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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산서당(陶山書堂)의 입지(立地)와 도산서원(陶山書院)의 배치(配置)에 대한 고찰

        김연호 영남퇴계학연구원 2008 퇴계학논집 Vol.3 No.-

        퇴계는 일평생 수차례에 걸쳐 삶 터를 직접 택지(擇地)하여 이 거(移居)하면서 생활하였는데, 이거의 이유는 자신에게 보다 적합 한 자리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퇴계가 마지막으로 복거(卜居)하고 대단히 흡족해 하면서 그의 말년을 보낸 곳이 바로 도산서당이다. 따라서 도산서당의 입지를 고찰해 보는 것은 퇴계의 사유의 일면 을 엿볼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본고에서는 도산서당의 영건(營建)과정과 그 이전의 복거(卜居) 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으며, 그리고 도산서당의 입지(立地)를 이 중환이 『택리지』에서 제시하고 있는 복거의 요건과 비교 고찰하 였고, 도산서당을 포함한 도산서원의 배치에 대하여 최초의 서원 인 소수서원의 배치와 더불어 살펴보고자 하였다. 도산서당의 영건과정은 금난수의 도산서당영건기사(陶山書堂營 建記事) , 퇴계의 도산잡영병기(陶山雜詠幷記) 그리고 권오봉의 퇴계가년표(退溪家年表) 에 잘 나타나 있다. 도산서당의 터는 문 하(門下)인 금응훈 등의 의하여 수차례에 걸친 건의를 받아서 퇴 계가 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복거한 곳으로 퇴계는 이 터를 구한 것에 대하여 매우 흡족해 하였다. 그리고 옥사도자(屋舍圖子)라는 건축 설계 도면과 더불어 여러 경로를 통하여 건물의 배치와 구조 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영건과정에 지속적으로 깊은 관심 과 애정을 나타내었다. 도산서당의 입지는 도산잡영병기 에 나타 있는 내용을 이중환 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제시하고 있는 복거의 요건과 비교하 여 살펴보았는데, 도산서당의 입지가 이중환이 복거의 요건으로 강조하고 있는 지리(地理)의 요건에 매우 부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산서원은 도산서당이 먼저 입지한 후에 퇴계 사후에 건립되었 고, 강학(講學) 기능을 중시한 퇴계의 평소 뜻을 받든 강당 중심의 양택(陽宅)중심 서원이며, 반면에 소수서원은 안향(安珦)을 제향 (祭享)하기 위하여 문성공묘(文成公廟)를 먼저 건립하고 이후에 강 학 기능을 부가한 사묘(祠廟) 중심의 음택(陰宅)중심 서원이기에 배치에 있어 상반된 특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강학 중심의 도 산서원은 퇴계의 상징적 공간인 도산서당을 기준으로 하고 각각의 건물들은 좌상우하(左上右下)의 원칙과 고상저하(高上底下)의 원칙 에 맞추어 배치를 하였고, 제향중심의 소수서원은 문성공묘를 기 준으로 하고 모든 건물들이 우상좌하(右上左下), 전상후

