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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철학(哲學)) : 원종(元宗)의 추숭문제(追崇問題)

        장세호 ( Se Ho Chang ) 한국사상문화학회 2009 韓國思想과 文化 Vol.50 No.-

        유가(儒家)가 이상적인 제도로 내세운 봉건제도는 종법(宗法)을 전제로 한다. 종법은 가족제, 가장제, 세습제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존존(尊尊)의 원리에 기초한 적장자(嫡長子) 상속제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가장은 가족을 통제하는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게 된다. `가무이존(家無二尊)` `가무이주(`家無二主)` 등의 표현이 단적으로 그 권력을 말해 준다. 가무이존은 바로 정통(正統)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정통은 가통(家統)을 바르게 하고, 왕통(王統)을 바르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가통의 측면에서는 한 가정에 두 아버지가 없는 것이며, 왕통의 측면에서는 두 임금이 없는 것이다. 유학의 본래 정신인 종법체제의 확립을 위하여서는 정통을 확립하여야 하는 것이다. 추숭문제(追崇問題)는 왕통과 가통의 문제 사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왕위계승문제가 종법에서처럼 적장자가 계승을 하게 되면 애당초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 그러나 왕통이라는 것은 꼭 적장자가 왕위를 승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제왕가(帝王家)에서는 승통(承統)을 중시하기 때문에 승통하는 것에 따라 위인후자(爲人後者)의 예법을 적용시켜, 父子의 도리를 행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대통(大統)에 입계(入繼)하기 이전의 사가(私家)의 정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통과 왕통을 엄연히 구별할 뿐만 아니라 왕통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래서 인조(仁祖)의 경우도 정원군(定遠君)이 비록 선조(宣祖)의 아들이라고는 하나 인조가 선조의 왕위를 계승하였다면 당연히 정원군을 원종(元宗)으로 추숭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사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Injo rised king for reforming the government. It is different to Senjo(宣祖) has succession by the Royal line. Injo set up a mausoleum in Chusong(追崇) Jongwonkun that daewonkun by Park ji ke and his disciple Yi ye kil and many people`s suggestion. Therefore Jung won kun becomes Wonjong. But Sake considered as set up a mausoleum in Chusong(追崇) has problem. Being Park ji ke persistents from quote no reasons and blamed. Also, Sake persistents not Jongwonkun(定遠君) was set up a mausoleum in Chusong but Nengwondaekun that Injo`s brother had to manage sacrificial rites. Sake`s blamed persistense constructs by all that Chunchu kang mock`s(春秋綱目) term. As two sun must not in the sky, two origin must must not in family is suggestion of Sake corrects tong. That is said keep in Jongtong(正統).

      • KCI등재

        元宗의 追崇問題

        장세호 한국사상문화학회 2009 韓國思想과 文化 Vol.50 No.-

        유가(儒家)가 이상적인 제도로 내세운 봉건제도는 종법(宗法)을 전제로 한다. 종법은 가족제, 가장제, 세습제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존존(尊尊)의 원리에 기초한 적장자(嫡長子) 상속제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가장은 가족을 통제하는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게 된다. ‘가무이존(家無二尊)’ ‘가무이주(‘家無二主)’ 등의 표현이 단적으로 그 권력을 말해 준다. 가무이존은 바로 정통(正統)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정통은 가통(家統)을 바르게 하고, 왕통(王統)을 바르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가통의 측면에서는 한 가정에 두 아버지가 없는 것이며, 왕통의 측면에서는 두 임금이 없는 것이다. 유학의 본래 정신인 종법체제의 확립을 위하여서는 정통을 확립하여야 하는 것이다. 추숭문제(追崇問題)는 왕통과 가통의 문제 사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왕위계승문제가 종법에서처럼 적장자가 계승을 하게 되면 애당초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 그러나 왕통이라는 것은 꼭 적장자가 왕위를 승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제왕가(帝王家)에서는 승통(承統)을 중시하기 때문에 승통하는 것에 따라 위인후자(爲人後者)의 예법을 적용시켜, 父子의 도리를 행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대통(大統)에 입계(入繼)하기 이전의 사가(私家)의 정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통과 왕통을 엄연히 구별할 뿐만 아니라 왕통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래서 인조(仁祖)의 경우도 정원군(定遠君)이 비록 선조(宣祖)의 아들이라고는 하나 인조가 선조의 왕위를 계승하였다면 당연히 정원군을 원종(元宗)으로 추숭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사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Injo rised king for reforming the government. It is different to Senjo(宣祖) has succession by the Royal line. Injo set up a mausoleum in Chusong(追崇) Jongwonkun that daewonkun by Park ji ke and his disciple Yi ye kil and many people's suggestion. Therefore Jung won kun becomes Wonjong. But Sake considered as set up a mausoleum in Chusong(追崇) has problem. Being Park ji ke persistents from quote no reasons and blamed. Also, Sake persistents not Jongwonkun(定遠君) was set up a mausoleum in Chusong but Nengwondaekun that Injo's brother had to manage sacrificial rites. Sake's blamed persistense constructs by all that Chunchu kang mock's(春秋綱目) term. As two sun must not in the sky, two origin must must not in family is suggestion of Sake corrects tong. That is said keep in Jongtong(正統).

