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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나타난 ‘전인(全人)으로서의 부활관’과 교회의 종말론적 가르침에 대한 신학적 고찰
서한석(Seo, Han Seok)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17 神學展望 Vol.- No.196
본고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그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영혼과 육신의 온전한 결합체로서의 인간관’과 그리스도교의 부활 신앙을 밀접히 연결시킨다. 특별히 『신학대전』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묘사하고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우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으셨던 진정한 인성(人性)을 다룰 것인데 여기서는 특별히 그분이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수난과 죽음에 집중 조명한다. 또한 인간의 육신은 결코 환상이 될 수 없음을 뚜렷하게 제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질적인 특성을 살펴보면서, 인간 사후(死後)에 이루어질 전인(全人)으로서의 부활에 집중한다. 특별히 본고는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교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토마스의 신학을 염두에 둔다. 과연 그가 ‘영혼과 육신의 단일한 존재로서의 인간관’을 바탕으로 제시한 종말론적 부활관은 현대 신학의 ‘사후(死後)에 이루어질 전인격적 사건으로서의 부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몇몇 현대 신학자들은, 한편으로 죽음 속에서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느님께로 나아가고 세상 마지막 날에 육신이 영혼을 뒤따라 영생에 참여한다는 전통 교리의 표상 대신, 죽음 속에서 이미 육신의 부활이 이루어진다는 신학적 입장 곧 죽음을 통해서 인간은 지상에서 살았던 육신과 함께 부활한 후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신학적 이론을 제시한다. 물론 이러한 신학적 이론은 다른 신학자들에 의해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단일체로서의 인간관을 지속적으로 견지하는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대로 죽음 후 ‘공심판’과 ‘사심판’을 언급하면서 사실상 ‘중간 상태’에 대해서 거론하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최종적으로 완성될 만인 구원을 지시하는 예수 부활의 종말론적 신앙의 우주적 희망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부활한 육신은 다시 죽어 썩어 없어질 그러한 ‘육체’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이 ‘육체’는 인격적인 관계들을 통해서 형성되었고 타인들과 세계 전체와의 유대관계 속에서 여전히 영구히 머무를 ‘육체’이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 다가올 종말론적 삶의 표상을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는데, 이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구원 신비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은 구체적인, 전인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This study looks mainly to the Summa Theologica of Thomas Aquinas reviewing about the physical resurrection of Christ and the Christian faith in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In order to interpret the ‘Resurrection of Christ’ presented as a question of faith, we look at the human perspective as a single entity of soul and body as proposed by Thomas Aquinas and examine the suffering and death of Christ, especially as a true human being. Christians do not hope for the ultimate future of humans and the world based on the experience of hope that is universally found in human time and history, but they find the answer in Jesus Christ. Furthermore, this study mentions the position occupied by Thomas Aquinas in Catholic doctrine and in modern theologies concerning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 human being as a single entity’ which Aquinas emphasized while using Aristotle’s view of humanity was extended to ‘the Resurrection as a whole personal event’ and finally it was firmly accepted in the Catholic eschatology through the official doctrine of the church and in modern theologies.
