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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king John Rawls’ Political Liberalism Political and Its Implications for Religion

        곽호철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연합신학대학원 2013 신학논단 Vol.74 No.-

        존 롤즈는 자신의 정치이론을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로 이동시키면서 어떻게 종교와 같은 양보할 수 없는 이념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민주주의 안에서 충돌 없이 지낼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본고는 존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며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본다. 롤즈에 의하면 다수결이나 합의에 의해서 결정될 수 없는 견해나 이상을 포괄적인 것(the comprehensive)라고 표현하며, 이에 반대되는 것을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라고 규정한다.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포괄적인 이념, 사상,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민들이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데, 그 이유를 “합리적이지만 양립불가능한 포괄적 교리들의 복수성”(the plurality of reasonable yet incompatible comprehensive doctrines)에 두고 있다. 롤즈는 합리적이지만 양립불가능한 포괄적 교리들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종교적 혹은 유사종교적 가치들이 자신의 정치적 자유주의 아래서는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초기 저작, 『정의론』에서는 정치적 영역 안에 종교적인 영향력을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비해서,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의 종교적인 차원을 수용하되 합리적인 교리들만을 허용함으로써 중층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가 가능토록 한 것이다. 정의론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로의 변화는 정치적인 영역과 포괄적인 영역이 분명하게 구분될 때 생기는 심각한 문제 때문이다. 정치적인 영역과 포괄적인 영역이 분명하게 구분됨으로써 정치적인 영역에 종교적인 신념을 배제할 수 있었지만, 정치적인 것으로 남아야 할 그의 틀이 포괄적인 것으로 전화되었기 때문이다. 포괄적인 교리들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 그의 정치이론이 포괄적인 교리가 되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통해 포괄적인 신념과 이상들을 수용하면서도 정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이다. 이전과 달리 정치적인 영역과 포괄적인 영역의 경계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합리적이지만 양립불가능한 포괄적 교리들의 복수성은 바로 이러한 경계의 모호성이 집약된 표현이다. 롤즈는 이러한 포괄적 교리들을 통해서 중층적 합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롤즈의 중층적 합의는 정치적인 특성보다는 포괄적인 경향을 띠게된다. 본고는 중층적 합의에 있어서도 “합리성”이 가지고 있는 포괄적 특성 때문에 롤즈가 드러내고 있는 경계의 모호성이 더 확대되어야 하며 그 해석과 구체화에 있어서 다양성이 인정될 때에야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가 정치적인 특성을 유지하게 됨을 주장한다.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정치적으로 만들게 되는 경우 종교의 정치 참여에 주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중층적 합의에 관한 해석과 구체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면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근거를 두고 중층적 합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되므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 종교적 가치, 그리고 그 가치의 원류를 감추지 않고 정치영역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정의론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던 종교적 가치에 바탕을 둔 정치 참여는 그 실질적 참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 KCI등재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성정엽 민주주의법학연구회 2020 민주법학 Vol.0 No.72

