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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김연수의 열하일기」 연구

        안희준 ( An Hee-jun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8 국제어문 Vol.0 No.76

        본고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김연수의 열하일기」를 통해 고전문학의 문화콘텐츠화 전략과 그 의의를 살펴보았다. 먼저 『열하일기』에 관한 문화콘텐츠화 논의와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열하일기』의 문화콘텐츠화 가능성 및 개발 방향을 논의하였다. 한편, 「김연수의 열하일기」는 『열하일기』를 원천 소재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열하일기』를 소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서사구조와 인물 구성, 시청각화 기법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중심메시지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 「김연수의 열하일기」는 고전문학을 문화콘텐츠화 하여 제작된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트랜스미디어 콘텐츠(transmedia contents)’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김연수의 열하일기」는 원천소재인 『열하일기』를 복합 감각의 전자 매체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미디어 공간에서 전승하며, 고전으로서 『열하일기』가 가지는 현재적 가치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strategy and significance of the conversion of classical literature to cultural contents through the documentary Yeolha-Ilgi of Kim Yeon-su. First, I researched the creation and development directions of Yeolha-Ilgi in terms of its cultural contents by examing discussions and examples related to Yeolha-Ilgi. Yeolha-Ilgi of Kim Yeon-su is a documentary film that illuminates aspects of Yeolha-Ilgi, On the one hand this Yeolha-Ilgi of Kim Yeon-su introduces the message of Yeolha-Ilgi, and on the other this documentary film delivers messages that are central to the documentary genre through its narrative structure, character composition, and audio-visualization techniques. Yeolha-Ilgi of Kim Yeon-su can be regarded as an example of ‘Transmedia Contents’, because this film converted classical literature to cultural contents. Also, the conversion of Yeolha-Ilgi of Kim Yeon-su which can be found in multi-sensory media is significant and investigate the current value of classical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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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일기를 통해 본 관광기행의 교육적 의미

        최진,오김유진,진상훈,신창호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2023 敎育問題硏究 Vol.36 No.4

        본고는 관광기행의 의미를 교육적 차원에서 재조명한 것이다. 특히 박지원의 열하일기 를 통해 관광기행의 교육적 특징을 검토하였다. 관광기행은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경험한 제반사항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의 총체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재해석하여 삶에 응용할 것을 전제로 하는 유목적적 여정으로, 인생에서 펼치는 다양한 유람과 놀이,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견문 확장, 그리고 삶의 도전과 성찰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넓은 의미에서의 관광기행은 삶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에 교육적 관점이 깊이 투영되어 있고, 그에 맞게 현실적으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열하일기 를 검토한 결과, 박지원의 체험적 관광기행은 인생을 각성하는 계기를 주고, 생애를 숙고하고 성찰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문화 간의 소통과 융합, 현실세계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다차원적인 교육적 의미를 담고 있다. 요컨대 관광기행은 넓은 범주에서는 삶의 여정이고, 그 과정과 매 기행 단계의 융복합을 통해 배움이 구성된다는 측면에서 교육적 의미가 스며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examine the meaning of tourism travel in terms of an educational perspective, focusing on Park Ji-won's Yeolha ilgi. Tourism travel is the process of giving meaning to and documenting everything experienced in an unfamiliar place, away from everyday life. It can be reinterpreted as a purposeful journey that presupposes application in life. In addition, it raises the problem of various cruises and recreation in life, expanding knowledge at the personal and social level, and challenges and reflections in life. Therefore, tourism travel in a broad sense is in contact with the nature of life, so the educational perspective is deeply projected and needs to be reinterpreted realistically accordingly. As a result of reviewing Yeolha ilgi, Park Ji-won's experiential tourism trip has a multidimensional educational meaning that gives an opportunity to awaken life, motivates to consider and reflect on life, and practices and applies communication and convergence between cultures to the real world. In short, tourism travel is a journey of human life in a broad sense, and it is judged to have educational significance in that learning is constructed through the process and the convergence of each stage of the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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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일기에 나타난 중국인 형상화와 쓰기 전략-곡정 왕민호를 중심으로-

