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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Penicillinase Producing Neisseria Gonorrhoeae 발생빈도(1996)

        김재홍,황동규,전재홍,김윤석,김중환,김용준,이창균,임동진,김현수,조창근,김경문,박상훈,전우형,김희성,이호정,차명수,김갑형,김형석,김석우,황지환,박병순,권오상,이민수,송기훈,성소영,이인섭,부태성 대한화학요법학회 1999 대한화학요법학회지 Vol.17 No.2

        Background : In recent years, gonorrhea has been panedemic and remains one of the most commom STDs in the world, especially in developing countries. Objective & Methods: For the detection of a more effective therapeutic regimen and assessing the prevalence of PPNG, we have been trying to study the patients who have visited the VD Clinic of Choong-Ku Public Health Center in Seoul since 1980 by means of the chromogenic cephalosporin method. Results: In 1996, 139 strains of N. gonorrhoeae were isolated, among which 53(39.0%) were PPNG. Conclusion: Our results suggests that after a peak of 74.3% in 1993, the prevalence of PPNG in Seoul is gradually declining.

      • 헤겔의 시원론(始原論)과 주희(朱熹)의 태극론(太極論)에 관한 비교연구 -존재론적 관점의 차이를 중심으로-

        권기환 ( Kwon Ki-whan ) 한국하이데거학회 2013 존재론 연구 Vol.32 No.-

        이 글은 헤겔의 시원론과 주희의 태극론을 비교함으로써 존재론적 관점의 차이를 밝히는 데에 있다. 존재의 구조와 근거를 밝히는 이론으로서 존재론은 헤겔과 주희에 있어서도 각각의 철학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이다. 헤겔의 시원론은 순수 존재의 이중적 구조를 통해 시원을 이루고 있는 것과 시원 자체가 구분되는 데에서 출발한다. 만일 시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 존재와 무라면, 시원 자체는 존재와 무를 모두 포함하는 순수 존재 자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시원 자체는 후진적 근거짓기를 통해 차후적으로 존재하는 제3의 존재, 즉 비존재다. 이것은 무전제적, 무규정적 존재로서 모든 규정성으로부터 벗어난 순수 형식을 지닌 존재 자체다. 이와 반대로 주희의 태극론은 처음부터 존재의 근거와 만물의 근원을 본체론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우주 생성론으로부터 벗어난다. 주희는 형이상자와 형이하자를 구분함으로써 형이하자인 음양의 근거를 형이상자인 태극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현상계의 만물이 리와 기를 서로 뒤섞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주희의 철학체계는 리기이원론적 리론이다. 결론적으로 헤겔의 시원론과 주희의 태극론의 관계에서는 존재론적 관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헤겔의 철학은 순수 사유와 순수 존재가 일치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순수 사유의 체계인 논리학을 통해 형이상학을 해명하는데 있다. 헤겔의 시원론은 단초로부터 종결에 이르는 과정을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진리를 획득하는 이론이다. 이와 반대로 주희의 태극론은 우주생성론이 아니기 때문에, 본체론에 상응한다. 여기에서는 헤겔처럼 순수 사유의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통합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것은 우주 및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가치가 서로 연관된다는 것을 뜻한다. Die vorliegende Arbeit beschäftigt sich mit der Differenz des ontologischen Ge sichtspunktes, indem sie die Theorie des Anfangs des Hegels einen Vergleich mit der des T‘ai-Chi Chu Hsiss anstellt. Die Ontologie als eine Lehre von Struktur und Grund des Seins ist eine nötige Theorie bei Hegel und Chu Hsi, um jedes philosophisches System zur Vollendung zu bringen. Die Theorie des Anfangs Hegels geht davon aus, dass das, was den Anfang macht, von Anfang selber unterschieden ist. Wenn das, was einen Anfang macht, Sein und Nichts ist, ist Anfang selber als reines Sein selbst. welches Sein und Nichts enthält, zu verstehen. Aber Anfang selber ist das dritte Sein, welches durch die zuruckgehende Begrundung nachfolgend vorhanden ist, d. h. Nichtsein. Dies ist Sein an sich, wel ches sich aus aller Bestimmtheiten herauszieht und reine Form hat, als ein unvorrausgesetztes, unbestimmtes Sein. Indem die Theorie des T‘ai-Chises Chu Hsiss dahingegen von Anfang den Seinsgrund und Universumsursprung ousiologisch rekonstruiert, zieht sich von der Kosmogonie oder Kosmologie heraus. In dem Chu Hsi das Metaphisches von Physisches unterscheidet, stellt den Grund fur Yun-Yang, nämlich das Physisches durch T‘ai-Chi, das Metaphysisches dar. Weil doch das Universum der Erscheinungswelt weder Li mit Ki mischen kann, noch Li von Ki untrennbar ist, heisst das philosophische System die Li-Ki-dual istische Li-Lehre. Zum Schuss besteht die Differenz des ontologischen Gesichts punktes im Verhältnis von der Theorie des Anfangs Hegels und T’ai-Chis Chu Hsiss. Die Philosophie Hegels geht von einer Voraussetzung aus, dass reines Denken mit reinem Sein vereinigt, und besteht darin, die Metaphysik durch die Logik, die das System des reinen Denkens heisst, zu darstellen. Die Theorie des Anfangs bei Hegel hat einen Prozess, der von ein em Ansatz bis zum Ende gelangt, und die Lehre, die zugleich durch die dialektische Bewegung Wahrheit bekommt, Weil dahingegen die Theorie des T‘ai-Chi Chu Hsis keine Kosmogonie oder Kosmologie ist, entspricht solche Theorie der Ousiologie. Hier wie Hegel die Dimension des reinen Seins nicht ist, sondern ist die organische Vereinig ung von dem Mensch und der Natur gewichtig. Also bedeutet dies, dass das Gesetz von Universum und Natur sich zu Geltung des Menschen verhä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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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히테에 있어서 실천적 자기의식의 실재론적 전화