      • KCI등재후보

        19세기 朝鮮 國王國葬에 관한 연구 - 純祖․憲宗․哲宗國葬을 중심으로 -

        안희재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2 한국학논총 Vol.37 No.-

        五禮 중 凶禮는 왕실을 직접 보살펴주는 선조의 귀신들이 産生되는 기제를 이루면서, 조선왕조 국왕승계의 이상적인 상태인 柩前承繼가 이루어지는 의례라는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조상신의 보우를 통해 국가의 안녕이 지켜지고, 이는 종묘․사직의 제사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서 증명된다. 또한 왕통의 승계, 세자책봉을 포함한 국가의 기간이 되는 결정들은 그것들이 朝廷에서 결정되었다 하더라도,宗廟에 계시는 혼령들에게 告由함으로써 비로소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이해하고 있다. 19세기는 조선후기 국왕권이 최고조에 달한 正祖의 치세를 이으며, 대비를 연결고리로 하여 大妃戚族이 국권을 專斷하는 시기다. 이 시기 조선에는 순조․헌종․철종 세 국왕의 국장이 있었고, 國王國葬의 특징은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顧命과 傳位遺敎가 없거나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嗣王이 어리거나 세자가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로 우연적 요소가 크다. 하지만 이를 기화로大妃가 國璽를 장악함으로써 遺敎를 대표하게 되었다. 둘째, 大妃의 位相이 강화되면서 대비에 관한 의례들이 설행되고, 마침내 의궤의 儀註로 자리잡게 된다. 절대적이었던 왕권의 위상이 흉례 행례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尊尊義理가 약화되고 家統체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철종이 家統으로서 純祖를 중시한 것도 이와 같은 경향이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왕실흉례 절차와 행례는 세도정치 주도층에 의해 오히려 중시되는 측면을 보이고 있다. 세도정치 주도세력의 권력획득·유지가 국왕국장 의례를 매개로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척족세도기의 흉례 의주에 變禮가 계속 추가되었지만, 凶禮 형식의 골간은 완강하게 지켜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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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 철학(哲學) : 미수 허목의 예송관

        장세호 ( Se Ho Chang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3 韓國思想과 文化 Vol.66 No.-

        유가의 계승제는 종법제도에서 나타나는 적장자 계승을 중시하고 있다. 적장자 계승은 조상의 대를 잇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 핵심적인 정신은 孝에 근거하고 있다. 그 계통을 잇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가통과 왕통에서는 尊을 중시한다. 즉 존의 대상이 바로 통을 승계할 경우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일반가정에서는 적장자 계승을 전제로 하여 존의 대상이 승계되지만 왕가의 경우에는 왕통을 계승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계승하는 사례와 다르다. 왕위계승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기 때문에 왕가에서는 일반인들처럼 적장자문제도 있고 왕위를 승계하는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왕위를 일반인처럼 적장자로 계승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적장자는 아니지만 왕위를 계승한 경우에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기해예송은 효종이 승하하고 인조의 계비이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효종을 위하여 상복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가 문제가 된 것이다. 효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소현세자가 이미 왕위계승을 전제로 하여 세자의 위치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상복을 입는 문제는 소현세자를 적장자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왕통의 측면에서 왕위를 계승한 효종을 별개의 문제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미수 허목은 효종이 조상의 정통을 계승하고 인조의 친아들이기 때문에 자의대비는 적장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재최삼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기년복으로 결정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Succession of Confucianism regards succession of eldest son in the clan rules system as important. Succession of eldest son that carries on a family line is based on filial duty. With carries on a family line, Family lineage and the Royal line is cosidered nobility. If object of nobility carried on line, It would appear concretely. In the original home object of nobility carried on line. but in the royal family is different with normal case. Because of succession to the throne regards preferentially, In royal family has twoflod. So there is case that the throne is succeed in eldest son. In the case The not eldest son and succession to the throne, there is many case. Kihaeyaesong is problem that Queen of Jayi is how to wear when Hyojong is dead. Before Hyojong sits on the throne, Sohyun already was proclaimed the crown prince and he was dead later. Problem of being in black is problem that recognition Sohyun as eldest son or recognition as Hyojong as another person. Misu Hu-molk assert that Queen of Jayi has to wear Jache Samnyun dress because Hyojong is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son. Being decided Kinyun dress is wrong.

