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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현(又玄)과 이경(怡耕)의 한국미(韓國美) 인식

        신응철(Shin, Eung-Chol)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6 한국문학과 예술 Vol.18 No.-

        한국미에 대한 인식을 서양인의 눈이 아닌 동양인의 눈, 더 구체적으로, 우리 한국인의 시각에서 담아내려고 시도한 최초의 인물은 바로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1905-1944)이다. 고유섭은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구수한 큰 맛’ 등의 수식어를 통해 한국미를 비로소 체계적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고유섭의 그와 같은 미(美) 인식을 한마디로 〈질박(質朴)의 미학〉이라 이름 붙인다. 한국미에 대한 고유한 인식을 고유섭의 질박의 미학에서 그 시발점을 찾을 수 있다면, 최근 들어 한국 예술철학계 및 미학계에서는 그 종착점으로 이경(怡耕) 조요한(趙要翰1926-2002)의 이름을 한결같이 언급하고 있다. 조요한의 한국미의 인식을 간명하게 말하자면 〈고졸(古拙)의 미학)〉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런 그의 미 인식의 방식은 물론 고유섭의 생각을 터 삼아 진척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한국미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자 한 고유섭의 논의를 확인해 보고, 이를 토대로 고유섭의 한국미 인식의 방식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 미학사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조요한의 美 인식의 특징을 고유섭의 그것과 상호 비교함으로써 한국미 인식의 계보를 확인하고자 한다. 끝으로 고유섭과 조요한이 한국 미학사에 기여한 바를 근대미술의 담론이라는 관점, 우리 미학의 정체성의 관점, 미적 가치의 관점에서 논의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The first man who was grasped a concept of the Korean Beauty not western viewpoint but oriental viewpoint in discourse of the korean aesthetic is Woohyun(又玄) Ko Yu-Seup(1905-1944). He described the Korean Beauty as an untechnical technic, unplanned plan, and excellent savory taste. We called his concepts as an Aesthetic of Simplicity. On the other hand, the last man who was creatively grasped a concept of the Korean Beauty is Yikyung(怡耕) Zo Yo-Han(1926-2002). He described the Korean Beauty as a beauty of folk arts, beauty of simplicity, and things of shamanism. We called his concepts as an Aesthetic of Naivety. In this context, we will deal with Ko Yu-Seup and Zo Yo-Han’s viewpoint about the Korean Beauty and compare with the way of perception about the Korean Beauty among them. And we will elucidate status of them in terms of identity of korean aesthetic, aesthetic value, and history of korean aesthe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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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錦帶 李家煥의 삶과 詩

        여운필 한국한시학회 2022 韓國漢詩硏究 Vol.30 No.-

        Geumdae Yi Gahwan’s poems only remain in his later years. Among the poems, the proportion of five words is high. His poetry seeks simplicity and truth. His theory of poetry is based on the theory that we should focus on purity and novelty. His poems show a wide range of views on things, social contradictions and interest in people's lives, awareness of ego, reality, and history, feelings toward friends, seniors, and the king. Also he expressed his feelings about the political situation in poetry. Such poems have a new and bizarre style and meaning or emotional characteristics that can be summarized into high social interest, the concordance of the scenery and emotion, sadness and resentment. This characteristic is worthy of establishing himself as a representative poet of the reign of King Jeongjo. 장년기 이후의 작품만 남고 5언시의 비중이 높은 錦帶 李家煥의 시는 질박과 眞을 추구하고 淸新에 힘써야 한다는 시론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에는 경물에 대한 시각, 사회적 모순과 백성의 삶에 대한 관심, 자아・현실・역사에 대한 의식, 知舊, 先進, 君王에 대한 소회, 정국의 추이에 따른 감정 등이 두루 드러나 있다. 그러한 시편들에는 높은 사회적 관심, 정경의 일치, 비분강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의미 또는 정서의 특성과 新奇・奇詭의 풍격이 두드러진다. 이런 특징은 그를 정조대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자리매김되게 할 만한 것이다.

      • KCI등재

        왕희지와 안진경의 변법 소고

        곽노봉(Kwag, Noh-Bong) 한국서예학회 2021 서예학연구 Vol.38 No.-

        서예사에서 변법(變法)을 실행하여 성공한 서예가로 왕희지ㆍ안진경ㆍ강유위가 있다. 왕희지는 이전의 질박(質朴)한 서풍을 연미(姸媚)한 서풍으로 변화시키고, 해서ㆍ행서ㆍ초서의 필법을 완성하며, 귀족적 서풍을 창출한 서성(書聖)이다. 안진경은 전서의 필법과 민간서풍을 도입하여 대중적 서풍을 창출한 아성(亞聖)이다. 강유위는 북위서풍을 종주로 삼아 첩학의 병폐를 타파하고 비학파를 제창한 대표자이다. 왕희지와 안진경은 모두 변법에서 성공하여 내엽법(內擫法)과 외탁법(外拓法)을 확립하여 서예사에서 필법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왕희지는 유의(有意)의 이론을 바탕으로 삼아 변법의 실천에서 다양한 자태를 창조하였고, 이전의 질박한 서풍을 연미한 서풍으로 변화시켜서 해서ㆍ행서ㆍ초서의 신체(新體)를 확립하였으며, 최초로 성숙한 필법 체계를 완성하였다. 안진경은 풍격의 ‘비경(肥勁)’과 실용의 ‘통속(通俗)’을 이론적 근거로 삼아 변법의 실천에서 성공하고 서예의 대중화를 선도하였으며, 시대의 심미관을 정확히 판단하고 고법을 변화하여 새로운 뜻을 나타내어 단직장중(端直莊重)한 안체(顔體)를 창조하였으며, 학양ㆍ성정ㆍ인품과 부합하는 서여기인(書如其人)을 실천하여 후세에 심원한 영향을 주었다. 왕희지와 안진경은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작품 또한 익숙하게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그들에 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 내용인 변법에 관한 연구는 더욱 그러하다. 만약 이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현재의 한국서단 병폐를 제대로 진단하고 건전한 미래서예를 위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연구는 이를 위한 초석의 역할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在書法史上變法成功的書家有王羲之、顏真卿、康有爲。王羲之把之前的書風質樸變爲妍媚,完備了楷行草的筆法,創造了貴族書風,終成書聖。顏真卿融合篆書的筆法和民間書風,創造了大衆性的書風,被譽爲亞聖。康有爲以北碑爲宗,突破帖學的弊病,是提倡碑學的代表人物。 王、顏都是變法的成功者,確立內擫和外拓之法,形成了書法史上筆法的兩大宗派。王羲之以有意的理論爲基礎,在變法的實踐中創造了多種姿態,變質樸爲妍媚,確立了新體,最早形成了成熟的筆法體系。顏真卿以風格的肥勁,實用的通俗爲理論根據,成功實現了變法,倡導書法的大衆化,準確把握時代審美,變革古法,抒發新意,形成了端直莊重的顏體。並結合其學養、性情、人品書寫了書如其人的佳話,對後世產生了深遠影響。 王、顏是世人皆知的書家,其作品也較爲熟悉。但出人意外的是,目前對其的研究還不多。尤其對其成功的變法研究更是如此。如此領域能有所建樹的話,對診斷當今韓國書壇的弊病也能起到他山之石的作用,也能爲開啓康健的未來書法提供津逮。爲此本研究是具備拋磚引玉作用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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