        박수밀 한국한문학회 2022 韓國漢文學硏究 Vol.- No.86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the aspects of embodying Chinese people in Yeolha's Diary, and to understand YeonAm's writing strategies and ideas more deeply through conversations with YeonAm and Gokjeong, Wang Minho. Among the Chinese appearing in the Diary, there are many human beings intentionally shaped by YeonAm. Among them, Gokjeong is a person created as the prototype of an scholar of resenting sorrowfully, and a person who projects much of Yeon-Am's ego. The shape of Gokjeong makes readers feel pity and builds a sense of intimacy, so that they can approach Gokjeong without repulsion. Among the written talks of Yeon-Am and Gokjeong, I paid attention to two main topics. In the written talks about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YeonAm and Gokjeong continued their conversation by responding to each other while negatively recognizing the customs of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It was difficult for YeonAm to directly criticize the harmful effects in a trend that took the ethics of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for granted. Thus, YeonAm used Gokjeong's voice to criticize the evils of making the tradition of the filial duty and virtuous woman. On the other hand, the conversations about Confucianism and loyalty developed in opposite directions. YeonAm's voice that loyalty is fixed was not an honest opinion.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two books of ‘Baek-Yi Theory 伯夷論’ and the articles related to Baek-Yi in the ‘Yeolha Diary 熱河日記’ on July 27th, YeonAm thought that loyalty is not fixed, it is a relative value that changes according to the times and circumstances. Although YeonAm took the form of refusing Gokjeong's words, in reality, Gokjeong's words were YeonAm's true intentions. The conversation between the two took the method of revealing the author's truth through the language of Gokjeong, who is the other person, while YeonAm hides himself. By continuously examining various strategies for shaping human beings appearing in Yeolha's Diary, YeonAm's attitude toward humans will be comprehensively summarized. 본 논문은 熱河日記 에 나타난 중국인 형상화 양상을 살피고 연암과 곡정 왕민호와의 대화를 통해 연암의 쓰기 전략과 사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열하일기 에 등장하는 중국인 중에는 연암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상화된 인간이 많다. 그 가운데 곡정은 비분강개한 선비의 전형으로 창조한 인간형이자 연암의 자아를 많이 투영한 인물이다. 곡정의 형상은 연민을 느끼게 하고 친밀감을 형성하게 함으로써 독자가 거부감 없이 다가서도록 한다. 이를 바탕으로 연암과 곡정과의 필담 가운데 두 가지 話題에 주목해 보았다. 효와 열녀에 관한 필담에서, 연암과 곡정은 열녀와 효자 풍속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서로 호응해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열녀와 효자 윤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 속에서 연암이 그 폐해를 직접 비판하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연암은 곡정의 입을 빌려 열녀와 효자 만들기의 폐단을 비판하였다. 반면 유학과 의리에 관한 대화는 서로 대립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의리는 고정되어 있다는 연암의 발언은 솔직한 생각이 아니었다. 「伯夷論」上․下와 열하일기 7월 27일자 백이 관련 기사를 살핀 결과, 연암은 의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했다. 곡정의 말을 연암이 반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곡정의 말이 연암의 본심이었다. 둘의 대화는 연암 자신은 숨고 상대방인 곡정의 언어를 통해 작가의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각종 인간에 대한 형상화 전략을 살펴 연암의 인간에 대한 태도를 종합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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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의 연행 한시 연구

