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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시평 문체의 형성과 의의

        김용화 충북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5 러시아학 Vol.- No.11

        Данная статья рассматривает формирование публицистического стиля во второй половине XIX - начале XX вв. и его значение в истории русского литературного языка(далее РЛЯ) в аспекте зависимости изменения нормы ЛЯ от социально-культу- рных условий и заключает следующие выводы: ① В рамках публицистического стиля объединяют свободно публицисты и лите- ратурные и народные разговорные речевые элементы с книжными для интимного изложения эмоционально-экспрессивного и интеллектуального содержания. ② Одна из главных тенденций развития РЛЯ в изучаемую эпоху - это взаимо- действие стилей, включая проникновение языковых средст, характерных для иных стилей, в публицистический, что повыщает полифункциональность РЛЯ. ③ Ключевая роль в изменении РЛЯ переводится от создателя текста РЛЯ к его пользователю в течении времени. ④ Показательно, что аналогичными оказываются роль публицистического стиля в изменении нормы РЛЯ в изучаемую эпоху и роль языка средств массовой инфо- рмации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우리에게는 근대러시아 문학어사가 없다”, “19세기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문학어 텍 스트의 언어 구조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지 식은 여전히 적다”(Чапаева 4 재인용). 이것은 20세기 말 러시아 언어학자들(Кутина, Сорокин, Горшков)의 말이다. 실제로 러시아 문학어사는 11 – 18세기 연구에 집중되어 있고, 현재는 20세기 중·후 반부터의 현대러시아 문학어 변화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으로, 푸쉬킨 이후부터 10월 혁명 직후, 즉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1). 그렇 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본고는 그것을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본다. 첫째, 이 시기는 언어상, 특히 형태적, 통사적 관점에서 큰 변화가 없었던 ‘안정된 시기’이었다. 둘째, 언 어 변화의 주요 동력으로 변이성 개념에 대한 언어학적 이해가 부족하였다. 우선 첫 번째 이유부터 간략히 서술해 본다. 피터 대제의 사회문화적 개혁, 1917년 10월 혁명, 그리고 1985년 페레스트로이카 이 후 시기와 비교하여, 19세기 중반 – 20 세기 초의 언어적 변화는 대단히 느리고 완만하게 진행되어, 일반 언중은 그 변화를 거 의 감지하지 못할 정도이었다. 그러나 언어는 자신의 내적, 그리고 외적 요인들과 상호 관계 속에서 반응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것으로, ‘언제나 움직이는 물체’이다. 따 라서 이 시기 러시아 문학어도 여전히 움직이며 변화하고 있었고, 이 시기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문체 체계의 확립과 더불어 텍스트 구성 방식의 변화(Бельчиков 2012: 46-51, Грановская 2005: 71-106)이었다. 사회적 급변으로 인한 새 어휘의 대거 등 장과 같은 변화와 비교할 때, 이 변화는 느리게 진행되고 쉽게 감지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안정된 시기로 표현되었지만,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에도 문학어는 당연히 사회문화적 조건과 맞물려 변화하고 있었고, 또 다음 시기의 변화를 태동하고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현대언어학에서 언어 변화, 특히 문학어와 문 학어 규범 변화의 주요 동력으로 간주되는 변이성이 언어학적 개념으로 주목되기 시작 한 것은 20세기 후반 프라하학파의 문학어 이론에 의한 영향이다. 19세기 중반 - 20 세기 초 러시아 언어학계에서도 변이성 개념, 문학어의 규범 및 규범화, 그리고 언어와 말 문화에 관한 문제는 생소한 것이었고, 언어학적 연구 대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상 황이었다. 또한 19세기 말 - 20세기 초, 과학아카데미 러시아어문학부 수장으로, 이 시기 러시아어학의 대표적 학자였던 샤흐마토프를 비롯하여 일부 언어학자들이 문학어 의 규범화 가능성에 대하여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그 당시 이 문제가 연 구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한 원인이었다. 본고는 먼저 II장에서 두 번째 원인, 즉 문학어와 문학어 규범, 그리고 규범 변화의 원동력인 변이형에 대한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러시아 언어학계의 시각을 소개한 다. III장에서는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러시아어는 다른 시기와 비교하여 상대적으 로 안정된 시기이지만, 언어는 동적인 물체이고, 특히 문학어와 문학어 규범은 사회문 화적 조건과 맞물려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관점에서 사회문화적 조건과 문학어의 상관 성을 고찰한다. 이 시기의 사회문화적 조건에서 바로 시평 문체(Публицистический стиль) 가 형성되었으므로, IV장에서는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시평 문체가 형성되는 사회문화적 조건과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시평 문체의 의미를 논의할 것이다. V장 맺음말에서는 연 구 결과를 요약하고, 시평 문체의 형성과 관련하여 문학어의 사회적 기반(Семенюк 1970: 516) 시각에서 러시아 문학어 발전사의 특징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 KCI등재

