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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근,成仁根(Seong, In-geun) 한국서예학회 2019 서예학연구 Vol.34 No.-
조선시대 국왕은 국새와 어압을 군주의 결재수단으로 사용했음이 이미 여러 논문을 통해 밝혀졌다. 그러나 그 외 왕실 인사들인 대비로부터, 왕비, 왕세자, 세자빈 등의 결재수단에 대한 연구는 그간 진행되지 않았다. 2018년 출토된 조선왕비의 ‘내교인(內敎印)’ 2과는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왕실 인사들의 실제 결재용 인장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 충분한 자료이다. 이 글에서는 ‘내교인’의 출토경위와 현상을 정확히 서술하고, 조선 전기로부터 쓰인 왕비 결재용 인장의 추이를 실록의 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왕실 인사들의 결재용 인장을『은대편고 (銀臺便攷)』등의 규정집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출토한 ‘내교인’ 2과는 모두 숙황동(熟黃銅)으로 제작하였고, 인뉴(印鈕)는 사자를 얹었다. 솟은 꼬리와 늘어진 귀에는 세밀한 선조로 세부묘사가 되었고, 특히 앞다리와 뒷다리에는 각각 화염문(火炎紋)을 시문하였음이 특징적이다. 중국에서는 한대(漢代) 이후 용․범․사자 등 동물 형상에 화염문을 시문한 경우가 많고 한국의 조각 작품에서도 화염무늬를 흔히 볼 수 있다. 인면에는 소전으로 각각 ‘내교(內敎)’라는 인문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제작양상은 조선 후기 결재용 왕실 인장의 조형성과 제작방법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끝으로 출토한 두 인장의 실제 사용자를 추론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종 때 국새를 포함한 왕실 인사들의 보인(寶印)과 부신(符信)을 정리․간행한『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2종에 수록된 ‘내교인’ ․ ‘소내교인’과의 치밀한 대조를 진행하였다. 이 책에는 이 인장들의 부분별 크기가 촌분(寸分)의 단위로 기재되어 있는데, 현대의 단위로 환산하고 출토유물의 부분별 크기를 실측하여 비교하였다. 또한 문헌자료와 유물에 보이는 인장의 조형적 특징을 통해 출토물의 연대를 비정하였다. 특히 유물 에 가해진 고열에 의한 변형을 1876년(고종 13) 11월 4일 있었던 경복궁 화재와 관련하여 이 인장의 실제 사용자를 추론하였다.『고종실록(高宗實錄)』의 기사를 참고하여 당시 국새와 어보 및 왕실인사의 결재용 인장이 모두 화마를 입었고, 인장 의 중요도에 따른 복원과정을『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와『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기사를 통해 확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출토물의 주인공을 비정함으로써 유물의 성격과 가치를 더욱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강세황 전각 연구 : 『해암인소(海巖印所)』를 중심으로
성인근(Seong, In-Geun)(成仁根) 한국서예학회 2020 서예학연구 Vol.36 No.-
姜世晃有 ‘朝鲜后期诗书畵三絶’或‘十八世纪藝壇之摠帥 之称. 关于他的生平与文艺的活动, 在文学,书法与绘画史领域均有所成就, 特别是在美术史的研究方面非常活跃. 但是关注他的篆刻的时期是最近, 『海巖印所』的发现成为重要契机. 该资料虽然是收录他的作品集性质的, 但包含着18世纪近畿地域相关的認識, 活动和享有形态, 在书法,绘画和评论方面有很大的足跡. 在该论文中, 首先集中于印譜本身, 通过姜世晃和柳庆種的序跋文,了解他们对印譜制作的看法和对篆刻的认识. 姜世晃似乎不太乐意做自己被评价为 篆刻家 , 对于从宋代开始到朝鲜流行的 印譜 制作也持有批判的态度. 虽然可以欣赏, 但这也有 玩物丧志 的指责, 只要不属俗的一两个就足够了. 另一方面, 李玄煥生动地记录了姜世晃篆刻的样子, 看起来非常熟练, 一会儿就能刻出数十个 . 大体上, 从搜索到刻字, 需要一个所的绝对时间, 可以说他的篆刻制作得非常容易, 但是通过印譜显示的他的篆刻水平很高. 有构成最理想形态的表面而煞费苦心的痕迹. 这种现象, 他早已默记在一般的字里, 也有相当数量的印譜已经储存在眼睛和头上, 可以应用到適在適所. 刀法方面, 也保持着锐利,低调的刻法, 可见他对篆刻的水平. 姜世晃不仅是书法和繪畵, 在篆刻方面也发挥了卓越的才能, 应该成为在韩国均匀成就三个领域的早期事例。 강세황은 ‘조선 후기 시서화 삼절’ 혹은 ‘18세기 예단의 총수’라는 수식어가 늘 뒤따른다. 