        권기환(Ki-Whan Kwon) 한국현상학회 2011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50 No.-

        이글은 피히테의 『새로운 방법에 의한 학론』에서 실천적 자기의식의 관점을 실재론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재구성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시도는 『기초』에서 진행된 방법이 이론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을 단지 엄밀히 구분하는 것만으로 양자의 통일이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서 『기초』의 작업이 이론적 지식에서 실천적 지식으로의 이행이 필연적임을 보여주는 시도이지만, 그 결과는 양자의 분열에 머물고 만다. 따라서 피히테가 학론의 첫 번째 형태를 변형하는데, 그 방식은 이론적 자기의식에 의한 관념론이 아니라, 실천적 자기의식이 실재론으로 전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실천적 자아가 이론적 자아보다 우위라는 피히테의 주장을 바로 경험계에 적용한 결과에서 밝혀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자아와 비아의 종합은 현실적이지 않는 절대적 자아에 의해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의 체계에 의한 신체로 규정된다. 신체에 의한 주체와 외부세계의 매개는 정신계와 경험계를 결합시켜주는 접합지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순수의지도 이성적 존재의 특징을 규정해주는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된다. 오히려 순수의지는 감성화에 의한 지성의 순수한 힘으로 표현된다. 물론 이러한 힘은 자기한계로서 지성의 최고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주체가 인륜법칙에 상응하는 행위로서 지성계에 관여하는 한, 이러한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지 당위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당위에서 지성의 능력이 종합적으로 증명되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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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겔과 메를로-퐁티에 있어 ‘지각’의 의미

        권기환(Ki-Whan Kwon) 한국현상학회 2016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71 No.-