        러시아 정교와 반유대주의

        문준일(Joon Il Moon) 충북대학교 러시아 알타이지역 연구소 2024 러시아학 Vol.28 No.-

        소련체제 붕괴로 그 사회를 지배해왔던 새로운 ‘신앙’인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물러났을 때 이를 대체할 신앙으로서 정교신앙이 거론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에서 정교와 국가는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항상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러시아 혁명 직전 까지 러시아 정교회는 지식인 계층을 포함한 모든 사회 계층에 영향력을 끼쳤다. 소비에트 시기 정교회는 새로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국가 이념의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그리고 구체제의 근본이념인 정교는 소멸되어야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스탈린은 나치 독일에 대한 전선에 정교회를 합류시켰고 정교회와 국가는 다시 협력관계로 복원되었고, 무신론의 소비에트 사회에서도 러시아 정교는 정치적 유용성을 인정받았고 존속할 수 있었다. 포스트소비에트 시기 러시아 정교는 이데올로기의 공백을 메꿀 대체재로 다시금 부활하며 혁명 전 러시아 사회에서 누리던 지위를 점차 회복하였고, 권력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푸틴의 집권 이후 러시아 사회 여러 분야에서 민족주의 경향이 노골화 되는 것과 함께 러시아 정교회도 그 행보에 동참하고 있는 여러 현상들이 관찰되어 진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 러시아의 민족주의적 이념이 러시아 정교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종교와 관련된 푸틴 행정부의 정책 등은 국가 중심의 민족주의적 경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러시아 정교가 민족주의와 결합되는 현상들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현대 러시아에서 반유대주의 이념의 확산에 정교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러시아 정교의 반유대주의 경향을 “시온의정서”의 출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When the Soviet system collapsed and the new “faith” that had dominated that society, Marxism-Leninism, was abandoned, it was not surprising that Orthodoxy was considered as the faith to replace it. Historically, in Russia, Orthodoxy and the state recognized each other's roles and always maintained a close relationship. Until just before the Russian Revolution, the Russian Orthodox Church was influential in all strata of society, including the intelligentsia. During the Soviet period, the Orthodox Church was forced to give way to the new communist ideology as a state ideology, and Orthodoxy, as a fundamental part of the system, was to be extinguished. However, during World War II, Stalin enlisted the Orthodox Church in the fight against Nazi Germany, and the Church and the state were restored to a cooperative relationship, and Russian Orthodoxy was able to survive in an atheistic Soviet society because of its political usefulness. In the post-Soviet period, Russian Orthodoxy was revived as an alternative to fill the ideological vacuum, gradually regaining its pre-revolutionary status in Russian society and becoming very close to the powers that be. Since Putin's rise to power, a number of phenomena have been observed in Russia, including the rise of nationalist tendencies in various sectors of Russian society, and the Russian Orthodox Church has joined the movement. The most prominent phenomenon is the fact that Russian nationalist ideology in the post-Soviet period has been linked to the Russian Orthodox Church, and the policies of the Putin administration, especially with regard to religion, can be interpreted as state-centered nationalist tendencies. The most characteristic of these phenomena is the role of Russian Orthodoxy in the spread of anti-Semitic ideology in modern Russia. This study examines the anti-Semitic tendencies of the Russian Orthodox Church, focusing on the publication of the Protocols of Zion.

