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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덕의 연설활동과 근대적 주체의 탄생 : 박인덕의 자서전을 중심으로

        이숙진 이화여자대학교여성신학연구소 2014 여성신학논집 Vol.11 No.-

        박인덕(1896-1980)은 한국 근대사와 페미니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수많은 ‘최초’를 기록한 기독교 신여성이다. 그는 신앙인, 교육자, 사상가, 지식인, 연설가, 계몽운동가,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한 인물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렌즈를 끼고 보느냐에 따라 다른 그림이 나타나기 때문에 인물연구는 늘 부분적일 뿐만 아니라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박인덕을 응시하던 다양한 시선이 있었다. ‘계몽’의 렌즈에 포착된 그는 농촌계몽운동가였다. ‘민족주의’의 렌즈를 쓰면 그에게서 민족운동가 아니면 변절한 기회주의자의 모습이 보인다. 만약 이 시대의 화두인 ‘자기계발’의 렌즈를 끼고 본다면, 자기 안의 무한한 잠재력을 계발하여 마침내 자기가치를 높인 경쟁력 있는 ‘자기기업가’로 비칠 것이다. 가부장적 시선에 포착된 그는 가부장적 윤리규범을 위반한 발칙하고 비정한 아내이지만, 여성주의의 렌즈로 보면 전혀 다른 인물이다. 탈식민주의의 렌즈로 보면 서구인들에게 오리엔탈리즘을 불러일으키는 ‘9월의 원숭이’가 될지 모른다. 그 동안 이루어진 한국 근대인물 연구는 ‘민족주의’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탓에 ‘민족’의 렌즈에 비친이미지가 그 인물의 전부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다. 항일과 친일의 이분법적 인식 틀은 근대를 살아간 한국인의 삶 속에서 민족의식 혹은 민족정체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박인덕에 관한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민족주의 관점에서는 과거청산의 대의에 따라 태평양전쟁 직후의 친일행적에 집중함으로써 그의 정체성을 ‘황국신민’으로 고착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 근대인의 삶은 민족이라는 변수만이 아니라 성, 계급, 연령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도 직조되었다. 따라서 민족주의 담론의 회로에 갇히게 되면, 식민지 권력 이외의 지배담론과 협력하고 갈등하고 저항하는 가운데 형성된 삶의 다양한 결을 놓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대두된 ‘식민지 근대성’(colonial modernity)의 개념은 항일과 친일의 구도 외부를 사유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특히 신여성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지난 10여년은 ‘신여성 연구의 르네상스’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박인덕연구의 경우에도 그의 의식과 활동에 집중한 연구,2) 신앙의 관점에서 박인덕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연구,3) 미시적 관점에서 박인덕의 자서전과 전기를 다룬 연구 등이 나왔다. 이 글에서는 박인덕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강연’을 중심으로 그의 삶을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1928년부터 임종할때까지 그는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7천 여회의 대중강연을 하였다. 연설을 매개로 형성된 그의 정체성과 주체의 성격은 무엇일까. 이를 탐색하기 위하여 우선 박인덕을 유명 연설가로 만든 경로를 추적하고, 구미 지역에서 행한 연설 내용을 중심으로 그의 정체성과 주체의 특성을 규명한다. 이러한 작업은 기존의 ‘박인덕 읽기’가 주목하지 않은 부분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한 식민지 여성지식인의 삶을 역동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 글의 주요 분석 자료는 자서전이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은 저자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세우면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매끄럽게 서사화한 장르이다. 자료나 소재의 선택에서부터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주관적 의도를 가지고 해석된 이야기란 뜻이다. 그러하기에 저자의 삶을 설명/해석하는 인식론적 틀은 그 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 혹은 지배담론에 의해 이미 규율화되어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그의 자서전을 증명 가능한 ‘사실’로 접근하기보다는 그의 개성을 드러내는 풍부한 텍스트로 접근하고자 한다. ‘해석된 자기’ 그 자체도 역사적・문화적・사회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Park In-duk(1896-1980), a “christian new woman” as well as a precursor in several fields, is placed as an important figure in modern history and feminism of Korea. She was a religious leader, educator, philosopher, lecturer, intellectual, and feminist leader. Interestingly, she gave a public speech about seven thousands times in Korea and America from 1928 to 1981. This paper tried to reconstruct her life giving focus to her own speech activities. How she became a famous speaker and what she said at address were analysed to reveal her identity and subjectivity constructed by her speech activities. For her, speech was not only a spear for criticising Korean traditional ethics but also a channel for making her a speaking subject. Through much speech activities, she regenerated herself as a dignified female subject. Making public speech, Park produced lots of counter-discourses challenging strong patriarchal culture. Simply put, her speech activities done for fifty three years made her a steady fast subject in modern Korea.

      • KCI등재

        기독교여성 지식인의 혼종적 주체와 연설

        이숙진 ( Lee Sookjin )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2018 기독교사회윤리 Vol.42 No.-

        이 글은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구미에서 여성연설가로 활약한 박인덕의 연설, 그리고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 일본 제국주의의 호명에 응답한 기독교계 여성지식인의 연설에 주목한다. 요컨대 해방 이전 가부장제와 제국의 지배논리에 저항(갈등)하거나 협력(순응)하면서 형성된 기독교여성 지식인의 혼종적 주체를 연설이라는 렌즈를 통해 추적한다. 식민지 시대의 질곡을 통과하는 동안 기독교여성 지식인들은 신앙과 민족의 지도자로 추앙되거나 그와 반대로 신앙과 민족을 저버린 변절자로 평가받아 왔다. 물론 이러한 상반된 평가에는 민족주의 담론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연설을 매개로 구성되고 강화된 여성주체의 특성을 살피는 이 글은, 민족주의의 회로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여성의 삶의 자리를 조망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여성을 특정 표상으로 환원시킴으로써 대상화하는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This paper explores the Christian New Women's hybrid subject formed by her own “speech” in modern Korean protestantism. Some Korean protestant women made a modern speech as a member of 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VM) from the 1920s to the 1930s. SVM was a forerunner of foreign mission bodies of North America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famous for a motto of “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 This organization gave a chance to Korean New Women to make a public speech in North America by inviting them. Aa a result they played the role of native informant, becoming a hybrid subject. This paper tried to explo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hybrid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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