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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교육(漢文敎育)의 측면에서 본 항우(項羽)의 두 가지 판단(判斷)

        김병건 ( Byoung Geon Kim ) 우리한문학회 2010 漢文學報 Vol.23 No.-

        「項羽本紀」를 볼 때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물음, 鴻門宴에서 項羽는 왜 劉邦을 끝내 죽이지 않았는가? 또, 항우가 垓下城을 탈출하여 烏江에 당도하여 亭長의 배를 앞에 두고 왜 渡江을 하지 않고 자결하였는가? 이에 대한 이유와 그 의미를 우리나라의 문인학자들의 시문을 통하여 탐색하여 漢文敎科의 수업 속에서 論理的 思考力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고자하였다. 項羽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否定的인 관점을 보인 경우는, 金宗直이 항우를 전통적인 조소인 `원숭이[沐候]`라고 하였고, 權近은 항우의 실패는 `스스로가 급하게 불러온 것`으로 보았다. 반면 成大中은 "功業으로 말하면 劉邦이 項羽보다 낫지만 人品으로 말하면 유방이 항우만 못하다."라 하고, 宋時烈은 항우의 일생을 仁愛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또 鄭蘊역시 烏江을 건너 훗날을 도모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항우를 주제로 한 시문 가운데 牧隱의 「江東歌」는 항우의 심정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한 秀作으로 보인다. 項羽가 鴻門宴에서 劉邦을 제거할 기회에 失機한 이유에 대하여 李荇은 `不忍之心`으로, 成大中은 `驕慢`으로 보았다. 이러한 전통적 분석에 더하여 상황판단과 관련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항우의 최측근인 項伯과 范增 두 사람이 相反된 主張과 행동을 함으로써 項羽의 判斷力을 흐리게 한 것. 둘째, 천하를 호령하는 자신이 宴會席上에서 상대를 죽이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항우의 망설임. 셋째, 劉邦의 巧言令色으로 인하여 項羽는 劉邦을 제거할 수 있었던 機會를 놓치게 된 것이다. 鴻門宴에서 항우의 행동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機會를 놓친 자는 승부의 세계에서 성공할 수 없다. 成事의 조건은 內部結束이 가장 중요하다. 판단의 순간에는 未來의 兆朕을 읽어내야 한다. 不渡江의 理由에 대하여 金錫胄는 `치욕을 참아내지 못한 것[忍]`, 郭預나 丁壽崑은 `강동의 부형에 대한 부끄러움[恥]`이라고 하였다. 그의 심적 상황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보았다. 첫째, `狀況의 흐름에 의한 判斷`일 가능성. 烏江에 당도하여 강을 건너지 않는 것은 이미 기울어진 승패에 하등의 영향을 줄 수 없다는 認識 때문이다. 둘째, 現實과 理想의 不一致로 인한 自存感의 破壞. 심리학에서 `자기 불일치(Self-Discrepancy)`라는 개념으로, 황제의 역할을 했던 사람이 조각배를 얻어 타고 목숨을 延命하는 일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셋째, 亭長을 본 순간의 衝動的인 決定. 정장은 그를 천하의 영웅으로 존경하는 사람으로, 이런 인물 앞에서 비굴하게 혼자서 돌아갈 수는 없었던 瞬間의 衝動的인 判斷일 가능성이다. 항우가 가장 많이 비판받는 문제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부류의 심리유형은 `어떤 행동이나 일의 원인을 상황적 요구와 환경적 조건 등의 외부로 돌리는 심리[外的歸因]`의 소유자라고 한다. 항우가 오강을 건너지 않은 일은 歷史의 현장에서 指導者가 나름의 責任을 지고 솔직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다. 소위 `烏江自刎`으로 인하여 지금까지도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것이 아닐까. Reading "Hang Woo Bon-gi(項羽本紀)," we have to deal with some questions. Why didn`t Hang Woo kill Yu Bang in Hongmunyeon? Why did Hang Woo kill himself instead of crossing the Oh river with Jeong Jang`s ship escaping from Heaha Castle? There are considerations about the answers in Korean scholar`s poem. In negative point of view for Hang woo, Kim Jong Jik called him typical mockery term "monkey" and Kwon Keun regarded that he brought his failure himself. However, Seong Mun Jung said that even though Yu Bang was better than Hang Woo in fulfillments, Hang Woo is much bigger person that Yu Bang," Song Si Yeul represent Hang Woo`s life as "Humane Affection," Jeong On also appealed that it`s pity that Hang Woo didn`t think about his future, and Lee Seck`s "Gang Dong Ga" is quite impressive works for an imagery of Hang Woo`s heart. The main point of criticism for Hang Woo is usually for he did not admit his fault. Psychologists analyze that kind of person is the man of External Attribution which always blame the external environment, comparing to Choi Buk`s Internal Attribution character which made his eye poked. Hang Woo showed his true veracity as a leader in a historic field for he did not cross the Oh river. That`s why people call him real hero, paraphrasing as "Oh-gang-ja-mun(烏江自刎)".