심상태(Shim, Sang Tai)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12 神學展望 Vol.- No.177
본 연구논문은 광주가톨릭대학교 설립 50주년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 50주년을 맞아 새 50주년을 위한 토착화 신학의 진로 모색을 시도한다. 발표자는 먼저 ‘토착화’ 개념이 둘 이상 문화 사이에 성격을 각기 달리하는 만남이 이루어지는 경위를 나타내는 다섯 용어, ‘문화 융합’, ‘문화 순응’, ‘본방화’, 그리고 ‘뿌리내림’, 또한 ‘상황화’로 표현되는 광의의 개념임을 밝힌다. 이러한 복합적 성격의 ‘토착화’ 신학이 I960년대 이래 비서구 지역 교회들 안에서 각기 다른 성격과 편차를 보여주면서 진척 중이다. 본시 자랑스러운 초기 교회의 토착화 노력과는 대조적 양상을 오늘날 한국 교회는 드러내고 있다. 교회는 전반적으로 여전히 서구 교회에 의존하는 풍토에 머물러 있으며, 신학자들 거의 대다수가 토착화 신학에 대해 무관하거나 냉담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어서 토착화 신학의 기본 입장을 평소 지론에 따라 간략히 서술한다. 토착화 신학은 역사적 유다인 예수를 육화된 하느님의 아들로 믿는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를 여전히 성경과 성전에 의거하여 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종교?문화?정치?사회?경제?지리?역사 등등의 현실 환경과 풍토에 상응하여 한국적 제 범주양식으로 신앙이 표현되고 생활화됨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계시 진리를 구명하는 방법적 입장에서 서구 신학의 합리적 사고에 입각한 논리-분석적 탐구 원리뿐만 아니라, 한국 내지 아시아적인 직관-종합적 사고에 입각한 감성적 체험과 직관의 진리 탐구 양식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마침내 소위 ‘미래학’(未來學)의 기본 통찰을 원용하면서 한국 사회와 세계의 미래 전망을 제시하면서 새 50주년을 향한 토착화 신학의 진로를 모색한다. 금세기에 접어들면서 수직적이고 중앙집권적 구조의 재래 기존 사회 질서를 수평적이고 그물망 형 구조로 대체하는 획기적인 변화가 영상 정보 매체가 중심이 되는 지식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진행 중이어서 미구에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의 면모가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미래 전망의 지평 안에서 토착화 신학의 진로를 가늠한다. 발표자는 이 진로가, 1970년대 이래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FABC)가 지난 공의회의 토착화 가르침을 아시아 대륙 교회에 적용하고 창출을 강조해 온 기본 입장, 곧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 토착 문화, 종교들과의 대화 등 삼중적인 대화를 통한 ‘아시아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에 담긴 전망 안에 이미 제시되어 있다고 보아서 토착화 신학은 그리스도의 계시 진리를 다종교적 문화 풍토 안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작업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하여 토착 문화 종교와의 진실한 대화에 임해야 함을 역설한다. 이 대화는 이 땅에 신앙 진리의 충만한 보편성을 꽃피우기 위한 목표와 함께 현실 세계에 만연한 소외 현상을 지양하여 공동선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표를 지향하고 상대방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 진리가 어떠한 양식으로 결실을 맺었는지를 주목하며 이를 수렴하려는 자세로 이루어질 것이다. 끝으로 한국 교회가 앞으로 세계 교회 안에서 보다 크고 주요한 역할을 수행할 태세를 갖추어야 하는데, 발표자는 이를 위해, 신학자들이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결의 요청에 상응하여 한국 교회를 ‘이론적 교리와 형식적 법 중심 구조의 경성(硬性) 종교 양식’으로부터 ‘생생한 삶과 영성 중심 구조의 연성(軟性) 친교 공동체 양식’으로 전환함으로써 ‘한국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창출하는 과업 수행에 명운을 걸고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연희(Kim, Youn Hee)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11 神學展望 Vol.- No.172
그리스도교 ‘교리’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규명은 단순히 하나의 조직신학적 논제를 넘어서 교회의 내?외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곧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일치 운동(ecumenism) 문제, 교회 외적으로는 타종교와의 대화, 타 종교인들의 구원 문제 등과 연결되어 있다. 필자는 근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 간의 마찰 문제를 계기로 하여 후기자유주의 신학자인 조지 린드벡의 교리에 관한 연구를 고찰하고자 한다. 린드벡은 기존의 종교와 교리에 관한 이론들인 인식-명제주의(cognitive-propositionalist)나 경험적-표현주의(experiential-expressivist)와 차별되는 자신의 ‘문화-언어적’(cultural-linguistic) 이론과 규칙 이론(rule theory)을 전개한다. 또한 그는 이 이론들을 종교 신학적 문제들인 종교 간의 대화와 타종교인들의 구원의 문제에 적용하여 기존의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와는 다른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고는 그의 문화-언어적 이론을 분석하고 그 이론이 종교신학적 문제들을 규명하는 데 어떤 유용한 전망을 제공하는지를 논구(論究)한다. 린드벡의 이론은 교리의 진리 조건을 단지 지성과 실재의 일치라는 인식론적 차원을 넘어서, 신앙인의 실존적 삶 안에서 발생시킨 실천적 결과와 관련해서 보는 실용주의적 전망을 제시한다. 그의 이론은 ‘문자’가 ‘말씀’이 되는 중요한 조건인 실천적 요소를 교리의 구조 안에서 규명하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의 이론의 강점은, 종교의 절대성을 체계-내적 진리(intrasystematic truth) 또는 범주적 진리(categorial truth)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각 종교의 특수성과 고유성이 존중, 확보되는 ‘다원주의적 절대성’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배타적 함의가 없는 절대성이며, 각 종교 전통의 특수성이 희생되지 않는 다원주의적 전망이다. 