        본 논문의 목적은 헤겔과 메를로-퐁티에 있어 ‘지각’의 의미를 『정신현상학』과 『지각현상학』을 중심으로 비교 연구하는 데 있다. 이러한 비교연구는 서로의 관점상의 차이를 통해 현상학의 지평을 확장할 것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현상지의 서술을 통해 의식경험의 학문을 의식의 학적 역사로 서술한다. 반면, 메를로-퐁티의 지각현상학은 현상의 본질을 규명해서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몸을 통해 해명한다. 헤겔에 있어 ‘지각’은 감성적 확신에서 지각에로의 이행을 통해 상식에 머물러 있는 의식의 계기인 반면, 메를로-퐁티에 있어 ‘지각’은 현상의 장에서 현상적 몸이 세계와 구체적 관계를 맺는 육화된 의식이다. ‘지각’에 관한 이러한 서로의 차이는 감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구분된다. 헤겔에 의하면 감성적 확신으로서의 감각이란 사념에 불과한 것이지만, 메를로-퐁티의 감각은 감각하는 자의 감각으로서 우리의 생생한 체험을 의미한다. ‘지각’의 주체도 헤겔에 의하면 의식경험의 주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메르로-퐁티에 의하면 ‘지각’은 몸-주체로서 세계에로의 존재를 뜻한다. 결론적으로 헤겔은 ‘지각’을 의식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의식과 세계와의 관계를 매개와 지양을 통해 성취하고자 했던 반면, 메를로-퐁티는 현상적 장에서의 몸을 통해 세계와의 구체적 관계를 맺고자 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nduct a comparative study of what Hegel and Merleau-Ponty meant by “perception,” with its focus on Phenomenology of Sprit and Phenomenology of Perception. While Hegel’s “Phenomenology of Spirit” is an account of the science of empirical experience in terms of the scientific history of consciousness through the exposition of phenomenal knowledge, Merleau-Ponty’s Phenomenology of Perception is a science that explains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the world through their physical bodies by identifying the nature of perception. For Hegel, “perception” is the moment of consciousness remaining as common sense through the transition from sensuous consciousness to perception; for Merleau-Ponty, on the other hand, it is the incarnated cognition in which the phenomenal body makes concrete connections with the world in the phenomenal field. The difference in “perception” between the two philosophers results from how they regard sense. According to Hegel, sense as the sensuous consciousness is nothing but a personal thought, but for Merleau-Ponty, sense means the vivid experience of a human. According to Hegel, the “subject” of perception is nothing but a subject of the experience of consciousness. As opposed to the Hegelian concept, Merleau-Ponty’s “perception” as a body-subject means the flesh of the world. In conclusion, Merleau-Ponty attempted to make a concrete connection with the world through a physical body in the phenomenal field, while Hegel sought to reveal the relationship between consciousness and the world through mediation and sub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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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히테에 있어서 도덕 감정과 양심

        권기환 ( Ki Whan Kwon ) 한국칸트학회 2010 칸트연구 Vol.26 No.-

        Dieser Aufsatz besteht darin, das Verhaltnis vom moralischen Gefuhl und Gewissen bei Fichte zu erklaren. Das Gewissen, welches das Gefuhl ist, setzt den ursprunglichen Charakter des Menschen voraus. Das Gewissen ist mit dem Gefuhl untrennbar und wird durch die praktische Handlung, welche das Gefuhl hat, bestimmt. Besonders das moralische Gefuhl besitzt praktisch eine gewichtige Stelle in allen Gefuhlen des Menschen, denn das moralische Gefuhl bestimmt das Verhaltnis zwischen dem Sittengesetz und dem Gefuhl der Achtung nicht nur im Maßstab der Sittlichkeit, sondern auch im Prinzip der Philosophie. Das Gefuhl der Achtung, welches die typische Gestaltung ist, geht vom einfachen Trieb des Subjekts in der “Sittenlehre” zur Sittlichkeit durch. Doch manifestiert dieses moralische Gefuhl sich durch das Gewissen als die Sittenlehre, dafur das Pflichtbewusstsein notwendig gefordert wird. Das Kriterium des Urteils der moralischen Handlung ist auf den Grund von Pflichtbewusstsein. Das Gewissen gilt fur dieses Kriterium, und die Erzeugung uber die moralische Handlung muss als das richtige Kriterium des Pflichtbewusstseins werden. Sonst konnen wir richteg oder unrichtg nie beurteilt werden. In diesem Sinne bedarf es kein Gewissen formell, keine abstrakte Allgemeinheit, nur das Urteil uber die konkrete moralische Handlung zu prufen. Sondern vielmehr muss das Gewissen als die sponautonome Handlung, welche sich unmittelbar bewusst bestimmt ist, das unmittelbare Bewusstsein oder Gefuhl der Pflichtsein. Dies gilt in der menschlichen Handlung dafur, dass das praktische Ich einen Primat mehr als theoretische Ich hat. Schließlich tragt Fichtes Gewissen dazu bei, die absolute Innerlichkeit maximal zu vergroßern, falls man richtig oder unrichtig in der menschlichen Handlung beurteilt. Dieses Gewissen wird durch die Verbindung mit dem moralischen Gefuhl zum sittlichen Trieb erhoben. Der sittliche Trieb ist gerade ein objektive Tatigkeit, ihrer Zweck realisiert absolute Freiheit von allen Tatigkei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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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피히테에 있어서 시간,공간의 발생론적 연역 -"개요"에서 칸트와의 방법론적 차이를 중심으로-