        김혈조 ( Kim Hyul Jo ) 한국한문학회 2016 韓國漢文學硏究 Vol.0 No.63

        본 논문은 박지원의 연행시(燕行詩)를 연구한 것이다. 연행시는 열하일기(熱河日記)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진했던 분야이다. 논문은 기왕에 연행시로 알려진 작품은 물론, 문집에 수록되지 못한 작품까지 발굴하여 이를 상세히 분석하였다. 박지원의 연행시는 한시 형식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 것이 13수이고, 散句로 남아 있는 것이 2수 이었다. 분석을 통해 박지원의 연행시는 개인의 정감을 풀어내는 운문이었으며, 내용상 일반적인 연행시의 주제와 특별히 다른 것이 없음을 밝혔다. 특히 열하일기가 구현한 주제에 비해서 연행시의 주제는 특기할 만한 것이 없었다. 13수와 2개의 산구로 남은 연행시는 연행 초기 거의 매일 왕성하게 연행시를 창작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너무 적은 숫자이다. 연행이 진행될수록 작품이 창작되지 않은 까닭을 연행의 자세와 각오의 변화, 청의 현실을 보는 연암 인식의 전환에 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연행에서 얻은 현실 인식 등의 거대담론은 한시의 형식이 아닌 산문 열하일기로 담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박지원은 연행시를 크게 취급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oetry of envoy to Chung Dynasty written by Ji-won Park. Studies on the envoy poetry has been depressed in the shadow of Yolha-ilgi and could not have received the recognition it deserves. The researcher discovered and analyzed works that are not included in his anthology as well as works known as envoy poems. The envoy poetry by Ji-won Park consists of thirteen poems that are in accordance with formalities of Chines poem, and two separated phrases. The study revealed with analysis that his envoy poems are verse to express personal warmth and similar to the theme of general envoy poems. The theme of the envoy poetry is not something special compared to that of Yolha-ilgi. Considering that Ji-won Park composed poems actively at an early stage in his envoy, thirteen poems and two separated phrases are too poor in a quantitative respect. The study grasped that reasons that he could not write poems as the envoy progressed are the change of his attitude and determination, and the cognitional change about Chung’s reality. It also illuminated that Ji-won Park did not set a high value on envoy poetry because he just expressed microscopic discourse such as his perception of Chung’s reality in prosy Yolha-ilgi as it might not be appropriate to express in 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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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 문학에 대한 당시대인의 인식 - 이재성의 「제박연암문」을 중심으로 -

        정재철 열상고전연구회 2017 열상고전연구 Vol.57 No.-

        연민 이가원 선생이 단국대에 기증한 연암저작 필사본 중에는 그 존재가 처음 밝혀진 『부록』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연암의 친구, 인척, 제자 등이 지은 「제문」 4편과 「만장」 34제 131수가 수록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이 지은 「제박연암문」을 중심으로 연암 문학에 대한 당시대인의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는 이 글에서 연암 문학의 특징은 사물에 의해 촉발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기이함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연암이 구사한 寓言과 諧笑는 궤변이나 非情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새로움과 기이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였다. 연암이 구사한 우언의 문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로 저자 미상의 「열하일기서」가 있다. 저자는 이 글에서 『장자』의 우언은 헛된 이야기를 황홀하게 늘어놓은 궤변에 불과하지만, 『열하일기』의 우언은 治亂과 利用厚生의 도리를 담론한 실용적인 글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연암이 구사한 해소의 문학적 의미에 대해 설명한 글로 연암의 아들인 박종채가 지은 『과정록』을 들 수 있다. 박종채는 이 책에서 연암이 해소가 섞인 순정하지 못한 문체를 구사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연암이 열하 지역을 지나며 체험한 사물의 情態를 곡진하게 묘사하기 위하여 다수의 諧笑를 구사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재성은 「제박연암문」에서 연암이 “기뻐서 웃고 성내어 꾸짖는 것이 타고난 본성[天眞]을 드러냈다.”고 하였다. 당대 사람들은 성정의 바름[性情之正]을 추구하는 재도문학에 기초하여, 위와 같이 연암이 기쁘고 성난 감정을 여과 없이 문학으로 드러낸 것은 성정의 바름을 잃은 것이라고 비방하였다. 이와 달리 연암은 이와 같이 성정의 바름만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의 감정이 왜곡될 수 있다고 비판하고, 타고난 본성에 따라 사물에 의해 촉발된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였다. 이로 보아 이재성이 위의 글에서 연암 문학의 특징으로 제시한 ‘天眞’은 ‘性情之正’으로 대표되는 재도문학과 차별화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것으로 생각된다. Yeonmin, Gawon Lee donated some copies of Yeonam's writings to Dankook University. Among the books, The Appendix was included, in which 4 pieces of memorial addresses and 131 pieces of funeral odes categorized by 34 titles written by Yeonam's relatives, and disciples were printed. This study examined the contem- poraries' awareness about Yeonam's literature focused on Jueyeonammun題朴燕巖文 written by Jaeseong Lee李在誠, Yeonam's brother-in-law. He emphasized that the characteristic of Yeonam's literature was to pursue eccentricity and originality by the way of disclosing his emotion excited by things without filtering. Therefore, he understood Yeonam's freely used allegories and humor were not sophistry or cruel stories, but came out in the process of pursuing these eccentricity and originality. In order to understand the literary significance of Yeonam's eccentricity, Yeolha- ilgiseo熱河日記序 of unknown authorship could be helpful. In the writing the author asserted the allegories in Zhuangzi莊子 were nothing but sophistries that ornately arranged vain stories, but the allegories in Yeolhailgi熱河日記 were very practical stories discussed the ways for peace reigns and social welfare. Another book which explained the literary meaning of humor Yeonam freely used is Goajeolok過庭錄 written by Jongchae Park, Yeonam's son. For the purpose of clearing his father's charge of using impure literary style, he asserted in his book that Yeonam used a lot of humor to euphemistically describe the stillness of things he had experienced while passing Yeolha熱河 area. Jaeseong Lee insisted in his book, Jueyeonammun that Yeonam had revealed his real nature by expressing joy and anger with laughter and reproach. Based on morality literature, the contemporaries with Yeonam criticized him for losing the righteousness of nature by betraying delighted and angered emotions without filtering through literature. But Yeonam claimed that Just emphasizing the righteousness of nature could distort emotions and exposed his feeling which was touched off by things with the true character. In this regard, the innocence which Jaeseong Lee presented as the characteristic of Yeonam's literature seems to contain symbolic meaning differentiated from morality literature that considered the righteousness of nature to be their central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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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일기』「심세편」, 청나라 학술과 사상에 관한 담론

