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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해방기 북한의 문예대중화 운동과 시론

        박민규(Park Min-kyu) 한국근대문학회 2012 한국근대문학연구 Vol.13 No.1

        이 연구는 해방기 북한의 문예대중화 운동을 상세히 검토하면서 시 분야에 나타난 대중화 시론들의 양상과 그 특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일차적 자료에 충실하여 북예총과 북문예총의 문예대중화 운동 및 시 대중화론의 전모를 실증적으로 맥락화하고자 했으며 이 바탕 위에서 분석과 평가를 시도하였다. 1920~30년대 카프의 문예대중화론에 치우쳤던 그간의 연구 경향에 일정한 문학사적 보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첫째, 북예총은 결성 당시부터 통일적이고 조직적인 문예대중화 운동을 강령으로 내세우며 출발하였다. 특히 문예써클의 활성화는 문예대중화를 위한 핵심적 사업이었다. 북예총은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써클을 통해 토지개혁, 노동법령, 중요산업 국유화령 등의 민주개혁 정책들을 대중에게 선전하고자 했다. 문예써클은 면, 시, 군, 도로 이어진 아래로부터의 군중적 기반 속에서 빠르게 형성되었다. 이를 근거로 북예총은 당시 남한의 문학가동맹의 문예대중화 운동을 문단주의적인 것으로 비판하면서 문학상의 평양중심주의를 내세우기도 한다. 둘째, 북예총의 문예대중화 사업은 민주개혁의 대중적 선전에 치중하느라, 목표로 했던 대중 자신의 자발적 문화 창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대중적 일상어를 시에서 다루라는 중앙 문단의 요구와 달리 시단의 창작적 결과들은 순수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등 괴리를 보이고 있었다. 이를 해소하고자 북예총은 순수의 배격과 아울러 정치주의 문학의 창작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문적 문학 단체인 북문예총을 결성하게 된다. 셋째, 결성 초기의 북문예총은 창작 본신에의 전념이라는 설립 목표와 달리, 도시군과 면리동 인민위원회의 선거 정국에 직면하여 승리를 위한 선거해석 사업에 총동원돼야 했다. 표심을 위해 제반 민주개혁이 선전되어야 했으며 이를 위해 시인들에게는 선전 가요시의 제작이 요구되었다. 시의 대중화 테제를 정치적 목적주의에 극단적으로 수단화한 예라 할 수 있다. 창작 본신으로의 방향 전환은 선거가 끝나면서 본격화될 수 있었다. 넷째, 창작의 전념을 위해 북문예총은 그간의 써클 사업을 직총 문화인부에 넘겨주고 시집 생산에 집중한다. 그렇다고 문예의 대중화를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북문예총은 창작의 전념과 문예의 대중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인 양성에 주력한다. 기성 시인의 공백을 북문예총은 재북 신인들의 육성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기성 문단의 반발이 있었지만, 북문예총은 신인에 대한 강력한 원조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다섯째, 신인 대망론 속에서 안함광은 시집 『전초』의 평을 통해 신진시인들을 격려하고 나아가 기성 시인들을 감정적으로 비판한다. 당시 북한 시단의 내부에 신구 갈등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윤광은 시단을 새세대와 낡은 세대로 양분할 정도였다. 특히 신진 시인들은 혁명적 낭만주의 도식을 시화하면서 시단의 주류가 되어간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시는 남녀의 사랑 및 애정 윤리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서정성까지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대중 속에서 배출된 김상오 같은 신인에게도 서정의 단초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여섯째, 서정의 발아에 대해 북문예총의 내부에서 상반된 입장이 나타난다. 안함광과 이기영은 서정의 가치를 중요하게 인정했지만, 그것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론에서 서로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논의는 서정의 대중적 감수성에 대해 혁명적 낭만주의 및 고상한 애국주의의 도식을 관철시켜야 하는가의 문제에서 갈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서정시는 새것 대 낡은 것의 도식에 따라 일반 대중의 정적인 서정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 같은 북한 서정시의 영역 축소는 뒤이어 발발한 전쟁 때문에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 KCI등재

