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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패커의 신학논쟁에 나타난 사상과 교훈

        이명구 ( Myung Ku Lee ) 한국개혁신학회 2011 한국개혁신학 Vol.29 No.-

        한국개신교는 초기 선교사들의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바탕으로 타종교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괄목할만한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고, 어느덧 한국사회의 재래종교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입지를 탄탄하게 세웠다. 하지만 90년대 이래, 초고속 성장을 하던 한국개신교가 계속 침체의 길을 걸을 뿐 아니라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까지 흔들리고 있다. 과연, 왜 한국개신교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는가? 필자는 이것을 한국개신교 내에 잠식되어 있는 한국전통의 재래종교, 풍요로움만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기복적 물질만능주의,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주의라고 생각한다. 또한 서구사상인 포스트모더니즘과 뉴에이지사상은 한국개혁교회를 흔들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본고는 마틴 로이드 존스와 함께 20세기 개혁적 복음주의를 이끌었던 제임스 패커의 신학사상과 논쟁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개혁적 복음주의 신학자이고, 진보신학과 반지성적 경향들에 맞서 싸웠던 패커의 신학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외형적인 물량주의와 세속주의에 물든 한국개혁교회에 하나의 영적인 도전을 주고, 한국개신교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개혁사상을 제시해 줄 뿐 아니라, 또한 세계 속에서 21세기의 영성을 주도하도록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개신교가 제임스 패커의 사상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첫째, 한국개신교는 칼뱅주의적 청교도 사상을 계승해야 한다. 이것은 칼뱅의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과 청교도들의 성경에 근원한 건전한 교리, 개인의 경건생활, 말씀에 입각한 질서 있는 교회생활을 계승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개신교는 개혁적 복음주의를 확립하고 확산해야 한다. 이것은 개혁신학적인 신관과 교리를 부정하며 교회의 예배를 거부하는 세속화를 경계하고, 바울과 어거스틴,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로 이어지는 정통적인 신학과 신앙을 세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개신교는 성경의 절대 진리를 부인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 과학 그리고 이성의 자율로부터 성경의 권위를 전투적으로 수호해야 한다. 그러면, 성경의 신적권위가 회복되고, 문화를 변혁할 수 있는 능력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뿐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The Korean Protestantism has made a remarkable revival and growth on the basis of reformed theology and faith of the early missionaries enough to incur the envy of the Korean traditional religions. But since the 90`s, the Korean Protestantism which was growing rapidly is shaken to the identity of Reformed theology and faith as well as continue to walk the path of recession. Indeed, why does a growth and revival of the Korean Protestantism impede and shake? I think this is because of the Korean traditional religion and the materialism to emphasize only the abundance of God`s blessings, the church`s growthism to daredevil the ways and means that mixed with the Korean Protestantism. Also, the Postmodernism and New-Age movement which are the Western thoughts have been enough to shake the Korean Protestantism. So, this essay tries to study on the theological thoughts and debates of Packer that led the evangelical theology of the 20th century with Martin Lloyd-Jones. Because, Packer`s thoughts which fought against the liberal theology and anti-intellectual tendencies will give the spiritual challenges and the correct reformed thoughts to the Korean Protestantism soaked in the materialism and secularism, also his thoughts will give a big influence to lead spirituality of the 21st century in the world. Then, what will the Korean Protestantism learn to James Packer? First, the Korean Protestantism should be succeed Calvinistic and Puritan Protestant thoughts. Because, this is to succeed God`s absolute sovereignty in Calvin`s thoughts and the sound doctrine in the thoughts of the Puritans. Second, the Korean Protestantism has to establish and spread the reformed evangelism. Because, this is to defend secularization to deny reformed theological thoughts and to reject worship of the church. or this is to built the Biblical orthodox theology that continued from Paul and Augustine to the Reformers and Puritans. Finally, the Korean Protestantism must defend the authority and inerrancy of the Scripture in the battle from the post-modernism and modern science and autonomy of reason to deny absolute truth of the Bible. Then, the Bible will be recovered the divine authority and will be recognized the ability to change the culture and will be standard to judge everything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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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역사와 정신: 개혁교회 그 분명한 정신을 추구하며

