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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聖徳太子と匂い ―特に『聖徳太子伝暦』における移り香に注目して―

        吉村 晶子 동서대학교 일본연구센터 2009 次世代 人文社會硏究 Vol.5 No.-

        It has been often stated that incense and Buddhism were simultaneously introduced in Japan. Therefore, Buddhism and odors are inseparable. Shōtoku-Taishi has been considered as the father of the prosperity of Buddhism in Japan, and Japanese people have worshiped him as a Buddhism saint (Bodhisattva). In view of these facts, it is inevitable that Shōtoku-Taishi has been linked with odors for a long time. I concretely examine the manner in which the image of Shōtoku-Taishi had been linked with odors in the Taishi-den texts of the Nara and Heian eras in Japan. Moreover, I clarify how Shōtoku-Taishi and odors were related to the religious thoughts prevailing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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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聖徳太子伝의 四天王寺創建説과 法隆寺創建説

        마츠모토 신스케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2010 일본언어문화 Vol.17 No.-

        本論文は、聖徳太子伝の有力な発信地であった四天王寺と法隆寺の創建説を、聖徳太子伝の文脈から捉えようといいう試みである。四天王寺と法隆寺の創建に関しては建築史⋅美術史の分野で「史実」をめぐる数多くの論考が積み重ねられてきたが、本論文では、「史実」を確定するのではなく、聖徳太子伝の世界において、寺院の創建がどのように「記述されたか」という点に焦点をあてて検討を進める。そもそも、この二つの寺は、日本書紀編纂の時点で既にその起源が曖昧になっており、それが、新たな創建伝承を生み出す母体となった。また、日本書紀や縁起類には、矛盾する内容も含まれており、それぞれの寺で独自の解釈が施されていた。特に、曖昧な資料しか遺されていなかった法隆寺では、自らの寺の起源を遡らせる言説が中世になって登場し、寺の権威を高めようとし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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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達磨大師 일본도래 설화와 중세 聖徳太子 신앙

        Matsumoto Shinsuke 한국일어일문학회 2010 日語日文學硏究 Vol.73 No.2

        本論文では、聖徳太子伝の世界で広く知られていた、達磨が日本に渡来したという説話を中心に、その展開の様相と、日本における内容の変容を、時代の変遷に従って概観し、更に、従来指摘のなかった増補系聖徳太子伝における新たな達磨説話を分析した。中国においては、死後、再び西の国に行く姿が目撃されていた達磨だったが、その神仙的要素が作用したのか、日本では達磨が日本に来たという説が広まっていた。それは、聖徳太子の伝記の中で見られた現象であった。聖徳太子の伝記に達磨が登場したのは平安時代だった。所謂片岡山飢人説話で、聖徳太子が出会った飢人が達磨であったという説が生まれていた。これは『日本書紀』の段階では存在しなかった解釈である。そして、中世には達磨渡来譚は完全に定着していた。そんな中、仏教伝来以前の日本に達磨が渡来して馬に変身し、馬小屋で誕生した聖徳太子と出会ったという説話が、増補系聖徳太子伝に登場するようになった。増補系では、勝鬘夫人から延々と転生を繰り返し日本に仏教が伝わっていった過程の中に達磨を位置づけ、太子誕生と結びつけることで厩舎という場所に新たな意味を付与していた。そして、この舞台となったのが、橘寺であった。聖徳太子誕生の場所であり、勝鬘経講義の場所でもあった橘寺では、この系統の聖徳太子伝が伝えられていた。橘寺はこの説話の成立とも関連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が、この点は更に実証的な資料発掘が必要となろう。

      • KCI등재

        호류지(法隆寺)와 시텐노지(四天王寺)에서 작성된 쇼토쿠 다이시(聖徳太子)傳에 나타난 구세관음의 유래와 해석

        Matsumoto Shinsuke 한국일어일문학회 2010 日語日文學硏究 Vol.75 No.2

        この論文は、古代から中世にかけて編纂された聖徳太子伝に現れた救世観音に関する諸説を比較検討することを目的としている。救世観音は、聖徳太子信仰に関連して広く知られた菩薩である。一般的に救世観音は法隆寺のものがよく知られているが、聖徳太子信仰のもうひとつの核であった四天王寺も、本来は救世観音を本尊としてまつっていた。救世観音信仰としては、むしろ四天王寺の方が積極的であったとも言える。本論文では、この救世観音をめぐる中世聖徳太子伝や寺社縁起の世界を読みとき、救世観音が聖徳太子として信仰されていく様相を考えてみた。法隆寺では秘仏とされた救世観音は、法隆寺僧でも拝観が難しく、聖徳太子在世中につくられた等身の聖徳太子像であるという説が伝えられていた。一方、四天王寺では、『聖徳太子伝暦』に見られる聖徳太子=救世観音であるという説を前提に、百済から伝わった像が救世観音であるという説が『四天王寺縁起』に採用されていた。全く異なる実物の救世観音に対して、それぞれが独自の説明を施していたことになる。

