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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개발원조 문화의 인류학적 성찰: 글로벌 새마을 ODA와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을 중심으로

        이태주 한국문화인류학회 2021 한국문화인류학 Vol.54 No.3

        This article analyzes the culture of ‘Korean-style’ development aid and the policies, discourses and practices inherent in the Korean aid program by following Korean-style aid projects in terms of historical, empirical and cultural aspects. In order to review and reflect on the Korean aid anthropologically, this paper applies two contemporary techniques of cultural critique (Marcus and Fisher 2005), defamiliarization and cross-cultural juxtaposition, which serve as ‘stronger versions of epistemological critique’ to the ethnographic research of institutions and the culture of professionals in the formation of Korean-style development aid policies and practices. The paper aims to demythify the Korean-style aid regimes and the rhetoric of success stories and to debunk donor-centric and diffusionistic ways of thinking among high-level policy makers, development experts and consultants who are planners, designers and implementers of Korean aid. This article applies multi-sited ethnography to understand the real worlds of Korean aid programs and projects in diverse developing countries and to investigate the cultural substance of the “Korean-style aid model” planned by the Korean government. The research was conducted with several short-term periods of evaluation fieldwork carried out in Rwanda, Myanmar, Vietnam and Ethiopia during 2015-2020, and by carrying out intensive interviews with 16 high-level goverment officials, managers of aid agencies and development experts who have experienced the Knowledge Sharing Program(KSP) and the Global Saemauel ODA. Utilizing the participatory evaluation method with all the key stake-holders including policy makers and project managers of the KSP and Saemauel program which represents the typical success stories of the Korean aid model, the study critically reviews the pros and cons, accomplishments and challenges of the Korean-style development aid. 이 논문은 ‘한국형 원조’의 문화적 특성을 역사적, 정책적, 경험적으로 추적하고 ‘한국형 원조’라는 특별한 정책과 담론, 관행에 내재된 문화적 특성을 다양한 원조 현장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 인류학적 문화비평 방법인 ‘더 강한 형태의 인식론적 비평’(마커스⋅피셔 2005)으로서 비교문화적 대조를 통해 ‘한국형 원조’를 낯설게 만들고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한다. 원조전문가 집단에서 미화되고 신비화되고 있는 ‘한국형’ 원조의 신화를 드러내고 ‘코리아에이드’를 통해 나타나는 공여국 중심주의와 전파론적 사고방식을 들추어내고자 한다. 이 논문은 국내외의 다양한 원조 현장에서 나타나는 ‘한국형’이라는 국가에 의해 기획된 개발원조 모델의 문화적 실체를 들추어내고 성찰하기 위해 다현장 에스노그라피(multi-sited ethnography) 방법을 활용하였다. 이 연구를 위해 KSP 사업에 프로젝트 매니저(PM)로 참여한 16명의 고위급 전문가들과 기획재정부와 외교부, 코이카, 수출입은행, 한국개발연구원과 KDI정책대학원 등 관계자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새마을 ODA 를 평가하기 위해서 2015년 5-6월의 3주간 르완다 현지 방문평가를 비롯하여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미얀마, 에티오피아, 베트남 등 현장 방문과 참여관찰 연구를 하였다. 사업에 직접 참여한 전문가들 심층 인터뷰와 국내와 현지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에 의한 참여적 평가(participatory evaluation) 연구를 통해 다양한 전문가들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상충된 입장과 견해를 종합하여 ‘한국형 원조’의 성과와 한계 및 개선 방향을 도출했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형 원조’의 대표 모델사업인 한국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과 글로벌 새마을 ODA 사업을 경험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였다. 또한 한국형 원조문화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담론과 관행의 두 측면에서 분석하였으며 ‘한국형 원조’에 내재된 집단적 사고로써 개발국가 모델과 공여국 중심주의 및 전파론적 이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였다. ‘한국형 원조’에 대한 에스노그라피 연구는 집단적 사고와 국가 기획 사업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공할 뿐 아니라 향후 우리나라 개발원조의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데도 일조할 것이다.

