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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극 음악구성의 원리 -본산대놀이계통 가면극을 중심으로-

        임혜정 ( Im Hyejung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6 공연문화연구 Vol.0 No.33

        본산대놀이계통 가면극들을 장면별로 구분해서 음악 구성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처음에 배치되는 제의적 성격을 지니는 벽사춤 장면에서는 <염불>이나 <느린굿거리>가 포함되는 기악곡이 연주된다. 가면극의 마지막에 배치되는 할미와 영감 장면에서는 기악곡으로 <굿거리>가 연주되고, 성악곡으로 <상여소리> 또는 <무가>가 불린다. 이 때 <상여소리> 또는 <무가>는 할미가 죽어서 굿을 하거나 상여를 메고 나가는 제의적인 성격의 장면에서 연주된다. 다음으로 중 장면, 양반과 말뚝이 장면, 할미와 영감 장면에서는 노승이 추는 춤의 반주음악으로 <염불>이 연주되고, 중이 부르는 노래와 취발이가 부르는 노래, 양반 또는 말뚝이가 추는 춤과 할미가 추는 춤의 반주 음악인 <굿거리>와 이들이 부르는 노래, 영감과 할미가 부르는 노래가 나오는데, 이들의 배치 순서는 유동적이다. 이렇게 가면극의 장면 배치가 유동적인 것은 음악 구성과 관련된 가면극의 구조 때문이다. 가면극의 구조는 성악곡이 등장하는 과장이 극 전체에 분산 배치되는 구조와 성악곡이 등장하는 과장이 후반에 집중 배치되는 구조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즉 가면극의 구조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서로 관련 없는 주제들로 이루어진 과장이 다시 모여진 형태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과장들의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서 각 과장에 어떤 음악이 포함되는지의 여부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관객을 긴장 또는 이완시키고, 흥을 이끌어 내거나 슬픔을 자극하기 위해서 적절한 음악의 배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음악의 배치는 각 가면극별로 공통된 장면에서 공통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양주별산대놀이, 봉산탈춤 등에서 불리는 <백구타령>과 <오독도기>가 수영야류에서도 반경토리로 불리는 예처럼 가면극의 전파 경로에 따라 동일 장면에서 연주되는 음악 역시 전파되었을 것이나 각 가면극 연희자의 음악적 역량이나 공연 환경 등에 따라 변형되거나 대체되고, 또는 생략되기도 했다. 그에 따라 동일한 내용의 과장이지만 이에 포함되는 음악의 유무, 그리고 그 음악의 성격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는 가면극별로 동일한 내용의 과장이 음악적 효과의 포함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순서로 배치되도록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According to the findings of the study, the music composition of the mask play is deeply related to the main characteristics of the scene. The first scene of the play starts with the Byeoksa dance. This particular dance part represents the evil spirit expel ritual. The instrumental accompaniment like < Neuringutgeori > and < Yeombul > are played for the dance. The last part of the play starts with the Halmi and Yeonggam scene. This scene is played in both the instrumental and vocal music. For the instrumental part < Gutgeori >, for the vocal part < Sangyeosori >and < Muga > songs are played. < Sangyeosori >and < Muga > songs are played on the part of the Halmi``s funeral ceremony scene. The instrumental < Gutgeori > and < Yeombul > are played in various scenes for the accompaniment of the dance part. The musical structure of the mask play is flexible. This kind of flexibility of scene structure mainly concerned with the way of musical composition. The main structure of the mask play can be classified into two main styles according to the allocation of the vocal music. In first style, the vocal music is evenly dispersed. In second style, the vocal parts are concentrated in the rear section. As I mentioned earlier, no logical association is found in the matter of the scene arrangement. A scene arrangement has a deep connection with the arrangement of the music in each scene. In conclusion, the mixed arrangement of the scene in mask play is mainly concerned with the matter of the music arrangement in order to maintain the tension of the drama.