      • KCI등재

        퇴계의 人心道心 理解

        김성실(Kim, Sung-sil) 영남퇴계학연구원 2021 퇴계학논집 Vol.- No.29

        본 논문은 退溪가 이해하는 人心道心 개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있다. 퇴계의 인심도심 이해방식은 四七論辯에서 情을 이해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퇴계가 생각하는 ‘理’, ‘情’, ‘欲’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퇴계가 이해하는 人心道心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심도심 개념은 유학 전통에 있어 오래된 개념이다. 󰡔書經󰡕「大禹謨」편에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다’는 구절에서 시작된 인심도심의 개념은 宋代 유학을 거쳐 조선성리학의 핵심 논변으로 발전해왔다. 인심도심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도심은 좋은 것, 인심은 나쁜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함께 도심을 우리와는 상관없는 어떤 초월성을 지향하는 목적론적인 태도에 대한 재검토를 위해서이다. 퇴계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만연한 목적론적인 사고, 이분법적인 사고 등에 대해 올바로 생각하기를 강조한 대표적 유학자이다. 사단칠정논변에서 순선할 수밖에 없는 性과 情에 대한 퇴계의 이해방식은 퇴계의 人心道心 이해방식에 실마리를 가져다주고 있으며, 이러한 퇴계의 인심도심 이해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학문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본고를 통해 다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This paper aims to investigate the concept of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that Toegye(退溪) defines. Toegye(退溪) s way of understanding about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is similar to that of four moral origin(四端) and seven passions(七情), and this paper investigates them focusing on ‘Principle(理)’, ‘Emotion(情)’, ‘Desire(欲)’. The concept of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has very long history on Confucianism. The concept of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which started from 「Daewoomo(大禹謨)」󰡔Book of History(書經)󰡕 has developed as a key argument of Joseon- Dynasty s Neo-confucianism from Song-dynasty s Neo-confucianism. The reason why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e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lies in reviewing the teleological attitude which intends moral-mind(道心) is good and human-mind(人心) bad thing with dichotomous thinking Toegye is the representative Confucian who stressed to reason properly the teleological thinking and dichotomous thinking that have transmitted until these days. Toegye(退溪) s way of understanding about inevitable nature and emotion in four-seven debate provides a clue to understanding the human-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Through Toegye(退溪) s way of understanding about human- mind(人心) and moral-mind(道心), I suggest that we think about how to learn and how to live based on this paper.

      • KCI등재후보

        『퇴계언행록』의 형성과정과 제자들의 ‘퇴계’ 인식

        정우락 영남퇴계학연구원 2015 퇴계학논집 Vol.- No.17

        본 논의는 도산서원에서 발간된 이수연본 『퇴계언행록』의 형성과정과 구성상의 특성, 이 책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퇴계관, 이 책이 지닌 의의 와 한계 등을 두루 다룬 것이다. 임영의 『퇴계어록』, 권두경의 『퇴도언 행통록』을 거치면서 형성된 이수연의 『퇴계언행록』은 권두경본에서 보이 는 번거로운 것을 다듬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개편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수연의 『퇴계언행록』에는 권두경본을 수용한 부분도 있 고, 刪去한 부분도 있으며, 수정하고 보완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 인 체계와 함께 당대적 기록을 중시하며 김성일의 퇴계관을 부각시키고 자 하는 시각은 권두경본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퇴계언행록』은 ?학문?과 ?독서?를 중심으로 한 논리 체계를 갖추고 있으면서 동시에 ?논례?와 ?교인?을 중심으로 한 서술 체계 역시 갖추고 있다. 이것은 퇴계가 지식과 실천을 동시에 온전히 했다는 제자들의 퇴 계관이 작동한 결과다. 그리고 『퇴계언행록』에는 기본적인 자품의 중요 성, 위대한 학자의 일상 강조, 김성일의 퇴계관 부각이라는 의의 내지 한계 역시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퇴계의 학자적 면모 이면에 자품과 일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의의가 있음에도 불구 하고 『퇴계언행록』은 한계 또한 뚜렷하다. 김성일의 전언을 가장 많이 채택한 것이 그것인데, 이 과정에서 조목이나 류성룡은 현저하게 약화되 거나 배제되고 말았다.

      • KCI등재

        퇴계철학의 독자성과 『심경부주』

        김종석 영남퇴계학연구원 2013 퇴계학논집 Vol.- No.13

        본 논문은 최근의 퇴계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퇴계철학의 독 자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재검토해 본 것이다. 지금까지 퇴계철학의 독자성을 이기론이나 사칠론에서의 이발론에서 찾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발론은 퇴계 이전에도 주장 하는 학자들이 있었으며 그 학설적 연원은 중국 신안지역의 주자학맥으 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논자는 이러한 상황 에서 퇴계가 생전에 재삼 강조해 마지 않았던 『심경(부주)』와 퇴계철학 의 관련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심경(부주)』를 바탕으로 형성된 심학적 체계가 퇴계철학의 핵심이며 독자적 영역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퇴 계는 마음이 갖는 고유한 속성이 최고도로 발휘될 때 인간이 도덕적 오 류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도덕적 실천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퇴계 에게 있어서 철학적 훈련의 목적은 바로 마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속성 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고, 퇴계철학의 성패는 바로 이러한 마음공부에 성공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점에서 퇴계 철학을 심학으로 규정할 수 있다.