        권기환 ( Ki Whan Kwon ) 한국헤겔학회 2012 헤겔연구 Vol.0 No.31

        이 글은 피히테에 있어서 시간·공간의 발생론적 연역이 방법론적 측면에서 어떻게 칸트와 차이가 있는지를 밝히는 데에 있다. 특히 "개요"는 시간·공간에 관한 피히테의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칸트의 시간·공간에 관한피히테의 비판적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시간·공간의 직관형식들이 경험의 가능성을 위한 조건이 된다는 의미에서 칸트와 피히테는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칸트가 직관형식들을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간주하는 반면에, 피히테는 직관형식을 바로 선험적 특징으로 간주한다. 칸트는 시간·공간에 관한 직관적 지식의 선험성과 직관형식들의 선험론적 관념성을 선험적 지식의 타당성에서 추론한다. 그러나 피히테는 직관형식들, 즉 시간·공간의 선험론적 관념성을 증명하고자했다. 이를 위한 방법론이 바로 발생론적 방법이며, 이러한 연역방법은 칸트처럼 사물 자체에 범주를 적용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시간·공간의 기원과 발생을 해명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발생론적 방법을 통해서 규정된 근원적반성은 결국 실행행위로 환원된다. 시간·공간을 근원적인 자아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하기 위해서 생산적 자아는 자기직관을 우선적으로 규정해야만 한다. 자기직관은 시간·공간의 선험론적 관념성을 입증하는 데에 기초가 된다. 결론적으로 피히테에 있어서 시간·공간의 발생론적 연역은 시간·공간이 칸트처럼 지각을 위한 전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입증하는 방법론적 절차가 되어야 한다. Dieser Aufsatz beschaft sich damit, wie die genetische Deduktion des Raums und der Zeit sich von der methodologischen Seite mit Kant zu differnzieren. Besonders zeigt "Grundriß" den Fichtes Standpunkt uber Raum und Zeit, und zugleich den Fichtes kritischen Standpunkt uber Raum und Zeit Kants uns liefert. Kant und Fichte stimmen im Sinne uberein, dass die Anschauungsformen von Raum und Zeit zur Bedingung der Erfahrungsmoglichkeit wird. Wahrend Kant aber die Anschauung sformen a priori als gegeben ansieht, gilt Fichte die Anschauungsforme gerade fur den aporitischen Charakter. Kant schließt die Transzentaltat des anschauentlichen Wissens und die transzendentale Idealitat der Anschauungsformen aus Gultigkeit des aprioritischen Wissens. Doch will Fichte die Anschauungsformen, d. i. die transzendentale Idealitat von Raum und Zeit beweisen. Dafur ist die Methodolgie gerade das genetische Verfahren, und dieses Deduktionsverfahren verwindet nicht nur die Grenze, die wie Kant die Kategorien auf das Ding an sich anwenden kann, sondern auch die genetische Deduktion wirksam ist, um den Ursprung und die Genese von Raum und Zeit zu erklaren. Durch die genetische Deduktion ist die bestimmte ursprungliche Reflexion zum Schluss auf Tathandlung reduziert. Um Raum und Zeit aus dem ursprunglichen Ich notwendig abzuleiten, muss das produktive Ich zuerst die Selbstanschauung bestimmen. Die Selbstanschauung legt den Grund dazu, die Idealitat von Raum und Zeit zu bewisen. Schlißlich muss die genetische Deduktion von Raum und Zeit bei Fichte bleibt nicht der Vorraussetzung, dass Raum und Zeit wie Kant zur Wahrnehmung wird, sondern diese Deduktion muss das methodologische Verfahren, welches sie bew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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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반피히테주의