      • KCI등재

        카잔 러시아 정교 선교회의 ‘기초 러시아어 교과서’ 출판에 대한 계보학적 연구 : 『고려인을 위한 기초 러시아어 교과서』(1901)에 이르기까지

        한지형(Han, Ji Hyoung) 충북대학교 러시아 알타이지역 연구소 2021 러시아학 Vol.- No.22

        This study examines the transition process of the basic Russian textbooks published for inorodtsy, or more commonly referred to as allogeneousin from the early publications to Basic Russian Textbook for Goryeoin: A Test Version for Conversation Classes published in 1901.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background and significance of the Russian Empire, and through this, to provide a basis for a comprehensive analysis and evaluation of the study of Basic Russian Textbook for Goryeoin, Korean-Immigrants. This study was conducted in the following three stages. First, the Russian language textbooks for allogeneousin published by the Russian Orthodox Missionary in Kazan were discovered and a complete list of publications was created. Second, by analyzing the constructed empirical data from a genealogical point of view, the composition of the textbooks and the process of change of contents were examined. Third, based on the above findings, this study clarified the characteristics of Basic Russian Textbook for Goryeoin through interrelationships between textbooks. As a result, previous literatures mostly discussed the preface, contents and Goryeoin and their language through textbooks, Basic Russian Textbook for Goryeoin; however, this study examines further to consider the interrelations of textbooks to broaden the time and spatial context of this research area. Thus, this study, as a genealogical work, is intended to contribute to the creating the foundation work to allow comprehensive evaluation of history of Russian educations for allogeneousin during the Russian Empire or the publication history of textbooks for Goryeoin in Russia.

      • KCI등재

        청주시 거주 러시아어권 이주민 현황과 과제

        김태옥 (Tae Ok Kim) 충북대학교 러시아 알타이지역 연구소 2023 러시아학 Vol.- No.27

        본 논문은 청주시에 거주하는 고려인 동포를 포함한 러시아어권 이주민들의 체류 현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이주민 정착과 사회 통합을 위한 몇 가지 과제들을 짚어보고 있다. 외국국적 동포 중에서도 최근 5년 동안 중국과 미국 국적 동포가 차지하는 비율이 주춤하고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출신의 동포, 즉 고려인의 수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이 5%를 상회하는 경우 해당국가가 통상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인정한다면, 우리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청주시에는 2023년 3월기준 6,435명의 러시아어권 이주민이 등록·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미등록외국인이 20%가량 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청주시에는 약 7,700명가량의 고려인 포함 러시아어권 이주민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외국인 이주민 유치는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되었으며, 이는 이민청 설립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로까지 진행되고 있다. 청주시에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러시아어권 이민자에 대한 각개 전투식의 지원방안은 이제 검토와 재정비를 거칠 단계에 이르렀다. 청주시청과 충북도청, 출입국관리사무소, 교육청, 대학, 중소기업중앙회 등을 비롯한 관련 정부 및 민간 기구들의 TF 구축이 시급하다. 사회학과 지리학, 인문학 분야의 공동 연구를 바탕으로 청주시 거주 러시아어권 이주민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 확보와 대대적인 네트워크 형성도 필요하다. 대한민국 청주시의 문화가 러시아어권 이주민의 문화와 공존하고 상생하는 성숙한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This paper specifically examines the residency status of Russian-speaking immigrants, including the ethnic Korean diaspora, living in Cheongju City. Throughout this study, it addresses several challenges related to immigrant settlement and social integration. Among foreign nationals of ethnic descent, there has been a noticeable shift in the last five years. The proportion of Chinese and American nationals among foreign compatriots has declined, while there is an increasing trend in the number of diaspora from Central Asian countries, particularly ethnic Koreans from Russia. If the foreigner-to-total population ratio exceeds 5%, it is commonly acknowledged that the country has transitioned into a multicultural society. By this standard, our society could also be described as multicultural. As of March 2023, the number of registered Russian-speaking immigrants residing in Cheongju City was recorded at 6,435. Considering the fact that around 20% of domestic foreigners are unregistered, it is estimated that there are approximately 7,700 residents with Russian-speaking backgrounds, including ethnic Koreans, in Cheongju City. The attraction of foreign immigrant populations in the era of low birth rates and an aging society has become an inevitable reality, leading to active discussions even about the establishment of an immigration agency. For the rapidly increasing Russian-speaking immigrant community in Cheongju City, individually tailored support measures have now reached a stage of review and reevaluation. Urgent efforts are needed to establish a Task Force (TF) consisting of relevant government and private organizations, including Cheongju City Hall, Chungbuk Provincial Office, Immigration Office, Education Office, universities, and the Small and Medium Business Association. Comprehensive information gathering and extensive network-building for Russian-speaking immigrants residing in Cheongju City should also be pursued, based on collaborative research in the fields of sociology, geography, and humanities. It is essential for the culture of Cheongju City, South Korea, to mature into a harmonious and mutually beneficial coexistence with the cultures of Russian-speaking immigrants, and this requires the collective attention and endeavors of all of us.