        Schmitt’s concept of the political has been intensely discussed throughout the world. In this article, I review his concept of the political by analyzing his epistemic and anthropological premise. His concept of the political as the distinction of friend and enemy is a definition in the sense of a criterion, not as exhaustive definition or one indicative substantial content. He asserts that the political is not a realm or a field, but denotes the utmost degree of intensity of a union or separation of an association or dissociation of humans whose motives can be religious, national, economic, or of another kind. It implies that any opposition, whatever the realm in which it first emerged, can morph into a political conflict. In his concept of the political, it is crucial to define the enemy. According to him, the political enemy need not be morally evil or aesthetically ugly. The enemy concept is to be understood in its concrete and existential sense, not as metaphors and symbols. The enemy in the distinctively political sense is a public enemy, not a private enemy whom one hates. An enemy exists only when, at least potentially, one fighting collectivity of the people confronts a similar collectivity. In the extreme case of conflict, it becomes clear who the enemy is. He is famous(or infamous) for Etatist. According to him, the state is political unity of the people. However, the pluralist theories of the state, based on political liberalism, jeopardize the political ontology of statehood. In this situation, his core objective was to explain what the state is called upon to do if it wants to keep the monopoly of the political. He asserts that the sovereign is the one who decides on the state of exception, i.e., the state of extreme political conflict. The exception can not be regulated in the existing legal order and it requires concrete decisions to overcome the particular emergency. The state, as the holder of sovereign power, carries out this task by identifying the concrete enemy who disturbs the political unity. In this context, his concept of the political was a theoretical measure to restore the state’s monopoly of the political.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그의 많은 개념과 정식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개념으로서 그의 국가이론 및 헌법이론은 이 개념에 기초하여 펼쳐지고 있다. 따라서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분석작업은 그의 국가이론 및 헌법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선결작업에 해당한다. 한편, 최근 소위 ‘정치의 실종’현상에 대항하는 담론에서 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그가 제시한 ‘적과 친구의 구별’이라는 명제의 단순함 때문에 그동안 통속적으로 이해된 측면이 없지 않다. 이 논문은 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그의 인식론과 인간학적 전제를 통하여 살펴 본 글이다.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지 않는, 단지 인간의 결합과 분리의 강도만을 가리키는 관계론적 개념이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극단적인 대립이 발생하게 되면 이는 정치적 대립으로 전화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인간사이의 대립 및 적대관계는 인간의 원초적 위험성 때문에 해소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적대에 기초한 정치적인 것은 인간세계에서 사라질 수 없는 범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적대를 부인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정치관은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진정한 정치적 문제를 은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슈미트는 자유주의이념은 정치와 국가를 비도덕적인 폭력의 영역으로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존재이유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슈미트에 의하면 한 국가의 정치적 존재 여부는 그 국가의 적을 인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적의 개념을 부인함으로써 이러한 국가의 적 인식능력을 박탈하였으며 그 결과 국가는 수동적이며 불가지론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핵심적인 것은 적의 존재 여부이다. 만약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치의 존재이유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미트에 의하면 적이란 인간의 현실세계에서 불가피한 존재이며 관념적으로 부인될 수 없다. 또한 슈미트의 적은 실존적으로 다른 타자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여기에 어떠한 도덕적․윤리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슈미트의 적은 배제나 절멸의 대상이 아니라 그 존재가치를 긍정해야 할 ‘정당한 적’을 말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함으로써 현재의 자유주의이념의 지배로 인한 정치실종의 원인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더 나아가서 민주적 정치의 복원을 위한 사상적 모티브를 얻고자 하였다.

      • KCI등재

        정치적인 것과 소설의 운명-「비화밀교」론

        송기섭 한국현대소설학회 2018 현대소설연구 Vol.- No.69

        “Biwhamilkyo” is a novel written by Yi Chong-jun. It reproduces the custom of a local community. It is a story of a year-end. People light a torch at the top of Mt. Jewang, exchange new year’s greeting, and climb down the mountain together. The last person who carried the torch has responsibility to keep the embers alive for next year. The annual event of the local community repeats as the ember-keeper lights the ember up at the end of another year. The ember becomes a torch annually. It is archetypes and repetition. This novel seems to describe religious custom of a local community greeting new year. This novel, however, focuses on the political. It contrasts the ability and the inability of the political. It can be structured to binarity: the absence of politics and the realization of politics. The ability of the political is converting noise into voice. Political ability is made when the mumbling of people who carried the torch turn into voice of communication. As Jacques Ranciere mentioned, converting noise into voice means returning parts to those with no part. Yi Chong-jun said a novel can be written when voice are made. A novel means those with no part recovering their parts and becoming the subjects of their voice. When people of a local community recover their voices climbing down the mountain and claim their parts, the custom becomes politics. The political is formed from the destruction of order. A novel is a vehicle of searching the ability of the political. The ability of the political determines the destiny of novels. 이청준의 「비화밀교」에서 진정 읽어내야 할 테마는 정치적인 것이다. 이 작품은 정치적인 것의 불가능성과 가능성을 구조화한다. 정치적인 것은 힘없는 무리들의 소음을 알아들을 수 있는 담론으로 바꾸는데 있음을 이 소설은 항변한다. 그런 점에서 이청준의 소설의 정치는, 몫없는 자들의 평등한 몫의 분배에서 정치적인 것의 출로를 요량한 랑시에르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몫은 치안이나 통치의 논리를 정치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감정과 의식의 나눔을 통해 주어진다. 그런 까닭에 이 소설에서 정치적인 것을 논의함은 기존 정치소설의 개념 범주와는 다르다. 이 작품은 정치적인 것이 어떻게 소설에 기입되는가를 질문한다. 1부는 제왕산의 제의를 풍속의 관점에서 재현한다. 이 행사는 종화(種火)를 상징으로 매년 서로를 용서하고 정화하는 영원회귀의 신화성을 간직한다. 2부는 제의적 의례를 부정하고 횃불을 세상으로 들어올리는 넘어섬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곧 비화(秘火)의 정체이다. 비화는 밀교의 금기인 반복되어야 할 침묵을 파기한다. 횃불의 웅얼거림이 침묵에 흡입됨이 아닌 세상과 소통할 목소리가 되면서 정치적인 것이 가능해진다. 3부에 해당할 에필로그는 정치적인 것이 가능해짐으로 인하여 비로소 소설이 씌어질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청준에게 소설은 그렇게 정치적인 것과 운명을 함께하는 양식이었던 셈이다.