      • KCI등재

        미수 허목의 예송관

        장세호 한국사상문화학회 2013 韓國思想과 文化 Vol.66 No.-

        Succession of Confucianism regards succession of eldest son in the clan rules system as important. Succession of eldest son that carries on a family line is based on filial duty. With carries on a family line, Family lineage and the Royal line is cosidered nobility. If object of nobility carried on line, It would appear concretely. In the original home object of nobility carried on line. but in the royal family is different with normal case. Because of succession to the throne regards preferentially, In royal family has twoflod. So there is case that the throne is succeed in eldest son. In the case The not eldest son and succession to the throne, there is many case. Kihaeyaesong is problem that Queen of Jayi is how to wear when Hyojong is dead. Before Hyojong sits on the throne, Sohyun already was proclaimed the crown prince and he was dead later. Problem of being in black is problem that recognition Sohyun as eldest son or recognition as Hyojong as another person. Misu Hu-molk assert that Queen of Jayi has to wear Jache Samnyun dress because Hyojong is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son. Being decided Kinyun dress is wrong. 유가의 계승제는 종법제도에서 나타나는 적장자 계승을 중시하고 있다. 적장자 계승은 조상의 대를 잇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 핵심적인 정신은 孝에 근거하고 있다. 그 계통을 잇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가통과 왕통에서는 尊을 중시한다. 즉 존의 대상이 바로 통을 승계할 경우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일반가정에서는 적장자 계승을 전제로 하여 존의 대상이 승계되지만 왕가의 경우에는 왕통을 계승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계승하는 사례와 다르다. 왕위계승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기 때문에 왕가에서는 일반인들처럼 적장자문제도 있고 왕위를 승계하는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왕위를 일반인처럼 적장자로 계승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적장자는 아니지만 왕위를 계승한 경우에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기해예송은 효종이 승하하고 인조의 계비이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효종을 위하여 상복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가 문제가 된 것이다. 효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소현세자가 이미 왕위계승을 전제로 하여 세자의 위치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상복을 입는 문제는 소현세자를 적장자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왕통의 측면에서 왕위를 계승한 효종을 별개의 문제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미수 허목은 효종이 조상의 정통을 계승하고 인조의 친아들이기 때문에 자의대비는 적장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재최삼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기년복으로 결정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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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 철학(韓國思想 哲學) : 백호 윤휴의 기해 예송관

        장세호 ( Se Ho Chang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5 韓國思想과 文化 Vol.76 No.-

        조선조 예송은 통을 바로 잡아야 된다는 정통(正統)에 대한 기본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발생한 것이다. 기해년에 효종이 승하하게 되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어떠한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효종을 왕통의 측면에서 인조의 대를 이은 왕위계승자로 대하여 상복을 입을 것인지 아니면 가통의 측면에서 계모로서 상복을 입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인 것이다. 윤휴는 마땅히 참최삼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제왕가의 예는 사대부의 예와 다르기 때문에 왕통의 측면에서 참최삼년복을 입어야 된다는 것이다. 또한 종통과 왕통의 계승이 중(重)하기 때문에 군신의 의리를 내세워 참최삼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한다. 일단 왕위에 오르게 되면 이전의 사가(私家)에서 장자, 차자, 적자, 서자라는 것은 무의 미하다는 것이 윤휴의 주장이다. Choseon dynasty Yesong is occurred because of Tong has to reformed based on Jung tong. When Kihaenyun Hyjong is dead, argument is occurred about Hyjong`s stepmother Jayi queen which is in black. Argument is which Hyjong is considerd a successor to the throne in terms of the Royal line or Jayi is considerd stepmother in terms of family lineage. Yoonhoo assert she has to put on Chamche threeyears clothes because of properly case of Royal line is different case of nobleman. In other words she should put on Chamche threeyears clothes case of Royal line. Also succession of Jong tong and the Royal line is important. So she should put on Chamche threeyears clothes based on the relations of sovereign and subject. Yoonhoo`s opinion is that once sombody rised to the throne the eldest son, second son, legitimate son in a private house are meaningless.

