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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이론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데리다 사상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 : 데리다의 로고스중심주의와 이항대립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김영주(Kim, Young-Joo) 한국NGO학회 2004 NGO연구 Vol.2 No.2

        자크 데리다가 기존의 서양학문을 ‘로고스중심주의(Logocentrism)’라고 비판하며 도전하는 의도는 엄청나다. 로고스중심주의는 서양사상의 뿌리임과 동시에 수렁이다. 기존의 시민사회이론도 당연히 그 비판의 대상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그 정도에 차이가 있다. 시장주의 보수적 관점과 사회주의 진보적 관점은 로고스중심주의에 갚이 젖어 있지만, 시장주의 진보적 관점과 생태주의적 관점은 로고스중심주의에서 많이 벗어나 있으면서도 그 잔재가 아직 깊이 박혀있어 보인다. 그러나 데리다 사상이 사회이론으로 자리 잡는 데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데리다 사상은 서양사상을 해체하는 것에 머무른 것이다. 높은 태산을 오르다가 도중에 멈추어 버린 셈이 된다. 그래서 사회과학적 접근을 시도할 수 없는 ‘허무주의’로 보이게 되었다. 만약 이 문제점을 잘 극복한다먼, 데리다 사상은 새로운 차원에서 새로운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는 엄청난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리다 사상의 새로운 극복으로 새롭게 모색해야 할 사회과학이론과 함께 시민사회이론도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야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그 동안의 시민사회이론의 뿌리를 다시 검토하여, 그 동안의 시민사회이론이 가지고 있는 ‘로고스중심주의의 잔재’를 드러내고 새롭게 접근하여, 더욱 튼튼하고 풍요로운 시민사회이론의 뿌리를 다져야 할 것이다. 이 논문은 구체적인 시민사회이론을 새롭게 작업하는 논문이 아니다. 그 가장 밑바닥이 되는 사회과학이론의 뿌리에서 기초를 닦음에, 데리다 사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사회과학이론과 시민사회이론의 새로운 접근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논문이다. 데리다가 서양사상을 로고스중심주의로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사회과학적 관점을 살려 다시 정리하고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데리다 사상이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도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기존 시민사회이론의 뿌리에도 데리다가 강렬하게 비판하는 로고스중심주의가 그대로 박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It is very suprising that J. Derrida critisize and challenge the Logocentrism of the Western thought. the Logocentrism is the root and the trap in the Western thought. Similiarly, present NGO theories must be criticized by Derrida s thought. But there is a important problem as a Social-science theory in Derrida s thought. It comes to an end at the Destruction of the Western thought. So his thought is attacked with Nihilism . If his thought overcome this problem, it will have a new upgrade jumping higher in the Western thought. And if his thought accomplish this overcoming, we can try for newly upgraded Social science theory and NGO theory. This article is not a concrete study in Social Science theory and NGO theory, but is a study bottomiing root of Social science thoory and NGO theory by a new trial overcoming J. Derrida s thougrt. Therefore this article rearrange Derrida s Logocentrism-critique at Social scientific viewpoint, and discuss Social scientific potentiability in Derrida s thought, so it search for adaptability in Social science theory and NGO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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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구조주의의 탈근대교육적 함의