        이현식(Lee, Hyun-Sik)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7 동방학지 Vol.181 No.-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청나라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했다. 심세편 은 청나라 학술과 사상의 동향을 분석한 글이다. 심세편 은 주자 숭상 정책과 주자 비판 현상에 의거하여 중원의 학술과 사상 동향을 분석했다. 주자 숭상 정책은 중원 선비를 겨냥한 청황실의 통제 정책이었다. 그것은 주류 사상을 사상 통제에 이용한 정치적 술수였다. 주자가 화이론을 주장한 목적은 한족이 이민족보다 우월하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집주서 편찬은 선비들의 의리 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청 황실은 화이론을 중외일치로 재해석했고, 사고전서 편찬 사업을 시행하면서 경학을 고증학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선비들의 비판 의식을 약화시켰다. 그래서 연암은 주자 숭상 정책이 화이론을 무력화하고 지식인을 우민화하기 위한 술수였다고 비평했다. 명목상으로는 주자 숭상이었지만 실제로는 주자를 배반했다고 평가했다. 청대 선비들에 의한 주자 비판 현상은 청 황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청 황실을 비판하기 위해 주자를 비판했다. 이들에게 그것은 정치적 행위였다. 조선 선비들은 이것을 주자학 쇠퇴와 양명학흥성으로 해석했다. 정치적 행위를 사상적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오해요 왜곡이었다 왜곡된 담론이 성행한 이유는 중원 야만화론때문이었다. 중원 야만화론은 조선 선비들이 청나라 선비들과 대화하려는 욕구를 가로막았다. 연암은 야만화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중원이 문명화되었다고 믿었다. 연암은 청나라 학술 사상에 관한 제대로 된 담론을 세우기 위해서는 조선 선비들이 그들과 대화(필담)해서 그 실정을 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담으로 청나라의 학술과 사상 동향을 살피라는 의미의 대화와 확인이 바로 심세편 핵심이요 주제이다. Yeonam Park Jiwon (燕巖 朴趾源, 1737-1805) analyzed various aspects of the Qing Dynasty in the book Yeolha-ilgi (熱河日記, The Diary of a Journey into Beijing and Chengde). Simse-pyeun ( 審勢編, The Discourse on the Academic Trends in the Central Plains of China) is an article of the Yeolha-ilgi, in which Park Jiwon analyzed the academic trends in the Central Plains(Zhongyuan), a core region of China. Park Jiwon examined the topic in light of the Qing Dynasty’s supportive policy of Zhu Xi (朱熹, 1130-1200) and of intellectuals’ critical arguments against him. He considered this policy as the policy to be designed to control the intellectuals of the Central Plains with mainstream ideas. He believed that while the policy on Zhu Xi’s neo-confucianism officially appeared to advocate neo-confucianism, it actually tried to defeat neo-confucianism and to relegate the intellectuals of the Central Plains to the ignorant masses. Some intellectuals of the Qing Dynasty criticized neo-confucianism as a way to resist the Qing Dynasty. Their critical views of it were not criticism of neo-confucianism per se, but blame of Qing Dynasty. The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did not know these details about the academic trends in the Central Plains. They considered their critical arguments to represent the decline of neo-confucianism and the prosperity of Wang Shou Ren’s doctrines (王守仁, 1472-1528). Park Jiwon thought they were wrong. He advised them to ascertain the academic trends in the Central Plains by having conversations with the intellectuals of the Central Plains to verify the truth. This is the main idea of this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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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熱河日記에 나타난 공간 형상화 방식