      • KCI등재

        퇴계 가서의 실상과 가산경영에 관한 고찰

        김상현 영남퇴계학연구원 2019 퇴계학논집 Vol.- No.25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nsider various aspects of Yi Hwang(李滉) contained in family letters(家書) and then to attempt a philosophical analysis of the most controversial issue of property management. To achieve this goal, we will first look at the true form of Yi Hwang in family letters. A research of this part will be conducted through an analysis of prior study on Yi Hwang's family letters. Next, we will look at the issue of Yi Hwang's property management activities, which is the clearest issue among various features of Yi Hwang. We will look at the scale of the assets of the eviction, how much of the property inherited from his parents and his parents-in-laws, how much of the wealth that Yi Hwang has multiplied for himself, and how they engaged in additional management activities to increase his property. Finally, we will try to do a philosophical justification for Yi Hwang's property management activities. Here we will introduce Hannah Arendt's views on this issue, and consider it critically from Mengtzu(孟子)'s point of view. Through this work, we will reveal that Yi Hwang's property management activities are the true activities of Confucian scholars who believed in saint teaching beyond the maintenance of the family community. 본 논문의 목적은 퇴계의 가서에 담긴 다양한 퇴계의 모습을 조망한 후, 그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가산경영 활동에 대해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먼저 가서에 담긴 진솔한 퇴계의 모습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검토는 퇴계 가서에 대한 선행연구의 분석을 통해 진행할 것이다. 다음으로 퇴계의 여러 모습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이슈화되고 있는 가산경영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서에 드러난 퇴계의 여러 모습 가운데 막대한 재산과 관련된 부분에 가장 많은 관심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계의 재산 규모는 어느 정도였는지, 그 가운데 부모와 처가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규모는 얼마이고 퇴계 스스로 증식한 재산의 규모는 얼마인지, 그러한 재산 증식을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가산경영 활동을 했는지 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퇴계의 가산경영 활동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검토한 후, 마지막으로 퇴계의 가산경영 행위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 퇴계가 소유했던 막대한 재산은 한편으로는 전후 처가로부터 상속받은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이 가산경영 활동을 통해 증식한 것이었다. 퇴계는 효율적 농장 관리를 통한 생산증대에서부터 교역을 통한 재산증식, 노비의 신공을 합리적으로 징수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가계 전반에 걸쳐 가산경영 활동을 주도했다. 그런데 이런 가산경영 활동이 기존의 문집에 드러난 퇴계의 모습과 다소 충돌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은 가산경영활동을 선비 학자가 하는 일로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은 가산경영 활동을 선비 학자의 일로 보는 것을 어색해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가산경영 활동을 은연중에 다소 하찮은 것으로 보려는 시각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산경영 활동을 하찮은 일로 보려는 시각은 철학적 측면에서 볼 때 어떤 관점에서 나온 것일까? 여기서 논자는 한나 아렌트의 견해를 소개하고 이것을 맹자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해 볼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는 이황의 가산경영활동이야말로 단순한 가족공동체의 유지를 넘어 성현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참된 유학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밝힐 것이다.

