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溪 兪好仁이 남긴 <續匪懈堂四十八詠>과 몇 편의 ‘謠’에 관해

        유영봉 우리한문학회 2007 漢文學報 Vol.17 No.-

        Seongjong(成宗) treated one's subordinate, Ho-In Yoo(兪好仁), kindly. He composed a shijo(時調) of farewell for him who leave for a local government post to honor his parent, and took care of his way into government service. One day Seongjong composed "Sogbihaedandsasippalyeong(續匪懈堂四十八詠)" after the pattern of "Bihaedandsasippalyeong(匪懈堂四十八詠)" written by "Anpyeongdaegun(安平大君)". Gwi-Dal Hong(洪貴達) and Su Chae(蔡壽) of Hungu(勳舊派) group as well as Ho-In Yoo and Il-Son Kim(金馹孫) of Sarim(士林派) group took part in the composition. Ho-In Yoo composed a few of "Gyobangyo(敎坊謠)" and "Hyanggyoyo(鄕校謠)" when he was in a government post which was not a song leading people's temper into the right path but also a poetry recompensing Seongjong's favor. Accordingly, "Sogbihaedandsasippalyeong" is a Seongjong's friendship for Ho-In Yoo, and a few of "Hyanggyoyo" written by Ho-In Yoo are a requital for Seongjong's kindness. 朝鮮의 成宗朝는 嶺南 士林派가 대거 등장한 시기이다. 이때 훈구파와 사림파는 정치적인 현안 문제부터 문학적인 색채까지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들의 대립 속에서, 성종은 적절한 안배와 균형을 통해 세종조의 文化에 뒤지지 않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성종에게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인물은 다름 아닌 뇌계이다. 벼슬길에 들어선 이후, 뇌계는 몇 차례 乞養을 이유로 사직을 원하지만, 성종은 그때마다 그를 위해 外職을 배려해준다. 그리고는 해마다 6월과 12월이면 그가 지은 저작들 가운데 좋은 작품들을 가려 뽑아 베낀 다음, 바치도록 명하였다. 「속비해당사십팔영」 또한 성종이 뇌계에게 베푼 優待의 産物이다. 성종은 세종의 셋째 아들이었던 匪懈堂 李瑢이 생전에 集賢殿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남긴 「비해당사십팔영」의 전통을 잇고자 하였다. 이때 선택 받은 인물들은 훈구파의 洪貴達과 蔡壽, 그리고 사림파의 뇌계와 金馹孫이었다. 이들은 훈구파와 사림파를 대표하는 筆陣이었다. 성종의 특별한 인정 속에 안팎의 벼슬길을 드나들었던 뇌계는 외직에 있으면서도 늘 궁 밖의 현실을 임금께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뇌계는 안동과 화산, 영천향교 등 세 곳에 노래를 지어주어 後生의 啓導에 앞장서고자 하였다. 아울러 위 세 곳의 敎坊에서 불리던 노래를 한시로 옮김으로써, 민간의 노래 내용을 그대로 왕에게 전달하고자하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은 작품들이 ‘향교요’와 ‘교방요’이다.

      • KCI등재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