이러한 그의 신학 이론은 다종교 사회인 한국적 상황에 매우 유용한 전망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린드벡의 종교신학적 입장은, 전체적 구조로 볼 때, 현재적 차원에서는 각 종교들의 고유성과 차별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종말론적 차원에서는 모든 종교인들이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완성이라는 그리스도교적 구원사적 틀 안으로 포섭되는 구원관을 보인다는 점에서 ‘다원주의적 포괄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some key features of George Lindbeck’s postliberal theological project which he treats in his book, The Nature of Doctrine: Religion and Theology in a Postliberal Age, published in 1984. In this book, his project is centralized on developing a new theory of understanding religion and doctrine because of his dissatisfaction with the prevailing theories such as the “cognitive-propositionalist” and the “experiential-expressivist” theories. Lindbeck describes his new approach as a “culturalㅡlinguistic” conception of religion which brings with it a “regulative” or “rule” theory of church doctrine. One of the distinct features of his approach is a pragmatic position on how religious truth-claims (doctrines) are to be justified. It is his pivotal view that religious truth-claims can be justified as true only if one’s practical actions and their consequences in life are in accord with the claims themselves. Lindbeck describes such a “coherence” between deeds and claims which ought to be operative in a religion as “intrasystematic” or “categorial” truth in contrast to “ontological truth” upheld by cognitive-propositionalists. His cultural-linguistic theory based on “intrasystematic” truth enables him to deal fruitfully with the issues of the interreligious dialogue and of the salvation of other religions’ people. The strength of his cultural-linguistic theory lies in that it is able to guarantee the unsurpassability of each religion which is not allied to exclusivism. Although Lindbeck’s theological position has an inclusivist outlook when suggesting that non-Christians at the end are to be converged to the salvific grace of Jesus Christ, his theory shows at least the possibility of religious pluralism which enables each religion to maintain its particular identity.
요제프 라칭거(Joseph Ratzinger),김태균(번역자)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18 神學展望 Vol.- No.202
신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인간에게 첫 번째 질문이면서 동시에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는 태동과 더불어 자기 앞에 펼쳐져 있는 그리스 철학이라는 광대한 바다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스 철학과 마주하면서 그리스도교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신앙과 철학과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될 그리스도교 신학의 근본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바로 그리스도교가 신앙하는 ‘하느님’과 철학이 증명을 통해 존재를 긍정(또는 요청)하는 ‘신’ 은 동일한 분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신들인가 하는 질문이다. 라칭거는 기초신학 교수로서 행한 첫 번째 강의에서 바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는 먼저 철학적 신 개념과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신 개념을 살펴보고 이어서 성경에 나타나는 계시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관을 설명한다. 이어서 철학과 신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정립을 시도한다. 라칭거에게 철학과 신학은 서로 대립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이는 다음의 주장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신앙은 철학적 신론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고 완성시킨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은 동일한 분이시다”(12쪽). 신앙의 하느님과 철학자들의 신에 대한 질문은 고전적 질문이면서 동시에 신학과 철학,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핵심 주제로서 언제나 새로운 질문이기도 하다. 라칭거는 이 문제를 “신학적 원칙들의 세계안에서 신학이 당면하는 핵심적 근본 문제로서 어렵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기초신학의 과제”(13쪽)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그분이 오실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해야 할 신학의 소임”(25쪽) 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학의 소임이기도 하다.