      • KCI등재

        조지아어 어휘에서 나타나는 러시아어 바버리즘 – 문학, 정치 발언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중심으로

        김희연,PIRTSKHALAVARUSUDAN 충북대학교 러시아 • 알타이지역 연구소 2024 러시아학 Vol.28 No.-

        언어는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문화간 교류와 상호작용은 언어에 반영되어 다양한 언어가 서로 얽혀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지아어는 소수민족의 언어는 아니나, 희소 언어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지아의 역사는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언어문화에 깊은 흔적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역동적인 관계는 조지아어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고유의 특성을 넘어서 조지아어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러시아어에서 차용된 조지아어 단어에는 어떠한 요소들이 있으며, 러시아어가 조지아어에 미친 영향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특히, 이 논문은 조지아어의 차용 개념인 ‘바버리즘’의 분류와 예시들과 차용어에서 의미가 변화된 예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 방법으로는 조지아어의 ‘바버리즘’을 정의하고, 차용어 사전과, 신문, 매체 등에 등장한 러시아어 차용어의 의미를 살펴본다. 조지아어와 러시아와의 언어 교류 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뉘앙스에 대한 고찰은 새롭게 시도되는 연구주제임을 밝힌다. 새로운 언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러시아와 조지아의 언어학적 측면의 관점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 이해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될 것이고, 조지아와 러시아의 양국 간을 넘어 동-서양의 문헌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도 기반이 되는 자료의 기초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Language plays a crucial role in shaping our cultures. The interaction and exchange of cultures are reflected in language, intertwining various languages. While Georgian is not a minority language, it can be classified as a rare language. The history of Georgia has maintained a close relationship, politically, culturally, and socially, with the Russian Empire era, leaving deep traces in language and culture. Beyond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the Georgian language, the dynamic relationship highlights the increasing importance of studying Georgian. This study explores the phenomenon of Russianized barbarisms in Georgian and examines their use and meaning. Georgians designate certain words as barbaric and consider them to threaten the purity of the Georgian language. These words include loanwords, foreign words, and other imported vocabulary; however, the actual impact of these lexical invasions is complex and varied. Research has shown that Russian barbarisms have negatively impacted the Georgian language in a variety of areas, including literature, political discourse, and more. In particular, Georgian speakers are intentionally using these terms to convey specific messages, in line with efforts to strengthen Georgian linguistic identity and autonomy. This thesis aims to analyze the contemporary meanings of barbaric terms in the Georgian language by scrutinizing the dictionary of barbaric terms compiled by Tbilisi State University. This study presents a new topic for Georgian language studies in Korea, and is the first attempt to explore the linguistic exchange between Russia and Georgia.