      • 샹탈 무페의 민주주의론과 탈근대성

        최창렬 용인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 2011 自然科學硏究所論文誌 Vol.16 No.1

        샹탈 무페는 현대민주주의가 인간의 주체적 정치성의 복원이 불가능해 졌을 정도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민주주의가 자본의 지배를 정당화시키고, 독점과 정치적 배제를 당연시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민주주의의 탈정치화로 진단하고, ‘정치적 인 것’의 개념을 이용하여, 자유민주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합의의 정치를 비판한다. 현대민주 주의는 민주주의를 합의의 정치로 단순화한다. 무페는 ‘합의’를 ‘정치적인 것’으로 간주하 는 본질주의를 비판적으로 본다. 무페는 ‘정치적인 것’의 본질을 적대와 갈등이라고 한다. 적 대와 갈등을 외면하고 애써 합의로 민주주의를 단순화하는 것은 다양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무 페는 탈정치의 원인을 근대성에서 찾고 있다. 또한 근대성, 즉 근대적 계몽주의의 기획에 따른 보편성, 합리성의 세계관이 배제의 정치를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자유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합 의의 정치의 공허함을 적대와 갈등의 개념으로 비판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속에서 현대 자 유민주주의는 상호교환적 시장논리를 통한 자본주의의 정당화의 도구로 전락했다. 다양성을 무 시하고 합의의 정치를 비판하기 위하여 자유주의가 상정하고 는 무페는 근대적 계몽주의의 기 획에 따른 보편성, 합리성의 세계관이 배제의 정치를 결과했다는 것이다. 탈정치화는 배제의 정 치를 의미하는 것이고, 근대성의 기획에서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즉 근대성에서 비롯된 자유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합의의 정치의 공허함을 적대와 갈등의 개념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무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속에서 현대 자유민주주의는 상호 교환적 민주주의 로 변모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교환이라는 매개로 상징되어지는 등가의 원리와 합리성의 원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페는 이를 급진적이고, 다원주의적인 민주주 의의 복원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며, ‘정치적인 것’의 복원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무페의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소개하고, 살펴보는 것이 이 글 의 목적이다. 롤즈의 비판을 참고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결도 소개된다. 신자유주의와 시장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나 정치사회에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최선의 이데올로 기일 수 없다. 약자의 소외와 강자의 지배가 정당화되는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주의가 동원되 고 있다. 무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치적인 ’것의 복원과 ‘급진적 민주주 의’를 통하여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무페의 시도가 당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등장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봉착하고 있는 한계를 인식하는 것과 수년내에 신자유주의를 대 체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수 있다. 2008년의 금 융위기와 글로벌 경제위기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지 만, 자본의 권력화와 물신화는 과연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 것인가. 이의 해답을 얻는 것은 어 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단초를 발견하고자 현대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 판을 통하여, 현대민주주의의 재구성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 KCI등재

        마르크스와 정치적인 것: 반(反)정치가 아니라 대항정치

        한상원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2019 마르크스주의 연구 Vol.16 No.2