        주도홍 ( Do Hong Jou ) 한국개혁신학회 2013 한국개혁신학 Vol.40 No.-

        개혁교회(The Reformed Church)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수많은 신앙고백들을 가지게 되었다. 곧 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근거로해서 성경적 신앙고백을 늘 추구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개혁교회 역사에서 신앙고백의 선구자로서 위치하는 것이 1563년 독일에서 태어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der Heidelberger Catechismus)이다. 16세기 종교개혁 시대 루터의 나라 독일에서 스위스 종교개혁 신학을 받아들여 형성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21세기에 이르러서까지도 개혁교회의 중요한 신앙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1618/19년 돌트 총회Dordt Synod 이후, 벨기에 신앙고백, 돌트 신경과 함께 개혁교회의 3대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의심할 것 없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종교개혁 시대 가장 폭넓게 사랑을 받았고, 가장 따뜻한 평가를 받은 요리문답이었다. 그러기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향한 한국교회의 균형 잡힌 관심과 연구는 요구된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향하여 교의신학적(dogmatic) 연구에 집중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그 역사와 정신을 교회사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 후 16세기 독일을 위시한 유럽 대륙에서 태어난 개혁신학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함에 목적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이해로부터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21세기 한국교회를 자리매 김할 수 있길 소망한다. The Reformed Church has had many confessions in different times and places. Based on the issues the Church faced at that specific time, a biblical confession was made addressing those issues. In 1563, the first of these confessions the Heidelberg Catechism was written. During the 16th century Reformation, Luther`s Germany received Swiss reformation theology which was core in the Heidelberg Catechism. Along with the Dordt Synod 1618/19, the Belgic confession, the Heidelberg Catechism is considered one of the 3 core confessions of the Reformed church. Without doubt, the Heidelberg Confession is the most beloved confession and the most warmly reviewed of the three. For this reason it is imperative for the Korean Church to research deeply and fairly this topic. At the current time, the Korean Church lacks fair analysis and reviews of this important confessions. For this reason I wish to further research the history and spirit of the Heidelberg Catechism. Through this we stand to better understand the Reformed Church and its roots. Through this historical understanding of the Heidelberg Catechism it is my hope the 21st century Korean Presbyterian Church can continue progressing in its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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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 한국에서 신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추구하며

        베덕만 ( Dawk Mahn Bae ) 한국개혁신학회 2011 한국개혁신학 Vol.32 No.-

        여러 측면에서,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목회자들의 도덕적 문제, 성장에 대한 교회의 집착,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부정적 태도 등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극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은 부흥운동을 통해 이렇게 추락하는 영적 상황을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어떤 개혁 자들은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교회와 목회자들을 향해 비판적 목소리를 계속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안팎의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는 교회를 위한, 신학자들의 개혁적 목소리나 행동은 상대적으로 드문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곤경에 처한 한국교회를 위해 신학자들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인문학과 좀 더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신학자체가 인문학의 영향 하에 형성되었고, 현재에도 인문학과의 대화 및 협력 없이 신학적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에는, 신학자들이 인문학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여러 요인들이 존재하며, 한국에서 "신학하기" 위해선 그런 요인들을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교회는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개척되었고, 지금도 미국교회와 신학적·신앙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의 이념적 정체성은 이 나라의 지리적· 이념적 분열의 막대한 영향 하에 형성되어 왔다. 게다가, 한국교회는 자본주의와 관련된 물질주의,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신학적 차이에 기인한 내적 분열 등의 난제들과 씨름하는 중이다. 이 문제들은 모두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논제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들을 용감하고 책임 있게 다루지 않는다면, 신학자들과 교회가 한국사회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심지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런 목적을 위해, 신학자들은 철학, 문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같은 인문(사회)학으로부터 많은 소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오늘날,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신학적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런 필요를 깊이 깨닫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문학자들과의 대화와 협력에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좀 더 빈번하게 참여할 필요가 있다.하지만, 신학자들은 인문학과 일종의 간학문적 작업을 시도할 때, 세심히 주의할 필요도 있다. 신학자들에게는 인문학으로부터 긍정적인 지적통찰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신학자와 신자로서 자신의 신학적·영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양자 간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Korean churches are faced with serious crises in many aspects. Critiques against pastors` moral problems, churches` preoccupation with numerical and financial growth, and Christians` negative attitudes toward other religions are getting increased. In this situation, a variety of efforts to overcome those crises are being carried out. Some pastors try to change the declining spiritual condition by way of revival movement. Some reformers are raising their voices against the churches and theirs pastors associated with a series of scandals. However, in this context, it is relatively rare to hear theologians` voices or actions for the reorientation or reconstruction of churches faced with a lot of challenges from within and without. In the midst of this religious turmoil, one of the ways for theologians to contribute to Korean churches in need is to have a more responsible dialogue with humanities. Basically, theology itself has been shaped under the influence of humanities, and it is even now impossible to do theological work without dialogue and cooperation with humanities. In particular, "doing theology" in Korea is asked to consider many factors, which also enforce theologians to pay more attention to humanities. Korean churches were planted by American missionaries and are maintaining a close relationship with American churches and theologies. The ideological identity of Korean churches has been formed under the heavy influence of the geographical and ideological division of this country. In addition, Korean churches are struggling with a series of difficult matters such as materialism related to capitalism, religious pluralism, and inner division due to the theological differences. All of these matters must be critical theological issues in Korea. Therefore, without dealing with those issues bravely and responsibly, it is neither possible nor desirable for theologians and churches to make any positive impact on Korean society. And for that purpose, theologians can get many significant academic insights from humanities including philosophy, literature, history, politics, economics, sociology, and the like. These days, more and more scholars are realizing such a need in the course of their theological work. But, they need to participate in the dialogue and cooperation with humanists more actively and frequently. Such a close contact will make a positive impact on even humanities, let alone theology. At the same time, theologians need to be cautious, when they try to undertake a kind of interdisciplinary work with humanities. For theologians, what matters is how to make a balance between to get positive intellectual insight from humanities and to keep their theological and spiritual identities as theologians and believers, not secular human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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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장로교회와 장로직: 장로임기제 도입에 대한 개혁신학적 탐구