정희완(Jeong, Hee Wan)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12 神學展望 Vol.- No.177
신학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신학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서도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고 또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앙이 사적 차원뿐만 아니라 공적 차원도 포함한다는 것에 대한 재성찰, 개인의 영역으로 축소되었다고 여겨졌던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현상, 그리고 비록 학문의 영역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이지만 신학은 그 본성상 공공성을 지니는 학문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 이 세 요인들이 사회 안에서의 신앙인들과 교회의 신앙적 실천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서의 신학이 갖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질문과 논의를 낳았다. 신학의 공공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의 주장에 따르면, 신학은 하나의 공적 담론으로서 학계와 교회와 사회라는 세 공적 영역 안에서 공적 역할과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신학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게 된 배경 안에는 모든 신학이 컨텍스트적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과, 이론과 실천의 통합으로서의 신학의 실천 지향성에 대한 요구와, 실제 현실 안에서 사회참여적 신학들의 등장이라는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사회참여 신학이란 사회 현실들에 대한 신학적 관점에서의 분석과 비판과 대안 제시를 모색하는 신학이며, 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모습과 세상 속에서의 신앙적 실천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제기하는 신학이다. 이러한 사회참여 신학을 지향하기 위해서 우리 신학은 교회의 신앙적 담론과 세상 속에 서 있는 교회의 모습이 갖는 정치적 속성과 이데올로기적 속성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신학은 세상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해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신학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 언어들로 자신의 담론을 형성해 가기보다는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 시대 사람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의 담론을 만들어 가야 한다. 신학은 이론적 정교함에서도 판단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그 신학이 수행하는 것들을 통해 또한 검증되어야 한다. 신학은 자신이 어떤 기능으로 사회 안에서 작동되는지 그리고 또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자기 이해를 가져야 한다. 우리 신학이 이러한 방향성으로 움직여 갈 때 한국적 사회참여 신학은 탄생하게 될 것이다. There has been a growing interest in the social mission of theology. Theologians believe that theology can and should seek the possibilities of new forms for the social involvement of Christians. They recognize that faith has a public dimension as well as a private one. They are experiencing the resurgence of religion in the public sphere. They realize that theology, which seems to be marginalized in the academy, has publicness by its very nature. This awareness has brought about the question of the responsibility of theology for the good of society. According to David Tracy, who argues that all theology is public discourse, theology should be practiced in face of three particular publics(academy, church, and society). The reasons why a sense that theology has publicness are three: the recognition that all theology is contextual, the emphasis on the practical function of theology as the integration of theory and practice, and the emergence of public theologies in a broad sense. Theology of social engagement, which can be defined as a critical reflection on Christian praxis in society, attempts to address social issues from the perspective of theology and suggest an alternative vision in the light of Gospel. In order to construct a transformative theology, we should be aware of the political dimension of the Church, focus on ideological factors of theological discourse, and disarm the transcendence of theological discourse by revealing the unconsciousness of theological knowledge. To perform this social mission, theology should converse with the social sciences. Because theology is first and foremost a way of using language to make sense of God and the world, its languages need be more concrete, intelligible, and rhetorical. Most of the traditional symbolic languages of Christianity are out of date. They do not work effectively in contemporary society. We need new modes of symbolic languages, which can lead to emancipatory politics. Theology as a discipline should not be judged based upon its ability to solve particular social problemes but based upon its capacity to ensure logical integrity. But theology should be judged based on its performativity as well as its theoretical elaboration. In other words, theology should always be investigated as to its persuasive power and argumentative functions in particular situations. We should examine how theology works in society and what functions theology really performs. These efforts can lead to the start of a Korean Catholic theology of social engagement.