      • KCI등재

        Grammatica Russica(1696)의 형태론: Грамматıки Славєнскиѧ правилноє Сѵнтаґма(1619)와 비교의 관점에서

        한지형 충북대학교 러시아 • 알타이지역 연구소 2022 러시아학 Vol.- No.24

        본 논문은 스모트리츠키(M. Smotrytsky)의 교회슬라브어 문법서 Грамматıки Славєнскиѧ правилноє Сѵнтаґма와의 비교의 관점에서 루돌프(H. W. Ludolf)의 러시아어 문법서 Grammatica Russica에 반영된 러시아어 문법의 체계의 양상을 명사, 대명사, 부사, 전치사, 접속사에 대한 형태론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살펴볼 수 있었던 첫 번째는, 루돌프 자신이 직접 그리스어・라틴어의 전통에 입각한 러시아어 문법 체계를 정립하기보다, 이에 대한 교회슬라브어적 변용을 보여준 스모트리츠키 문법서를 매개로 Grammatica Russica를 집필하였다는 점이다. 두 번째, 스모트리츠키의 문법서와 비교해볼 때, Grammatica Russica의 내용과 구성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법 체계의 간소화는 당시 루돌프가 직접 겪고 관찰한 러시아어에 대한 귀납적 정보를 반영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 학습을 희망하는 유럽인들에게 적합한 실용 러시아어를 제공하기 위한 최적화된 체계로도 평가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어 학습의 어려움을 야기하는 러시아어 문법에 대해 유럽어와의 관계 속에서 그 보편성과 특수성을 인식하고, 이를 대조언어학적으로 설명하는 Grammatica Russica의 문법 기술법은 오늘날의 외국어 교수법과도 궤를 함께하는 부분이다. 또한 스모트리츠키의 문법서와 달리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명사 지소형과 그 사용 범례를 소개하는 부분은 당시 러시아인의 언어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Grammatica Russica에 반영된 러시아어 문법의 체계와 그 정립 양상은 외국어로서의 러시아어 교육사의 관점에서 조명해볼 수 있는 의미를 지닌다.