        권문상 한국개혁신학회 2012 한국개혁신학 Vol.35 No.-

        This paper analyzes the organization of eldership in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and asks if it coincides with the ecclesiastical, Reformed, and biblical substantiation. Especially it concerns how it or Presbyterian consistory in Korea corresponds to the Reformed or the Genevan Consistory under the leadership of John Calvin(1509-1564). Through these studies, can we recognize that the organization of Korean Presbytery is far from the ethos of Genevan church in the ministry of Calvin. Reading the organization of eldership in view of Reformed tradition, we demands the legalization of the term of an elder. We do no justify ourself the life tenure of an elder in view of that the presbyterian churches in U.S.A., which has had an effect on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already execute the term office of an elder. It is true that the Presbyterian churches in Scotland implement the system of the life tenure of an elder. However, we need to consider that it was made in practical purpose to secure the autocracy of the church from the intervention of the state. In this sense, it is not the model for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Rather, the life tenure of an elder in Korean churches is the product of Korean culture, namely the copycat of the elder as a ‘senior’, a respected person only because of the ages, living in the neighborhood. Recognizing that the life tenure of elder in Korean Presbyteian churches originates from the Korean Confucian social custom, we have no justification to reject the revision from the life tenure to the organization of the term of an elder. The term system of an elder should be, of course, brought alongside of the institutional check of the ministers, as in Geneva. 이 논문은 한국 장로교의 장로직제의 실체와 그것의 교회사적, 개혁신학적 여부를 타진해 본다. 특히 한국 장로교의 장로직제 나아가 장로교 치리회가 개혁신학적 혹은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제네바 교회 치리회(Consistory)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분석한다. 이상의 탐구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장로교 정치 구조가 칼빈이 시도한 치리회 제도의 정신과 얼마나 부합하지 않는지를 확인할 것이다. 장로회 제도에 대한 이러한 개혁신학적 탐구를 통해 이 글은 장로 임기제의 법제화를 요구할 것이다. 한국 장로교가 영향 받았다는 미국의 장로교에서는 이미 대부분 장로 임기제가 실시되고 있는 사실에서 우리가 계속 종신제를 유지시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할 것이다. 물론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장로 종신직이 시행되고는 있지만 이는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교회의 자치권을 확보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에 따라 도입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가 모범을 삼기에는 논리적 근거가 희박하다. 오히려 한국의 장로 종신직은 다분히 한국 문화의 산물인 것으로 동네 ‘어른’ 장로의 복사판인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한국의 유교적 문화적 개념에 따라 한국의 장로 종신직이 유래하였다고 볼 때, 임기제로 고치는 것은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하겠다. 특히 개혁신학의 유산을 물려받은 한국 장로교로서는 칼빈의 제네바 교회 치리회 구성 목적 및 그 운영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칼빈이 제네바 교회 치리회 제도를 만든 목적 중 하나는 목사든 장로든 1인 혹은 1개 조직의 권력 집중화를 막는 것이었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위해 제네바 교회 치리회 의원 중 장로 임기를 (연임이 가능한) 1년으로 정한 것이었다. 치리회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칼빈이 장로 임기제를 실시한 것과 같이, 한국 장로교 역시 장로 임기제를 실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이 글의 논지를 지지하는 전제 조건으로 칼빈이 제안한 바와 같은 목사의 자격과 그 지위에 대한 철저한 제도적 검증, 관리, 감독 장치 설치를 제안한다. 장로의 임기제 도입은 이와 같은 목사에 대한 제도적 견제 장치의 개설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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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선교와 신학 : 중국인 가옥명(; Chia 賈玉銘Yu Ming, 1879-1964)의 성령론연구: 구원론을 중심으로