        One of the traditional critiques posed to Marxism is that it did not develop debates on politics as an autonomous territory or so called ‘the political’, because it stands on the doctrine of basis and superstructure. Post-Marxist critiques of the traditional Marxism distinguish the concept of ‘politics’ which is assigned to ‘superstructure’ as effects, expressions or reflections of ‘the social’ from ‘the political’, the space of practice that can cause reactions to or, hence, is superior to the society. If so, can there be thoughts on ‘the political’ by Marxism, in addition to theory of ‘politics’ which is understood in the narrow sense of the superstructure on a basis (Marxist debates on state law, ideology, etc. in the traditional sense)? Traditional Marxism has not escaped from the standpoint of foundationalism, which has reduced the question of ‘politics’ to a derivative of a particular social order. This article explores the possibility of the reconstruction of ‘the political’ by combining Marx’s political thoughts in Kreuznach era with his political considerations in his mature time about the political nature of class struggle and the democratic elements of the power of the Paris Commune. It presupposes critiques that the pastoralist utopian theory of ‘withering away of the state’ is an inconceivable thinking and at the same time has caused paradoxical consequences, and through this point, this article intends to sketch the class struggle in the viewpoint of counter-politics today. 마르크스주의에 제기되는 전통적 비판 중 하나는 그것이 토대와 상부구조론에입각해 있기 때문에 자율적 영역으로서의 정치 혹은 ‘정치적인 것’에 관한 논의를전개시키지 못했다는 데에 기인한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인 비판가들은 ‘사회적인 것’의 효과이자 표현 혹은 반영으로서 ‘상부구조’ 에 할당되는 ‘정치’라는 개념으로부터, 사회와는 독자적인 고유한 자율적 영역으로서, 역으로 사회에 반작용을 가하거나 그보다 우위에 있는 실천의 공간을 구분하기위해 ‘정치적인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에게서 하나의 토대위의 상부구조라는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에 관한 이론(전통적 의미에서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 법이론, 이데올로기론 등) 외에, ‘정치적인 것’의 사유가 존재할 수있을 것인가? 자본주의적 형태의 ‘사회적 지배’에 관한 마르크스의 비판들이 오늘날 타당하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정치적 실천들에 관한 논의들이 자동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정치적인 것’에 관한 물음을 오로지 특정한 사회적 질서의 파생물로 환원하는 토대주의(foundationalism)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글은 크로이츠나흐 시절 전후 마르크스 사유의 단초들과성숙기 마르크스의 정치적 사유, 즉 계급투쟁의 정치적 성격과 파리 코뮌의 권력이갖는 민주적 요소들에 관한 고찰을 결합해, 마르크스의 사유로부터 ‘정치적인 것’을재구성하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논의는 국가사멸론이라는 목가적 유토피아론이 성립불가능한 사유이며 동시에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전제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이 글은 오늘날 계급투쟁을 대항정치의 시각에서 사유하고자 한다.