        노상우,안오순 한국교육학회 2008 敎育學硏究 Vol.46 No.1

        The theory of structuralism that appeared as a resut of Saussure's theory of linguistics early in the 20th century, succeeded in changing the traditional type of thinking based on human beings. However, Saussure's structuralism still maintains an influence on some elements of enlightenment-based thinking, especially on the binary opposition, fixation of signifier system, and totality. Attempts are made to discover structuralistic properties in Bruner's theory of knowledge structure, Schwab's theory of practicality, Bloom's taxonomy of educational objectives, and so on. Unfortunately, these educational theories fail to contain diverse and dynamic contextual situations of learning but are rather used to standardize and control children. De-modern thinkers including Derrida and Foucault overcame structuralism through the theories of deconstruction, the discourse of power/knowledge, and so on. Unstable signifier system continuously showing differance in time and space, transposition and transmission of binary opposition, and disintegration of a fixed sense of value, all of which were suggested by post-structuralism, demand disintegration of the subjective discourse of the enlightenment thought and the need to establish a relativistic sense of knowledge. This poststructuralism points to a de-modern educational philosophy that includes both the critique of the critic on the student-centered idea, and the relativistic view of knowledge on curriculum. 본 연구의 목적은 구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후기구조주의의 철학적 관점을 논의하고, 그것들이 현대교육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하는가를 알아보는 데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첫째, 20세기 구조주의에 기초한 교육적 효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이 논의에서는 특히 Saussure의 구조언어학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것의 영향을 받은 Bruner의 ‘지식의 구조’와 그의 또 다른 학설인 ‘인지발달이론’, Schwab의 ‘실천성이론’, 그리고 Bloom의 ‘교육목표분류학’ 등에 내재한 ‘관계성’과 ‘총체성’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두 번째로는 후기 구조주의의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 Derrida와 Foucault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Derrida의 구조주의 비판의 핵심인 ‘이항대립과 로고스중심성’의 한계를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세 번째로는 후기구조주의 철학이 현대교육에 주는 의미를 ‘타자의 복권’의 관점에서 현행 학생중심 교육관을, 전통적 진리관 해체론에 내재한 ‘열린 지식관’의 관점에서 현행 교과를 지탱하고 있는 객관주의적 지식관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위와 같은 논의를 통해 본고는 후기구조주의가 계몽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작동하고 있는 현대교육의 한계를 드러내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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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형이상학과 그 새로운 가능성

        조홍길 대동철학회 2006 大同哲學 Vol.35 No.-

        서양철학에서든지 동양철학에서든지 간에, 그 주류는 욕망을 철학의 타자로서 억압하고 배제해 왔다. 특히 서양철학에서는 플라톤이 욕망을 결핍으로서 해석하여 욕망을 죄악시하였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이성에 의해 욕망을 제어하고 지배하려는 로고스중심주의적 욕망담론을 수립하였다. 이러한 로고스중심주의적 욕망담론은 헤겔에 이르기까지 2500 년 동안 서양철학을 지배해 왔다. 이 글은 이러한 로고스중심주의적 욕망담론을 극복함으로써 욕망담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보려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서, 플라톤, 헤겔, 라캉, 들뢰즈 그리고 마사히로의 욕망담론이 검토되었다. 이들의 욕망담론이 검토된 뒤에 이 글에서 새로운 욕망담론의 가능성을 위한 다섯 개의 단초들이 제시되었다. 첫째로, 욕망을 삶의 원동력으로서 긍정적으로 간주하라. 둘째로, 욕망의 다양한 얼굴을 인정하라. 셋째로, 어떻게 욕망이 사회적으로 생겨나고 변형되는 방식을 파악해라. 넷째로, 마음을 비워라. 다섯째로, 몸의 욕망을 생명의 욕망으로 전환하라. Whether in oriental philosophy or in western philosophy, the main stream of philosophy had repressed and excluded desire as the other of philosophy. In particular, Platon established logocentric discourse of desire which tried to control and govern desire by reason. This logocentric discourse of desire had dominated until Hegel during 2500 years. This treatise is an attempt to present new possibility of discourse of desire by overcoming this logocentric discourse of desire. For this, I examined discourses of desire of Platon, Hegel, Lacan, Deleuze and Masahiro. After examining their discourses of desire, I suggested five clues for new possibility of discourse of desire. First, consider desire as life's motive power. Second, Recognize the various faces of desire. Third, understand the way in which desire comes into existence and is transformed socially. Fourth, empty your mind. Fifth, convert desire of body into desire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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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의 언어 비판