        최윤배 ( Yoon Bae Choi ) 한국개혁신학회 2013 한국개혁신학 Vol.39 No.-

        본고에서 우리는 가옥명의 생애와, 그의 신학의 한국장로교회신학에 대한 영향, 그의 책과 한국어 번역서와의 차이점에 관하여 간단하게 언급하고, 한국어 번역서 『성령론』을 중심으로 그의 성령론 이해를 살펴보았다. 또한 그의 성령론 이해와 관련하여 우리는 가옥명이 이해한 성령의 위격, 성령의 사역, 구원 순서, 성령 세례를 취급하였다. 우리가 논의한 내용을 몇 가지로 요약하고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옥명의 조직신학 저서가 1931년(소화 6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그 당시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신학교인 평양 "장로회신학교"의신학교재로 사용되어 한국선교 초기 한국장로교회신학 사상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한국장로교회에서 조직신학을 보통 6개 각론(各論; loci)으로 분류하여 가르치는 것은 가옥명의 한국어 번역서로부터 비롯되었고 볼 수 있다. 둘째, 번역 과정에서 한국어 번역서는 새로운 세 장(章)들(three chapters), 즉 "第六章「基督과 聯合함」", "第八章「義子됨」", "第十章「確知와 堅忍의 恩惠」"를 첨가하였다. 셋째, 가옥명은 성령을 하나님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 이해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이다. 가옥명은 성령의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이중적 관계를 강조했다. 넷째, 그는 성령의 사역(work)을 구속사(history of salvation)적으로 그리고 구원순서적(救援順序적)으로(ordo salutis) 이해한다. 다섯째, 가옥명은 구원순서와 관련하여 선소(選召), 중생(重生), 신심(信心), 회개(悔改), 칭의(稱義), 성성(成聖)을 다룬다. 가옥명이 이해한 반정(反正)은 중생에 대한 신자의 반응으로서 신자의 신심과 회개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은 일반소명을 통해서 복음을 듣게 되고, 특별소명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후자의 경우 성령의 내적 조명이 반드시 동반된다. 중생은 성령의 역사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신심은 신앙으로서 지정의(知情意)를 포함하며, 전인적으로 이해 되고, 성령의 선물이다. 회개는 지정의를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회개이다. 칭의는 죄사함받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로의 회복이다. 성성(成聖)은 성화 또는 성결로 성령을 통해 거룩해져야할 일생동안의 과제이다. 여섯째, 가옥명은 영세(靈洗), 곧 성령세례(聖靈洗禮)를 중생 이후에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를 통해 이룩되는 성령 충만으로 이해한다. 일곱째, 가옥명의 성령신학은 어떤 점에서는(예정론 수용 등) 개혁신학(장로교회신학)을 공유하고, 어떤 점에서는(성령세례 이해 등) 부흥운동신학(침례교, 감리교, 순복음교회 등)을 공유함으로써,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의 골격을 대체로 유지하면서도 복음주의신학이라는 보다 넓은 틀을 갖고 있는 신학이다. 개혁파 정통주의신학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성령의 약화를 가옥명은 충분히 보충해 주고 있고, 부흥운동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거부하는 예정론을 가옥명은 하이퍼-칼빈주의(hyper-Calvinism)를 피하면서 온건한 예정론을 주장한다. 그 결과 그의 성령론 저서는 한국기독교 The year 2012 is the year that celebrates the 20th anniversary of Korea-China diplomatic relations. At this point, the study of China theologian, Chia Yu Ming(1879~1964) will be very significant for Korea-China Christian relations. Rev. Dr. Prof. Chia Yu Ming(Ka Ok Myeng in Korean) was born on January 19, 1897 in Shandong Province, China. He died on June 12, 1964. A set of six textbooks on Systematic Theology ware in 1931 translated and adapted from Chia Yu Ming`s Chinese work which consists of a set three textbooks. Chia Yu Ming`s Pneumatology is the fifth volume of a set textbooks on Systematic Theology translated into Korean. In fact the book titled with pneumatology contents soteriology. According to Dr. W. D. Reynolds, a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ary, the three volumes of Chia Yu Ming`s Systematic Theology are published in six volumes in Korean into our curriculum. Before publication these translations have all been used in mimeograph, and tested in actual class room work in Pyongyang Seminary started in 1901. Chia Yu Ming sees the Holy Spirit as God namely the third Person and as Power.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s seen by Chia Yu Ming as redemptive-historical. Soteriology is seen by him as the application of th work of redemption. The Holy Spirit plays the important role in soteriology. By Chia Yu Ming the order of salvation(ordo salutis), beginning in election and ending glorification, represents not a chronologicalsequence, but a logical one. He discusses election and calling, generation, faith, conversion,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His doctrine of baptism in the Holy Spirit does not agree with the Reformed theology, but with the Pentecostal churches. Because he sees the baptism in the Holy Spirit not in the connection with the justification, but the gifts of the Hol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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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츠(Pfalz)의 개혁파 종교개혁의 발전(1558-1561) : 멜란히톤과 칼빈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안인섭 ( Ahn¸ Insub ) 한국개혁신학회 2021 한국개혁신학 Vol.71 No.-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독일에는 전통적인 봉건적 영주들과 선제후들 가운데 로마 가톨릭주의나 루터주의 지역과 맞닿아 있으면서 스위스에서 시작된 개혁주의를 시범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팔츠의 종교개혁은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구조 위에서 열린 공간 속에서 배양되어 선-종교개혁(Pre-Reformation)이라는 잠복기를 통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아우구스부르크 가신조(1548)와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화약(1555) 사이의 기간이 팔츠 종교개혁에서는 결정적인 시기였다. 오토 헨리 선제후(재위: 1556-1559)가 루터주의를 수용하게 되었는데 이때 순수 루터주의와 개혁주의가 어설프게 공존하게 되면서 분쟁의 씨앗이 잠재되어 있었다. 개혁신앙의 자양분을 가지고 있었던 프레드릭 3세가 즉위할 때(1559. 2.)부터 이미 하이델베르그 대학 내에는 헷수시우스의 순수-루터파와 클레비츠의 개혁파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있었다. 이 교회의 균열을 해결하기 위해서 프레드릭은 멜란히톤에게 조언을 청했다. 멜란히톤의 중재를 위한 "판단(Iudicium de Controversia Coenae Domini)"이 1559년 11월 1일에 작성되어 팔츠 선제후에게 보내져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다(출판은 1560. 9). 멜란히톤은 “판단”에서 성찬에서 떡을 떼는 것을 고전 10:16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라고 해석하여 개혁파의 성찬론에 거의 근접했다. 그러나 5개월 후(1560.4.19.) 멜란히톤이 사망하게 되자, 팔츠는 신학적으로 지도력의 공백을 맞아 더욱 스위스를 바라보게 되었다. 제네바의 칼빈은 불링거(Heinrich Bullinger)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팔츠의 신학논쟁을 야기했던 순수-루터파 헷수시우스를 비판하는 논문을 출판(1561)하면서 팔츠의 개혁파 종교개혁에 직접적으로 신학적 개입을 했다. 1558년에서 1561년 사이에 위와 같은 역사적 격변이 일어나면서 팔츠는 개혁주의 종교개혁의 기반 위에 서게 되었다. 이런 개혁신학의 토대 위에서 팔츠 선제후에 의해 1562년에 시작해서 1563년에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가 출판될 수 있었고, 그것이 각국으로 번역되고 확산됨으로 팔츠는 국제적 칼빈주의의 구심점이 되었다. 따라서 16세기 팔츠 지역의 개혁주의 종교개혁의 발전은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인 맥락과 순수-루터파와 멜란히톤주의의 분열과 갈등, 그리고 칼빈과 불링거를 중심으로 하는 스위스 개혁주의의 연계라는 다차원적인 맥락에서 조명해야 할 것이다. During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Germany had a space to apply the reformed thoughts that originated in Switzerland just like a pilot project among the traditional feudal lords and Electors, while meeting the borders of the Catholic or Lutheran regions. The Reformation of the Palatinate was cultivated in an open field on the political and diplomatic structure of the Holy Roman Empire, and was gradually progressing through the incubation period of Pre-Reformation. The period between the Augsburg Interim (1548) and the Peace of Augsburg (1555) was decisive in the Palatinate Reformation. Otto Henry (reign as Elector: 1556-1559) accepted Lutheranism, when he poorly invited the Gnesio-Lutherans and reformed thinkers without consideration, leaving the seeds of conflict. From the period of Frederick III, new Elector of the Palatinate, who was nourished with the Reformed faith, came to the throne (1559 Feb.), there was already a conflict between Heidelberg's Gnesio-Lutherans and Reformed theologians as Klevitz in Heidelberg University. To resolve the theological conflicts, Frederick turned to Melanchthon for his advice. Melanchthon's "Judgment (Iudicium de Controversia Coenae Domini)" for arbitration was written on November 1, 1559 and sent to Elector the Palatinate to suggest the direction of resolution (published on 9 September 1560). Melanchthon's interpretation of breaking bread in the sacrament in “judgment” was quoted from 1 Corinthians 10:16 as a participation( koinonia) in the body of Christ, and came close to the sacramental theory of the Reformed theologians. However, after the death of Melanchthon (1560.4.19.), facing a doctrinal vacuum in its leadership, the Palatinate became to head to a theological view of Switzerland. Calvin of Geneva received a letter with the data from Heinrich Bullinger and made a direct theological intervention in the Reformation of the Reformed theology, publishing a writing (1561) criticizing the Gnesio-Lutheran Heshusius that caused the tough controversy in the Palatinate. Between 1558 and 1561 the above historical upheavals took place, putting the Palatinate on the basis of the Reformed theology. On this background, the Heidelberg Catechism, which began in 1562 by Elector of the Palatinate, was published in 1563. It was translated and spread throughout the whole Europe. The Palatinate became the pivotal place of the international Calvinism. Therefore, the development of the Reformed Reformation in the Palatinate in the sixteenth century should be recognized in the multilateral contexts of the political situation of the Holy Roman Empire, the divisions and conflicts between Gnesio-Luterians and the followers of Melanchthon, and the interaction with the Reformed camps, such as Bullinger and Calvin, in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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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多)문화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 - 삼위일체적 다(多)문화적 신학적 인간론의 모색