      • KCI등재후보

        만델슈탐의 유대 테마 연구: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색

        박선영 충북대학교 러시아 알타이지역 연구소 2015 러시아학 Vol.- No.11

        Данная работа посвящена рассмотрению иудейской темы в творчестве Мандельштама, являющейся стержнем проблемы родства и происхождения бытия поэта. Будучи мальчиком, Мандельштам уже заметил, что он сам еврей и разночинец из-за сильного запаха мускуса и кож, наполняющих весь дом. Впоследствии он постоянно отражал впечатления от родства и происхождения в своём творчестве прямо или косвенно. В разделе «Иудейство как хаос» рассматривается что-то хаотическое и отрицательное в иудаизме и еврействе. В стихотворениях «Из омута злого и вязкого...» и «В огромном омуте прозрачно и темно...», написанных в 1910 году и опубликованных в «Камне» (1916), поэт размышляет о своём «родимом омуте», который является не только «злым и вязким», но и «милым». К тому же в автобиографической прозе «Шум времени» (1925) Мандельштам пишет о чём-то хаотическом и отрицательном в иудействе, которое он чувствовал в детстве. Раздел «Иудейство как жёлтое солнце: гибель и возрождение иудаизма» посвящён тематическому анализу ряда стихотворений, навеянных иудейскими образами и мотивами, как «Отравлен хлеб и воздух выпит...» (1913), «Эта ночь непоправима...» (1916), «Среди священников левитом молодым...» (1917). В этих стихотворениях Мандельштам пишет о гибели и возрождении иудаизма, опирая на апокалипсический дух, вызванный из-за Революции в России. В разделе «Иудейство как почётное звание» прослеживается, как Мандельштам менял свой взгляд на иудейство. Например, в «Четвёртой прозе» он принимает иудейство как «почётное звание» в отличие от раннего взгляда на иудейство как «хаос». В «Четвёртой прозе», в которой отражён эпизод, связанный с третейским судом, перед которым предстал Мандельштам по обвинению в плагиате, поэт отмежёвывает себя от других советских писателей, поддерживающих А. Горнфельда. Сильно упрекая в грубости и близости к власти писательскую расу, которая «с противным запахом кожи и самыми грязными способами приготовления пищи ... везде и всегда близкая к власти», Мандельштам пишет, что он срывает с себя «литературную шубу» и писательство не совместимо с почётным звани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헤미안으로, 독일인들 속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전 세계에서는 유대인으로 말이다. 모든 곳에서 침입자로, 결코 환영받지 못했다.”1) 꽤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발언은 지휘자로 탄탄한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시절, 보헤미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태생으로 인한 정체성 고민을 요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발언이 있고 몇 년 뒤, 말러는 오스트리아 제국 최고의 영예라 할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음악 감독직을 제안 받고서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경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던 자신의 유대 태생을 부정하게 된다. 위에서 인용한 말러의 발언은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뛰어넘어 유대 민족 전체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으로 파악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말러의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만델슈탐에게서도 유사하게 반복되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가죽상을 하던 유대 가정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성장한 뒤 러시아의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만델슈탐은 대학 입학을 위해 그리스도교로 개종까지 하는 등 ‘유대’와 ‘잡계급’이라는 두 가지의 태생 문제로 인해 평생을 고민했던 시인이었다. 전형적인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야 가정에서 나고 자란 파스테르나크조차도 자신의 유대 출생이 러시아 문학계로 편입하는 데 있어 장애물로 남겨질 것을 의식하였다는 사실을 주지한다면,2) 평생토록 지속된 만델슈탐의 태생에 대한 고민이 근거가 없다거나 과장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여전히 러시아 문단에서 이들의 뒤를 잇는 러시아 시인으로 인정받은 브로츠키에게 유대인이라는 인종의 문제가 만델슈탐이나 파스테르나크에게서만큼 강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할지라도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무슨 욕설이나 성병의 병명과 같은 것이었다”고 적음으로써3) 그 또한 태생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4) 유대인이 전 세계적으로 배척당하고 있던 시기에, 더욱이 1905년 이후 러시아 내에서 유대인에 대한 압박이 더욱 강해지고 있던 시기에, 잡계급 출신의 유대인 만델슈탐이 인텔리겐치야가 주도하던 러시아 문학계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 녹록치만은 않았을 것임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성(姓)을 통해 이미 그 태생이 노출되기는 했지만, 만델슈탐이 초기의 시들을 선별하여 시집을 엮는 과정에서 유대 관련 테마를 의식적으로 제외시킴으로써 태생의 문제를 감추려 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해준다. 즉 유대 테마에 대한 이런 의식적 배제가 오히려 시인의 태생에 대한 고뇌를 역설적으로 강조해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만델슈탐의 전 생애는 끊임없이 존재의 문제에 천착하며 유대 태생의 시인이 러시아 문학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려는 몸부림으로 요약될 수 있다.5) 그는 여러 시기에 쓴 시나 산문 작품(회상록, 소설, 시학 에세이 등)에, 다시 말해, 시기 및 장르를 불문한 여러 저작 속에 ‘유대’의 이미지 및 모티프를 수없이 등장시켰다. 물론 모든 작품 속에서 해당 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이런 빈번한 등장은 만델슈탐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유대 태생에 대한 자의식의 자연스러운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6) 본고에서는 유대를 대하는 만델슈탐의 태도 변화가 작가로서의 성장에 있어 중요한 차원이었음에 동의하면서(Isenberg(1987: 14)) 유대의 이미지나 모티프가 나타난 작품 전체가 아니라 유대에 대한 태도나 태도의 변화를 감지하게 할 만한 작품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 KCI등재후보