      • 퇴계 사상 연구의 현황과 과제-예학사상

        유권종 영남퇴계학연구원 2008 퇴계학논집 Vol.3 No.-

        본 고찰에서는 퇴계 예학에 관한 기발표 연구들을 성찰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퇴계의 예학에 관한 연구의 과제와 전망을 하 였다. 현대의 기 발표 연구들은 대체로 세 가지 다른 지향성을 보 이고 있다. 우선 퇴계의 예설 혹은 예론에 관한 분석을 통해서 그 가 구성했던 규범의 체계 혹은 그 특징을 밝히는 가운데 그의 예 학적 관점과 태도에 대한 연구들이 일정한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달리 예학을 예문에 관한 해석이나 논단에 그치지 않고 그것 이 心學혹은 聖學理學등과 관련되는 방식을 살피고, 그것을 바 탕으로 예학이 퇴계 유학 전반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역할을 밝 히는 데에 관심을 둔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적 삶의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퇴계 예학의 잠재된 가능성을 발 굴하려는 연구도 시도된 바 있다. 아직 이 연구는 본격화되지 않 았지만, 현대학문의 이론적 방법을 동원해서 퇴계 예학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퇴계 예학의 현대적 의의를 모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퇴계 예학에 관한 연구들은 다른 유학자들의 예학에 관한 연구 에 비해서 본다면, 그 연구 영역의 개발이 비교적 넓고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문에 관한 연구든 예학이 유학 전반과 관련 되는 내용 및 현대적 재해석과 응용에 관한 연구든 아직은 초기단 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예문에 관한 연구도 아직은 더 살펴보아야 할 퇴계의 예론의 내용이 많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퇴계 사후에 그 문인들이나 후학들에 의하여 퇴계의 예설을 편찬 한 예서들에 대한 서지적 연구, 고증적 연구도 시도되지 않았으며, 퇴계의 예설이 후대의 학자들에게 전승되고 영향을 준 맥락에 대 한 연구도 아직 부분적으로 몇몇 학자에 대해서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기호 지역의 예학맥락에 대한 연구에 비해서도 그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점을 보완하여야 만 영남 지역의 퇴계 유학이 당시에 전국의 학자들에게 준 영향의 내용을 더 자세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퇴계 예학의 특징과 그 현대적 재해석의 방면에 있어서 위기지학의 체계를 통해서 그의 예학의 중요성을 살펴보는 연구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을 현대적 학문방법에 의하여 현대적 응용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도 역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그러한 연구가 시론적

      • KCI등재

        조선 후기 陶山九曲의 설정과 경영의 한 국면

        姜正瑞 영남퇴계학연구원 2009 퇴계학논집 Vol.4 No.-

        조선 후기 영남의 士林은 퇴계가 지은 <武夷櫂歌> 차운시를 전 범으로 朱子가 은거했던 武夷九曲을 읊은 구곡시를 창작하였다. 이러한 詩作활동은 자신이 은거하는 공간에 九曲園林을 설정하고 경영하며 이 원림을 대상으로 구곡시를 짓는 데에 이르렀다. 퇴계 이황의 家學을 계승한 후손들이 퇴계가 은거했던 도산과 주자의 무이산을 비교하며 陶山九曲을 설정하여 경영하였는데 이러한 흐 름은 18세기 후반에 왕성하게 나타났다. 도산구곡을 대상으로 구 곡시를 지어서 퇴계 선생을 기리려는 의미가 있었지만 단순히 이 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도산구곡을 설정하고 경영하면서 도산 을 성리학적 세계가 구현된 청정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깊은 뜻이 있었다. 後溪李&#38948;淳은 선조 퇴계 이황의 학문을 계승하려는 의지를 가 지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는데, 그 중에 퇴계의 자취가 남아 있 는 도산에 도산구곡을 설정하고 경영하여 도산을 주자의 무이구곡 과 대등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陶山九曲詩> 서문에 서 무이구곡과 도산구곡의 유사점을 차례로 언급하며 무이구곡과 도산구곡은 그 지형에서 매우 닮은 점이 많으며 무이구곡과 도산 구곡에 살았던 주자와 퇴계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여러 가지 논거를 들어서 진술하였다. 그 중에서 무이구곡이 무이정사 를 중심으로 아홉 굽이를 설정한 것과 도산구곡이 도산서당을 중 심으로 아홉 굽이를 설정한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오묘함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주자의 학문을 정 통으로 계승한 이는 퇴계이며 퇴계의 학문이 완성된 이 공간은 주 자의 학문이 완성된 공간처럼 신성한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 다. 이렇게 설정한 도산구곡은 제1곡이 雲巖, 제2곡이 鼻巖, 제3곡 이 月川, 제4곡이 汾川, 제5곡이 濯纓潭, 제6곡이 川砂, 제7곡이 丹 砂, 제8곡이 孤山, 제9곡이 淸凉이다. 도산구곡은 조선 후기 영남의 士林에게 단순히 아름다운 경관이 전개되는 공간이 아니었다. 퇴계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공간이며 퇴 계의 학문이 완성된 공간이다. 따라서 도산구곡은 영남 사림에게 무속적 불교적 세계가 제거되고 성리학적 세계가 구현된 청정하고 신성한 공간이었다.