        권기환 ( Ki Whan Kwon ) 한국헤겔학회 2016 헤겔연구 Vol.0 No.40

        이 글은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철학적 특성을 반피히테주의로 규정하면서 그 근거와 타당성을 밝히는 데 있다. 반피히테주의자로서, 반토대주의자로서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하나의 철학체계를 하나의 원칙으로 환원하고자 했던 피히테 철학을 비판한다. 이때 그와 같은 비판의 핵심은 첫째, 피히테가 선험적 관념론을 완결하기 위해 자아만을 원칙으로 설정한다는 데 있다. 둘째, 피히테가 하나의 방법만을 보편적 절차로 이해하는 데 있다. 이것은 토대주의, 즉 하나의 철학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하나의 원칙과 하나의 방법만을 타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반피히테주의는 반토대주의일 뿐만 아니라, 철학을 하나의 체계로 그리고 하나의 원칙으로 환원하는 이론을 거부한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다양한 방법과 각각의 고유한 철학들의 공존을 통해 서로의 유기적 관계를 중시한다. 그 때문에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반피히테주의는 관념론과 실재론을 종합하는 절충주의 혹은 절대적 관념론으로 귀결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판정신이며 이를 통해 진정한 철학의 철학도 가능하다. In this paper, Friedrich Schlegel`s philosophy is determined as anti-Fichteism, and the reasons and validity of such classification are clarified. As anti-Fichteirian and anti-foundationalist, Schlegel criticized Fichte for his attempt to reduce one philosophical system to one principle. The two essentials of Schlegel`s criticism are as follows. First, Fichte posited the “I” alone in the principle inn order to complete transcendental idealism. Second, one method was the only thing that he understood as the universal procedure. This position is nothing more than foundationalism, that is, mere theory that accepts only one principle and one method as legitimate constituents to complete one philosophical system. Anti-Fichteism is anti-foundationalism, and it also rejects every reductive theory that makes philosophy one system or one principle. However, Schlegel emphasized an organic relation between different methods and various philosophies, which is the consequence of their coexistence. For the reason, his anti-Fichteism resulted in absolute idealism or eclecticism, which combines idealism and realism. This most important thing is critical spirit. This is only thing that could bring out the philosophy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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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히테에 있어서 감정개념의 발생론적 연역 -『전체 학론의 기초』의 "실천적 지식의 기초"를 중심으로-

