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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irical Study on Societal Development Ideas
Chung, Il-hwan 대구효성카돌릭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 1998 사회과학연구 Vol.5 No.-
사회과학에 있어 사회발전(societal development)에 관한 논쟁은 지난 50여년 동안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즉 발전에 관한 이슈는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고 검토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발전이론과 정책은 발전 과정의 변화하는 역사적인 현실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관계 등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적용되고 있다. 사회발전은 체제나 국가의 차원을 넘어 모든 인간 공동체가 지향하고 있는 주요한 목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가들은 이 목표를 위하여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50여년 동안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사회 각 부문의 개선과 향상을 어느 정도 가져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발전의 과정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과 갈등이 야기되고, 경험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가들은 다양한 발전모형, 이론 혹은 전략 등을 개발·도입하여 사회 및 국가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 및 국가발전의 목표, 수단 및 전략 등에 대하여는 국가 및 개인마다 각기 다른 견해나 관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현재 사회발전론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요한 쟁점들을 전통적, 대안적 발전 모형으로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각 모형이 제시·표방하고 있는 주요 이념, 가치, 목적, 수단 등에 대하여 미국과 제 3세계 대학원생들이 어떻게 인지·선호하는가를 실증적으로 비교·분석하였다. 분석결과 첫째, 전통적 발전모형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가치에 대해 10개 하위집단 중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중국 대학원생들(M=3.51)이 가장 높은 점수를 보인 반면에, 자연과학 및 공학을 전공하는 미국 대학원생들(M=2.87)이 가장 낮은 점수를 보였다. 그리고 대안적 발전모형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에 대해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제 3세계 대학원생들(M=3.68)이 가장 높은 점수를 보인 반면에, 자연과학 및 공학을 전공하는 한국 대학원생들(M=3.25)이 가장 낮은 점수를 나타냈다. 둘째, 세 하위집단(미국, 신흥공업국, 여타 제 3세계국가) 중에서 전통적 발전모형에 대해 제 3세계 국가의 대학원생들(M=3.25)이 가장 높은 선호를 나타냈으며, 다음으로 신흥공업국 대학원생들(M=3.24), 그리고 미국 대학원생들(M=2.99)이 가장 낮은 선호를 보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안적 발전모형에 대해서는 미국(M=3.67), 제 3세계 국가(M=3.64), 신흥공업국(M=3.52) 대학원생들 순으로 그 선호도를 보였다. 셋째, 전공계열에 따라서는 자연과학 및 공학 전공 대학원생들(M=3.25)이 전통적 발전모형이 추구하는 가치나 이념에 대해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M=3.11)들 보다 높은 점수를 보인 반면에, 인문사회과학 전공 대학원생들(M=3.64)이 자연과학 및 공학전공 대학원생들(M=3.57)보다 더 높은 선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성별에 있어서는 남자 대학원생들(M=3.22)이 전통적 발전모형에 대해 여자 대학원생들(M=3.13)보다 다소 높은 선호를 보인 반면에, 대안적 발전모형에 대해서는 여자 대학원생들(M=3.69)이 남자 대학원생(M=3.65)보다 더 높은 점수를 보였다 다섯째, 전통적 발전모형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가치에 대해 중국 대학원생들(M=3.52)이 대만대학원생들(M=3.40)보다 다소 높은 선호를 보였으며, 대안적 발전모형에 대해서는 양 집단간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적으로 보면, 사회발전을 형성하는 것은 사회마다 다르며 한 사회내에서도 변화하는 여건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전통적 및 대안적 발전 모형에 대한 사회 집단 구성원간의 인지도와 선호도의 차이는 어느 사회나 국가에서든 국민이나 주민의 필요나 발전정책 사이의 연계성을 제공해 주는 주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현상학적 지식사회학 : P.버그와 T.루크만이 사회적 현실의 구성
윤병철 대구효성카돌릭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 1998 사회과학연구 Vol.5 No.-
P.Berger and T.Luckman are well known as eminent socioilogists who took advantages of phenomenology in their social theories. They were interested in the role of knowledge which mediates the individual identity and social structure. It is ture they failed to touch on the concrete facts needed to discuss the experiences of reality. But they supplied abundant resources of insights to knowledge of sociology suggesting that how everyday life is constructed and preserved.. In this point, I’d like to clarify their view points in this essay.
박창호 대구효성카돌릭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 1998 사회과학연구 Vol.5 No.-
This paper investigated the sociological meaning of the sonno-joi movement with reference to the Meiji Restoration. The sonno-joi movement emerged in response to the threat of the West. After fixing a seclusion policy, the Tokugawa had maintained the policy for nearly two hundred years, But in the nineteenth century, the threat from the outside generated new attitudes toward the emperor and new religious concept of the state. These were combined in the sonno-joi movement(revere the emperor and expel the barbarians). This movement was closely linked to the concept of kokutai(national polity). The sonno-joi was transformed into a kind of religious movement together with a kokutai centred on the emperor. The movement led by loyalists from samurai class laid strong emphasis on veneration for the emperor. Therefore, on the basis of sonno-joi and kokutai, a new ideology centred on the emperor began to take concrete shape in Japan at the dawn of its opening to the West. The new ideology involved an effort to define the desirable political entity as well as a religious renewal. This movement had the dual aspect. As it were, the forms of religious action were involved in such a way that they are identical with political action. Based on the sonno-joi, Tokugawa shogunate was demised and a new authority under the symbol of the emperor after the struggle of 1868. As the loyalists insisted, the emperor had been returned to the centre of government. When Japan faced the Western menace, the emperor thus provided a new rallying point for nation. Consequently, in the modernisation of Japan, the sonno-joi played a key role in providing a ideological basis, rationalising social action for political ref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