      • KCI등재

        도리이 기미코(鳥居きみ子)의 몽골 노래 조사와 연구

        임혜정(Hyejung Im) 한국몽골학회 2022 몽골학 Vol.- No.71

        In this paper, I reviewed Torii Kimiko’s(鳥居きみ子, 1881~1959) achievements related in Mongolian folk song. Through this, the path, background, analytic process, and academic perspective of field research on Mongolian music in modern Japan were reviewed, and as a result,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reached. Torii Kimiko was aware that women could also be active in the study of anthropology under the influence of Tsuboi Shogoro(坪井 正五郎, 1863~1913). This position of her as a female anthropologist was advantageous in her investigation into the customs of women, especially in her Mongolian research activities. Also, Torii Kimiko basically tried to investigate and study Mongolia from the perspective of an anthropologist, focusing on music as the main object. Considering that Japanese anthropology was at the beginning of its establishment at that time, and that it was before the development of music anthropology in the West, Torii Kimiko's status as a scholar who attempted to combine musicology and anthropology should be re-evaluated Torii Kimiko collected songs from all over Mongolia, but the places where you can check the specific names were Haraqin Banner(Каракин 喀喇沁旗), Ar Horqin Banner(Арукорчин хошуу 喀喇沁旗), Xingan ring(Хянган дабаа 興安嶺), West Ujimqin Banner(Үзэмчин хошуу 西烏珠穆沁旗旗). She aimed to identify the ethnicity of Mongolia through her analysis of the performance situation of her Mongolian songs, lyrics, and melodies. She wanted to distinguish Mongolian songs from those that were influenced by China and those that maintained Mongolia's own indigenous attributes. Torii Kimiko also had a point of view comparing Mongolian songs with Japanese songs. For example, she compares the mongolian song and Japanese song Kakegoebusi(掛け声) in perspective of similar ending style and she also tried to compare the rhythm and the beat composition in Morin Khuur(морин хуур) accompanied Mongolian song with Japanese song Oiwakebusi(追分節). In other words, it can be said that Torii Kimiko wanted to find the connection point by revealing the indigenous nature of Mongolian songs and confirming similarities in Japanese songs. This reflects her intention to find the origin of Japanese culture in Mongolian culture through song

      • KCI등재

        근대 정악(正樂)의 전개와 인천의 음악인들

        임혜정(Im Hyejung)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14 인천학연구 Vol.21 No.-

        전통사회에서는 마땅히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음악을 이르던 용어인 “정악”이 근대 사회에서 접어들면서 특정 악 곡들을 지칭하는 장르명으로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근대 정악의 전개는 조선정악전습소, 조선음악협회, 그 리고 문인 음악을 전승하고 보급하기 위해 결성되었던 각 지방의 동호회 등의 활동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 중 조선정악전습소는 실제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대한 장르명으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도 정악이라는 용 어 대신 음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즉, 근대 정악의 전개에 있어서 현악영산회상 등의 줄풍류 음악, 그리고 가곡 에 대한 장르명으로 “정악”이 사용되는데 있어서 조선정악전습소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에 반해 각 지역에서 활동했던 정악 관련 동호회, 그리고 1920년대 후반에 조직된 조선음악협회의 활동이 “정악” 이 줄풍류 음악 및 가곡, 시조 등을 한데 묶는 장르명으로서 정착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문인 음악을 계승하고자 하는 각 지방의 동호회 활동은 1910년대 후반 이후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 로 나타났으며 인천의 이우구락부는 그 중 대표적인 단체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우구락부의 회원들이 스스로 연 주했던 음악에 대해 장르명으로서 “정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이우구락부의 후원 등에 힘입어 1920년대부터 정악이라는 장르의 음악 연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 던 배경을 지녔던 인천의 음악인들이 조선음악협회를 설립에 관여하게 되었다. 나아가 당시 정악을 연주했던 인천 의 음악인들은 조선음악협회의 활동을 통해 서울 및 전국을 대상으로 활동지를 넓혀 나갔다. 그리고 조선음악협회는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 중 관악 합주 음악은 물론이며 영산회상과 같은 줄풍류 계열 기악곡 들, 그리고 가곡을 묶어서 정악이라는 장르 명칭을 사용했다. 이렇게 근대화되기 시작한 문인 음악에 대해서, 정악 이라는 장르명을 사용하게 되는 흐름에는 각 지역에서 조선 시대 문인 음악을 계승하고자 했던 이들의 모임이 관 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인천의 이우구락부, 그리고 인천의 음악인이 참여한 조선음악협회의 음악??활동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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