      • KCI등재

        <도산서당>과 <도산십이곡>·<성학십도>의 ‘志·學’ 구조가 갖는 인지적 상관성 試論

        최재목(Choi, Jae-mok),조용미(Jo, Yong-mi),김동성(Kim, Dong-seong) 영남퇴계학연구원 2021 퇴계학논집 Vol.- No.28

        퇴계가 구상한 건축물 <도산서당>의 현실공간과 퇴계의 언설로 구축된 <도산십이곡>과 <성학십도>라는 공간의 구조는 흥미롭게도 합치하고 있다. 즉 도산서당은 건축공간으로써 전학·후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도산십이곡은 전6곡 ‘언지(言志)’와 후6곡 ‘언학(言學)’의 구조, 성학십도는 전5도 ‘지(志)’와 후5도 ‘학(學)’의 구조로 되어 있다. 도산십이곡과 성학십도도 퇴계라고 하는 사상가의 지성 내에 존재했던 공간적인 배치라고 본다. 이 논문에서 논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퇴계가 구상한 건축물 <도산서당>의 현실공간과 퇴계의 언설로 구축된 <도산십이곡>과 <성학십도>라는 공간의 구조는 흥미롭게도 합치하고 있다. 즉 도산서당은 건축공간으로써 전학·후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도산십이곡은 전6곡 ‘언지(言志)’와 후6곡 ‘언학(言學)’의 구조, 성학십도는 전5도 ‘지(志)’와 후5도 ‘학(學)’의 구조로 되어 있다. 도산십이곡과 성학십도도 퇴계라고 하는 사상가의 지성 내에 존재했던 공간적인 배치라고 본다. 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산서당, 도산십이곡, 성학십도는 어떤 지향점을 정하고 부지런히 공부하는 일관된 형식으로 되어있다. 즉 이 구조는 지(志. agenda)를 정하고 구체적 학(學. action plan)을 제시하는 구조로 일관한다. 퇴계는 부지런히 공부하는 인간상을 제시하였으며, 그 공부론의 근저에는 경건함[敬]이 자리해 있다. 둘째, <도산서당>, <도산십이곡>, <성학십도>의 셋은 퇴계가 중년이후 그의 사상이 완숙해지면서 그려낸 공간론이다. 다시 말해서 현실공간에서는 <도산서당>이었고, 언어-언설공간에서는 <도산십이곡>과 <성학십도>였다. 그것은 분리된 것이 아니고 퇴계의 인지적인 심층 의식 속에 자리해 있던 인지적 공간 설계도였다. 셋째, 성현이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고 퇴계의 일상 속에 명확히 내재되어 학인(學人)이 닮아가야 할 대상이었다. 학인들이 성현을 닮아가기 위해 공부하는 형식 안에 <도산서당>이 들어와 있었고, <도산십이곡>에서는 고인의 예던 길이 일상적 삶의 실천 속에서 드러나 있으므로 그것을 각자 내면화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성학십도>도 마찬가지로 성현이란 존재는 초월적이 아니고 내재적인 것이었다. 비유하자면 바깥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내가 늘 성현을 바라보고 닮아가는 공부가 가능했다. 넷째, 유학의 기본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이 관점에서 <도산서당>, <도산십이곡>, <성학십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도산서당>, <도산십이곡>, <성학십도>)은 퇴계라는 한 인간의 생각 안에서 구상・기획・설계되고, 제작・생산・산출된 유학의 이상적 구현이었다. 물론 퇴계의 사유형식 안에는 현재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도 미래도 서로 연결되어 공존한다. 퇴계는 현재적 시점에서 과거의 성현으로, 내가 성현을 닮아가는 미래로 넘나드는 공부를 지향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이라는 유학적 공부론은 성현의 말씀을 배우고 실현하는 시간적인 노력(修·齊·治·平)과 그 구체적 공간(身·家·國·天下)을 기반으로 한다. <도산서당>, <도산십이곡>, <성학십도>는, 아래 [그림 ](퇴계 이황의 현실·언설 공간의 인지심리 구조)처럼, 수기치인의 일관된 유학적 논리구조 속에서 구축되었다고 추론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cognitive correlation of the academic structure and the orientation of Dosanseodang, Dosansibigok and Seonghaksipdo. Toegye s direction and academic structure of Dosanseodang, Dosansibigok, and Seonghaksipdo, which Toegye had calculated from middle age to the end of the year, are cognitively correlated with Toegye s own spatial theory. First, Dosan Seodang, Dosansibigok, and Seonghak Sipdo have a consistent format in which you set a certain direction and study diligently. In other words, this structure is a consistent structure that sets the agenda and presents a specific action plan. Toegye presented the human image of diligently studying. There is godliness at the root of this theory of study. Second, Dosanseodang, Dosansibigok, and Seonghaksipdo are spatial theories drawn by Toegyeung as his thoughts became mature after middle age. In other words, Dosan Seodang was shown in the real space, and Dosansibigok and Seonghaksipdo were shown in the Unseol space. These were not separate, but space plans that were located in Toegye s cognitive deep consciousness. Third, Seonghyun was not a transcendental entity, but clearly embedded in Toegye s daily life, and was an object that students should resemble. Dosanseodang was built into the format where students study to resemble Sunghyun. In Dosansibigok, since the path that people used to practice in the past is revealed in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it is suggested to internalize it individually. Likewise in Seonghaksipdo, great humans are not transcendental, but implicit. In an analogy, it is not God outside, but God within me. So, in my daily life, I was able to study to see and resemble great humans all the time. Fourth, the basics of studying abroad are maintaining my body properly and managing others ideally. From this point of view, it is necessary to look at Dosanseodang, Dosansibigok, and Seonghaksipdo. These three were conceived, planned, designed, produced, produced, and produced within the idea of Toegye, an ideal realization of studying abroad. Of course, there is not only the present in Toegye s death type. The past and the future are connected and coexist. Toegye aims to study from the present point of view to the ideal human of the past and to the future where I resemble the ideal human.