      • KCI등재

        한국 유학 선택과정과 초국적 연결망: 한국 지방 대학으로의 유학생 이동을 중심으로

        김도혜,최희정 한국문화인류학회 2019 한국문화인류학 Vol.52 No.3

        The number of international students studying in South Korea has been rapidly increased since the Korean government began its ‘Study Korea Project’ in 2005 to pull more international students to Korean institutions. This article gives attention to the fact that students from post–socialist countries in Asia including Vietnam, Mongolia, Kazakhstan, and Kyrgyzstan have tendency to choose to study in provicial universities. Based on the case studies of A and B provincial universities where these students are relatively concentrated, we aim to show why and how international students choose particular (provincial) universities in Korea. This study examines the ways in which the strategy of korean universities to recruit international students, the social networks among international students, and the socio–economic context of home countries have been combined to create student mobility from particular Asian countries to particular Korean provincial universities. Previous studies on the process of making student mobility to English speaking countries viewed the choice procedure of study abroad as three— phase process—ⓛ decision to study abroad, ② decision on the country of destination, ③ decision on the particular institution. Through the study on the ways in which student mobility from post–socialist Asian countries to Korean provincial universities has been created and strengthened, this study reveals that the three–phase model of study aborad choice procedure does not fully explain the student mobility to South Korea. It is due to the fact that the taken–for–granted important factors such as the ranking system within South Korea, reputation of a university, the quality of program, and the location of a university are not crucial in the choice of institutions for study abroad, in the case of students from post–socialist Asian countries to provincial universities in Korea. Instead, we argue that the transnational network which Korean universities and students from Asian countries have made spur student mobility from particular Asian countries to particular Korean provincial universities. 한국 정부가 2005년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위한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Study Korea Project)를 시작한 이래로 유학생 인구는 해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본 연구는 최근 그 규모를 확장해 가고 있는 베트남,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구 공산권 국가 출신 유학생들이 미국, 지방 대학을 많이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한국 지방 대학을 선택한 특정 아시아 국가 출신 유학생의 사례 연구를 통해 개별 대학이 선택되는 이유와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 한국 전체 유학생 통계에 비해 이들 국가 출신 유학생들이 현저히 많은 지방 대학 두 곳을 선택하여 유학생 본국의 사회경제적 맥락, 한국 대학의 유학생 유치 전략, 유학생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결합하여 특정 국가에서 특정 대학으로 대량 유입이 가능하게 되는지 살핀다. 영미권 서구대학으로 학생 이동성이 구성되는 과정에 대한 선행 연구는 유학 결정 과정이 주로 ⓛ 유학 결정, ② 유학 국가 선택, ③ 학교선택의 세 단계로 구성된다고 본다. 본 연구는 아시아 중저소득 국가에서 한국 지방 대학으로 학생 이동성이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러한 단계적 접근이 한국의 경우 유용하지 않다는 점을 밝힌다. 아시아 중저소득 국가 출신 유학생의 경우 한국 대학의 위계 구조나 대학의 명성, 프로그램의 질, 서울(글로벌 대도시) 소재 여부 등 대학 선택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조건들이 결정적인 선택 계기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한국 대학과 유학생 주체가 형성한 ‘초국적 연결망’이 특정 대학으로의 유입을 추동하는 주요한 동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밝혀 한국으로의 국제 학생 이동성이 가진 특징을 살핀다.