강세황의 생애와 문예활동에 대해서는 그간 문학·서예·회화사 분야에서 고루 이루어졌고, 특히 미술사적 측면에서의 연구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그의 전각에 주목한 시기는 최근이며 『해암인소』의 발견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자료는 강세황 전각이 담긴 작품집 성격의 인보이지만, 넓게는 18세기 근기지역에서의 인장과 관련한 인식, 활동과 향유양상을 담고 있으며, 서예와 회화, 평론 방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강세황의 전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논문에서는 우선 인보 자체에 집중하여 강세황과 유경종이 남겨놓은 서발문을 통해 인보 제작에 대한 그들의 언급과 인장에 대한 인식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이후 인보에 실린 262과의 인문을 판독하고 유형별로 분류하여 그들의 인장 제작과 향유 양상에 접근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기초 작업 위에 강세황 전각이 갖는 특질을 도출하여 전각가로서 표암의 위상을 제고하고자 하였다. 강세황은 자신이 전각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거나 평가받는 일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은 듯하며, 송나라로부터 시작하여 조선에까지 유행한 인보 제작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호사가들이 사인을 찍어 권질을 이루어 감상하기엔 족하지만 이것 역시 완물상지의 비난이 있으니 속되지 않은 한 두 과만 있으면 족하다는 지적이었다. 한편 이현환은 강세황이 전각하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기록해두었는데, ‘잠시 사이에 수십 개를 새길’ 정도로 숙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 글자의 검색으로부터 인면의 포치, 새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전각에 필요한 절대시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전각은 매우 쉽게 제작되었다고 하겠으나 인보를 통해 드러난 그의 전각은 완성도 면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주어진 글귀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인면을 구성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그가 웬만한 글자에 대한 전서 자양(字樣)을 이미 암기하고 있었고, 포치에 있어서도 상당한 인보 자료가 이미 눈과 머리에 저장되어 있어 이를 적재적소에 응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음을 반증한다. 도법의 측면에서도 예리하면서도 절제된 각법을 유지하고 있어 전각에 대한 그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강세황은 서예와 회화뿐만 아니라 전각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작가로 한국에서 세 분야를 고르게 성취한 이른 시기의 사례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지속가능한 한국서예를 위한 제언 - 서예진흥법과의 연계에서 -
성인근 한국서예학회 2023 서예학연구 Vol.43 No.-
이 논문에서는 서예진흥법의 시행을 계기로 향후 한국서예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제시하였다. 우선 한국서예의 침체현상을 외부적 요인 두 가지와 내부적 요인 한 가지로 요약하였다. 외부적 원인은 ‘국가 어문정책에 의한 간접적 소외’와 ‘문화변동에 따른 공감대 소멸’에서 찾았고, 내부적 요인으로 ‘서예 환경의 혼탁과 대중성 상실’을 지적하였다. 서예진흥법 시행의 중점 사업 방향으로 ‘한국서예의 활성화를 위한 진흥방향’과 ‘한국서예의 세계성 확보를 위한 지원방향’으로 나누어 대안을 제시하였다. 전자에서는 1. 서예공모전의 구조개선 및 지원 2. 국제 서예 아트 페어 개최 3. 서예 연구 지원 및 국제성 확보 등 현시점에서 시급한 현안에 대한 안건을 제시하였다. 후자에서는 1. 서예를 통한 한글의 우수성 해외 홍보 2. 해외 우수사례 조사․발굴을 통한 한국서예 선진화 방안 연구 3. 한국서예 해외진출 지원방향 등을 제시하였다. 한편 서예진흥법이 시행되고, 실태조사 및 기본계획을 수립하였음에도 가시적인 예산반영 및 성과가 드러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본격적인 시행과 집행은 문체부의 행정만으로는 어려운 실정으로 인식하였다. 서예진흥법의 안착과 효과적인 진행을 위한 단일창구로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서예진흥원’ 건립 추진이 절실한 시점임을 언급하였다.
