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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ssionare als Filmemacher oder “Macher” von Koreabildern? - Norbert Webers Im Lande der Morgenstille(1915 & 1927)

        Sylbia Bräsel 한국독일언어문학회 2012 독일언어문학 Vol.0 No.58

        노르베르트 베버는 독일 베네딕트파 선교사로, 1911년과 1914/1915년, 두 차례에 거쳐 한국을 여행하고, 그 기록을 책과 영화로 남긴 바 있다. 베네딕트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총원장이었던 그가 한국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포교활동 때문이었고, 실제 그의 활동의 중심에는 선교라는 목적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술적 조예뿐 아니라 매체와 여론을 다룰 줄 아는 마케팅 재능을 갖춘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두 차례에 거쳐 한국을 여행하며 남긴 일지와 영화는 선교사, 민족학자, 예술인으로서의 베버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이국적 문화를 민족학자적 관심에서 매우 정교하게 글과 카메라로 담았고, 그의 예술적 관심은 그로 하여금 정선의 금강산 화첩을 구입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탄생한 한국 여행기를 출판하면서는 한국이란 나라의 ‘낯섦’을 독일 고급시민층 독자의 이해에 맞추어 소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그의 영화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 한국 문화(결혼, 장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 사료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당시 제국주의적 관점이 담긴 그의 책도 당시 서양 선교사가 한국이라는 ‘이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흥미롭게 담고 있으며, 이 책의 표지는 그의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예술적 감각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서양은 과거 유럽의 식민주의, 제국주의적 자아상에서 벗어나 동양의 문화를 서양문화에 대한 영향요소로 바라보고 있다. 역사가 오스터함멜은 훔볼트의 말을 빌려 ‘낯섦을 이국화하는 대신, 이를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 맥락에서 볼 때 베버의 여행일지도 단순히 정적인 묘사가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각각) 사회적 현실과 담론을 구체적 공통텍스트(Kon-Text), 즉 맥락으로 엮은 결과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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