      • KCI등재

        연구논문 : 2000년대 관광 홍보 동영상 속의 한국: 그 특성과 의미

        김영훈 ( Young Hoon Kim ) 한국문화인류학회 2011 韓國文化人類學 Vol.44 No.2

        현대 한국 사회에서 시각 이미지의 중요성은 상업 광고는 물론 다방면에서 확인된다. 한국 정부가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설치하여 국가 이미지 제고에 노력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것 중의 하나이다. 특히 외국인 대상으로 관광 이미지를 제공하는 한국관광공사의 노력과 활동은 우리에게 매우 흥미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관광 이미지는 특정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생산되고 또한 그것을 투영하는 수단이다. 과연 한국관광공사가 보여 주는 한국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정확히 말해 보여 주고 싶은 한국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외국 관광객을 위한 시각적 전략은 무엇인가? 이 연구는 이러한 질문을 배경으로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제작, 배포되고 있는 동영상 관광 이미지의 특성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00년대 이후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인터넷에 공개된 11개의 동영상 작품을 대상으로 소재 이미지들의 종류와 그 특성을 살펴보았다. 한국 관광이미지에 나타난 대표적 이미지 소재들은 무엇인가, 그 특성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이전 시대와 비교해 볼 때 2000년대 관광 이미지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이 주요 질문들이다. 선택된 자료들에 대한 통계 분석 결과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우선 통계적 측면에서 대표적 이미지 소재와 속성에는 이전 시기와 큰 차이가 없지만 매우 전략화된 이미지가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의 출신지역에 따라 매우 차별화된 이미지 소재와 속성이 선택 또는 배제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한국의 이미지가 변주되고 있는 점이다. 둘째, 전체 비율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작지만 한류, 붉은 악마, 비보이 등 특정소재 이미지들의 등장이다. ``한국적`` 브랜드의 원천으로서의 전통유산 이미지와 더불어 새롭게 변화하는 현대 한국의 상징들이 점차 관광 이미지들에 등장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주제의 복합성을 선택된 소재 이미지들로 전환시키는 관광 이미지 제작 과정은 엄청난 단순화의 과정이면서 매우 정치적이며 상징적인 과정임에 틀림없다.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동영상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시각문화의 일부를 다루는 것이면서 있는 그대로의 한국이 아니라 변화하는 한국, 보이기 위한 코리아, 상품으로서의 국가 정체성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The increasing importance of visual images is found in the diverse aspects of contemporary Korean society. Especially noteworthy is the fact that Korean government is officially trying to improve its national image by establishing a special presidential committee called Korean Brand Committee since 2009. In a similar vein, the Korean National Tourism Organization`s (hereafter KNTO) tourism images and its advertizing strategies generate interest among researchers of Korean visual culture. What are the images of Korea which appear in KNTO`s tourism films? Which messages do those visual messages deliver to foreign tourist? How could we interpret the changing visual strategies employed in those carefully crafted Korean tourism films? These are the main research questions to be examined in this paper. With these questions in mind, I`ve selected 11 short films found in the official internet site of KNTO and have conducted a statistical survey to investigate the number and kind of visual images used in those films. The research findings indicate a few interesting points for discussion. Firstly, while most representative visual motives found in tourism images of the previous period continue to be used, newly diversified and strategically crafted tourism images are produced to attract foreign tourists of different countries. Particular visual images including Red Devils and Korean B-Boys, are being added to create new dimensions of visually constructed Koreanness alongside the traditional images of Korean. Does this change in visual imagery mean that a significant shift has occurred from traditional tourist images of the previous era? Or is the very juxtaposition of the old and the new, the traditional and the modern, an emerging visual strategy which is only unique to Korean tourism images? How could we compare the constructed Korean images with those used for tourism promotion in other countries? These questions remain unanswered and require further research in this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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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친구’, ‘우리는 모두 아름반’: 미국과 한국의 공동체성 사회화에 대한 비교문화적 기술