      • KCI등재

        ‘순수하게’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와 그 비판자들―

        조효원 ( Hyowon Cho ) 한림과학원 2021 개념과 소통 Vol.- No.27

        법학자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 사상은 통상 민주주의 원리에 역행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결단주의에 기초한 슈미트의 정치신학은 극도로 복잡한 사유의 회로로 구성된 건축물이다. 따라서 그의 결단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맥락과 근원에 주의 깊은 시선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의 정치신학은 기본적으로 역사철학과 흡사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슈미트의 시간관념이 역사적 사건의 ‘일회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 뿌리를 둔 것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일회성에 대한 그의 관심은 독특한 형태의 일기 철학, 즉 부리분켄학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된다. 역사적 구체성을 중요시한 슈미트에게는 적대자들이 많았으며, 그는 이들과의 사상적 대결을 통해 자신의 정치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의 사유의 중핵을 이루는 것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다. 즉, 그의 결단주의는 ‘순수하게 정치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슈미트의 결단주의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해야 할 적대자는 법학자 한스 켈젠과 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이다. ‘정치적인 것’을 법학의 영역에서 배제하려 한 켈젠의 실증주의적 순수법학을 논파하기 위하여 슈미트는 ‘예외상태’ 개념을 주창했다. 그런가 하면, 스트라우스는 인간의 본성이 ‘무고한 악’에 의해 지배될 수 있다는 인간학적 통찰에 입각하여 ‘정치적인 것’의 성립 불가능성을 주장함으로써 슈미트의 홉스 해석 및 이에 기초한 정치신학의 핵심 주장에 치명타를 가했다. 이에 맞서 홉스를 자유주의에 맞서는 결단주의자로 옹립하기 위하여 슈미트는 오랜 세월 고투해야 했다. 생애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결단주의 정치신학이 처음부터 패배자의 사유였음을 인정한 슈미트는 일기를 통해 자신의 사유가 19세기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의 허무주의에 젖줄을 댄 것임을 시사한다. 즉, 슈티르너의 무신론적 사유가 슈미트의 부리분켄적 역사철학의 주요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슈티르너의 극단적 개인주의를 온전히 수용할 수 없었던 슈미트는 자신의 정치신학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는 생각을 끝까지 고수했다. 요컨대, ‘순수하게 정치적인 것’은 초개인적 허무주의와 기독교의 기묘한 결합에 의해 탄생한 사상이다. Most readers find Carl Schmitt’s decisionism rather a perilous stance, considering it to have pernicious anti-democratic tendencies. His decisionism is, however, far more complex than it appears at first sight. To appreciate it rightly, we should take a careful look at the context to which he applied it, as well as at its origins. Schmitt’s political theology, which derives from his decisionism, is actually similar, in many respects, to the philosophy of history represented by Walter Benjamin, among others. When it comes to the notion of time, however, Schmitt diverges from such thinkers by his emphasis upon the singularity [Einmaligkeit] of historical events. His fascination with the uniqueness of historical and political vicissitudes is expressed most clearly in his idiosyncratic conception of the act of keeping a diary, i.e., buribunkology [Buribunkologie]. Seeing himself as a Buribunk who was solely concerned with ‘the concept of the political’, Schmitt had a great many opponents who condemned his decisionistic notion of jurisprudence. In this regard, two Jewish intellectuals are worthy of notice, among many others: the jurist Hans Kelsen and the political philosopher Leo Strauss. In fact Schmitt only disseminated his own concept of a ‘state of exception’ after Kelsen had proposed the idea of a ‘pure theory of law’, which derives from a positivist idea that Schmitt detested. And Strauss very perceptively pointed out that the anthropological premise upon which Schmitt’s political theology depends is unsustainable in the face of what Strauss called ‘innocent evil’. Indeed, after Strauss’demolition of Schmitt’s political theology, Schmitt was deeply perturbed, struggling for decades to overcome the resulting trauma. In the end, however, Schmitt admitted that he had been vanquished from the outset. In a diary entry he intimated that he contrived his political theology in response to the nihilistic philosophy of Max Stirner. Yet, Stirner’s nihilistic egoism could not wholly absorb Schmitt, who considered himself a devout Catholic, whatever he meant by that.

      • KCI등재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무페의 비판

        이진현 대한철학회 2023 哲學硏究 Vol.167 No.-

        This paper deals with Mouffe’s Critiques of Rawls’ Political Liberalism. Rawls established a political philosophy by arguing for the ‘priority of right over good’, ‘reasonable pluralism’, ‘well ordered-society’, ‘individualism’, ‘public reason’, and ‘overlapping consensus’. This paper will review these contents. Mouffe posits that Rawls’ Theory of Justice is in fact a mere extension of moral philosophy. Rawls does not make a distinction between moral discourse and political discourse, so his theory of justice is moral reasoning applied emphasizing the normativity treatment of the political conception of justice. Mouffe criticizes Rawls’s liberalism as characterized through a rationalist and individualist approach as it can be harmful in the destruction of community values and of public life, thus concerning herself with ‘political antagonism’, ‘hegemony’s society’, and ‘agonistic pluralism’. In the sphere of political discourse, she distinguishes between ‘the political’ and ‘politics’. The political refers to this dimension of antagonism, and politics is affected by the domain of the political. Mouffe’s agonistic pluralism energizes political philosophy and leads to a new interpretation of political philosophy, seeking an agonistic model of equal participation that can respect various identities of citizens and groups. This paper criticizes Rawls's political liberalism from Mouffe's radical and competitive point of view in a reality where political dynamism and active debate have disappeared as our political reality prioritizes political stability through law and law enforcement. The review is expected to give implications for looking at our political reality. Through their debate, I would like to suggest that it is necessary to seek new dynamic and competitive politics through a competitive and pluralistic political philosophy while discussing political philosophy within the symbolic framework of liberal democracy. 이 논문은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무페의 비판을 다룬다. 이를 위해서 좋음에 대한 옳음의 우선성, 근대성 비판, 질서정연한 사회, 정치 없는 정치철학이라는 내용으로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검토할 것이다.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무페의 비판을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 있겠다.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정의관의 규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도덕적 언어와 정치적 언어를 구분하지 않고 도덕적 언어로 제시되었다. 둘째, 합당한 다원주의에서 강조하는 합당함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치 이념을 존중하는 것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다원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 셋째, 인격체로서 시민을 제시하지만 정치체제와 연결된 시민 개념이 없다. 넷째, 질서정연한 사회라는 개념은 근본적 불확실성에 있는 현대 사회를 반영하지 못한다. 다섯째, 정치와 구별되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논의가 없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 무페는 적대와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합당한 다원주의가 아닌 경합적 다원주의, 적대를 정치적-윤리적 이념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경합적 관계로의 전환, 질서정연한 사회가 아닌 헤게모니 구성체, 제도적 질서로서의 정치가 아닌 인간 공존을 위한 실천과 관계하는 정치적인 것을 제시한다. 이 논문은 우리의 정치 현실이 법과 법의 집행을 통한 정치적 안정성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정치의 역동성과 활발한 쟁론이 사라진 현실에서,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무페의 급진적이고 경합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는 내용을 검토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 현실을 바라보는데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는 이들의 논쟁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상징적 틀 내에서 정치철학을 논하면서도 경합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정치철학을 통해, 역동적이고 새로운 경쟁적 해석이 가능한 정치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

