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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조척도 ( The Measuring Units of Scale in Korean Architecture )
윤장섭 대한건축학회 1975 建築 Vol.19 No.2
원시시대에 문화활동이 싹트기 시작할 때부터 인류는 물건의 대소장단을 계측하기 위한 척도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단위가 점차적으로 정비되어서 생활용구의 제작 및 건축공간과 인위적 환경조성의 기준이 되었다. 역사상으로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사용하였던 척도단위를 비교연구하여 보면 어느면에서 공통되는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자기가 만든 물건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는 단위를 필요로 하였으며, 인간의 창작활동과 주위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척도의 단위가 필요하였다. 이와같은 척도단위는 항상 손쉽게 이용될수 있어서 안정하고 변화가 적으며, 표현이 직접적이어야 하였음으로 상고시대사람들은 인간자체의 지강, 수장, 촌장, 족장, 및 신장등을 척도의 단위로 삼아서 직접적인 척도의 비교체제를 만들어 사용하였든 사실은 고대문화활동에 있어서 세계각국에 공통적으로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본 논문은 한국건축에 사용된 영조척도의 기원과 역사적 변화에 대하여 조사연구한 것이다. 건축계획설계와 구조시공등의 모든 건축활동은 인간의 잠재적 의식을 통하여 형성되는 건축구상 (idea)를 구현하기 위하여 특유한 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어휘를 사용하게 되며 그 중에서도 척도, 형태 및 색채는 기본적인 삼대요소가 된다. 특히 척도는 건축조형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본요소라고 생각하며 이와같은 관점에서 보아 한국의 영조척도의 기원과 역사적 변천을 규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시시대에는 인체를 이용한 신도척이 사용되었으며, 그 예로서 한뼘(수장), 한길(신장), 한발(심장)등이 척도의 단위는 지금도 손쉽게 눈어림으로 길이을 계측하는데 보통 사용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한국과 일본의 민가건축 비교고찰 ( A Comparison of Domestic Vernacular Architecture between Korea and Japan )
윤장섭 대한건축학회 1979 建築 Vol.23 No.3
지구상에 있는 수 많은 민족들의 민가건축을 유형에 따라 비료연구한다는 것은 매우 쉽지 않은 과제이며 이 문제에 대하여 건축학뿐만 아니라 만족학분야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가 근래에와서 각국에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동양문화권에 속하는 한국과 일본은 그 지정학적인 위치 관계로 말미암아 상고시대에서 부터 사회문화적으로 깊은 유대관계를 갖고 있어서 종교와 민속신앙, 언어구조 생활양상 및 가족관계등에 있어서 많은 유사한 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유사한 사회문화적인 요인에 의하여 형성된 한국과 일본의 민가의 형태를 비교하여 그 연관성을 찾아 보고자 하는 것은 두나라의 건축문화의 관련관계를 해명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건축 (한국건축사연구) - 한국건축사연구 ( Choson Architecture(cont.) )
윤장섭 대한건축학회 1973 建築 Vol.17 No.4
조선시대의 건축문화는 한국의 독특한 조형의지에 의하여 그시대의 이상과 가치관을 나타내도록 발전하였다고 생각된다. 이시대의 건축은 구조와 의장의 유기적인 주요구성요소가 되는 두공형식을 구조적인 기능과 아울러서, 외형적인 형식미에 주안점을 두어 전체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한국건축의 외관과 그 세부상세가 중국 및 일본의 건축과 많은 차이를 나타내게 하였으며, 한국고유의 미를갖추도록 만들었다고 생각된다.이시대에 이루어진 궁궐건축형식의 본격적인 발전, 건축외형의 정제화, 장식의 다양화등 건죽형식미의 조형완성을 지향한 한국고유의 특성 있는 발전은 이시대 건축의 큰 업적으로 높아 평가되어야 할 것이며 일제시대에 과소평가되었든 경향은 지양되어야 하고 그 가치가 전반적으로 재인식되어야 할것이로 생각된다.
태고정과 박황씨가 ( Tai-Go Pavilion and Mr, Park`s House )
윤장섭,주남철,장성준,임길진 대한건축학회 1972 建築 Vol.16 No.1
본 태고정은 경북달성군 하빈면 사동 속칭 묘골이라 칭하는 마을의 가장 높은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은 원래 사육신의 1인인 박팽년의 자 박순의 유복자인 박산의 자손들이 정착해 살아온 마을이다. 박산은 본시 그의 조부가 참형을 당하여 그 일가권석이 난가가 될 때 다행히 박팽년의 자부가 임신중이었고 해산을 하게되자 때마침 노비중의 한 여인이 해산하여 딸을 얻은바 이 딸과 박팽년의 자부가 출산한 아들을 바꾸어 길르게 되어 박비란 아명으로 자라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