        권기환 ( Ki Whan Kwon ) 한국칸트학회 2009 칸트연구 Vol.24 No.-

        이 글은 피히테에 있어서 감정개념에 대한 `발생론`적 연역을 다룬다. `감정`은 모든 실재성의식의 근거이고, 삶과 의식의 원리다. 그러나 감정개념에 대한 연역은 `발생론`적이다. 피히테에 있어서 `발생론`적 연역은 자아의 `기원`과 `발생`에 대한 설명을 `절대아`로부터 발생적으로 서술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절대아`가 이론자아의 `자기한계`로 인해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실천자아의 요청에 의해서 `절대아`는 `자기의식`의 조건으로서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발생론`적 연역에서 중요한 것은 자아의 `실재성`에 대한 증명을 하기 위해, 상이한 범주들의 모순과 대립을 다음 단계에서 해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절대아` 즉 `현실적 자아`가 아닌 `이상`으로서의 자아를 선의식적인 것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론자아의 `자기한계`는 "표상의 연역"을 통해 나타난 실천자아의 우위에 의한 이행 속에서 극복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감정`은 이론지식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실천지식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만 한다. `감정`에 대한 체계적 이론은 인간정신의 본질적 행동들의 재구성을 통해 드러난 의식형식들과 삶의 형식들을 특별하게 보여준다. `감정`에 내재되어 있는 역동성은 삶과 의식에 있어서 원리를 지닌다. 이러한 원리를 통해서 `감정`의 전개과정은 인간의 실천적 능력을 담보한 `추구`, `충동` 그리고 `욕구` 등을 수반한다. 삶과 의식의 원리로서 `감정`은 실재성의식에 의해 인간의 특징을 `자기감정`을 지니고 있는 현존으로서 규정하고, 객관의식의 구체성을 `동경`의 감정으로 표현하면서, 지식의 `원리`의 측면에서 `완성`의 감정을 표현한다. 결론적으로 감정개념의 `발생론`적 연역의 문제가 `감정`을 실천철학의 중심에 근거지움으로써, `감정`은 주관의 `자기객관화`를 통해서 인식의 차원에서도 해명할 수 있게 된다. Die vorliegende Schrift beschaftigt sich mit der `genetischer` Deduktion des Gefuhls begriffs. `Gefuhl` ist der Grund alles `Realitatsbewusstseins` und das Prinzip vom Le ben und Bewusstein. Aber die Deduktion uber den Gefuhl-Begriff ist `genetisch`. Die `genetische` Deduktion bei Fichte ist eine Methode, die Erklarung uber die `Genese` und den `Ursprung` des Ich von `absoluten Ich` genetisch darstellt. Da `absolutes Ich` doch wegen der `Selbsteinschrankung` des theoretischen Ich unbestimmtbar ist, wird `absolutes Ich` durch das Postulat des praktischen Ich als die Bedingung des `Selbstbewußtseins` notwendig abgeleitet. Wichtig ist es in der genetischen Deduktion, dass sie keine Methode, die den Widerspruch und die Enrgegensetzung der verschiedenen Kategorien in der folgenden Stufe auflost, um die `Realitat` des Ich nachzuweisen, sondern `absolutes Ich`, namlich das Ich als ein `Ideal`, nicht `wirklichesIch`, als vorbewußte bestimmt. Also wird die Selbsteinschrankung des theoretischenIch durch "die Deduktion der Vorstellung" im ubergang nach dem Primat des praktischen Ich uberwunden. In diesem Sinne muss `Gefuhl` nicht im Bereich des theoretischen Wissens, sondern des pratischen Wissens behandelen. Die systematische Theorie uber Gefuhl zeigt spezifisch die Bewusstseinsformen und Formen des Lebens,welche durch die Reduktion der wesentlichen Handlungen des menschlichen Geistesausgedrukt werden. Die Dynamik, die in Gefuhl inwohnend ist, hat das Prinzip im Leben und Bewußtsein. Duch dieses Prinzip begleitet die Entwicklungsprozeß des `Gefuhls` das `Streben`, den `Trib` und die `Begierde`, welche das praktische Vermogendes Menschen als Pfand versetzten. Das `Gefuhl` als das Prinzip des Lebens und Bewußtseins bestimmt das Spezifikum des Menschen durch `Realitatsbewußtsein` alsDasein, das Selbstgefuhl zu besitzen, die Konkretesierung des `Objektsbewusstsein` als Gefuhl des `Sehnens` darzustellen, und Gefuhl der `Vollendung` in Perspektive fur das `Prinzip` des Wissens auszudruken. Indem das Problem der `genetischen` Deduktion des Gefuhlsbegriffs schließlich `Gefuhl` auf das Zentrum der praktischen Philosophie grundet, kann das auch in der Dimension der Erkenntnis durch die Selbstobjektivisierung des Subjets erautert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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