성인근 한국동양예술학회 2022 동양예술 Vol.54 No.-
고려시대 인장에 대해서는 그간 남겨진 유물이 부족하고, 찍혀진 사례 또한 적어 연구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고려는 한반도 중세사회에서 500년 가까운 시간을 우수한 문화와 전통을 확보하며 자리한 국가이다. 이 글은 그간 고려동인(高麗銅印)으로 통칭하는 고려시대 사인(私印)에 대한 연구를 넘어 국가와 외교의 산물이자 국새의 개념을 지닌 고려국왕 책봉인에 주목한 연구이다. 이 글에서는 고려시대 중원 황제들로부터 책봉과 함께 받은 고려국왕 책봉인을 주로 『고려사』를 통해 정리하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책봉의 의미를 종합하여 정리하고자 하였다. 한국에서 중원으로부터의 책봉은 삼국시대로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으며 고려에서도 송, 요, 금, 원, 명 등 중원을 차지한 국가와 책봉관계를 유지하였다. 고려 국왕이 중원의 여러 제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았다는 사실은 해당 국가를 종주국으로 사대한다는 공식 입장이자,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 속에서 자국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외교적 수단이었다. 이러한 책봉은 주로 한 대(漢代)로부터 시작해 중원에 새로운 국가가 들어서거나 황제가 등극했을 때 시행했으며, 주변국에서도 동일 상황일 때 책봉을 받았다. 책봉과 함께 임명장 성격의 각종 문서와 의물이 책봉국 국왕에게 사여되었는데, 이 때 받은 책봉인이 바로 현재적 의미의 국새에 해당한다. 이 글에서는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의 책봉관계의 개요와 인장 사여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책봉의 의미를 종합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끝으로 현존하는 고려국왕의 책봉인장이 찍힌 몇 안 되는 문서를 정리․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간 한국인장사의 사각지대로 여겨져 왔던 고려 국왕 책봉인 연구의 공백을 메우고자 한다.
성인근 한국서예학회 2025 서예학연구 Vol.46 No.-
This study aims to highlight the seal engraving art of Sinjae(信齋), a scholar, calligrapher, and seal engraver of the 18th century, Yi Yeong-ik(李令翊, 1740–1780). Previous research has primarily discussed Yi Yeong-ik as a member of the Ganghwa School(江華學派), focusing on his scholarly and literary achievements, while his calligraphy has been evaluated in the context of his father, Won-gyo(圓嶠) Yi Gwang-sa(李匡師). However, research on his seal engraving has remained unexplored due to the lack of relevant documentary records and the scattered nature of his works, which has prevented comprehensive investigation. This study collects and organizes his seal impressions found in the seal albums housed at the National Library of Korea and the National Assembly Library, as well as in Yi Yeong-ik’s related calligraphy manuscripts, identifying a total of 53 verified seal impressions. These are categorized and analyzed to determine their characteristics. Through this research, the study seeks to rediscover and position Yi Yeong-ik within the 18th-century Joseon seal engraving community. Before delving into Yi Yeong-ik’s seal engraving, his family background and academic lineage are examined, along with the influence of his father’s calligraphy on his work. A detailed analysis of his seal script(篆書) calligraphy is conducted to establish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with Won-gyo’s calligraphic style, and these findings are further extended to explore the stylistic and thematic characteristics of his seal engravings. The research reveals three major aspects of Yi Yeong-ik’s seal engraving: First, in terms of calligraphic features, his seals predominantly exhibit a classical Han-style seal script(印篆), and even for the same inscription, he employs varied calligraphic styles and composition methods. Although not frequently, some seals are inscribed in ancient script(古文), a feature absent in his father’s seal script. This suggests