이냐시오 사나,이영덕(번역자)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08 神學展望 Vol.- No.162
본고는 칼 라너(Karl Rahner) 신학의 권위자인 이탈리아의 이냐시오 사나(Ignazio Sanna)가 독일 신학잡지 Theologische Quartalschrift에 기고한 것으로서, 우리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에 관한 연구논문이다. 라너가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면, 그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아마도 그의 명성에 걸맞게 많은 동의를,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논란을 가져온 이론이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열띤 동의를 얻는 이유는 그것이 현대인의 신관(神觀) 및 인간관(人間觀)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논란이 될 때에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정체성, 그리고 선교의 필요성 등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염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중심으로 얽혀 있는 다양한 신학 주제들 때문에, 그것은 그와 연관된 영역들에 대한 연구 없이는 결코 올바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이를 언급하지 않지만, 필자는 이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성령론적, 사목신학적, 선교신학적 그리고 라너 고유의 초월신학적 관점을 비롯한 다양한 관점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비판?옹호하며, 교회가 라너의 신학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는지를 그간의 교회 문헌들을 통해 밝힌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올바로 이해된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로 작용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답을 준다.
이영덕(Lee, Yeong Deok)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17 神學展望 Vol.- No.199
2017년 현재 유럽의 개신교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데 한창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다수의 가톨릭 인사들도 이 행사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있는데, 개중에는 루터의 복권(復權)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도 있다. 이처럼 교회 일치의 물결이 일고 있는 오늘날 (알버트 모크, 요셉 로어트츠, 테오발트 베어, 파울 하커 등으로 대표되는) 기존 가톨릭 신학계의 비판적 루터 상(像)이 편견의 산물이요 재고(再考)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의 연구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합성’과 연구들 상호 간의 ‘연관성’이다. ‘정합성’이란 루터의 인격과 신학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들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통해 설득력 있는 결과들을 제시하고 있음을, ‘연관성’이란 이 결과들 사이의 상응(相應)을 뜻한다. 그러므로 루터의 인격과 신학에 균열이 내재(內在)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이 연구가들의 작업을 편견의 소산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아가 이들의 작업은 디트리히 엠메의 역사적 연구를 통해서도 지지된다.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법학자로 활동하던 엠메는 루터의 청년기에 대한 연구 끝에 그의 수도원 입회가 도피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원인은 그가 야기한 동료의 죽음이다. 루터는 자신의 실수를 대면하기보다는 일생동안 그것을 외면한 채 정신적 외상 안에서 살고 활동한다. 그러므로 후대의 연구가들, 특히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가톨릭의 루터 연구가들이 이 종교개혁가 안에서 균열을 발견하고 지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본고의 목적은 가톨릭의 비판적 루터 상과 앞서 언급된 엠메의 역사적 연구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명함으로써 전자의 신빙성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공정한 연구들이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종교개혁 500년을 기억하는 때, 신학의 사명은 루터와 종교개혁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 작업일 것이다. 본고는 이 작업의 일환이다. European Protestants are commemorating the year 2017, five hundred years after Martin Luther’s publication of his 95 Theses in 1517, as the 500th anniversary of the Reformation. Although not a cause for celebration for the Catholic Church, Pope Francis and other prominent figures in the Catholic Church have acknowledged the significance of the anniversary through their indirect participation in anniversary events. Influenced by the fervor of the anniversary, proposals for the rehabilitation of Luther, a former Catholic priest, back into the Catholic Church have gained support from some Catholic theologians. Studies critical of Luther, such as those of Albert Mock, Joseph Lortz, Theobald Beer, and Paul Hacker are currently regarded with lesser favor, as they paint a portrait of the German reformer inconsistent with the idealized image espoused by Protestant churches in their promotions of the anniversary. These critical studies reveal a deep disorder in personality and theology in Luther. However, they do not address which events in Luther’s life may have caused such disorders. In my opinion, Dietrich Emme sheds light on the origin of Luther’s disorders with his historical work on Luther’s early life and his entrance into St. Augustine’s Monastery in Erfurt. Emme, a lawyer and the son of a Lutheran pastor, carried out a thorough investigation of Luther’s student years and the circumstances surrounding his decision to become a monk. He concluded that the young Luther took monastic vows in order to avoid a heavy sentence for having killed a colleague in an accident. Rather than admitting his mistake and accepting its consequences, Luther instead constructed a theological structure to calm his guilty conscience and justify his actions. This study shows that the critical Catholic views of Luther are consistent with each other and are supported by the historical discoveries of Emme. These critical views portray a more factual and historically verified picture of Luther, and are an important counterpoint to the current tendency to glorify Luther for the anniversary. This study advocates the objective reevaluation of the German reformer and his Reformation as the very vocation of theology for this anniversary year.