        박수밀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2024 퇴계학논총 Vol.43 No.43

        본 논문은 熱河日記 에 나타난 공간의 형상화 방식을 살펴 열하일기 의 문예적 성취를 확인하고 연암 박지원의 현실 인식과 공간의 사회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논의 과정에서 인본주의 지리학과 구조주의 지리학 등을 적용해 보았다. 먼저 연암의 공간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연암은 자연 공간은 창조와 변화의 현장이라고 보았다. 공간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 있으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상대성을 바탕으로 지금 이곳 實地의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연암은 작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데 공간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열하일기 에 나타난 공간의 형상화 방식을 살폈다. 첫 번째는 정치적 공간의 우상화 허물기이다. 黃金臺와 夷齊廟는 지배 이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제의의 공간이었다. 연암이 어떤 방식으로 공간의 신성성을 깨뜨리는지를 살펴보았다. 두 번째는 변방의 중심화이다. 작은 것, 주변 존재에 애정을 갖는 연암의 태도는 공간 의식에서도 나타났다. 변방 의식이 잘 나타난 柵門을 통해 연암이 어떻게 주변의 공간을 중심성을 획득한 장소로 만드는지를 살펴보았다. 세 번째는 물리적 공간의 심미화이다. 연암은 정치적 공간을 비판할 때는 객관적 거리두기나 제 3자를 통해 공간의 권위를 허물었다. 반면 특별한 정서를 경험한 공간에서는 자신만의 감수성으로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古北口는 장소애와 장소감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여 공간에 대한 애정과 장소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琉璃廠은 고독한 감성을 짙게 드러낸 공간이었다. 연암이 유리창 한복판에서 느낀 감정은 익명성과 군중 속의 외로움이었다. 유리창은 연암에 의해 근대적 감수성을 품은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연암이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는지, 공간을 어떻게 장소화 하는지를 더욱 심도 있게 탐구하는 것이 계속되는 과제이다. This paper aims to identify the literary achievements of Yeonam by examining the ways in which space is represented in Yeolha Diary and to understand Yeonam's perception of reality and the socio-political context of space. In the process of discussion, I applied humanistic geography and structuralist geography. First, I examined Yeonam's perception of space. Yeonam saw natural space as a site of creation and change. Space is in a state of change, and based on the relativity of time and space, he believed that the real space here and now is important. Yeonam was well aware of the importance of space in effectively revealing the artist's intention. Based on this, I examined the way space is represented in Yeonam's diaries. The first is the de-idolization of political space. Hwanggeumdae and Ijemyo Shrine were spaces of rituals created by the ideology of the ruling ideology. We looked at how Yeonam breaks the sanctity of these spaces. The second is the centralization of peripheral spaces. Yeonam's attitude of having affection for small things and peripheral beings was also manifested in his spatial consciousness. Through Zha men that exemplify the peripheral consciousness, I examined how Yeonam makes the peripheral spaces into places that acquire centrality. The third is the aestheticization of physical space. When criticizing political spaces, Yeonam dismantled the authority of the space through objective distance or a third party. On the other hand, in spaces where he experienced special emotions, he created personal and experiential spaces with his own sensitivity. Kobuk-gu focused on revealing a sense of place and placefulness, clearly showing his love for space and the image of place. Liulichang was a space that deeply revealed a sense of solitude. The emotions Yeonam felt in the middle of Liulichang were anonymity and loneliness in the crowd. Liulichang was transformed by Yeonam into a space with a modern sensibility. It is an ongoing challenge to further explore how Yeonam shapes space and how he place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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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중기 사행단 수행후기 비교를 통한 관광 고찰 -담헌과 연암의 기록을 중심으로-