      • 荀子철학의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에 대한 아렌트적 해석

        안효성(Hyo-Sung, An)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문화연구소 2010 철학과 문화 Vol.21 No.-

        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의 구분을 따르자면,‘정치(politics)’란 정치적 현상의 사실적(존재적) 수준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은 이런 정치현상의 형이상학적(존재론적) 조건과 관련된 것으로, 정치를 정치일수 있게 해주는 본질 또는 토대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러한 구분을 이어받아 ‘정치적인 것’에 주목하여 정치의 고유한 위상과 가치를 설명하고 정치를 재정립한다. 아렌트는 윤리나 경제에 종속되지 않는 본연의 정치를 보려했고, 철학의 지휘를 받는 정치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순수한 메타 정치학에 도달한다. 그녀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인간의 세계에서 정치 자체의 존재론적 맨얼굴을 발견한 학자라 할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동양에서 정치 자체의 존재론적 맨얼굴을 감각적으로 알아본 선구적 철학자로 순자(荀子)를 지목한다. 이 글은 순자 철학의 일면을 아렌트적 시선에서 해설해 봄으로써, 순자가 ‘정치행위’의 차원에서 일종의 ‘정치적인 것’을―선명하게는 아니더라도―의식하고 사유하였을 가능성을 부각시킨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실험이며 다분히 편벽된 해석이 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업이 순자 철학에 대한 통상적 해석에 새로운 자양분을 제공하고 순자 철학에 내재한 정치철학적 독특함과 정치행위 능력에 대한 통찰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根据claude Lefort的区分,所谓‘政治’是政治现象里活动的事实(存在)。相反,所谓‘政治的那个’是与这些政治现象有关的存在论的条件,也就是说,这是政治的本质。Hannah Arendt继承了这个区分而重视了后者,说明了政治本身的地位和价值而确立了政治的意义。Arendt要寻找没有约束伦理和经济的政治观念,并拒绝了哲学的统治下的政治,而却达到了纯粹的元政治学。可以说,她是一位存在与人类的世界上能够发现政治本身的学者。本文提出荀子为发现政治本身的先求哲学家,通过依据Arendt的角度解释荀子哲学的一面,指出荀子是能够意识到政治行为上的‘政治的那个’。本研究确实是个新的试图,因此可能会受到瞩目。但是,笔者认为,基于本研究可以提供对荀子哲学的新解释,而且能够发现荀子哲学所具有的与政治哲学有关的含义以及对政治行为能力的独特看法。

      • KCI등재

        이청준 문학에 드러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연구 -「수상한 해협(海峽)」, 「제 3의 신(神)」, 「그림자」를 중심으로

        김남혁 ( Nam Hyuk Kim ) 순천향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Vol.31 No.3