만프레트 하우케,이영덕(번역자)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12 神學展望 Vol.- No.176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 들은 그 내용의 난해함에 난감해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 내면으로 향하는 입구 조차도 찾지 못해 아쉬워하면서 발타살 독해를 다음으로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독일어권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발타살 연구가인 만프레드 하우케(Manfred Hauke)는 이처럼 발타살에 접근하려 하지만 그의 방대하고 난해한 저서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들을 위해 이 짧은 논문을 저술했다. 저자는 발타살의 신학의 출발점이요 핵심구조를, 이 스위스 신학자가 전통 형이상학의 주제인 ‘초월 범주들’(Transzendentalien)을 어떻게 이해, (재)해석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개괄적으로 그려낸다. 발타살의 창의성과 탁월함은 하느님의 계시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주제들을 그의 ‘삼부작’(Trilogie)[영광(Herrlichkeit), 하느님의 드라마 (Theodramatik), 하느님의 논리(Theologik)]을 통해 신학적으로 해석 및 재구성해낸 그의 업적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발타살은 그리스도교의 계시가 단지 선험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비주제적 사건이 아닌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이로써 발타살은 칼 라너(Karl Rahner)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발타살의 이 철학적, 신학적 경향은 오리게네스(Origenes)의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더 풍부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논쟁을 피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우케는 특별히 발타살의 ‘만유구원 론과’과 ‘지옥’에 대한 관점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는데, 이로써 발타살 역시 오리게네스와 마찬가지로 위대하지만 논쟁이 되는 신학자들의 반열에 들어선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타살이 여전히 가톨릭 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시아 신학 방법론에 관한 성찰: 귀납적 접근과 삼중 대화를 중심으로
박준양(Park, Junyang)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21 神學展望 Vol.- No.212
아시아는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되어 복합적 성격을 드러내며, 종교-문화적, 경제-사회적, 역사-지리적 측면에서 매우 고유한 특성들을 지닌다. 따라서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의 상황(맥락)에서 출발해 신학적 성찰을 전개하는 방법론을 채택한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역시 첫 총회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러한 ‘귀납적’ 방법론을 천명해 왔다. 상황은 본래 신학의 구성 요소에 속하며 ‘신학의 자리(기준점)’ 중 하나가 된다. 이러한 귀납적 방법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천명한 ‘시대의 표징’ 개념과 전망에 부합하는 것이다. 곧 상황에서 출발하는 신학 방법론은 시대의 표징에 주목해 아시아인들의 목소리를 경청, 식별, 해석하며 이를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는 ‘삼중 대화’ 개념과 원칙을 제시해 왔다. 이는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과의 대화,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와의 대화, 그리고 아시아의 여러 종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복음화의 추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나아가 이는 삶의 대화, 행동의 대화, 신학적 교환의 대화, 종교적 체험의 대화라는 네 가지 양식의 대화를 통해 구체화되고 실현된다. 이러한 ‘삼중 대화’의 방법론에 입각한 신학적 작업에 있어 ‘대화’와 ‘복음 선포’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고 상호 보완적 차원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성령론적 차원의 경청과 식별, 그리고 그리스도론적 차원의 체험과 성찰과 선포를 통한 신학화 작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아시아 신학의 작업은 공동체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방법론적 특성을 또한 지니게 된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를 통한 신학 작업은 아시아에서 ‘신학 함’의 공동합의적 차원을 드러내는 특징적 요소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합의적인 신학 작업은 ‘신앙 감각’ 차원의 성찰로 연결될 수 있다. 현재 변화하는 아시아 상황에 대한 식별을 통해 신학적 성찰을 계속하며 복음적 전망을 제시하는 것은 아시아 교회와 신학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인들의 ‘대중신심’에 대한 앞으로의 연구는 아시아 신학의 주요 과제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Asia possesses many complexities owing to the myriad ethnic groups comprising the continent and has unique characteristics in its religiocultural, socio-economic, and historico-geographical dimensions. Accordingly, Asian theology adopts a methodology that starts from the Asian context and unfolds into theological reflections on such realities. This is why the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FABC) has espoused such an inductive methodology since its first plenary assembly. In fact, context has always been a constitutive element of theology that forms the loci theologici. An inductive methodology starting from context also aligns with the idea of reading ‘the signs of the times’ as emphasized by the Second Vatican Council. Applying this inductive methodology in Asia means focusing on the signs of the times by listening to, discerning, and interpreting the voices of the Asian people and evaluating them in light of the Word of God. It is in this vein that the FABC has been presenting the concept and principles of a ‘triple dialogue.’ Triple dialogue focuses on promoting evangelization by engaging in dialogue with the poor, dialogue with cultures, and dialogue with religions, all within the Asian context. This evangelization is further materialized and realized through four forms of interreligious dialogue: the dialogue of life, the dialogue of action, the dialogue of theological exchange, and the dialogue of religious experience. Theological work based on this triple dialogue must always maintain the balance and harmony between ‘dialogue’ and ‘proclamation,’ striving to integrate the two in a mutually complementary manner. This must further lead to theologizing work based on listening to and discerning the signs within a pneumatological dimension, as well as experiencing, reflecting on, and proclaiming them within a Christological dimension. Another methodological feature of Asian Theology is that the theological work unfolds within a communal dimension. Likewise, the FABC’s theological work has continuously revealed the dimension of synodality associated with doing theology within the Asian context. Such a synodal theological work can also lead to reflections on the notion of sensus fidei. Providing evangelical outlooks based on theological reflections that constantly observe and discern the ever-changing context in Asia is crucial for the future of the Asian Church and Asian theology. Therefore, it is likely that studies on the Asian people’s ‘popular religiosity and piety’ will emerge as one of the key tasks of Asian theology.
레오 쉐프칙(Leo Scheffczyk),이영덕(번역자)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15 神學展望 Vol.- No.191
그리스도교가 헬레니즘을 수용해 그리스화(Hellenisierung) 되었다는 아돌프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의 주장을 둘러싼 논의가 수그러들지 않은 시점에서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탈신화화’(Entmythologisierung, 脫神話化)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해석학적 입장을 표방하는데, 이로써 독일 신학계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의 자기정체성을 묻는 작업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 두 신학자의 문제 제기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동안의 혼란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한 신학적 관심사의 전환으로 인해 아쉽게도 미완의 논의로 남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세속화 신학의 방법론으로 즐겨 활용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을 이해할 때 우리는 레오 쉐프칙(Leo Scheffczyk, 1920-2005), 알로이스 그릴마이어(Alois Kardinal Grillmeier, S.J., 1910-1998) 그리고 요제프 라칭거(Josef Ratzinger alias Benedikt XVI, 1927-)와 같은 권위 있는 가톨릭 신학자들이 왜 이 지난 세기의 주제들(‘그리스도교의 그리스화’와 ‘탈신화화’)과 여전히 씨름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이미 그 초기부터 신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신화에 대해서 충분한 검증과정을 거쳐 능동적으로 수용 및 배격하는 과정을 통해 복음 전파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저자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초대교회의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탈신화화’ 노력에 주목하지 않고, 과거의 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 성경과 교의를 신화와 동일시하는 것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쉐프칙은 불트만의 ‘탈신화화’ 요구는 신학적 측면에서 그 타당성에 의심이 갈 뿐만 아니라 그 시도 자체에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위에서 언급된 신학적 사안에 대한 불충분한 연구는 전후 유럽 신학계의 문제만이 아니다. 서구 신학계의 논의가 유입되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후속연구가 이어지지 않는 국내의 신학계 및 종교계에 ‘탈신화화’는 마땅한 반론이나 답변을 듣지 못한 채 여전히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쉐프칙 추기경의 연구는 이 신학적 사안을 둘러싼 오해를 해소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