        백충현 ( Chunghyun Baik ) 한국개혁신학회 2019 한국개혁신학 Vol.64 No.-

        한 사회 안에서 외국인 거주자의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사회(多文化社會, multi-cultural society)”라고 규정하는데, 한국은 2018년 말을 기준으로 체류외국인이 약 234만 명으로 전체인구 중에서 4.5%를 넘어섰다. 지금까지의 가파른 증가폭을 고려하면 조만간 체류외국인 비율이 5%를 넘어서서 다문화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다(多)문화에 대한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의 인식은 매우 열악하다. 여성가족부가 수행한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에 따르면, 다(多)문화공존에 대한 찬성비율이 36%에 불과하여 유럽의 74%에 비하여 현저하게 낮다. 그러기에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는 다(多)문화에 대한 인식을 크게 개선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본 논문은 “삼위일체적 다(多)문화적 신학적 인간론”을 모색한다. 먼저, 본 논문은 먼저 다(多)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의 현황을 파악하고자 이와 관련된 여러 통계조사 자료들을 검토한다. 그런 다음에, 다(多)문화와 관련하여 성서적, 교회사적 등등의 논의들을 검토하면서 삼위일체적 다(多)문화신학을 개괄적으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삼위일체적 다(多)문화적 신학적 인간론을 모색한다.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 다(多)문화적이시며, 또한 이러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세계 전체가 다(多)문화적이다. 다(多)문화성 자체는 하나님의 본질과 특성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존재의 원리이며, 또한 세계의 가능성과 당위성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인간론도 또한 삼위일체적 다(多)문화적 인간론이어야 한다. 본 논문에서의 논의를 통하여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안에 다(多)문화사회에 대한 인식이 개방성, 관계성, 다양성, 보편성의 관점에서 확산될 것이며, 이것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를 정신적으로 더 풍성하게 하여 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오랜 적폐로 지적되어온 수직적 위계질서의 구조를 수평적 상호존중의 구조로 변화시켜줄 것이며, 이로 인하여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더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A multicultural society refers to a society where the number of foreign residents exceeds 5% of the whole population. At the end of 2018, Korea has around 2.34 million foreign residents, which was more than 4.5% of the entire population. Considering the steep increase until now, Korea would soon go beyond 5% in the number to be a multicultural society, However, an awareness about multiculture in Korean society and people is very low. According to a survey by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on ‘Korean Acceptance of Multiculture,’ only 36% of the whole pop-ulation agree to multicultural coexistence, which is markedly low in comparison to 74% in Europe. Thus Korean society and church are required to improve their awareness of multiculture greatly. Considering such a point, this paper tries to seek “a Trinitarian Multicultural Theological Anthropology.” First, it examines several statistical survey data to grasp Korean current situation in terms of multiculture. Then, while examining biblical and church historical discussions on multiculture, it provides an outline of a trinitarian multicultural theology. Finally, it goes further to seek a trinitarian multicultural theological anthropology. The Trinity is a multicultural God, and the whole world created by the Triune God is itself multicultural. Multiculture itself is the essence and characteristic of the Triune God, and it is also a principle of human beings and society. In this regard, multiculture is both possibility and appro-priateness of the world. Thus anthropology as an exploration of human identity should be also trinitarian and multicultural. This paper could contribute greatly to the spread of Korean awareness about a multicultural society in terms of openness, relation-ality, diversity, and universality, thereby enriching Korean society and church mentally. And it, in turn, could contribute much to solve deep-rooted problems of Korean society and church, by trans-forming their vertical hierarchy into horizontal structure of mutual respect in order that they might manifest the aspects of the Kingdom of God more fu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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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 교회법이 한국교회에 가지는 의의; 엠던총회(1571)에서 아브라함 카이퍼까지, 지역교회의 보편성을 중심으로