        이 논문은 2003년에 완간된 열림원판 이청준 소설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단편과 희곡을 통해서 그동안 선행 연구에서 이루어진 이청준 소설에 대한 상찬(賞讚)과 비판의 시각을 조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청준 소설에서 자유만을 읽어내는 선행연구들과 평등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연구들은 이청준 소설을 상반되게 해석하고 있지만 사실상 ‘정치적인 것’의 의미에 대한 사유를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한계를 지닌다. 실제로 이청준 소설에서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이분법적으로 양분되지 않는다. 이청준 소설에서 정치적인 것은 자유에 대한 옹호가 무한 상대주의로 변질되는 경우와 평등에 대한 옹호가 집단에 내재한 구성적 타자를 은폐하게 되는 경우 모두를 경계하게 한다. 이청준 소설은 제도 정치를 초과하는 정치적인 것이 어떤 방식으로 출현하는지 말해주고, 지배 메커니즘이 정치적인 것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는지 폭로한다. 정치적인 것들을 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는 지배자들의 물리적인 폭력, 폭력을 숨긴 관용, 의사(擬似) 정치 체제가 있다. 정치적인 것들의 출현을 봉쇄하는 지배 메커니즘은 2장에서 살펴볼 것이고, 권력자의 지배 메커니즘이 체제 정치로 발전될 경우 출현하는 의사정치 체제의 문제는 3장에서 살펴볼 것이며, 지배 메커니즘과 의사 정치 안에서는 절대로 말해질 수 없는 정치적인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말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4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더불어 세 작품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개작’, ‘연극’, ‘우화’가 단순히 미학적 새로움만을 위한 기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This paper explores the political elements in Lee Cheong-jun`s short stories and plays which are not included in his complete works published in 2003. The preceding studies focusing on either liberty or equality have common limitations, for they tend to reduce the thoughts on meaning of “political things.” In fact, the issues of liberty and equality cannot be divided dichotomically in his works. His works warn against both cases that the advocation of liberty turns into infinite relativism and that the advocation of equality into concealment of constitutive “others” in the group. His novels reveal that how the “political things” exceeding a political system appear. Further they betray how the “political things” can be controlled by such ruling mechanism as physical violences, quasi-political system, false tolerance hiding violence.

      • KCI등재

        질서와 진보의 교차적 동학으로서의 실존철학적 변증법

        정병화(Chung Byung Hwa) 한국정치학회 2011 한국정치학회보 Vol.45 No.4

        본 논문은 일차적으로 세계-내-존재(being in the world)로서의 인간의 필연적 세계 귀속성뿐만이 아니라 세계에로의 존재(being to the world)로서의 인간의 개방성을 강조하는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의 실존철학적 입장에서 변증법적틀을 재구성해보는데 있다. 실존철학적 변증법은 구조에 대한 반성과 재생산의 문제를 구조의 공시적 차원?구조 그 자체의 운동성?과 통시적 차원에서 함께 다룬다. 이러한 재구성의 맥락에서 본 논문은 ‘정치적인 것’과 ‘정치적 행동’을 새롭게 다루고자 한다. 첫째,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재 고찰한다. ‘정치적인 것’은 구조의 공시적 차원과 통시적 차원의 교차지점에서 형성된다. 특히, 공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의 운동성에 대한 고려는 정치공동체 구성원의 ‘정치적 삶’(political life)과 ‘정치적 입장’(political position)을 구분시킬 뿐만이 아니라, 양자의 상호관계를 명확히 한다. 둘째, 정치적 행동의 의미를 재 고찰한다. 정치적인 것에 기초하여 정치적 행동(political action)의 범위와 조건을 기술한다. 특히, 이것은 소통을 위한 공적 영역의 구성과 관계한다. This article is to aim the reformation of dialectic frame in the context of the existential philosophy of M-Maurice Ponty. The dialectic of existential philosophy considers the reflection and the reproduction of structure on synchronic dimension as well as on diachronic dimension. In such a reformation, this article renews ‘the political’ and ‘the political action’. ‘The political’ is formed at the intersection where synchronic dimension meets diachronic dimension. Specially, the idea of ‘the movement of structure at synchronic dimension’ makes ‘the political’ divided into ‘the political life’ and ‘the political position’. Besides, it makes the relationship of ‘the political life’ and ‘the political position’ clear. On the basis of the understanding and the analysis on ‘the political’, this article describes the range and conditions for ‘the political action’, which are related with the formation of public sphere for mutual underst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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