      • KCI등재

        백호 윤휴의 기해 예송관

        장세호 한국사상문화학회 2015 韓國思想과 文化 Vol.76 No.-

        Choseon dynasty Yesong is occurred because of Tong has to reformed based on Jung tong. When Kihaenyun Hyjong is dead, argument is occurred about Hyjong's stepmother Jayi queen which is in black. Argument is which Hyjong is considerd a successor to the throne in terms of the Royal line or Jayi is considerd stepmother in terms of family lineage. Yoonhoo assert she has to put on Chamche threeyears clothes because of properly case of Royal line is different case of nobleman. In other words she should put on Chamche threeyears clothes case of Royal line. Also succession of Jong tong and the Royal line is important. So she should put on Chamche threeyears clothes based on the relations of sovereign and subject. Yoonhoo's opinion is that once sombody rised to the throne the eldest son, second son, legitimate son in a private house are meaningless. 조선조 예송은 통을 바로 잡아야 된다는 정통(正統)에 대한 기본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발생한 것이다. 기해년에 효종이 승하하게 되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어떠한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효종을 왕통의 측면에서 인조의 대를 이은 왕위계승자로 대하여 상복을 입을 것인지 아니면 가통의 측면에서 계모로서 상복을 입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인 것이다. 윤휴는 마땅히 참최삼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제왕가의 예는 사대부의 예와 다르기 때문에 왕통의 측면에서 참최삼년복을 입어야 된다는 것이다. 또한 종통과 왕통의 계승이 중(重)하기 때문에 군신의 의리를 내세워 참최삼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한다. 일단 왕위에 오르게 되면 이전의 사가(私家)에서 장자, 차자, 적자, 서자라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윤휴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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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草盧 李惟泰의 詩世界

        劉永奉 한국한문학회 2003 韓國漢文學硏究 Vol.0 No.31

        ‘忠情五賢’의 한 사람 초려는 조선 중기 ‘山林’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초려는 총 440수의 한시를 남겼는데, 이들은 近體詩의 형식으로만 이루어졌다. 초려의 시는 유배기를 중심으로 양분된다. 유배 이전에 지은 시는 193수이고, 유배 기간 에 지은 시는 모두 247수이다. 유배 이전에 지어진 시들은 濂洛風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내용적으로 居敬存心의 진지한 학문적인 자세가 바탕이 된 시들이다. 유배기의 시들은 連作化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家統의 유지라는 현실적인 고민 아래 지어진 시들과 초려 개인의 내밀한 심상이 노출된 시들로 구분이 된다. 사림학자들의 시들과 크게 다른 초려 시만의 두가 내용상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Choryo Lee yoo-tae(AD 1607~1684) is not only one person of Chungchong-ohyun(忠情五賢) but also an important members of Sanlym(山林) in the middle of the Chosun dynasty(朝鮮). He composed a total of four hundred and forty Chinese poetry, and all of them were in the type of modern(近體詩). His Chinese poetry could be divided into two regions according as he was exiled before and after. The number of poetries written before exile was one hundred and ninety three and two hundred and forty seven poetries were written in a period of banishment. Poetries written before deportation have a strong character of Yeomrak style(濂洛風) however, their contents were on the base of sincere academic attitude as honesty (居敬存心). Poetries written in the time of exile have features of prolongation. These could be divided into two classes, and one of which was poetries written under the circumstances of realistic agony such as keeping of a family tradition and lineage. The other were poetries which his inmost thought was exposed. These two characteristics were quite different from those of other Sanlym in term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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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암(默巖) 김동필(金東弼)의 삶과 시세계

        권진호 ( Kwon Jin-ho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7 嶺南學 Vol.0 No.62