        만델슈탐의 유대 테마 연구: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색

        박선영 충북대학교 러시아 • 알타이지역 연구소 2015 러시아학 Vol.- No.1

        본고는 만델슈탐의 존재론적 인식의 근원이었던 유대 테마에 대한 시인의 태도와 의식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을 가득 채운 사향내과 가죽 냄새를 통해 자신이 유대인이자 잡계급 출신이라는 점을 실체적으로 인지했던 만델슈탐은 평생 동안 전 창작을 통해 자신의 존재 근원에 대한 탐색을 이어나갔다. 1장 <‘카오스’로서의 유대>에서는 유년 및 청년시절 만델슈탐의 유대이즘 인식에 내재되어 있었던 부정적인 관점에 대해 살펴본다. 1910년에 창작되어 시집 『돌』의 1916년 판본에 실린 ‘쌍둥이 시’ 「사악하고 질척거리는 연못에서...」와 「거대한 연못 속은 투명하고도 어둑하다...」에서 시인은 ‘사악하고 질척’거릴 뿐 아니라 ‘사랑스럽’기도 한 자신의 존재의 근원 공간인 ‘연못’에 대해 숙고한다. 게다가 자전 산문 『시간의 소음』(1925)의 여러 장을 통해 만델슈탐 스스로 거침없이 ‘카오스’로 규정했던 ‘유대’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거부감이 결국 시인의 유년의 기억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2장 <‘황색 태양’으로서의 유대: 유대의 죽음과 부활>에서는 「빵에는 독이 들어있고, 공기는 다 마셔버렸다」(1913), 「이 밤은 돌이킬 수 없다」(1916), 「사제들 가운데 젊은 보좌로서...」(1917)와 같이 유대의 이미지와 모티프들로 포화되어 있는 시 작품들의 분석을 통해 만델슈탐이 러시아 혁명으로 인한 종말론적인 기운에 기대어 유대의 파멸과 부활에 대해 쓰고 있음을 살펴본다. 이어지는 3장 <‘영예로운 칭호’로서의 유대>에서는 혁명 이후 ‘내부망명자’를 자처함으로써 러시아 문단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만델슈탐이 유대에 대해 어떤 시각의 변화를 보였는지를 추적한다. 시인은 「제4산문」에서 유대를 ‘카오스’로 바라보던 초기의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영예로운 칭호’로 인지하며 유대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하지만 시인이 주장한 유대의 ‘영예로운 칭호’는 「제4산문」에서 고른펠트를 지지하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주류 공식 문학 종사자들과 자신을 의식적으로 갈라놓기 위한 방책이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결국 만델슈탐이 ‘유대’를 인종 및 종교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유대인이자 잡계급 출신이었던 만델슈탐은 태생상 이방인이자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러시아에서 다름 아닌 ‘러시아 시인’이 되고자 갈망하였고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자신의 존재 근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종교 및 인종의 문제를 문화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살펴봄으로써 자신의 유대 태생을 극복하고자 하였는데, ‘세계 문화에 대한 향수’라는 시인의 주요 시학적 모토는 유대계 러시아 시인 만델슈탐이 자신의 태생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였다