        조선문학가동맹 '詩部'의 시 대중화 운동과 시론

        박민규(Park Min-kyu) 한국시학회 2012 한국시학연구 Vol.- No.33

        이 논문은 해방기 남한의 대표적인 진보적 민족문학 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문맹)의 조직적 시운동을 검토하고, 문맹의 시론들을 그 당시 시운동과의 상관성 하에 맥락화하면서 분석, 평가하였다. 특히 문맹의'시부위원회'가 전개한 활동의 궤적에 주목하였다. 시부(詩部)는 46년 2월에 문맹의 결성과 함께 조직되었다. 결성 초기에 시부는 '시의 대중화'를 주요 활동 방향으로 선언하지만,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구호에 그쳐 있었다. 이후 시 강연과 시 낭독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시 대중화 운동은 구체적인 것이 되어 갔다. 특히 각종 행사에서의 시 낭독은 대표적인 조직적 활동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초창기인 46년 상반기에 시부는 계몽화 운동의 소박한 취지에서 비정치적인 시까지도 다양하게 대중에게 보급하였다. 그러나 46년 중반에 미소공위가 휴회하면서 시 낭독은 대중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쪽으로 변화하게 된다. 특히 정치적 '분노'의 시와 시 낭독이 성행했는데, 김기림은 이를 신인의 육성이란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46년 하반기에 문맹은 잇따른 조직 개편과 대중화 결정서들을 마련하면서 문학대중화 방침을 더욱 강화해간다. 10월 항쟁을 거치면서 새로운 활로의 모색을 위해 문화 투쟁을 통한 대중과의 적극적 결속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시인들은 개편된 조직들의 전면에 배치된다. 특히 대중에 대한 관점이 기존의 계몽적 시혜성에서 정치적 연대성으로 변모하게 되자, 문맹의 서울지부 시부 위원장인 김광균이 이를 강하게 비판한다. 당시 추진되고 있던 문화공작자 혁신안이 결정적 원인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47년에 접어들어 시부의 시 낭독 행사는 대형화되고 종합예술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시 자체의 낭독에 그쳤던 46년과 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시 낭독은 대형 예술제와 문화공작대 등에서 음악, 연극, 무용 등과 협연된다. 이는 시 낭독의 종합예술화를 제안했던 조허림의 시론이 현실화됐음을 뜻한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대중의 정치적 결집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데 그 목적이 있었다. 훗날 김기림은 시 낭독의 공과를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검토하면서 앞으로 시 낭독이 대중의 전형을 파악해야 하며, 시사적 내용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하지만 문맹의 활동이 봉쇄된 상태에서 그의 주문은 현실화되기 어려운 과제로 남게 되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organized movement for poetry by Korean Writer's Alliance(Chosŏn-Munhakga-Dongmaeng), the representative organization of national literature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and analyzes and evaluates the poetics of it, contextualizing under the relation with poetry movement of the time. Especially, it focuses on the trajectory of activities developed by the Committee of Poetry Division in Korean Writer's Alliance. Poetry Division was organized with the establishment of Korean Writer's Alliance in February 1946. At the early period, it announces 'Popularization of Poetry' as an important direction of its activities, however, it ends in an abstract and emotional slogan. Movement for popularizing poetry becomes more detailed with the active development of poetry lecture and reciting. Reciting poems in various events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organized activities. In the first half of 1946, Poetry Division introduces various types of poems including nonpolitical ones with the simple purpose of enlightenment movement. However, in the mid-1946, the Joint Soviet-American Commission declared a recess and poem reciting changed into delivering political message to the public. Especially, reciting poems expressing political 'rage' is prevailed and Kim, Gi-rim positively assessed it at the level of fostering new figures. In the second half of 1946, Korean Writer's Alliance intensifies the policy of popularizing literature, carrying out a successive reshuffle and preparing Written Decision for Popularization. It changes the direction toward active unity with the public through culture struggle to seek a way out going through People's Uprising in October 1946. Poets are dispatched in the front line of reshuffled organization. When the viewpoint toward the public changes from the existing enlightening dispensation to political solidarity, Kim, Kwang-gyun, chairman of Poetry Division of Korean Writer's Alliance in Seoul strongly criticizes this. Innovation plan of culture craftsman seems to be the decisive reason for his criticism. Entering into 1947, the scale of poem reciting event of Poetry Division becomes larger and bigger and composite art. It is different from the event of 1946, which ends in reciting poem. From 1947, poem reciting accompanies with music, play, dance and so on at large scale art festival and by the group of culture craftsman. This means that the poetics of Cho, Hur-rim who suggested make poem reciting as a composite art has realized. However, the primary purpose of it was to draw political concentration of the public to the maximum. Later, Kim, Ki-rim said that poem reciting should grasp the stereotype of the public and not be biased to contents of current events, examining merits and demerits of poem reciting from the perspective of realism. However, his suggestion remains as a difficult task to be realized when the activity of Korean Writer's Alliance is bloc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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