that while he inherited his father’s seal script style, he also absorbed and expanded upon the traditions of earlier masters of seal script and seal engraving. Second, Yi Yeong-ik’s seal engraving displays certain stylistic elements reminiscent of ancient Chinese seal albums, particularly styles transmitted from the Han Dynasty. These include bird-and-worm seal script(鳥蟲篆印), pictorial seals(肖形印), and general seals(將軍印). His work demonstrates a deep engagement with Chinese traditions while also reflecting unique aspects of his personal style. Through these findings, this study not only sheds light on the artistic significance of Yi Yeong-ik’s seal engraving but also contributes to a broader understanding of the development of seal engraving in 18th-century Joseon. The study underscores the need for further research on his works, offering insights into the artistic exchanges between Korea and China during the period and the evolution of seal engraving within Joseon’s intellectual and artistic circles.
성인근 포은학회 2025 포은학연구 Vol.36 No.-
이 연구는 세종 대에 안평대군 이용(李瑢, 1418~1453)과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1444년에 간행한 唐宋八家詩選 의 권두(卷頭)에 수록된 일곱 편의 서발기문(序跋記文)을 대상으로 서체적 특징과 서예사적 의미를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시선 은 단순한 당⋅송 시선집을 넘어 조선 전기 왕실이 주도한 문학⋅출판⋅서예가 결합된 종합적 문화 프로젝트로 조선 전기 서예사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핵심 자료라 할 수 있다. 연구 방법으로는 첫째, 여말선초 송설체(松雪體)의 유입과 수용 과정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검토하였다. 특히 충선왕의 만권당을 통한 조맹부(趙孟頫) 법첩과 필적의 대량 유입, 세종대 왕실과 집현전을 매개로 한 제도적 확립 과정을 살피고, 송설체가 ‘촉체(蜀體)’라는 명칭으로 토착화되는 양상을 분석하였다. 둘째, 시선 서발기문을 개별 필자별로 고찰하여 서체적 특징을 규명하였다. 이용의 「서(序)」는 왕희지(王羲之) 법첩과 송설풍을 절충한 전아한 행서를 보여주었고, 최항⋅박팽년은 유려한 송설풍 행서를, 신숙주는 정제된 해서로 관각적 교양 서풍을 구현하였다. 이현로는 초서를 통해 문인적 개성을 드러냈으며, 이개와 성삼문은 행초서로 긴장과 완화의 리듬감을 표현하였다. 셋째, 서발기문을 조선 전기 활자주조(갑인자 등), 법첩 간행과 연계함으로써 서체의 표준화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과정을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 시선 은 송설체가 왕실과 학자들의 규범 서체로 자리 잡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산물이자 문헌적⋅서예사적 증거군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안평대군의 인장은 단순한 자기 표식이 아니라 정치적 신념과 예술적 이상을 상징하는 장치로 서예와 인장의 결합이 지닌 복합적 의미를 드러냈다. 결론적으로 시선 의 서발기문은 조선 전기 송설체 수용과 토착화, 집현전 학사들이 주도한 서체 규범화의 현장을 보여주는 핵심 사료로서 개별 필자의 필적을 넘어 공적 서풍 창출이라는 집단적 성과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This study examines the calligraphic characteristics and art-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seven prefaces and postscripts (序跋記文) included at the beginning of Tang-Song Bajia Shixuan ( 唐宋八家詩選 ), compiled in 1444 under the leadership of Prince Anpyeong (李瑢, 1418–1453) and the scholars of the Hall of Worthies (集賢殿). Beyond its function as an anthology of Tang and Song poetry, the work represented a cultural project that integrated literature, publishing, and calligraphy under royal patronage, providing a pivotal reference point in the history of early Joseon calligraphy. First, the study explores the reception and appropriation of Zhao Mengfu’s (趙孟頫) Songxue style (宋雪體) during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s. Introduced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the Hall of Ten Thousand Volumes (萬卷堂) by King Chungseon, Zhao’s calligraphic