        김재윤 ( Jae Youn Kim ) 한국개혁신학회 2012 한국개혁신학 Vol.35 No.-

        칼빈은 교리와 권징을 하나로 보았고 그 연속선상에서 교회법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설교와 성례를 통해서 예배의 회복을, 요리문답서를 통해 교리의 일치를, 교회법을 통해 성경과 교리의 가르침이 교회적인 삶으로 구체화되는 것을 추구하였다. 복음 설교와 교회법의 통일성을 강조한 칼빈과 그의 영향력 아래 있는 개혁교회들은 신앙고백서와 함께 교회법을 작성하였다. 네덜란드 지역에서 진전된 개혁교회의 교회법은 초기에 제네바 교회법(1541)과 프랑스 파리 총회에서 채택된 교회규칙서(1559)를 모태로 삼는다. 가장 기초적인 네덜란드 개혁교회법은 베이절 회합(1568)의 문서에서 발견된다. 십자가 아래 있는(onder de kruis) 네덜란드 지역의 교회들 뿐 아니라 각국에 있던 피난민들의 교회들이 처음으로 모인 이 회합에서는 프랑스 교회 규칙서 제1항에서 천명되었던 ``어떤 교회도 다른 교회위에 독재권, 지배권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정신을 좀 더 구체화하고 심화시켰다. 노회와 총회등의 회의는 그 회의 자체의 목적보다 한 지역교회나 말씀의 직분자들이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는 정신을 세부적인 항목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역교회들 사이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직분자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정신이 강조되었는데 예를 들어 목사의 죄를 다루는 항목에서 교회와 동료 직분자들에 대한 독재권을 행사하려는 명백한 혹은 은밀한 추구에 대한 시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첫 총회로 모인 엠던 총회(1571)에서는 베이절 회합의 항목들이 가지는 반 위계질서적인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장로와 집사의 봉사기간을 2년으로 제한할 만큼 직분자들의 독단과 지배에 대한 경계하고 있다. 각각의 지역교회들을 중심에 두고 최우선으로 삼고 있어서 지역교회들의 회합을 명명할 때 단수로 하지 않고 항상 ``교회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였다. 베이절 회합과 엠던 총회의 교회법과 그 정신은 도르트 교회법(1619)으로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도르트 교회법은 이후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어두워졌을 때 교회를 갱신하는 원천이 되었다. 이는 19세기에 이루어진 두 번의 교회개혁의 흐름이었던 ``분리``와 ``애통``을 통해서 구체화되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교회질서에 대한 생각은 베이절 회합이후에 이어져 온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가진 교회법의 절정이 이루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철저하게 지역교회의 보편성과 독립성을 옹호한다. 모든 각각의 지역교회들은 그 자체로 교회전체이며 그 자체로 완전한 교회이다. 각각의 교회들만이 지상에서 교회이며 모든 권세와 권위를 소유하고 있다. 각각의 지역교회들이 연결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그것은 철저히 지역교회들의 자유로운 연합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카이퍼는 회중교회 입장과는 달리 노회와 총회의 필수성을 매우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광의의 회의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도 동시에 지켜져야 한다. 1)지역교회들의 독립성을 절대 훼손해서는 안된다. 2)교회연합은 지역교회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3)교회연합의 조건과 보증은 동등함이다. 종교개혁이후 오랜 기간을 통해서 형성된 이런 개혁교회법과 그 정신은 한편으로는 교권주의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고있는 한국교회에 각 지역교회들과 말씀의 봉사자들의 독립성과 보편성, 자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다. 노회나 총회가 광의의 회의로서 지역교회를 세우고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이 좀 더 강조되어야 하겠다. 반면에 교권주의의 결과로 개교회주의의 위협 또한 심각한데 교회의 지역교회들의 연합적인 하나됨을 최소화하지 않고 최대화하는 개혁교회법은 교회법과 규례, 광의의 회의를 통한 연합적 결속을 무시하면서한 직분자의 지배와 더 큰 무질서 속에 빠져 들어가는 위험에 대해서도 도움이 줄 수 있다고 본다. Church order is essential in the reformed tradition. John Calvin, an influential reformer, stressed the unity of doctrina and disciplina. For that reason, he composed his Ecclesiastical Ordinances(1541) as soon as he came back to Geneva from Strasbourg. Under Calvin`s influence, many Reformed church in Europe followed his model in producing their confessions and the documents about the church order and government. Early Dutch Reformed churches which composed of dutch and french speaking congregations and refugee-congregations in England and Germany had its foundation of church order in Calvin`s Ecclesiastical Ordinances and the Church Order of French Reformed church accepted by the synod in Paris (1559). Especially the church government order of the French Reformed church - local church, presbytery and synod - was well settled in the Reformed churches in the Netherlands. However, an anti-hierarchical character was intensified more than in the previous church orders. When examining the articles yielded by the Wezel convention(1568) which was the first official synodic meeting, one can discover evidences to confirm anti-hierarchical tendency. Leaders gathered in Wezel understood that the presbytery and the synod must focus on safeguarding the privileges of the ministers and local churches. Articles on pastor`s sin clearly demonstrated how Wezel convention consistently disapproved of the dominance of one minister or presbytery over other church offices. The first official synod of Dutch Reformed churches in Emden (1571) acknowledged this anti-hierarchical spirit of the Wezel convention. In the 19th century, dutch Reformed churches confronted secession twice, ``Afscheiding`` and ``Doleantie``. Local churches, pastors, and faithful believers desired to restore the identity of the Reformed church and remain faithful to the reformed confessions. Regarding the church order, they reaffirmed the church order of Synod of Dordrecht (1619) which contained almost the same substances of Wezel`s articles and the church order of the first synod in Emden. Not only Abraham Kuyper who plays a key role in ``Doleantie,`` but Herman Bavinck, the successor of ``Afscheiding,`` also supports the independency and universality of local church. Eventually, they argued that Kerkverband and the broader assemblies - particular and general synod - do not have an authority over the local church. No form of hierarchy can be permitted between the church offices and between other local churches. Korean churches can benefit from the Reformed church order established through the history of struggle in two aspects. First, the presbytery or the synod often results in clericalism in Korean churches. In the reformed churches, the presbytery and the synod must serve its purpose to protect the independency and privilege of the local churches and their ministers. These broader assemblies cannot operate their dominancy over the local churches. Second, in reaction to clericalism occurred in broader assemblies, an individualistic view which negate the kerkverband (association of the confessional churches) is also pervasive in Korean churches. They will benefit if they remember that the Reformed church order was designed not to minimize the unity of the local church but to maximize its comm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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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신학과 인문학의 창조적 만남을 위한 교회사적 소고