        안준희 한국문화인류학회 2019 한국문화인류학 Vol.52 No.1

        In this paper, I comparatively examine the meanings of communality enacted in the preschool classrooms of the U.S. and Korea. Based on detailed ethnographic description of everyday socialization practices in two preschools, I focus on three themes: the meanings of community, ways of conceptualizing “sharing”, teachers’ attitudes towards competition. The findings indicate that while teachers in the U.S. imagine an idealized community as a place where everyone is included and treats one another kindly, Korean teachers emphasize cooperation, oneness, and loving minds as essential components of an ideal community. These different images of community lead to varying practices and attitudes towards sharing and competition. Sharing in the U.S. classroom typically means taking turns while Korean teachers, in their practice of sharing, encourage children to simultaneously use things together. Whereas teachers in the U.S. classroom regard children’s competitive talk as socially appropriate expressions as long as they accompany kindness, Korean teachers view children’s competition as hindering social cooperation, and they thereby strive to prohibit children’s competitive interactions. By articulating how so–called sociocentric values are particularized in everyday activities of both classrooms, the paper critically discusses previous dichotomous framework of personhood and suggests the needs to pay attention to the multifacetedness and inherent dynamism of human separateness and connectedness. 본 논문은 미국과 한국의 유아원에서 실천되는 공동체성의 문화특수적 측면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중산층 유아원에서실천되는 사회화 관습을 교사들이 상상하는 공동체의 모습, 나눔의 실천, 경쟁에 대한 태도라는 세 주제를 중심으로 비교 분석한다. 논문은 미국 유아원에서 상상하고 실천되는 공동체에서는 개방성, 포용성, 친절함이, 한국 유아원에서는 협동, 하나됨, 소속감, 마음이 강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동체에 대한 상이한 상상은 나눔과 경쟁이라는 사회화 가치를 개념화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 유아원에서 나눔은 물건이나 공간을 돌아가면서쓰는 것으로 실천되는 반면, 한국 유아원에서 나눔이란 물건과 공간을 동시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미국 교실에서 경쟁은 친절함을 수반하는 한 사회적으로 절절한 표현으로 허용되는 반면, 한국 교실에서 구성원들 간의 경쟁은 협력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요소로 평가되었다. 한편 한국 교실에서 집단 간의 경쟁은 지속적으로 독려되었다. 논문은 비교문화적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인간 존재의 개별성과 집합성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방식에 존재하는 문화차를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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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me Implications of Material Culture In Contemporary Korean Villages , a preliminary report

        Knez, Eugene I. 한국문화인류학회 1972 韓國文化人類學 Vol.5 No.1

