을 넘어 애국주의・집단주의 교육 및 인성 교육까지 아우르는 결절점이다. 본 연구는 예술성・전통성・관계성 면에서 독보적인 장점을 갖춘 그림책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그것이 무형문화유산을 어떻게 전유하고 있는지를 고찰하였다. 분석한 결과, 명천출판사의 무형문화유산 그림책 시리즈는 “갈등과 모순”이라는 서사의 핵심 요소가 없었다. 대신 친절하고 신뢰할 만한 “발신자(sender)”와 “협조자(helper)”를 통해 아동이 무형문화유산을 경험하게 하는 서사 구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무형문화유산이 “좋은 것, 가까운 것, 즐거운 것”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영상 매체에 익숙한 아동 세대를 겨냥해, 문화유산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앵글, 쇼트(shot), 액션 컷 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서사의 결함을 보완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전통예술의 스펙터클을 제공하고 있다. 본 그림책 시리즈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중국의 아동문화 콘텐츠의 질적 향상이라고 판단되며,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와 창작자 및 출판업계의 향상된 소구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정부의 막강한 지원과 정책 실천을 통해 ‘문화적 기억(kulturelle Gedächtnis)’의 아카이브를 확장하고 있고, 다양한 예술 창작욕를 분출할 수 있는 소프트파워 인프라가 세부적으로도 뻗어나가고 있다. 그림책은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이며 더 효율적으로 교육에 사용될 것이다.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예술화된 그림책이,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강연자와 수강자의 “관계적 독서”로 함께 읽히며 그 안에 함의된 중국몽 이데올로기는 확고하게 감정적 진실로 기억될 것이다. 이로써 역사적 그늘이 없는 중국 미래세대의 주조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자국의 전통문화를 재해석해 새롭게 경계를 세워 예술의 기억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변함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