        배덕만 한국개혁신학회 2011 한국개혁신학 Vol.32 No.-

        여러 측면에서,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목회자들의 도덕적 문제, 성장에 대한 교회의 집착,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부정적 태도 등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극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은 부흥운동을 통해 이렇게 추락하는 영적 상황을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어떤 개혁자들은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교회와 목회자들을 향해 비판적 목소리를 계속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안팎의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는 교회를 위한, 신학자들의 개혁적 목소리나 행동은 상대적으로 드문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곤경에 처한 한국교회를 위해 신학자들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인문학과 좀 더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신학자체가 인문학의 영향 하에 형성되었고, 현재에도 인문학과의 대화 및 협력 없이 신학적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에는, 신학자들이 인문학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여러 요인들이 존재하며, 한국에서 “신학하기” 위해선 그런 요인들을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교회는 미국선교사들에 의해 개척되었고, 지금도 미국교회와 신학적·신앙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의 이념적 정체성은 이 나라의 지리적· 이념적 분열의 막대한 영향 하에 형성되어 왔다. 게다가, 한국교회는 자본주의와 관련된 물질주의,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신학적 차이에 기인한 내적 분열 등의 난제들과 씨름하는 중이다. 이 문제들은 모두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논제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들을 용감하고 책임 있게 다루지 않는다면, 신학자들과 교회가 한국사회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심지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런 목적을 위해, 신학자들은 철학, 문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같은 인문(사회)학으로부터 많은 소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신학적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런 필요를 깊이 깨닫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문학자들과의 대화와 협력에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좀 더 빈번하게 참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인문학과 일종의 간학문적 작업을 시도할 때, 세심히 주의할 필요도 있다. 신학자들에게는 인문학으로부터 긍정적인 지적 통찰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신학자와 신자로서 자신의 신학적·영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양자 간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Korean churches are faced with serious crises in many aspects. Critiques against pastors’ moral problems, churches’ preoccupation with numerical and financial growth, and Christians’ negative attitudes toward other religions are getting increased. In this situation, a variety of efforts to overcome those crises are being carried out. Some pastors try to change the declining spiritual condition by way of revival movement. Some reformers are raising their voices against the churches and theirs pastors associated with a series of scandals. However, in this context, it is relatively rare to hear theologians’ voices or actions for the reorientation or reconstruction of churches faced with a lot of challenges from within and without. In the midst of this religious turmoil, one of the ways for theologians to contribute to Korean churches in need is to have a more responsible dialogue with humanities. Basically, theology itself has been shaped under the influence of humanities, and it is even now impossible to do theological work without dialogue and cooperation with humanities. In particular, “doing theology” in Korea is asked to consider many factors, which also enforce theologians to pay more attention to humanities. Korean churches were planted by American missionaries and are maintaining a close relationship with American churches and theologies. The ideological identity of Korean churches has been formed under the heavy influence of the geographical and ideological division of this country. In addition, Korean churches are struggling with a series of difficult matters such as materialism related to capitalism, religious pluralism, and inner division due to the theological differences. All of these matters must be critical theological issues in Korea. Therefore, without dealing with those issues bravely and responsibly, it is neither possible nor desirable for theologians and churches to make any positive impact on Korean society. And for that purpose, theologians can get many significant academic insights from humanities including philosophy, literature, history, politics, economics, sociology, and the like. These days, more and more scholars are realizing such a need in the course of their theological work. But, they need to participate in the dialogue and cooperation with humanists more actively and frequently. Such a close contact will make a positive impact on even humanities, let alone theology. At the same time, theologians need to be cautious, when they try to undertake a kind of interdisciplinary work with humanities. For theologians, what matters is how to make a balance between to get positive intellectual insight from humanities and to keep their theological and spiritual identities as theologians and believers, not secular human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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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장로교회와 장로직; 장로임기제 도입에 대한 개혁신학적 탐구