      • KCI등재후보

        李退溪와 王陽明의 聖賢像 및 成聖觀의 比較 - 韓國의 儒學名著 『聖學十圖』를 中心으로 -

        전명 영남퇴계학연구원 2012 퇴계학논집 Vol.- No.10

        Whether it is the view of sage becoming described in Yang‐ming(陽明)'s 『Chuanxilu(傳習錄)』 or that in Toegye's 『Ten diagrams on sage learning(聖學十圖)』, the central matter is the problem of how to be a sage, how a man can be a sage. What matters for them was not the image of sage but the sage learning that are the method, passage and means to be a sage. This is what is common in the view of sage becoming of both Toegye and Yang‐ming. Following is the difference between them. As for Toegye, it is elite‐like view of sage becoming that the method, passage and means to be a sage is complicated and intricate to bear morality and knowledge, while for Yang‐ming, it is common view of sage becoming that belongs to the realm of moral practice with the simple and temporal method, passage and means to be a sage. The most important mission of Toegye was to educate politicians to make sage on the premise of developing the moral awareness of elite figures. On the other hand, that of Yang‐ming was to enlighten common people to make sage on the premise of developing the moral awareness of general public. This was different selection two persons decided facing different tasks of the age, that are administration and reign. In conclusion, Toegye emphasized the study of sage and Yang‐ming, the will of sage. Contrary to Yang‐ming who attached importance to the theory of practice and the awareness of Liangzhi(良知), Toegye's 'Ten diagrams on sage learning' was the complete unity of Confucian theory of knowledge, theory of morality and theory of practice. Furthermore, Yang‐ming's view of sage becoming was Renxue(仁學) and Xinzhixue(心志學) having instancy and reality that was Confucian sage learning being commonized. From the political standpoint, Yang‐ming's view of sage was that of equality with moral practice and Toegye's view of sage was elite‐like view of sage with moral knowledge. 양명의 『전습록(傳習錄)』에서 묘사된 성성관(成聖觀)이거나, 퇴계의 『성학십도』에서 묘사된 성성관이건 간에, 그 중심 문제는 모두 인간의 성인됨의 문제이다. 즉 어떻게 사람이 성인이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성인지상(聖人之像)’이 아니라 ‘성인지학(聖人之學)’(간략히 ‘聖學’으로 칭함)이었던 것이며, 그것은 성인됨의 방법, 경로 및 수단이었다. 