        文化人類學과 民俗學은 원래는 그 이론이나 資料면에서 서로 밀접한 關係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英國 社會人類學이 대두되고 또 그의 영향이 文化人類學에 미치면서 民俗學과 文化人類學은 서로 소원한 사이가 되었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社會人類學, 文化人類學 그리고 民俗學에 나타난 새로운 이론적 方向이 이 세 學問을 다시 공통점으로 이끌어 가는 듯하다. 요즈음은 民俗學者들이 民俗(folklore)을 연출(Performance)로 보며 이러한 硏究의 方向은 자연히 연출의 文化的, 社會的 또는 心理的面에 더욱 더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社會人類學者들은 祉會生活과 個人과 人問의 마음(human mind)과의 관계에 관심을 점차 더 기울이고 있으며 한편 文化人類學者들은 새 方向을 展開하고 있다. 그 方向은 文化와 人間의 認知(cognition)와 思考方式(human thinking)에 관한 것이다. 나의 韓國人의 祖上숭배와 친척간의 行爲硏究에서 위에서 말한 이 세 學問의 이론과 方法論이 應用되었다. 자료는 경기도 평택군에 위치한 한 同族部落에서 理地調査로 얻어진 것이다. 硏究結果 몇 가지 행동법칙이 발견되었다. 이 법칙들은 상기 住民들의 行動에 나타난 것이지만 그러나 각 個個人들이 이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한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韓國에서 나타난 것은 老人(elder)과 祖上(ancoster)을 가르는데 뚜렷한 斷絶(discontinuity)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다시 말하면 老人이 祖上이 되는 데에는 점차적인 과정을 밟아서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5개의 단계가 있는 것 같다. 첫째 단계는 활동적인 어른 단계(active adult stage)-살림권을 가진 단계, 둘째 단계는 은퇴한 늙은이 단계(retired elder stage)-그러니까 자식에게 얹혀 사는 단계, 세째 단계는 죽어 상청에 거주하는 단계一이 단계에 있어서 혼은 마루에 모셔 놓여지고 일정기간 동안 (주로 1-3年) 살아 계신 것처럼 봉양 받는다(상식 올리고 生日도 차려드리고 등등). 네째 단계는 제사를 받는 단계-제주(祭主)로 부터 四代祖가 되기까지 이 祖上은 3번 以上(亡者의 기제날, 正月初하루, 八月秋夕날, 그리고 배우자의 기제날) 자기의 직계 자손인 제주집에 와서 운감하여 대접 받는다. 다섯째 단계는 시제받는 단계-5代祖 以上이 되면 1年에 한 번 子孫들이 직접 묘에 가서 (조상이 子孫 집으로 방문하는 것이 아니고 子孫이 묘를 방문) 일제히 시제 드리는 것을 받는다. 위와 같이 韓國에서 老人과 祖上과의 사이의 점차적 과정은 美國 같은데서는 사람이 살아 있는한 活動的인 삶을 영위하나 죽음이라는 것에 의해서 갑자기 現世上과 斷絶되어지고 곧 잊혀지는 경우에 비교할 때 더욱 뚜렷해 진다. 그래서 우리집 사람은 이 韓國的 과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韓國의 老人은 죽지 않고 사라져 가는 것이다」라고. I have attempted to demonstrate the existence of a cognitive pattern, a set of rules for the perception and arrangement of social relationships, which finds expression in the behavior of individuals. This set of rules do not account for all aspects of the ancestor rituals; but they do seem to explain a good deal about certain similarities between them. The rules may be stated briefly as follows: 1. Ancestor status and elder status are but two phases of the same existence cycle. There is no sharp discontinuity between them. As my wife put it, "Korean eld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 2. Essentially similar behavior is appropriate toward ancestors as well as elders. 3. Ancestors and elders are both discriminated on the basis of (a) the degree of temporal or generational distance from oneself, and (b) the degree of genealogical distance from one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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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적 인간관계에 나타난 무속적 요소