        권문상 ( Moon Sang Kwon ) 한국개혁신학회 2012 한국개혁신학 Vol.35 No.-

        이 논문은 한국 장로교의 장로직제의 실체와 그것의 교회사적, 개혁신학적 여부를 타진해 본다. 특히 한국 장로교의 장로직제 나아가 장로교 치리회가 개혁신학적 혹은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제네바 교회치리회(Consistory)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분석한다. 이상의 탐구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장로교 정치 구조가 칼빈이 시도한치리회 제도의 정신과 얼마나 부합하지 않는지를 확인할 것이다. 장로회제도에 대한 이러한 개혁신학적 탐구를 통해 이 글은 장로 임기제의 법제화를 요구할 것이다. 한국 장로교가 영향 받았다는 미국의 장로교에서는 이미 대부분 장로 임기제가 실시되고 있는 사실에서 우리가 계속 종신제를 유지시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할 것이다. 물론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장로 종신직이 시행되고는 있지만 이는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교회의 자치권을 확보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에 따라 도입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가 모범을 삼기에는 논리적 근거가 희박하다. 오히려 한국의 장로 종신직은 다분히 한국 문화의 산물인 것으로 동네 ``어른`` 장로의 복사판인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한국의 유교적 문화적 개념에 따라 한국의 장로 종신직이 유래하였다고 볼 때, 임기제로 고치는 것은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하겠다. 특히 개혁신학의 유산을 물려받은 한국 장로교로서는 칼빈의 제네바 교회 치리회 구성 목적 및 그 운영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칼빈이 제네바 교회 치리회 제도를 만든 목적 중 하나는 목사든 장로든 1인 혹은 1개 조직의 권력 집중화를 막는 것이었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위해 제네바 교회 치리회 의원 중 장로 임기를 (연임이 가능한)1년으로 정한 것이었다. 치리회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칼빈이 장로 임기제를 실시한 것과 같이, 한국 장로교 역시 장로 임기제를 실시하는 것이옳을 것이다. 물론 이 글의 논지를 지지하는 전제 조건으로 칼빈이 제안한 바와 같은 목사의 자격과 그 지위에 대한 철저한 제도적 검증, 관리, 감독 장치 설치를 제안한다. 장로의 임기제 도입은 이와 같은 목사에 대한 제도적 견제 장치의 개설을 전제한다. This paper analyzes the organization of eldership in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and asks if it coincides with the ecclesiastical, Reformed, and biblical substantiation. Especially it concerns how it or Presbyterian consistory in Korea corresponds to the Reformed or the Genevan Consistory under the leadership of John Calvin(1509-1564). Through these studies, can we recognize that the organization of Korean Presbytery is far from the ethos of Genevan church in the ministry of Calvin. Reading the organization of eldership in view of Reformed tradition, we demands the legalization of the term of an elder. We do no justify ourself the life tenure of an elder in view of that the presbyterian churches in U.S.A., which has had an effect on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already execute the term office of an elder. It is true that the Presbyterian churches in Scotland implement the system of the life tenure of an elder. However, we need to consider that it was made in practical purpose to secure the autocracy of the church from the intervention of the state. In this sense, it is not the model for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Rather, the life tenure of an elder in Korean churches is the product of Korean culture, namely the copycat of the elder as a ``senior``, a respected person only because of the ages, living in the neighborhood. Recognizing that the life tenure of elder in Korean Presbyteian churches originates from the Korean Confucian social custom, we have no justification to reject the revision from the life tenure to the organization of the term of an elder. The term system of an elder should be, of course, brought alongside of the institutional check of the ministers, as in Gen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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