        이선 한국니체학회 2019 니체연구 Vol.35 No.-

        본 논문은 니체의 서양 철학의 이성에 대한 비판이 언어의 이성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니체의 언어 분석은 서양의 언어가 서양 철학의 로고스중심주의의 특징인 의식적 사고, 이성적 도식, 이성적 신화에 어떻게구속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니체는 서양 철학의 사유가 언어 문법과 언어적 도식, 언어의 신화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보여주는 한계, 즉 언어적 이성의 한계를 비판한다. 이 글은 니체의 언어 분석이 그가 서양 철학의 로고스중심주의의 한계를 비판하고 로고스중심주의를 벗어난 철학 사상을 전개하는 데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드러낼 것이다. This paper reveals Nietzsche’s critique of Western Philosophy’s Logos originated from the critique of Language’s Logos. Nietzsche’s analysis exposes how the Language of Western is restrained by the conscious thinking, the schematization of Logos and the mythology of Logos, which are the attributes of the logocentrism of Western Philosophy. In other words, Nietzsche criticizes the limitations arising from the Western Philosophy’s way of reasoning that adheres to the linguistic grammar, the linguistic schematization and the mythology of Language, which means Nietzsche criticizes the limitations of Language’s Logos. This paper is intended to reveal how Nietzsche’s analysis of the Language plays a core role of unfolding Nietzsche’s philosophical idea which criticizes the limitations of the logocentrism of Western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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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kulturelle Philosophie nach Hegel

        Ralf Beuthan 한국헤겔학회 2017 헤겔연구 Vol.0 No.42

        Hegel gilt in der Diskussion der interkulturellen Philosophie als Problemfall. Die allgemeine Kritik an Hegel uberblendet die Moglichkeit, das Projekt der interkulturellen Philosophie nach Hegel, d.h. im Anschluss an Hegelsche Grundgedanken weiterzuentwickeln. Der vorliegende Beitrag zeigt eine solche Moglichkeit auf. Es geht darum, Hegel fur die aktuelle Diskussion der interkulturellen Philosophie neu zu entdecken und dabei das Projekt der interkulturellen Philosophie begrifflich zu scharfen. - Der Beitrag wird die Kritikpunkte des “Eurozentrismus“ und des “Logozentrismus“ entkraften und die Grundzuge einer interkulturellen Philosophie nach Hegel verdeutlichen. Es wird die Moglichkeit aufgezeigt, wie sich mit Hegel die These eines “maßvollen Universalismus“ formulieren und so ein diffuser Relativismus zuruckweisen lasst, ohne dabei in die “Eurozentrismus“-Falle zu geraten. 상호문화철학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헤겔은 문제 사례로 간주된다. 헤겔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 가운데서 우리는 헤겔 이후의 상호문화철학의 기획을 헤겔의 근본사상과 관련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본 논문은 상호문화철학에 대한 현재의 논의에 있어서 헤겔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상호문화철학의 기획을 개념적으로 명료하게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유럽중심주의’와 ‘로고스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점들을 무력화하고, 헤겔 이후의 상호문화철학의 근본적인 특징들을 명료화할 것이다. 이로써 헤겔과 함께 ‘적절한 보편주의’ 테제를 정식화하고, 그럼으로써 무질서한 상대주의를 반박하면서도 ‘유럽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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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 시학에 나타난 시각의 로고스 연구

        조혜경(Cho Hye Kyung) 한국노어노문학회 2012 노어노문학 Vol.24 No.4

        본 논문은 근대적인 사유체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시각의 문제를 시각을 통한 이성적인 판단과 사유, 즉 시각의 로고스 및 권력의 차원에서 다양하게 조망하고 궁극적으로 작가 톨스토이가 시각적인 사유를 통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소설 『부활』을 중심으로 하여 파악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 특히 소설 『부활』에 나타난 주인공 네흘류도프의 사유는 카츄샤와의 관계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는 ‘이기적인 봄’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 시키고 나서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를 위해 카츄샤와 결혼하려 하였다. 하지만카츄샤의 부탁으로 무고한 죄수들의 석방을 위해 고위층의 귀족들과 법조계 인사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삶에 내재된 위선과 가식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기적인 봄에 근거한 자아중심적 사유의 틀을 벗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변화와 각성의 과정에서 시각은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네흘류도프가 감옥 철문에 달려 있는 ‘눈(глаза)’이라 불리는 구멍을 통해 죄수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자신의 바라 봄이 그들을 향한 보이지 않는 권력의 행사임을 알고 수치심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법정에 선 카츄샤의 모습을 보고 난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법정에서 권력을 쥔 자들의 부조리함과 그들이 다른 인간에게 행하는 온갖 해악과 단죄를 목격하고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간수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눈’이 아니라 죄수들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하면서 ‘연민의 눈’으로 그들을 점차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관계에 있어 시각은 바라보는 주체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해석되고 사용되어질 수 있기에 그것은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 윤리적인 비전을 지녀야 하며 시각에 근거한 판단은 늘 시각 자체의 제약과 모순으로 인해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톨스토이는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 시각이 하나의 권력이 될 수 있으므로 나를 위한 이기적인 봄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봄을 지향할 때 시각의 로고스가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오만의 벽을 뛰어 넘어 타자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소설 <<부활>>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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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Pomponazzi의 플라톤주의적 사유 : 수용과 거부