      • KCI등재

        『今昔物語集』의 창의성 고찰 - 역사와 설화 사이-

        문명재 ( Moon Myung-jae )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 2021 日本硏究 Vol.- No.90

        『今昔』の説話が歴史的史実といかなる関連を持っているかを見ることは、『今昔』の文学性を究明するために必要な過程であろう。本考察は『今昔』に描かれた日本仏教伝来という歴史的事件と聖徳太子との関連叙述に焦点を合わせ、『日本書紀』を中心とする関連資料との照合を通して、史実から説話への過程について、その意味を分析してみたものである。 日本に仏教が伝わった後、朝廷でそれを受容するまでは紆余曲折があったし、歴史上重要な出来事であっただけに、史料でも詳しく記している。その中心に聖徳太子があり、彼に対する民衆の高い尊崇が彼を超人的聖人に再誕生させているが、その過程と結果の一つが『今昔』の聖徳太子説話なのである。 本考察では『日本書紀』のような正統史料の史実が、『日本霊異記』 『三宝絵』 『聖徳太子伝暦』などの文献を経て『今昔』の説話に至る過程を検討してみたが、一つの説話が生れるまでは多くの資料の重疊が地層のように蓄積されていることが知れる。従って説話文学を鑑賞、研究するにおいて、現在の記録の裏に数多く見えない資料が存在することを忘れてはいけないだろう。このような視角から『今昔』の聖徳太子説話を見ると、相当の部分は既に『日本霊異記』をはじめそれ以前の説話的文献の段階で形成されていたものであることを否めない。しかし、その部分を除いても、太子中心的叙述方法と神聖性の強調など、『今昔』なりの注目すべき特徴が随所で息づいていることが分かる。但し、史実から説話への過程において、事実と異なるところも存在していることが分かるが、それが編者の構想によったものかどうかは別にして、現存の姿を『今昔』の文学的特性として評価し、史実から説話への過程として受け止めるべきであろう。何故なら、『今昔』は史実の記録ではなく暮らしの記録なのであり、それゆえ説話文学なのである。 It is thought that examining how the folktale of 『Konzaku』relates to historical facts is an essential process in clarifying the literary nature of 『Konzaku』This review analyzes the meaning of the process from historical to narrative by focusing on the historical event of Japanese Buddhism tradition described in 『Konzaku』and the related description of Prince Shotoku, and comparing it with various related materials centered on 『Nihonshoki』. After Buddhism was introduced to Japan, there were many twists and turns from the government to accept it, and as it was an important event in Japanese history, it is recorded in detail in historical records. Prince Shotoku is at the center of it, and the high respect of the people for him is reborn as a superhuman saint, and one of the processes and results is the story of Prince Shotoku in 『Konzaku』. In this review, we reviewed the process of leading to the tales of 『Konzaku』 through literature such as 『Nihonshoki』『Nihonryoiki』『Sanboe』and 『Shotoku taishidenryaku』, until one story is born, we can feel that a lot of data is accumulated like a stratum. Therefore, in appreciating and studying narrative literature, it should not be forgotten that there are numerous invisible materials behind the current records. From this point of view, it is difficult to deny that much of the story of Prince Shotoku in 『Konzaku』 was already formed in the previous narrative literature stage, including 『Nihonryoiki』. However, in the process of changing from historical facts to folk tales, we find that there are parts that are different from the facts, However, even if that part is excluded, it is confirmed that the notable characteristics of 『Konzaku』, such as the emphasis on prince-centered description method and sacredness, are breathing in various places. However, it is found that there is a different part from historical facts in the process of storytelling, whether it was based on the idea of the writer or not, it should be evaluated as a literary characteristic of 『Konzaku』 and accepted as a process of storytelling in history. Because 『Konzaku』 is not a record of history, but a record of life, so it is a folktale literature.

