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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수도 육성과 관광정책 -어등산개발과 남해안 국제관광코스 개발을 중심으로-
안종수 향토문화개발협의회 2004 향토문화 Vol.24 No.-
문화수도 육성에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어등산 아시아 월드(세계 최초ㆍ최대의 애완동물원, 역사위인공원) -동북아국관광코스 개발을 제안함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치ㆍ운영방안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김희태 향토문화개발협의회 2004 향토문화 Vol.24 No.-
본고는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치와 운영방안을 제시해 한연구이다.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전문관리기관으로 중앙기록물관리기관과 함께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설치와 운영방안의 하나로 전라남도 및 산하 시군의 기록물 관리실태를 살펴보고 외국의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의 설치 운영사례, 그리고 전라남도 기록보존소에 대하여 그 시설, 기능, 운영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 본 것이다. 전라남도 기록보존소는 전라남도청 또는 시군 등 공공기관의 공문서만을 보존하는 형태가 아니라 기록보존소의 기본 시설외에 역사관, 홍보관, 편찬실, 행정자료실, 정보자료관 등을 함께 공유하는 방향이 되어야 하고, 지역문화나 향토사료의 조사 수집 연구 활용까지도 겸하는 문화센터로서 기능해야 할 것이다. 전문직원의 배치는 자격인증제를 시행하여 지방공무원으로 임용하고 기록보존소 책임자도 전문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관련 법령에 따른 유예기간에는 신규 임용시나 공무원 교육시 '향토문화론' '기록관리론' 등을 시험이나 교육의 과목으로 채택하여 활용해야 할 것이다. 재원에 있어서는 기록보존소가 국가 공공시설이며 기록물의 국가 소유, 중앙집중적인 입법취지에 따라 국비 지원 비율이 높아야 한다. 그리고 지방기록물관리관 설치를 비롯한 기록물관리 전반에 대하여 지방자치단체장과 공무원은 물론 학계과 사회단체, 향토연구가, 지역 주민들도 관심을 갖고 '문화운동' 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김희태 향토문화개발협의회 2007 향토문화 Vol.27 No.-
광주 경양지[경양방죽]은 우리나라 농경의 중심지 호남지방의 중심고을에 자리한 관개용 저수지로서 역사도 오래되었으며, 생활사와 문화교류 현장이었다. 그리고 광주의 형국상 비보의 기능도 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현장을 볼 수 없음은 물론 그에 대한 고증도 미비하고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 이에 대하여 조선왕조실록, 광주읍지, 호남읍지, 여지도서, 고지도류, 광주목사 조희일의 죽음집, 양경우의 제호집,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목민심서, 아언각비 같은 조선시대 기록을 통하여 경양지의 명칭 유래, 축조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는 김방의 행적, 문인들의 시문들을 찾아 정리하면서 잊혀져가는 역사현장과 기록 찾기를 토대로 경양지의 복원활용과 역사인물의 현양의 필요성을 제기해 보았다. 경양지의 명칭은 모두 10여개가 확인되었는데 두 가지 경향으로 크게 나뉜다. 물을 막은 둑을 중심으로 한 금교방축, 경양언, 경양제, 금교제와 가두어 둔 물을 중심으로 부른 경양지, 경양호, 경호, 서방지 들이다. 경호영지, 연지, 영지 등 다른 이름도 더 전해 온다. 경양의 명칭은 고려 조선시기 광주중심의 교통시설이었던 경양역에서 유래하였고, 금교 등 다른 지명도 쓰고 있다. 경양지의 축조시기는 조선시대 초기로 알려져 오고 있고, 김방이 축조자로서 여러 가지 전설도 전해온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록으로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 관련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1624년 가을 광주목사 조희일이 지은 시를 통해서 나타난다. 다산 정약용도 청년시절 경양지를 지나면서 시를 남긴다. 17세기 중엽 목민관의 눈을 통해서는 서정적인 측면을 읽을 수 있고 18세기말 청년 정약용의 시는 서경적이다. 이들 시문을 통하여 문화교류의 장이었음도 알 수 있다. 복원 활용에 있어서 단순한 외형의 복원보다는 농업관개시설, 문화교류공간, 비보 기능을 지녔던 생활문화사의 현장으로서 인식(認識)의 복원이 더 중요하다. 구시청 일대나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내의 한 공간에 시기별 광주 축소 모형도와 함께 경양지 중심의 모형을 복원하거나, 실제 물을 담는 공간을 확보하여 그곳에 기록과 전설과 모형을 함께 배치하여 역사공간, 문화쉼터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김방은 15세기에 당시 최대의 농업 관개시설인 벽골제를 중수할 때 주도적인 역량을 발휘할 정도로 실학적 기술을 현실에 접목시켰는데, 광주의 역사인 물로서 현양이 필요하다. 잊혀져 버린 역사현장의 복원활용과 역사인물의 현양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