        조규홍 대동철학회 2006 大同哲學 Vol.35 No.-

        이 글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 이해에 고전적인 사유가 어느 정도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유입되었는지 재고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는데, 특히 당대 철학자 폼포나치(1462-1525)의 입장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은 다른 시대들과 다름없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거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스콜라 철학의 기틀을 마련해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중세를 거부하던 새로운 시대적 경향과 더불어 멀어졌던 반면, 그로 인해 밀려났던 플라톤 철학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고 사람들은 평가한다. 그러나 당장 근대는 또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적인 전통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적극적인 수용 태도를 보였던 데에 반해 플라톤주의적인 전통에 대해서는 매우 거부적인 반응을 보인다. 우리의 정신사 안에서 상대적으로 짧게 지나쳤던 르네상스 시대는 그럼에도 소위 인문주의(Humanism)라는 특징적인 용어를 기억할 만큼 인상적인 시대사조를 남겼으나, 이 시대의 철학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매우 적다. 과연 이 시대의 인문주의 철학은 어떤 측면에서 근대의 인간관에 영향을 미쳤을까? 오늘날 반성하는 근대의 빗나간 인간관(인간중심의 사유)의 원천으로서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관을 기억해야 할지? 아니면 그 같은 근대의 파행이 정작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관을 거부함으로써 초래된 것일지? 생각해볼 만하다. 그것은 보다 바람직한 인간관을 오늘날에도 꾸준히 마련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에 몇몇 전문영역을 나누어 저마다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 시도하는 소규모 협력연구라는 차원에서 이 소고에서는 다만 플라톤주의적인 사유형식에 국한시켰다. 다시 말해 폼포나치의 ꡔ영혼의 불멸성에 관하여(1516)ꡕ를 중심으로 그가 불멸하는 인간영혼에 관하여 자신의 논지를 밝히는 데 있어 플라톤주의적인 사유가 얼마만큼 그리고 어떤 의미로 작용하고 있는지 헤아려 보았다. 언뜻 상기 작품의 제목에서는 폼포나치가 인간의 ‘불멸하는 영혼’을 두둔하였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실제 ― 철학적인 관점에서 ― ‘사멸하는 영혼’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편 플라톤 철학이 르네상스 시대에 또 달리 어떻게 이해될 수 있었고, 나아가 그와 같은 경향이 다시금 플라톤주의적인 사유를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부하도록 이끌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어쩌면 그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며, 전반적으로 고전적 사유가 어떤 관점에서 르네상스시대에 ‘부활’하였는지 좀 더 분명하게 되새기는 데에도 유익할 것 같다. Diese Arbeit engagiert sich mit Renaissance Philosophie, die relativ sehr kürzlich in unserer Geistgeschichte verblieb, dennoch uns ihre Charakteristik als Humanismus impressiv aufgehoben ist. Man spricht, dass M. Ficino und G. Pico für Renaissance Philosophie vertretbar sind und sogar damals Ficino als ein representativer Denker der Platonisten einerseits ist und andererseits Pico als ein Eklektiker zwischen Platonisten und Aristotelisten ist. Dann wäre hier sinnvoll, wenn P. Pomponazzi(1462-1525) deshalb vorgestellt würde, weshalb er bisweilen als ein Aristotelist geschäzt wird. Diese Studie hat allerdings mit seines Hauptwerk de immortalitate animae(1516) begonnen und am minimalisten ― d.h. nur comparativer Ansicht mit Platonisitischem Denken nach ― analysiert, denn sie unter ein einheitlicher cooperativer Forschung an anderen Arbeiten teilgenommen ist, und so folglicherweise ist zu beschriben: Pomponazzi hat Denken von Platon bzw. antiken Platonisten alternativ akzeptiert, wie z.B., wenn es von seiner Meinung in bezug auf einer Aristotelistischen Einsicht ("Nequaquam sine phantasmate intelligit animae"[De anima III 7, 431a.16f]) ununterschiedlich zu sein scheint. Wieder zu sagen ist, dass er für sich teilweise Platonistisches Denken eingenommen und selbst interpretiert, z.B. er hat zwar einige seelische Lehre(Alkibiades, Phaidon) und ungeschriebene ― ohne Buchstaben ― Lehre von Platon(Epistola 7, Timaios etc.) akzeptiert, aber die noch hauptsächliche Lehre von dem Wesen der menschlichen Seele(Sophistes 263e; Theaitetos 189e; Philebos 39c-e; Nomoi 892a etc.) abgesagt, weil sie von den naturphilosophischen und medizinischen Gründen unaufweisbar sei. Hiermit könnte man erkennen, was für eine Absicht und einen Standpunkt der Rede er immerhin gehabt hat. Es handelt sich also für ihn mit emipirischem Verständnis-Horizont. Danach ist es innerhalb des Horizontes noch sagbar, es benötige, Moralität des Menschen wieder zu schreiben, nämlich nicht aufgrund der Unsterblichkeit der Seele, sondern ihrer Sterblichkeit. D.h. ohne Belohnung oder Bestrafung nach dem Tod könnte man über die moralische Tätigkeit des Menschen mit Ernst reden. Diese Ansicht befindet sich auch bei I. Kant(1724-1804), dem neuzeitlichen Denker. In diesem Sinne kann man schlechthin sagen, dass Pomponazzi direkt ein eigentümlicher und wichtiger Stifter der Neuzeit ist. Ob er aber wissenschaftlich richtigerweise gedacht hat oder nicht, wenn er ohne weiteres philosophische Wahrheit und Glaubenswahrheit trotz deren Unterschied bzw. Auseinandersetzung beide alle angenommen hat, wäre es noch eine andere F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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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전의 형이상학과 서발턴 재현양상의 상관성 연구-박범신 『은교』를 중심으로-

