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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자료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2 안동학연구 Vol.1 No.-
최근 '안동'이란 이름은 '순수 우리 것' 혹은 '한국의 전통'이라는 이미지와 동일시되고 있다. 안동소주, 안동포, 안동간고등어, 안동찜닭, 안동칼국수 등 접두어에 안동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이익을 추구하는 상품일지라도 투박한 순수성이 깃든 원래의 우리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만약 상품이 아니라 안동사람이나 안동풍습 혹은 안동지역의 문화유산이나 안동의 전통마을을 상상하면 상황은 약간 달라진다. 순수하고 투박한 고향 같은 긍정적 이미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성과 끼리끼리만 통하는 폐쇄성, 그리고 겉치레와 체면을 앞세우는 형식주의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몰개성주의 등의 부정적 이미지도 '안동'에 그대로 남아 있다.
문태현,이덕희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2 안동학연구 Vol.1 No.-
지금까지 하회마을의 문화관광자원, 문화관광의 여건과 실태, 관광객들의 행태와 태도, 문화관광정책과 주민참여 등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이들 검토과정에서 밝혀진 내용들을 토대로 하여 하회마을의 문화관광정책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덧붙이고자 한다.
안동 역사의 유가중심적 전개 : 조선시대 이후 안동 역사의 개관
조동걸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2 안동학연구 Vol.1 No.-
먼저 안동의 역사를 회고하며 특징을 짚으면 다음과 같이 회상된다. (1) 고려사를 밀고 이끈 안동 (2) 유교를 일으켜 조선왕국을 건립하고 퇴계학으로 조선 성리학을 개척한 고장 (3) 조선 중기부터 200년간 남인당을 고집하여 야당성이 강한 고장 (4) 사족의 문중 결속이 진행되어 신분의 차이없이 문중조직이 발달한 안동 (5) 향리를 중심한 중인세가 남달리 강했다. (6) 상층문화와 민중문화가 별도로 존재했다. (7) 독립운동을 개척한 사람이 많은 가운데 보수와 진보가 병존하게 되었다. (8) 농지가 좁아 생활이 어렵고, 서민의 수탈과 근검절약으로 살았던 안동 위의 특징은 안동의 정체성을 대변한 말이기도 하다. 아울러 좋은 역사를 생산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역사를 전개할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발전 동력이 무엇인가를 찾아 그것을 키우고 극복할 문제는 무엇인가를 찾아 그것을 반성하면서 새 시대를 맞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여기서는 반성할 점을 손꼽아 보기로 한다.
성병희 安東大學附設 安東文化硏究所 1984 安東文化 Vol.5 No.-
오늘, 주제가 안동문화 성격규명 및 안동문화권 설정이라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나 생각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안동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가 있어 온 걸로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안동지방이나 여타지방의 인사들이, 특히 학자층이나 일반 대중 가운데에서도 안동문화권, 안동문화라는 용어를 더러 쓰고 있읍니다만 비교적 상식적인 용어로서 쓰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권오성,이병원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3 안동학연구 Vol.2 No.-
경상북도 안동지역은 한국민요의 음악적 분류권에 있어서 메나리토리권에 속한다.
성병희,임세권,임재해 安東大學附設 安東文化硏究所 1983 安東文化 Vol.4 No.-
임하댐 건설로 수몰될 예정으로 있는 안동군 임하면과 길안면, 임동면, 청송군 진보면과 파천면 일대의 20여개 마을은 안동문화권의 중심지에 속하는 곳이다. 안동문화권은 조선시대의 유교문화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가장 잘 전승하고 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한 학술조사가 일찍부터 몇 차례 실시된 바 있으며, 안동댐 수몰지역에 대한 조사보고도 산발적으로나마 이루어진 바 있다. 그러나, 이미 이루어진 조사보고서는 조사지역이 부분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조사내용도 특정분야로 국한되어 있다. 특히 안동댐 수몰지역의 경우 산발적인 조사보고서만 나왔을 뿐, 총체적인 현지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에 수천년 동안 축적되어 온 유형 무형의 문화재들이 그대로 물에 잠겨 버렸다.
유증선 安東大學安東文化硏究所 1989 安東文化叢書 Vol.1 No.-
옛날 안동대도호부의 본거지인 안동부(고대명칭)는 북으로는 영남산·목성산 등의 대소산맥이 병립하여 활대를 이루고 안하에는 동에서 서남으로 낙동강이 횡류하여 활시위를 이루니 이 손바닥만한 분지가 오는날의 안동시이다. 의 안동은 수천년(?)전만 하더라도 용산원두·선어대 부근에서 반변천이 서향 직류하여 맛들(용상들)과 안동시가가 완전히 낙동강의 하상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으니 그것은 지금 고로들 간에서 이것을 입증하기를 "맛들이나 안동시내를 파보면 도처에 자잘이 나타나고 또 현구시장 일대에 큰 연못이 펼쳐져 있었다"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영가지에도 대소지당이 각처에 산재하고 있음을 명기하고 있으며 또 선어대, 용산전설을 통하여 보더라도 안동의 지리적 변천을 잘 대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안동은 순전히 천연생성의 지역이라기보다 인위적 제방조성으로 형성된 하상개탁지였다는 것을 부인할수 없다. 따라서 안동은 자연의 풍부한 혜택을 받지 못했기에 유사이래로 위정자가 제방 치수사업에 진심갈력한 기록을 영가지와 호방사적비에 명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