        이경숙 동북아관광학회 2019 동북아관광연구 Vol.15 No.4

        It is said to be the best travel diary in the world. This study, which began to search for relations with modern tourism through the 18th century, gave Yonam Park Jiwon, who wrote the 18th century, an opportunity to travel to China. Having traveled to China as a corps 15 years before Yonam, Dam Heon recorded the Chinese meandering record in the history of Eul Byeong record. The history of Eul-Byung's record was departed from Hanyang on November 2, 1765, and departed from Beijing on March 1, 1766, the following year, and arrived in Hanyang on April 27. The Eul-Byeong's record deeds played the role of Yeonam Itinerary, after 15 years, it was different from Eul-Byung's record. Although the contents are closely related to the modern meaning of tourism, this study compares them into quarantine, accommodation, meals and food, transportation means, fellowship with Chinese scholarship, and gifts. In addition, the exploration of the entire process and the size of the corps, which was allowed to the limited special class, allowed foreign tourism, However, according to the scale of the corps, it could be seen that support was primarily from the lower class and Samsa (limited special class). 열하일기를 세계최고의 여행기라고 말한다. 열하일기를 통하여 현대의 관광과 연관성을 찾아보려고 시작한 본 연구는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에게 결정적으로 중국여행의 계기를 가져다 준 것은 담헌 홍대용의‘건정동회우록’을 읽고 서문을 작성해주게 되면서 부터이다. 연암보다 15년 먼저 사행단으로 중국여행을 다녀온 담헌은 중국 사행기록을 을병연행록에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담헌의 을병연행록은 1765년 을유년 11월2일 한양을 출발하여 다음해인 1766년 병술년 3월1일 북경을 출발하여 4 월27일 한양에 도착한 기록으로 책 제목은 간지에서 따온 것이다. 담헌의 을병연행록은 연암의 이정록 역할을 하였으며 15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으므로 내용에서 보면 이정록 기록과 달라서 고쳤다라고 하였다. 현대적의미의 관광과 밀접한 내용들이 산재해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관광의 미시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검역, 숙소, 식사 및 음식, 이동수단, 중국선비와의 교제, 선물 등으로 나누어서 비교하였다. 또한 사행단으로 출발하기 전 과정과 사행단의 규모 등에 대하여도 살펴보면서 제한된 특수계층에 허락된국외관광이지만 사행단의 규모를 통해 보면 오히려 중국여행을 많이 한 계층은 삼사를 보좌하고 받들었던 하층 부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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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五洲衍文長箋散稿』における清とチベット仏教に 関する認識背景の考察

        양정연(梁晶淵)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20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86 No.-

        본 논문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보이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청과 티벳불교에 대한 인식을 검토한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티벳불교에 대한 이해는 『열하일기(熱河日記)』와 다양한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는 백과사전류인 『오주연문장전산고』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설명된 티벳불교에 대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열하일기』의 내용에 근거하면서도 ‘변증’의 방법으로 기술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7세기 이후로 조선은 다양하게 변화하는 대외 상황에 대해 대처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청의 등장은 ‘중원의 지배자가 중원 문화를 계승하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져왔다. 서양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알려지게 되면서, 중원 문화로서의 중국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지리적인 위치에서 다른 지역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위치 지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티벳불교를 불교 사상이 아니라 중원 문화에 대한 청의 위치와 역할을 통해서 이해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관점에는 천주학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지리적인 이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This article aims to study the late Joseon intellectuals" understanding of the Qing Dynasty and Tibetan Buddhism in the Oju Yunmun Jangjeon Sango. Their understandings of Tibetan Buddhism can be examined in the Yeolha Ilgi『( 熱河日記』) and the Oju Yunmun Jangjeon Sango『( 五洲衍文長箋散稿』) which is an encyclopedic book with various subjects. The explanations of Tibetan Buddhism in the Oju Yunmun Jangjeon Sango are basically based on the Yeolha Ilgi, but it is notable that they were written in the dialectic way. Since the 17th century, the Joseon had shown its limitations in dealing with various changing external situations. For the intellectuals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e appearance of the Qing Dynasty raised the question of whether the ruler of Zhongyuan should inherit the Zhongyuan culture. As a variety of information about the West became known, they discovered that the Central State as the Zhongyuan culture was not empowered absolutely but was relatively positioned to other regions in the geographic location. They understood Tibetan Buddhism not from the Buddhist thoughts but from the Qing"s Position and role in the Zhongyuan(中原) culture. We need to examine the points that their perspectives were caused by a combination of their attitudes toward Catholicism and the geographical underst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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