      • KCI등재

        물병에 갇혀진 일본의 신들 — 聖德太子, 八幡, 熱田와 신라의 위협 —

        松本眞輔 한일관계사학회 2009 한일관계사연구 Vol.32 No.-

        By this report, I exam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rince Shotoku faith and Hashiman faith mentioning “a menace of Silla” that unfolded in the Japanese Middle Ages. The Prince Shotoku faith had a great importance in Buddhism of the Japanese Middle Ages. Because all religious sect in Japanese Buddhism looked Prince Shotoku as the founder of Japanese Buddhism. The Prince Shotoku faith had no connection with the sincerity Shinto. But some biographies of Prince Shotoku have a story that Silla confined Japanese Gods in the bottle—King of Silla wanted to attack Japan, so he decided to send his prince to Japan. Prince of Silla disciplined Buddhism and he used his power gained from Buddhism to confine Japanese Gods in the bottle. But Hachiman saved Gods by breaking the bottle—. The reason Hachiman faith has this story is that Hchiman faith is connected with the legend of Queen Zingu who had invaded Silla. Likewise Prince Shotoku faith emphasize hostile sentiments for Silla, so Atsuta faith too. Atsuta faith has a legend of Dokou who stole the Atsuta’ sword. And this story had a strong influence after Mongolia attack. People said that Silla attacked Japan repeatedly once, and this narrative became “a memory of created history” in Japanese Middle Ages. 본고는 일본 중세에 전개했던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신앙과 하치만(八幡) 신앙의 접점을 「신라의 위협」이라는 측면에서 검토하려는 시도이다. 쇼토쿠 태자 신앙은 일본 중세 불교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든 종파가 쇼토쿠 태자를 일본불교의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쇼토쿠 태자 신앙은 원래 신도와 깊은 관계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세 쇼토쿠 태자전을 보면 하치만 신앙에 나타난 물병파괴 설화가 등장한다. 이것은 「신라왕이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서 왕자를 일본으로 보냈다. 왕자는 불교를 수행했는데, 그 힘으로 일본의 신들을 물병에 가두었다. 그러나 하치만 신이 물병을 파괴해서 신들을 해방시켰다」라는 이야기이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 등장했다고 생각되는 이 설화는 중세 하치만 신앙 관련문헌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신라의 위협」을 바탕으로 한 이 설화는 쇼토쿠 태자전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아쓰타 신앙에도 수용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가 하치만 신앙에 등장하는 이유는 하치만 신앙이 진구 황후 전설(소위 삼한정벌)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쇼토쿠 태자 신앙과 아쓰타 신앙도 이해 할 수 있다. 즉 쇼토쿠 태자 신앙은 신라에 대한 적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아쓰타 신앙 역시 신라의 승려 도행이 보건을 훔치려고 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신라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이 몽고 침입 이후 증폭하고 「과거 신라가 반복해서 일본을 공격했다」는 「창조된 과거의 기억」과 결합했다. 원래 신도과 접점이 없는 쇼토쿠 태자 신앙이 하치만 신앙의 설화를 받아드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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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토쿠태자 독법: 전쟁, 평화, 교육

        박균섭 한국교육사상학회 2010 敎育思想硏究 Vol.24 No.1

        20세기 일본은 전쟁으로 치닫는 길목에서 6-7세기의 인물 쇼토쿠태자의 헌법 17조에 주목하였다. 제1조에서 제시한 화합의 정신은 근대 일본의 국체 이데올로기 교육을 위한 긴요한 소재로 활용되었다. 화합의 정신을 강조한 것은 국가가 행하는 전쟁정책에 대한 협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국가정책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는 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쇼토쿠태자는 분열과 갈등의 정치현실에서 상호 이해와 화합을 실현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 쇼토쿠태자에 대한 근대 일본의 접근과 해석은 군국주의・팽창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값싼 평화주의의 성격을 갖는다. 전쟁을 평화의 이름으로 추동하는 그들의 교육장면은 일본인기형론과 무책임체제의 단적인 반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쇼토쿠태자 상징의 동원을 통해 전쟁과 평화를 섞어 말하는 그들의 기획은 선단부분이 없는 피라미드, 머리 없는 괴물과 같은 무책임체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는 결국 전쟁과 평화라는 극단의 언어체계를 통해 거짓교육, 식민교육, 국체이데올로기 교육의 전형을 드러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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