        이부영 한국문화인류학회 1979 韓國文化人類學 Vol.11 No.1

        人間關係는 그 社會의 文化的 特性에 따라 상당한 影響을 받는다고 보거니와 轉國的 人間關係에 끼쳤을 여러가지 文化要素의 影響가운데서 巫俗的 要素의 影響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接近方法은 敍述的 主觀的이나 이미 1973年「샤마니즘과 巫俗」 (韓國思想의 源泉, 養英閣 pp.60-95)에서 主로 京畿道地域의 神託(공수)의 內容을 中心으로 본 神人關係와 「巫俗的 人間關係」의 關聯性에 대한 小考, 醫師 患者關係에 관한 筆者의 지금까지의 觀察과 發表 論文을 土台로 主觀的으로 경험된 韓圍人 相互間의 關係形成, 意思疎通의 前提와 樣相에 巫俗의 特質이 어떻게 反映되고 있는가를 綜合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韓國的 人間關係」를 살펴보는 한 方便을 提示하여 假說的인 意見을 開陳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어떤 絶對的인 結論을 主張한 것이 아니다. 筆者는 굿에 있어서의 공수의 過程이 參與者에게 직접적으로 關心을 끌게하는 過程이라는 点에 감안하여 이때 무당에게 憑依된다고 믿어지는 神이나 祖靈, 怨魂의 性格이 바로 韓國人의 意識的 또는 無意識的 Complex의 表現이라고 보고, 이와 같은 對象에 대하여 參與者가 取하는 態度가 바로 굿을 떠난 日常的인 人間關係로 延長되어, 어떻게 再現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感情的인 側面에서 볼 때 굿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祖上거리의 祖上과 參與者와의 만남이다. 여기에는 怨恨, 悔恨, 咀呪, 슬픔, 노여움, 同情, 慰勞의 死者와 生者 사이의 극히 情的인 交換이 있다. 그러나 神將, 大監, 使者, 보살등 그밖의 神格이 굿거리에 登場할 때는 各己 그 神의 性格을 달리하는만름 感情的인 疎通의 樣相도 多彩로와진다. 大監은 Dionysos的인 豪放함을. 神將은 그 씩씩한 男性性을, 使者는 冷酷하고 無慈悲한 성격을, 보살은 조촐하고 受容的인 宗敎的 感情을 表現하고 있다. 그런데 京畿道地域의 굿거리의 공수내용을 보면 대부분 하나의 話法에 集約된다. 그것은 세가지 段階를 지니고 있는 바, 첫째는 神格이 자신의 權能과 威容을 내세우는 段階이며, 둘째는 차려 놓은 것이 너무 조촐하고 보잘 것이 없다는 불평이나 叱責 또는 協迫이며, 셋째는 이번만은 待別히 잘 봐 주겠다는 寬容이다. 이러한 論法은 韓國人의 對話나 對人關係의 一部를 차지하며, 特히 官僚主義의 特徵的인 構造를 이루고 있다. 「되는 일 없고, 안되는 일 없다」는 한국의 俗談은 무당굿거리의 이와 같은 絶對善도 絶對惡도 없는 相對的 關係가 지니고 있는 意味를 웅변적으로 表現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神格이나 祖靈의 虛勢나 거드름에 대한 參與者, 즉 공수를 받는 사람의 反應은 반드시 無條件의 順從이나 服從이 아니라 條件附 抵抗이라는 性格을 띄어서 參與者의 態度 역시 絶對性을 欠如한 것이라 볼 수 있다. 例컨데, 參與者는 「돈이 있어야 차리지」 「잘못했다 잘 봐달라」는 등의 말을 함으로써 神의 노여움을 달래면서 受動的 抵抗을 하면 適當한 線에서 妥協할 수 있도록 模索한다. 神人關係는 이렇듯 妥協可能한 것으로 간주되며 神人사이의 對話는 이 妥協線을 模索하는 「싱갱이」의 形態를 띄게 된다. 굿거리의 神과 人間사이의 싱갱이는 結局 韓國人의 一般的인 商行爲, 더 나가서 이에 比肩하는 各種 人間關係로 延長된단, 그런데 京畿道地域 巫俗의 공수를 關西地方 巫歌에 나타난 공수의 內容과 比較하면 後者에서 전혀 前者의 三段階 論法을 發見할 수 없고, 그 內容에 조금도 심술이나 지나친 눈물어린 슬픔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공수의 內容과 그 特徵은 그 地域巫俗의 特性에 따라 多少의 變化를 입을 可能性이 있고, 이것은 또한 地域文化에 따른 地域에 特異한 人間關係의 樣相에 관계되리라 생각된다. 또한 공수를 男巫가 하느냐, 女巫가 하느냐에 따라, 무당 개인의 Complex의 特徵에 따라 變化될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굿거리의 半意識的 神人關係는 權威者와의 半意識的關係와도 관련시킬 수 있고, 굿거리 全體에서 벌어지는 人間相互間의 關係의 縮圖라고 여겨진다. 무당과 손님과의 관계는 또한 醫師와 患者와의 關係에서 再現된다. 