        이미화(Lee, Mi-Hwa) 우리문학회 2020 우리文學硏究 Vol.0 No.67

        본 논문은 현전의 형이상학과 탈식민적 페미니즘의 상관관계를 서발턴의 재현양상을 통해 살펴보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서발턴 여성의 재현에서 불가피하게 부딪치는 대상화 문제가 현전의 형이상학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던 것이다. 박범신의 은교는 남성 재현자(이적요, 서지우)의 글쓰기에 의해서 서발턴 여성(은교)의 폐제가 일어나고 있다. 이적요 시인이 했듯이, 부재하는 ‘처녀’를 맹목적으로 상상하는 ‘이 위험한 대리보충’은 『은교』에서 은교를, 처녀를 대표하는 동시에 순결하지 않은 처녀 혹은 창녀로 묘사하게 만든다. 이렇게 은교는 남성 재현자들에 의해서 드러나는 듯 지워지는 흔적으로 남는다. 즉 『은교』는 현전은 결코 현전하지 않는다는 선험적 의미를 지닌 작품인 것이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orrelation between the Metaphysics of Presence and Postcolonial feminism through the reproduction of the Subaltern. The study examined a case in which the issue of objectification inevitably encountered in the reproduction of a Subaltern woman was closely related to the Metaphysics of Presence. Park Bum-shin"s Eungyo is foreclosure by the writing of a male reproducer (Lee Jeok-yo, Seo Ji-woo). In this dangerous proxy supplement, poet Lee Jeok-yo blindly imagines the missing “my virgin,” portraying Park Bum-shin"s Eungyo as a virgin or prostitute who is not pure, while simultaneously representing her in Eungyo. As such, Eungyo remains at risk of being erased as if it were originally presented by male reproducers. In other words, Eungyo is a work with a priori, meaning that the present is never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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