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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J.길렌 ( Eckhart J. Gillen ),박순홍(중역) 한국미학예술학회 2016 美學·藝術學硏究 Vol.47 No.-
본 논문은 분단국가 안에서 분단도시 베를린이 양분되었던 미술 현장의 문제 상황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대조되는 독일의 특수성을 설명한다. 서방 연합이 통치했던 동독(GDR)의 수도 베를린의 서쪽 지역은 독일이 통일되어 가는 과정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서베를린은 극동의 교두보였다. 동독과 서독 사이의 정치적.경제적.이념적.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깊은 분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서베를린의 냉전기 이문화 집단 거주지(enclave)가 이상적인 장소였다. 베를린은 서방 연합과 동구권 국가에서 예술이 발전해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서베를린은 미술에서의 플럭서스와 해프닝, 독일 팝아트 같은 새로운 실험이 배양될 수 있었다. 동베를린은 국제 미술계의 주요 미술사적 사건들로부터 단절되어 있었다. 그곳의 많은 예술가들은 시대착오적인 지위에 만족한 채 그들만의 예술을 발전시켜 왔다. 동독의 예술가들에게 기준은 진실성과 도덕성이었다. 서방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작품에 책임을 느끼지, 자신이 살고 있는 체제 또는 국가 이념과 그 사회의 도덕성은 아니다. 서베를린은 독일의 두 개념 사이에 놓인 이상적인 기준점이었다. 본 논문은 1945년부터 1990년까지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의 미술 현장에서 발생한 차이와 공통된 양상이 갖는 함의를 다룬다.