      • KCI등재

        Heidegger and Laotzu: the echt meaning of the ‘and’

        이수정 한국하이데거학회 2019 현대유럽철학연구 Vol.0 No.55

        Heidegger expressed his particular interest in Laotzu in several places and even attempted to translate Tao-Te-King into German. After Xiao shiyi's report about that work and Otto Pöggeler's paper that argued this issue, "Heidegger and Laotze" became a philosophical theme that attracted the attention of many researchers around the world. This paper provides an overview of those concerns and the whole research accomplishments at a glance, and, through thorough text analysis, the true philosophical meaning of the comparison of these two philosophers as well. The key point is that the two of them share the same problem itself, the phenomenon itself, from the different perspectives.

      • KCI등재

        本庵 金鍾厚 詩經說의 특징과 의미 - 朱熹 『詩集傳』에 대한 객관적 검토의 측면에서

        홍유빈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2020 고전과 해석 Vol.32 No.-

        본고는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本庵金鍾厚(1721-1780)의 詩經說을 검 토하고 그 특징을 살펴본 논문이다. 그는 관료로서 우의정까지 오르고 대제학으로 서 학술적 조예도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의 문집인 『本庵集』에는 그가 작성한 『小學』 및 四書三經에 대한 註解가 남아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력이나 업 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經學에 대한 연구는 『尙書』에 대한 연구 외에 드문 실정이 다. 결론적으로 볼 때 본암 김종후의 시경설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朱熹의 『詩集傳』에 대한 비판적 검토라 할 수 있다. 다만 주희의 시경설 전반에 대한 총체 적인 비판은 아니며, ‘箚錄’이라는 제목대로 『시집전』 가운데 의심이 드는 구절을 가져와서 분석하는 미시적인 작업이었다. 그러나 당대 조선에서 주류였던 주희의 시경설을 조목조목 검토하고 비판하는 자체가 의미있는 시도라 할 수 있으며, 부분 에 대한 공박인 만큼 예리한 측면도 있다. 아울러 이러한 비판의 근거로서 『毛詩正義』에 수록된 漢代의 注疏를 적극 활용하였다는 것은 당대 특히 그가 속해 있던 老論내에서는 드문 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아울러 논의의 대상으로 본암 본인과 같은 계열인 삼연 김창흡의 설도 10여 차례 가량 언급하는데, 조선 시경학의 가 치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생각 된다. 한편 삼연의 시경설에 대 한 검토는 같은 계열이자 동년배인 담헌 홍대용도 실시한 바가 있다. 다만 담헌의 경우에는 삼연의 설에 대해 비교적 주관이 개입된 평가를 함에 비해, 본암은 앞서 언급한 漢代의 注疏나 여타 字書들을 통해 검증하고 증명하는 객관적인 면모를 보 인다. 물론 당대인 18세기조선 시경학에 있어 少論인 석천 신작(1760-1828)의 경 우 漢‧唐의 訓詁를 집성하였고, 南人인 성호 이익(1681-1763) 역시 자신의 시경설 을 개진하는 데에 漢代의 注疏를 인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암 김종후의 경우처럼 『시집전』의 구절을 제시하고 그것과 注疏의 내용을 일일이 검토하는 작업은 보 기 드문 일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주희의 시경설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시도는 그 가 속한 老論의 시경학에서 뿐 만 아니라, 少論과 南人을 포함한 조선 시경학 전체 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本庵金鍾厚(1721-1780)’s 詩經說 and the characteristic of his 詩經說. He was a government official in Chosun Dynasty and reached to 右議政and grand priesthood(Dae Jae Hak) with profound academic depth. In addition, he wrote 『本庵集』, which was written about 『小學』 and the interpretation of 四書三經. By the way, except of his research about 經學, there were little of research regardless