무당은 神들린 存在로서 一種의 mana 人格이며 醫師를 보는 患者나 患者 家族의 態度 또한 mana 人格에 대한 魔術的 期待와 畏怖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반드시 韓國人의 特性이라기 보다 人間心性의 보편적인 特性이지만 特히 韓國人患者에서 유달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特徵이다. 이러한 魔術的 期待의 底邊에는 반드시 巫覡的 要素뿐 아니라 人間을 大宇宙를 본 딴 小宇宙로서 보고자 했던 東洋的 人間觀이 자리하고 있다. 가령 人間心性속에 佛性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본 佛敎的 人間觀이나 人乃天을 提唱한 東學의 理念이나 모두 人間에 대한 「두려움」을 媒介할 수 있었던 文化的要索라 할 수 있다. 단지 巫俗에서는 人間속에 있는 그 超越的 要素나 實體가 魔力이라는 特徵 以外에 다른 倫理性을 지니지 뭇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韓國巫俗에서 除外할 수 없는 占卜의 心理 역시 韓國的 人間關係에서 중요한 役割을 하는 것이다. 이른바 非言語的 意思疎通( non-verbal communication)을 重要하게 여기는 東洋의 傳統的 態度는 巫俗에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맞추는」作業과 이러한 能力에 대한 期待도 나타난다. 우리나라 患者의 醫師에 대한 態度에도 이런 알아맞추어 주기를 기대하는 傾向이 두드러지게 强하다. 알아맞추는 能力을 갖춘다는 것은 바로 mana를 所有한다는 것이며 醫師는 때로 占者나 무당처럼 mana 人格으로 간주된다. 醫師가 얼마나 자기의 마음이나 病의 實體를 알아 맞추는 가를 시험하기 위하여 용하다는 病院이나 醫師를 轉轉하는 患者群도 있고, 이러한 患者들의 魔術的 期待에 迎合하여 스스로 이른바 自我의 膨脹을 일으켜 mana 人格인듯 處身하는 治療者도 있다. 韓國的 人間關係에서 權威者와의 關係는 畏怖이 感情에 의하여 媒介되는 人間關係이며, 이것은 굿거리의 巫神과 參與者와의 關係에 反映된다. 이런 關係가 絶對的인 主從關係가 아니라 條件附 妥協이 可能한 相對的 主從關係이다. 그러나 巫神은 이승의 權威者가 아니고 저승의 權戚者로서 굿거리의 神人關係에서는 이른바 世俗의 權威意識을 余地없이 때려부수고 社會的 權威를 神의 權威로 代替함으로써 權威者의 再編成을 하여 社會 階層間의 感情的 隔差를 解消시키려는 機能이 있다. 韓國社會의 娛樂會에서 年少者가 年長者에게 억지로 라도 노래를 시키고 좋아하는 風習은 이러한 굿거리의 機能과 유사하다. 韓國的 人間關係에서 볼 수 있는 時間觀念의 欠如, 時間約束의 輕視는 神話的 時間속에서 當爲되는 巫俗祭儀의 特徵을 內包하고 있다. 人間과 人間과의 만남은 永遠한 時間 속에서 이루어진다. 오늘 떠나도 「언젠가」 또 만난다. 永遠한 時間속에 사는 사람에게 「時間約束」이란 不自然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아무때나 오고, 아무때나 간다. 精神活動의 경우 患者 가 아무 말 없이 안나오는 경우가 있음을 筆者는 指摘한 일이 있다. 西歐式觀念에 따를 때 이것은 治療中斷이나 巫俗文化의 風土에서는 그렇게 볼 수 없다 病院 外來診療所의 予約制度가 特히 巫俗文化圈의 사람들에게 무척 適應하기 어려운 制度임은 當然한 일이다. 그러나 世俗의 時間을 無視하는 巫俗社會는 神聖한 時間에 관해서는 철저히 지켜 「손없는 날」을 擇하는데 未曾有의 强迫性을 發揮한다. 굿거리중 「넋두리」는 人間關係에서 普遍的으로 發見되는 感情소통의 類型이다. 노여움을 푸는 作業은 우리나라 人間關係의 어디서나 중요시 되는 傾向이다. 그러나 넋두리를 푸는 자유기능과 함께 中毒性의 危險을 지니고 있다. 巫俗的 人間關係는 主로 中小都市의 商人을 中心으로한 大農杜會나 農漁村主民들의 行動類型을 支配하고 있다. 儒敎的 人間關係가 美的인 基準에 따라 感情을 規制한 禮儀 範節과 같은 人間사이의 美的 連統性을 强調한다면 巫俗은 激한 原始感情을 바탕으로 한 劇的 人間關係률 形成한다. 얼핏보아 倫理性의 欠如, 放縱처럼 보인다. 一罰百戒, 卽興的 感情的 斷定, 劇的 展示效果 等 우리 社會의 各種 非合理的인 要索들이 巫俗的要素와 關聯을 가진다. 이러한 刻迫한 狀況뒤에도 또한 「어떻게 되겠지」하는 偶然性에의 無限한 期待心, 永遠한 天上의 世界에 의지하려는 마음, 더 나아가 스스로 그러한 분위기 속에 들어가 神의 魔力을 亨有하려는 希求가 있다. 이것은 理想의 世界에 대하여는 크게 눈을 뜨게하나 同時에 具體的 現實을 把握하는 能力은 弱化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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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현과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의 관계: 학사적 초안