이는 퇴계 성성관과 양명의 성성관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다른 점은 퇴계의 성인됨의 방법과 경로와 수단은 복잡하고 번잡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학술 사상 영역에 속하는 덕성(德性)ㆍ지식(知識)을 지니는 엘리트적 성성관이었고, 양명의 성인됨의 방법과 경로와 수단은 간이(簡易)하고 순간적이며 덕성실천(德性實踐)의 영역에 속하는 서민적 성성관이었다. 퇴계의 가장 주요한 임무는 엘리트 인사들의 도덕적 자각을 개발한다는 전제 하에 정치가를 교육시켜 성인이 되게 하는 것이었고, 양명의 가장 주요한 임무는 일반 민중의 도덕적 자각을 개발한다는 전제 하에 보통사람을 교화하여 성인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두 사람이 경세와 치세의 서로 다른 시대적 과제에 직면하여 결정한 서로 다른 선택이었다. 요컨대 퇴계가 강조한 것은 성인의 학문이었고, 양명이 강조한 것은 성인의 뜻이었다. 실천론과 양지(良知)의 자각을 중시한 양명과 달리 퇴계의 『성학십도』는 유가의 지식론과 도덕론, 실천론의 완전한 통일이었다. 나아가 양명의 성성관은 인학(仁學)ㆍ심지학(心志學)으로 즉시성과 실재성을 갖고 있어 서민화된 유가의 성인지학(聖人之學)이었다. 만약 정치학적 의의로 본다면 양명의 성인관은 덕성실천의 평등의 성인관이었고, 퇴계의 성인관은 덕성ㆍ지식의 엘리트적인 성인관이었다.

      • KCI등재후보

        退溪 理氣互發說의 비판적 고찰

        김성실 영남퇴계학연구원 2015 퇴계학논집 Vol.- No.16

        본 논문은 退溪 理氣互發說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고 있다. 퇴계의 리기호발설은 고봉과의 사칠논변 속에서 ‘四端은 理가 發하여 氣가 따르는 것이고, 七情은 氣가 발하여 理가 타는 것’이라는 퇴계의 최종입장을 두고 ‘퇴계는 理와 氣가 각각 발한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이 요지이다. 그러나 퇴계가 리기호발설을 주장하였다는 것은 율곡의 언급 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과연 율곡이 퇴계를 보는 관점에 따라 리기호발 로 단정 지을 수 있는지, 또 리기호발은 二元論일 텐데 퇴계가 과연 이 원론적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오늘날 퇴계가 리기호발을 주장했다는 연구의 대부분은 고봉 이 퇴계를 이해하였던 방식인 ‘對說ㆍ因說 이해방식’을 크게 벗어나고 있 지 않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퇴계가 스스로 ‘리기호발’을 주장하였는지, ‘이원론’ 을 추구하였는지를 먼저 살펴볼 것이다. ‘리기호발’은 고봉과의 사칠논변 에서 ‘리기호발’의 ‘互’자의 사용용례를 살펴보아도 고봉이 최초로 여러 차례 언급한 뒤에야 퇴계가 받는 말로써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리기호발’은 이원론일 텐데 퇴계는 결코 이원론을 주장하지 않았으며, 퇴계사상의 전반을 살펴보아도 퇴계는 一元論적 사유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퇴계는 인간의 선한 본성의 발현인 감정 역 시도 선할 뿐이며 악한 감정은 없다는 ‘理發氣隨’의 입장이었으며 악한 감정은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닌 사유 속에서의 ‘착각’이었음을 ‘氣 發理乘’의 개념으로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퇴계가 사칠논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선한 본성의 발현인 감 정은 생동하는 우리 마음의 알맹이며, 감정의 올바른 이해가 바로 학문 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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