works were institutionalized during King Sejong’s reign and became naturalized under the local term Chokche (蜀體). While Zhao was morally criticized as a subject of the Yuan, his art was highly regarded as juelye (絶藝, supreme artistry), and this ambivalent reception shaped Joseon’s aesthetic discourse. Second, the study analyzes the calligraphic styles of individual contributors. Prince Anpyeong’s preface combined Zhao’s Songxue style with Wang Xizhi’s (王羲之) classical model, showing an elegant semi-cursive hand. Choe Hang and Bak Paeng-nyeon employed refined semi-cursive styles, while Sin Suk-ju utilized a balanced regular script reflecting the official court style. Yi Hyeon-ro presented a complex cursive script emphasizing literati individuality, and Yi Gae and Seong Sam-mun adopted semi-cursive and cursive styles with rhythmic tension and release. Such stylistic diversity indicates that these texts were intended not merely for legibility but also as artistic expressions. Third, the study situates these prefaces and postscripts within the broader context of typographic standardization in early Joseon. The interaction between movable type printing (e.g., the Gapinja type) and the publication of model calligraphic albums contributed to the codification of Songxue as the normative style. In this regard, Tang-Song Bajia Shixuan functioned as a cultural vehicle for establishing calligraphy as a national standard of taste and refinement. Notably, Prince Anpyeong’s seals conveyed not only personal authorship but also political and ideological commitments, integrating calligraphy and seal carving into a multilayered artistic statement. In conclusion, the prefaces and postscripts of Tang-Song Bajia Shixuan serve as critical evidence for understanding the reception and localization of Songxue calligraphy in early Joseon, as well as the collective effort of the Hall of Worthies scholars in shaping an official calligraphic norm. The work demonstrates how personal handwriting was transformed into a public and standardized style, reflecting the cultural politics of early Joseon calligraphy.
성인근 한국서예학회 2025 서예학연구 Vol.47 No.-
동양의 평면예술에서 인장은 작품의 완성을 의미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작가의 개성과 예술적 지향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서예가 인영선은 전각의 가치를 중요하게 인식하였으며 다양한 인장들을 소장하고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가 평생 애용했던 인장들은 단지 서예작품을 마무리하는 도구를 넘어 그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수많은 서예ㆍ전각가들과의 예술적 교유를 상징하는 징표로서 의미를 지닌다. 인장은 사용자가 사망하면 더 이상 인장으로서의 공능이 사라진 유물이 되고 만다. 그러나 서화가가 남긴 인장 유물은 한 작가의 전각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이자 인적 교유관계의 징표가 되며, 남은 작품들의 진위를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최근 취묵헌 인영선 자용인장(自用印章)의 전모를 촬영하고 네 권의 인보(印譜)로 제작하면서 총 144과 149방의 전각이 확인되었다. 인영선이 사용했던 인장들은 크게 자각인(自刻印)을 비롯하여 전배와 동년배, 후배, 제자들, 그리고 중국 전각가들의 각인을 포함하고 있었다. 한 작가가 전각을 통해 교유한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유물로 남은 셈이다. 이 논문은 인영선의 자용인장들을 시기별, 작가별로 분류하고 분석하여 그가 남긴 전각이 지닌 서예‧전각사적 의미를 확인한다. 그리고 선생의 사적 교유의 맥락에서 전각이 갖는 의미를 고찰한다. 인영선의 자용인장들은 단지 개인의 예술적 기록물에 그치지 않고 한국 현대 서예 및 전각 예술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동시에 동시대 예술가 간의 긴밀한 교유의 증표로서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