of his career and work. As a result, in summary of 本庵金鍾厚’s 詩經說is critical review about 朱熹’s 『詩集傳』. But, it was not total critic about 朱熹’s whole 詩經說, according to the title of ‘箚錄’ it was a microscopic work to bring the suspicious phrase from 『詩集傳』. However, it was a meaningful try, itself, to examine and criticize of 朱熹’s 詩經說in detail because 朱熹’s 詩經說was a main stream in Chosun Dynasty. Besides, it was very deep and sharpt since it was not whole parts. In addition, it was rare to do this kind of work in the party of 老論which he belonged to since he actively use the 注疏 of Han Dynasty was written in 『毛詩正義』. In addition, he mentioned about the same party, 三淵金昌翕’s study 10 times, it was meaningful since he recognized of Chosun 詩經學’s value. The review of 三淵’s 詩經說was done by 湛軒洪大容, who was the same party and contemporary. But in the case of 湛軒, he evaluated of 三淵’s study with subjective nuance, 本庵examined of 注疏in Han Dynasty and other 字書with objective posture. Of course, in 18 century of Chosun 詩經學, 石泉申綽(1760-1828) who belonged to 少論 collected 漢‧唐’s 訓詁, 星湖李瀷(1681-1763) who belonged to 南人referred to 漢Dynasty’s 注疏in order to insist of his 詩經說. But in the case of 本庵 金鍾厚, he brought of the phrases of 『詩集傳』 and compared to the contents of 注疏one by one was very rare work. This kind of try with objective evaluation of 朱熹’s 詩經說was very meaningful not only in his party, 老論’s 詩經學, bust also in 朝鮮詩經學which included 少論and 南人as a whole.

      • KCI등재

        Heidegger and Laotzu : the echt meaning of the ‘and’

        ( Lee Sujeong ) 한국하이데거학회 2019 현대유럽철학연구 Vol.0 No.55

        하이데거는 여러 군데서 노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명했고 『도덕경』의 독일어 번역을 직접 시도하기도 했다. 그 작업을 직접 도운 샤오시이(萧師毅)의 관련 보고와 이 사실을 논한 오토 페겔러(Otto Poggeler)의 논문 이후 ‘하이데거와 노자'는 하나의 철학적 주제로서 전 세계 수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논문은 그 전후 사정과 연구의 전모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개관하고, 이 두 철학자의 비교연구가 갖는 진정한 철학적 의미를 음미한다. 그 핵심은 무엇보다도 이 둘이 동일한 문제 그자체, 현상 그 자체를 각각 서로 다른 관점에서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원전의 철저한 텍스트분석을 통해 제시된다 Heidegger expressed his particular interest in Laotzu in several places and even attempted to translate Tao-Te-King into German. After Xiao shiyi's report about that work and Otto Pöggeler's paper that argued this issue, "Heidegger and Laotzu" became a philosophical theme that attracted the attention of many researchers around the world. This paper provides an overview of those concerns and the whole research accomplishments at a glance, and, through thorough text analysis, the true philosophical meaning of the comparison of these two philosophers as well. The key point is that the two of them share the same problem itself, the phenomenon itself, from the different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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