        이 논문은 묵암(默巖) 김동필(金東弼, 1736~1807)의 삶과 시세계를 조명하였다. 그는 평생 향촌에 은거하여 처사형(處士型) 학자의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그가 추진해 온 사업은 한마디로 한 가문의 가통(家統)을 세우는 일과 향촌사회의 민풍(民風)을 순화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그의 학문은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내면의 심성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 같은 학문경향은 내적으로는 서계(西溪) 김담수(金聃壽, 1535~1603)와 월담(月潭) 김정룡(金廷龍, 1561~1619)의 가학(家學)의 전통과 외적으로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과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관점을 이어받아 자기 나름의 학문세계를 추구해 나갔다. 그 결과 360여수에 달하는 그의 시문학도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는 철리시(哲理詩) 계통의 한시는 거의 없고, 향촌에서 느끼는 일상의 체험을 담담한 필치로 표백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현재적 심정과 처지를 주변의 자연물에 투영시켜 형상화하였고, 한적한 전원생활의 흥취를 진솔하게 그려내었으며, 끊임없는 성찰의 삶을 시적으로 담아내었다. 요컨대, 그가 행한 일련의 사업은 가문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문의 결속과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지역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유자로서의 소임과 책무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 한마디로 그는 처사형 학자의 전형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has examined the life and poetry world of Dongpil Kim with the pen name, Mugam (1736~1807). He retired at his hometown all his life and lived a scholarly life without entering into official positions. He was devoted to establishing the tradition of his family and refining the folk manners of his hometown. His scholarly achievements tended to emphasize the training of internal mind and practices rather than theoretical aspects. His scholarly trend internally inherited the tradition of families established by Damsu Kim with the pen name (1535~1603), Seogye and Jeongryong Kim with the pen name, Woldam (1561~1619). It was also externally handed down from the scholarly aspects of Sik Jo with the pen name, Nammyeong (1501~1572) and Gu Jeong with the pen name, Hangang (1543~1620). With such influences, he sought after his own scholarly world. As a result, his poetry world of 360 pieces calmly expressed daily experiences at his hometown. Not a poem of his had any philosophical ideas. He projected his emotions and situations of the moment into natural objects, and formalized them, vividly describing the delight of rural life and representing his constant meditation in his poems. To sum up, a series of achievements made by him contributed to consolidating a family and heightening its social status in terms of family matters, and also promoted the awareness of a Confucian scholar's responsibilities and obligations in terms of regional aspects. In a word, he was a man who lived a typical life of a Confucian scholar without entering into official pos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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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조대 전례논쟁을 통해 본 17세기 전반 조선 지식관료층의 정통(正統) 관념

        손애리 ( Aelee Sohn ) 한국사회사학회 2011 사회와 역사 Vol.0 No.89

        본 연구는 인조대 전례논쟁을 통해 이 시기 지식관료들의 정통 관념을 검토하는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統을 혈연을 매개로 한 영속적 구조물로 개념화하였고, 國의 統과 家의 統을 동시에 고려할 것을 제안하였다. 전례논쟁의 쟁점들 또한 國의 統인 종통을 중시하는 입장과 家의 統의 규제원리인 종법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대별된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각 입장은 종법과 종통의 우선성을 설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정통관념을 갖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종통 중시론에서 정통은 사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통인 자가 전수받는 것이 아니라 전수받은 자가 정통이 된다. 정통을 계승하는 일에는 왕가의 계승 원리를 넘어선 또 다른 統의 질서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왕과 특정 세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원리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다. 현실의 왕은 국통(=종통)구조에 속박되어 있으며, 이 구조의 에이전트일 뿐이다. 종법 중시론은 정통을 종법문제로 한정시킨다. 이 입장은 ``아버지에서 아들로``라는 하강논리를 기본으로 삼지만, 추숭논자의 주장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들이 왕이므로 아버지도 왕이어야 한다는 ``상승 논리``를 배제할 근거를 갖지는 못한다. 하강논리와 상승논리가 공존한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약점을 내포하지만 현재의 왕을 기점으로 삼아 전대 왕을 재배열하는 작업이기에 현실의 왕권강화와 관련된다. The objective of my work is to examine the idea of cheongt``ung(正 統) through the controversy of royal rituals and the posthumous name Wonjong(元宗) in Injo(仁祖) period. At first, I conceptualized ``t``ung (統)`` as a permanent construction mediated by blood, and suggested to consider both ``gukt``ung(國統)`` and ``gat``ung(家統)``. The controversial issues are also divided into two groups, ``gukt``ung``-priority and ``gat``ung``-priority, which are confirmed to have the different idea of cheongt``ung depending on how to view the relation of ``gukt``ung`` and ``gat``ung``. In the ``gukt``ung``-priority, cheongt``ung does not exist in transcendental way. The person in the position of cheongt``ung does not succeed to the throne, but the person who succeed to the Royal line becomes cheongt``ung. It points out that in the matter of succeeding cheongt``ung, there is not only successive principle of Royal family but also the fundamental and constructive order of ``t``ung``. A king in office is bound by a construction of ``gukt``ung`` of which he is the agent. ``gat``ung``-priority limits cheongt``ung to the matter of chongbeop(宗法). This is basically based on a descending logic(a son succeeding a father), but it can``t exclude the ascending logic meaning that if a son is a king, h is f ather would have been a king. This position has a weak point by the coexistence of two contradictory logic, but has a effect of strengthening royal authority in the meaning of rearranging previous kings by the present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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