      • KCI등재

        한국 근대문학의 러시아 문학 수용양상 연구

        박혜경(Park Hye Kyung) 충북대학교 러시아 알타이지역 연구소 2017 러시아학 Vol.- No.14

        The modernization of Korean literature was achieved by an acceptance of European modernism through Japanese translations during the colonial times in the early of the 20th century. Although Korean writers in the 1920s were highly educated, most of them read European literary works translated into Japanese. In 1918, the literary journal Taeseomunyesinbo was begun published aiming at introducing European literature to Korean readers not by Japanese translation, but by translation from original texts, so this journal was regarded as a beginning of Korean modern literature. Through this journal Korean writers introduced European modernism, particularly, French symbolism. It was not until the 1920’s that Russian literature was accepted actively in Korea. In this period Russian literature was introduced to Korea primarily by Korean students who studied in Japan. From 1920’s to 1930’s Russian realism and social realism were particularly popular, because Korean writers and intellectuals thought that these literary trend were more appropriate to show the sufferings and frustrations of Koreans in Japanese colonial times. However, the influence of Russian modernism was relatively low. Russian modernism was acknowledged as literary genre by Korean writers, as long as their themes are concerned with Socialism or Russian revolution. The representative Russian symbolists, Alexander Blok and Andrey Bely were accepted revolutionary poets of Twelve and Christ is Risen that describe Russian revolution as a beginning of a new era and a victory of Russian history. The aim of this article was to study an influence of Russian modernism in Korean modern literature by analyzing literary magazines of 1920’s. Russian modernism was not actively accepted to Korean modernism because of its difficulty of language and historical restriction, nevertheless we cannot ignore of its influence. We have to understand the peculiarities of acceptance of Russian modernism.

      • KCI등재후보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서평 문체의 형성과 의의

        김용화 충북대학교 러시아 • 알타이지역 연구소 2015 러시아학 Vol.- No.1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는 언어변화 관점에서, 특히 형태적, 통사적 측면에서 큰 변화가 없었던 ‘안정된 시기’로 규정된다. 그러나 본고는 언어는 동적인 물체이고, 특히 문학어와 문학어 규범은 사회문화적 조건과 맞물려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입장이다. 본고의 연구대상인 시평문체가 형성된 시기도 바로 이 시기에 해당한다. 시평문체가 다른 시기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안정된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에 형성된 배경과 러시아 문학어사에서 그것의 의의를 고찰하는 것이 본고의 목표이다. 시평의 고유한 문체는 당시 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하여 작가가 자신의 관점과 이념을 가능한 한 더 많은 독자에게 더 효율적으로 어필하기 위한 텍스트를 구성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시평 작가는 독자와의 직접적 소통, 짙은 호소력, 넓은 독자층과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식자층의 문어적 구어, 민중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반 구어, 그리고 속어와 은어까지도 문어적 어휘와 자유롭게 혼합시켰고, 또한 다른 문체들과의 상호 영향을 통해 문체상 중립 지역을 확장시키며 문학어의 다기능성도 향상시켰다. 시평문체는 문학어 텍스트 산출자와 문학어 텍스트의 대상자가 분리되어 있다. 전자는 지식인 계층과 문학 (특히, 사실주의) 작가이고, 후자는 산출자 자신은 제외된 지식인 계층과 일부 일반 민중인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대상자가 산출자의 언어적 특성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텍스트 산출자는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과 그 글을 읽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어휘와 어결합, 그리고 통사적 구조 등을 선택한다. 18세기 말 – 19세기 초반 로마노소프, 카람진, 그리보예도바, 푸쉬킨의 등 문학어적 활동 역시 시평과 마찬가지로 산출자와 대상자가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텍스트는 문학어에 대한 산출자 개인의 문학어에 대한 관점이나 시도가 반영되었을 뿐, 대상자가 직접 텍스트의 언어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시평과 다른 점이다. 본고의 연구 결과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생각해보고 싶은 점은 다음과 같다.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러시아 문학어의 변화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시평 문체이고, 그 변화는 문어와 구어의 자연스러운 접촉과 융합이라는 점, 그리고 20세기 후반 – 21세기 초 대중 매체어의 영향으로 일상적 구어체가 문학어로 대거 유입된 것이 현대러시아 문학어 변화의 특징이라는 점은 литературный язык-публицистика-разговорная речь의 상관적 구도가 문학어 변화의 중요한 축으로, 앞으로 러시아 문학어 변화에 적용되는 일반적 법칙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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