        전경수 한국문화인류학회 2025 한국문화인류학 Vol.58 No.1

        ‘이두현과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의 관계’는 어떠한 정도였을까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본고를 작성하는 목적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풀어보는 과정과 결과를 제시하는것이다. 이두현은 1958년에 한국문화인류학회의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연극사를 전공하는 과정에서 민속학을 만났고, 1960년대 초까지 학문적 오리엔테이션은 연극사와 민속학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62년부터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동일 기간 동안에 스미소니언 박물관 인류학부의 큐레이터였던 유진 크네즈(Eugene Knez) 박사로부터 이두현에게 한국의 유물 수집 의뢰가 왔었다. 이두현의 학문이 인류학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는 동경대학 교수 이즈미 세이이치(泉 靖一)와의 관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즈미는 1965년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학문적관심이 샤머니즘으로 집중하였고, 이두현을 연구협력자와 샤머니즘 연구를 위한 동료로서 적극적으로 대우하였다. 이두현은 하나마츠리(花祭)를 관찰하기 위하여 아이치현(愛知縣)의 오쿠미카와(奧三河)를 비롯해서 타네가시마(種子島)의 샤머니즘 현장을 찾아 다닐 수 있었다. 1968년부터 1969년 사이에 이즈미는 이두현을 동경대학 문화인류학연구실 객원교수로서 초빙하여 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하도록 주선하였다. 필자와의대화 속에서 이두현은 <花祭>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찬사를 그칠 줄 몰랐다. <花祭>는총 1,574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당대까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만들어내지 못하였던 치밀한 민속지(ethnography)다. 이두현이 1970년대 이후 추적한작업이 무속의 현장이었고, 그것은 이즈미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두현의 무속현장 답사의 족적이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노력과 지원으로 <이두현 기증 사진집>과 <이두현 기증 무가연구>라는 이름의 자료집으로 탄생하였다. 필자는 이두현 선생의 논문들 중에서도 초분(草墳)에 관한 논문을 심도 있게 정독하였다. 그 논문의 전후로 선생은 자신의 학문적 오리엔테이션을 문화인류학으로 구체적으로 굳혀가고 있었다고 생각되며, 1974년 연말과 1975년 연초에 결정적인 계기를 맞이하여 스스로 전문적으로 공인된 인류학자의 길을 가려는 시도를 하였다. 서울대 종합화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 대하여 필자가 알고 있는 만큼의 사실들을 기록한다. 서울대학교 연구동 6동의 4층에 나란히 교수연구실이 있었고, 설계된 도면에는 “교수 이두현”, “부교수 이광규”, “조교수 한상복”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광규 선생은 사범대학 교육학과로부터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로 이동할 것을 희망하는 서류를 제출하였고, 마찬가지로 이두현 선생도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새로 설립되는 사회과학대학인류학과로 이동할 것을 희망하는 서류를 대학본부에 제출하였던 것이다. 그에 따라서작업이 진행되었으며, 필자가 보았던 서울대학교 종합캠퍼스 설계통제실장실의 설계도면에 그러한 결과가 반영되어 있었다. 당시 전대학에서 종합화 과정에 이동을 희망하였던 교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보류되었던 사례가 이두현 선생의 경우라고 알고 있다. 증언에 의하면, 이두현은 “미래에는 민속학을 넘어서 인류학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This author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anthropology focuses on the academic background and contribution of Professor Lee Du-Hyun (1924-2013). It is very important for us to be candid in doing the history of anthropology. Professor Lee’s academic works have been clearly acknowledged in the field of the theatrical history through research and education. In 1961 he met Dr. Eugene Knez, an anthropologist at the Smithsonian Institute in Washington D.C., as he was returning from his one-year academic training in the USA. More importantly, there was a good chance for him to move his academic interest into a new field of anthropology through his meeting in 1961 with Izumi Seiichi, an eminent anthropologist at Tokyo University. Furthermor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m grew quickly as a result of the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 in 1965. Lee’s growing interest in anthropology moved toward the study of shamanism with Izumi Seiichi’s influence in terms of both fieldwork and research papers. I would like to recognize his article titled “Grass Tomb” (1973) as one of his masterpieces, especially in the field of cultural anthropology. In fact, he was seriously engaged in becoming an anthropologist in the due course of his academic career. Also he wanted be identified as an anthropologist in the university system. I intend to figure out why this was, and how he strove to do so. There was an incident related to the ‘Unifying Program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1975. Lee made a full-fledged effort to move from the Korean Language department under the Teacher’s College to a newly established department of anthropology under the College of Social Sciences; nevertheless, he finally failed to materialize his lifelong hope in the end. He was impeded by the barrier of university politics, in terms of both the academic organization itself as justification and the interpersonal relationships as a reality. The outcome was that he could not become a “Professor of Anthrop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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